분명히 해둘 게 있는데, 지금 나는 찍찍이 생각을 할 수 없다거나 찍찍이 생각들을 경험하는 일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집착의 순간을 유발하거나 한순간 분리감을 경험하게 만드는 어떤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런 생각이 일어날 수가 없다거나 일어나지 않는다는 게 아니에요.
내 말은 그 생각이 일어났을 때, 생각이 일어나는 것과 생각을 꿰뚫어보는 것 사이의 간격이 매우 좁다는 겁니다. 그런 ‘끈적거리는’ 생각이나 집착의 순간들이 우리 인간의 심신체계에서 결코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인간의 몸과 마음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때때로 그러한 경험을 겪게끔 만드는 것 같습니다. 차이점 이라면, 어느 시점에선가는 끈적거리는 생각이 일어나는 것과 그것이 사라지는 것 사이의 틈이 아주 좁아져서, 그 일어나고 없어지는 것이 거의 동시에 일어난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지금 찍찍이 생각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 이런저런 상태에 있다고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 내 말은 다만 틈새가 아주 좁아져서 어느 시점에서는 어떤 틈새도 보이지 않을 지경이 된다는 겁니다. 사람들 사이에는 깨달음(enlightenment)이란 어떠한 불편한 일도 일어나지 않고 어떠한 미망의 생각도 의식 속에 비집고 들어오는 일이 없는 이러이러한 경지에 다다르는 것이라는 견해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깨달음에 대한 그러한 견해들은 망상입니다. 그런 건 아니에요.
게다가 그건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일단 그 간격이 아주 좁아져서 곧바로 꿰뚫어보게끔 되면, 뜻밖에도 그것 역시 우리에게 자유의 한 부분이 되는 겁니다. 어떤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거기에 오래 붙잡히지를 않으니까요. 그것은 정말 자유의 한 부분입니다. 그 나머지는 다 깨달음이 아닌 것을 깨달음이라 선전하는 것들이라고 난 생각합니다. 나는 사람들이 내 말을 듣고서 머무는 깨어남이 무엇인지에 대한 그들 나름의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건 내 본뜻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도리어 분리된 생각과 그 생각을 믿는 것 사이의 틈이 거의 없어지는 것과도 비슷해져 버리지요.
출처 : "깨어남에서 깨달음까지" 아디야샨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