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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yashanti

가장 중요한 것 the most important thing Adyashanti 아디야샨티

작성자山木|작성시간23.04.25|조회수110 목록 댓글 1

 

가장 중요한 것

the most important thing

Adyashanti 아디야샨티

 

Introduction

들어가는 말

 

OUR INNER LIVES ARE EVERY BIT AS ASTONISHING, BAFFLING, AND MYSTERIOUS AS THE INFINITE VASTNESS OF THE COSMOS.

우리의 내면의 삶은 마치 무한하고 광대한 우주처럼

어느 모로 보나 놀랍고, 불가해하고, 신비롭다,

 

As long as cognitively capable human beings have been living on this small blue planet among the stars, they have been telling stories.

 

인지 능력을 가진 인간은 수많은 별들 가운데

이 작고 푸른 행성 지구에서 살아오는 동안 계속 이야기를 해왔다.

 

we still tell stories to one another every day and, in our own minds, perhaps nearly every minute. Each moment of our lives is a story in creation, a novel without end, where new chapters are being lived out daily.

 

우리는 여전히 매일 서로에게 이야기를 하고,

자기마음속으로도 이야기를 하며,

아마도 거의 매 순간 이야기를 할 것이다.

우리의 삶은 순간마다 창조되는 이야기이며,

매일 새로운 장이 쓰이는 끝없는 소설이다.

 

And if we are paying attention, we’ll notice that some of those stories contain moments of grace when we are gifted with wisdom or love and understanding. Such stories can enlighten and transform our lives for the better.

 

그리고 주의 깊게 보면 그런 이야기들에는 은총의 순간이 있으며,

그 순간에 지혜, 사랑, 이해가 선물로 주어진다는 걸 알아차리게

된다.

그런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고 삶을 더 낫게 변화시킬 수 있다.

 

 

For each of our lives provides all that we need to gain deeper wisdom and love—if only we can learn to not become captivated by the negative and confusing spin that the mind often creates, but instead derive useful and enlightening knowledge from our own direct experience.

 

우리 모두의 삶은 보다 깊은 지혜와 사랑을 얻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이 만들어내는 부정적이고

혼란스러운 견해에 사로잡히지 않는 법을 배울 수 있어야 하고,

직접 경험한 것으로부터 유용하고 깨달음을 주는 지식을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This requires a disciplined awareness of and keen attention to the moment-to-moment experience of being, as well as great honesty and sincerity of heart. I’ve found that only by taking complete responsibility for my moment-to-moment experience of being do I retain both a sense of sovereignty and a feeling of connectedness with whomever I may be in relationship to. It seems that the experience of grace, when new vistas of insight and understanding spontaneously open within us, is intimately related to (though not directly caused by) the intentions and priorities that we live by.

 

이때 순간순간 존재의 경험을 주의 깊게 제대로 알아차려야 하며, 또한 지극히 정직하고 진실해야 한다. 나는 순간순간 존재의 경험을 완전히 책임져야만, 내가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과 유대감을

느끼고 주체 의식을 견지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 내면에서 통찰과 이해의 새로운 전망이 자연스럽게 열릴 때, 은총의 경험은(그것이 직접 일으키지는 않는다 해도) 우리가 삶에서 의도한 것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것 같다.

 

Our inner lives are every bit as astonishing, baffling, and mysterious as the infinite vastness of the cosmos. For we are each individual expressions of conscious being, and we contain the vastness of the cosmos within us, as much as we are contained within it. To look within and answer the ancient call to know thyself is perhaps the greatest and strangest adventure of all. It is the key to awakening to the truth of our being and living the most evolved lives that we can individually and collectively imagine.

우리 내면의 삶은 어느 모로 보나 무한히 광대한 우주처럼 놀랍고 불가해하고 신비롭다. 왜냐하면 우리는 의식이 있는 존재의 개별적 표현이며, 우리가 우주 속에 있는 만큼 우리의 내면에 광대한 우주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너 자신을 알라.”는 매우 오래된 요청에 응답하는 것은 아마도 모든 사람에게 가장 위대하고 낯선 모험일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존재의 진리로 깨어나고 개인으로서,

또 인류 전체로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발전된 삶을 살기 위한 열쇠이다.

 

 

 

What Is the Most Important Thing?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NO SPIRITUAL TEACHER, NO MATTER HOW WISE, AND NO TEACHING, NO MATTER HOW PROFOUND, CAN BE A SUBSTITUTE FOR DISCOVERING WHAT IS IMPORTANT TO YOU.

 

아무리 현명한 영적 스승도, 아무리 심오한 가르침도,

'당신에게 중요한 것'을 대신 발견할 수는 없다.

 

 

What is the most important thing to you? Not the top ten, not the top five, not the top three, not the top two, but the top. Is it awakening? Is it love? Is it peace? I could go on naming possibilities, but think about your spiritual life, the part of you that deep dives into the discovery of meaning. By meaning, I am not referring to the meaning of life—that ends up being theoretical. I am talking about meaning as that which gives us a sense of vitality, aliveness, inspiration, calm, and joy.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열 가지나 다섯 가지,

혹은 가장 중요한 세 가지나 두 가지 말고

가장 중요한 단 하나는 무엇인가?

깨어남? 사랑? 평화?

그 밖에 다른 것들은 계속 말할 수 있겠지만,

당신의 영적 삶에 대해, 그리고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깊이 몰두하는 당신의 일부에 대해 생각해보라.

여기서 '의미'라는 말은 삶의 의미를 가리키는 게 아니다.

그건 결국 이론으로 끝날 뿐이다.

'의미'라는 말은 생명력, 생기. 영감, 평온, 기쁨을 주는 것을 가리킨다.

 

I have done some research on the idea of the most important thing, and I have looked at it from different angles, talking to executives, athletes, musicians, writers, artists of all kinds, and anybody who excels at something.

 

나는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개념에 대해 여러 관점에서 고찰해

보면서 회사 중역, 운동 선수, 음악가, 작가, 예술가, 그리고 다른

여러 분야의 뛰어난 사람들과 대화를 해 보았다.

 

For as long as I can remember, I have been interested in people who do things well. These people tend to have an ability to define what is most important, to know it within their being, and to rally their resources toward it.

 

내가 기억하는 한 나의 관심은 일 잘하는 사람에게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대체로 가장 중요한 것을 분명히 밝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역량을 집중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If you think about it, anybody who achieves unusual excellence—you could throw Warren Buffett, Miles Davis, Michelangelo, or the Buddha and Jesus and other spiritual figures in there—has a sense of direction and a genuine feeling for the most important thing in their life.

 

생각해보면 워렌 버핏, 마일스 데이비스, 미켈란젤로, 혹은 붓다와 예수를 비롯한 영적 인물들처럼 드물게 탁월한 성취를 한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한 방향 감각과 진실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The Buddha’s most important thing was his recognition of the human condition, which involves suffering: sickness, old age, and death. He asked, Is there any resolution to this immense issue of suffering for any human being? He oriented his whole life around this question. He left his wife, his children, and his position in society. He walked away from it all and became a sadhu, a renunciant. Most of us are not going to do that. That is fine, because to copy what somebody else did is one of the mistakes we make.

 

붓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병과 늙음, 죽음의 괴로움이 따른다는 인간의 조건을 알아차리는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자문했다.

"사람들을 위해 이 막대한 괴로움의 문제를 해결할 길이 있는가?" 그는 이 물음의 답을 구하는데 평생을 바쳤다.

붓다는 아내와 자녀, 사회적 지위를 모두 버리고 떠나서 은둔 성자, 즉 고행자가 되었다.

우리 대부분은 그렇게 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이 한일을 따라 하는 것은 우리의 잘못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We should not say, If the Buddha left everything behind, I need to leave everything behind. What is more important than the renunciation is the Buddha’s focus, the sense that he found his most important thing. His act of leaving everything to pursue his question is unimportant; it is his response to the question that matters.

For Jesus, I would say it was to put God first in all things—that was his most important thing.

 

우리는 "붓다가 모든 걸 버리고 떠났다면,

나도 모든 걸 버리고 떠나야 한다."고 말해선 안 된다.

금욕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붓다가 집중한 것,

그가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발견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붓다가 자신의 의문을 깊이 생각하고 이를 밝히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린 행동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 물음에 대한 붓다의 반응이다. 내가 보기에 예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것 중에서 신을 가장 중시하는 태도였을 것이다.

 

 

There is a clarity that comes from finding out what the most important thing is to you.

 

무엇이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지 발견할 때

일어나는 명료함이 있다.

 

When I talk to people, especially when I am teaching, I often ask, So what is your spiritual life all about? What is the focus? What do you want? People answer, Enlightenment, to which I reply, What does that mean to you? What is the enlightenment that you seek? I explain, I am not talking about the ‘sales pitch’ for enlightenment. I am not talking about what someone promised enlightenment would give you. The sales pitch may promise eternal bliss, an end to unhappiness or suffering, and a life that is kind and benevolent, in which everybody loves and appreciates you. That has little to do with what enlightenment is.

 

나는 사람들에게 말할 때, 특히 가르치고 있을 때 종종 이렇게 묻는다.

"그래서 당신의 영적 생활은 무엇을 위한 건가요?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있나요? 무엇을 원하나요?"

사람들이 "깨달음이요."라고 대답하면 나는 다시 이렇게 묻는다.

"그게 당신에게 무슨 의미입니까? 당신이 추구하는 깨달음이란

무엇인가요?" 그리고 설명한다.

"나는 깨달음을 사라고 권유하는 게 아닙니다. 마치 세일즈맨이

약속하듯 당신이 깨달으면 얻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깨달음을 사도록 권유하는 사람은 당신이 깨달음을 얻으면 불행과 괴로움이 중단되고, 영원한 지복을 얻으며 친절하고 인자한 삶을 살게 되고, 모든 사람이 당신을 사랑하고 인정해주게 된다고 약속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깨달음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I am asking people to tell me, not what they have been sold, but what they want. When they think about the most important thing they are seeking, what does that mean?

 

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구입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것을 달라고 청한다. 사람들이 '자신이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Spirituality is my discipline, but you can apply this question to any area of life—to relationships, art, sports, or play. We are rarely taught to do this. Instead, our culture, family, and friends tell us what the most important things in life are, and we accept and absorb these stories without a lot of reflection.

 

나의 전문 분야는 영성이지만, 이 물음은 인간관계, 예술, 스포츠, 놀이 등 삶의 어느 분야에든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질문하는 법을 거의 배우지 못했고, 그 대신 문화, 가족, 친구가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것들을 깊은 생각 없이 받아들인다.

 

If we never question, then we focus our life on whatever we are conditioned to focus on, until one day we realize: What I have focused on was not that important to me. A reorienting follows when people hit midlife, because it is a time when we have done enough, achieved enough, or run the rat race long enough to start to wonder if it is satisfactory. Is it enough? That is when we reexamine and begin to ask questions: Is that what I want? What is the most important thing for me?

 

하지만 그런 질문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몰두하도록 조건화된 것에 삶을 몰두하게 되고, 결국 어느 날 "내가 몰두했던 건 내게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어."라고 깨닫는다.

사람들이 중년을 맞으면 삶의 방향을 다시 모색하게 되는 건

중년은 충분히 일했고 충분히 이룬 시기이거나,

오랫동안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서 삶이 만족스러운지 아닌지 회의하기 시작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제 충분한가?" 그때 우리는 다시 살펴보고 묻기 시작한다.

"그게 내가 원하는 건가?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When I ask people, What is your spiritual life all about? you would be surprised by how few have taken the time or imposed the mental discipline to define it. They read book after book, work with teacher after teacher, and even do years of meditation or other spiritual practice, yet they are chasing something that somebody else defined for them, thinking, That sounds pretty good. I’ll go for that. But they are not discovering the unique orientation that belongs only to them and their life. Nobody can give this to them. No spiritual teacher, no matter how wise, and no teaching, no matter how profound, can be a substitute for discovering what is important to you.

 

사람들에게 "당신의 영적 생활은 무엇을 위한 건가요?"라고 물어보면, 그것을 확실히 밝히기 위해 시간을 들이거나 정신 수양을 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걸 알고 깜작 놀랄 것이다.

사람들은 계속 책을 읽고, 이 스승 저 스승에게 배우며, 몇 년씩

명상을 비롯한 다른 영적 수행을 하지만, "저것이 아주 좋아 보이는 걸, 저걸 해야겠어."라고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이 규정한 것을 좇을 뿐이다.

그들은 오직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유일한 방향을 발견한 게 아니다.

아무도 그것을 줄 수 없다. 어떤 현명한 영적 스승도, 어떤 심오한 가르침도, 당신에게 중요한 것을 대신 발견할 수 없다.

 

When I ask people about their most important thing, their eyes go up, left, and right as if they are searching their memory for an answer to this question, but if we know our most important thing, our reply is immediate. We do not have to think about it—it is there. Such people know what they are doing and why they are doing it. They know the most important thing.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하면,

사람들은 마치 그 질문의 답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을 더듬는 것처럼

이리저리 눈을 굴린다.

하지만 자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즉각 대답할 것이다.

새삼 생각할 필요 없이 그것이 항상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고,

그것을 왜 하는지도 안다.

그들은 가장 중요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When I look back and reflect upon this idea of the thing that orients my life, my source of inspiration and aspiration, I see that it was an unfolding of what was important to me at that time. We all have phases in life during which different things are important. There are aspects of us that sustain their importance throughout a whole lifetime, and there are things that play themselves out, leading us to move on to the next thing. You could apply this concept to any moment and ask, What is the most important thing right now? Not the thing that comes from your head or even from your heart, but from deep down in your gut. What is it?

 

자신이 지향하는 삶에 대한 생각을 되짚어 보고 영감과 열정의

근원을 되돌아보고 숙고하면, 그것이 '당시에' 자기에게 중요했던 것이 밝혀지는 과정이었음을 알게 된다. 우리에게는 삶의 단계가 있고, 그 단계마다 중요한 것이 다르다.

전 인생에서 언제나 중요하게 유지되는 부분이 있는데,

어떤 부분은 그것이 실현되고 나면 우리가 다음 단계로 옮겨가도록 이끌어준다. 우리는 이런 개념을 어느 순간에든 적용할 수 있고,

"바로 지금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를 물을 수 있다.

그 답은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가슴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며, 뱃속 깊은 곳으로부터 나온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Everything that I excelled in throughout my life came about because it was my most important thing. I knew why I was there, what I was doing, what I was inspired by, and what I was looking for; I knew what the most important thing was.

 

일생 동안 내가 뛰어나게 잘했던 것들은 모두 그것이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왜 내가 거기 있는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이 나를 분발하게 하는지, 내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매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던 것이다.

 

When it came to spirituality, I realized there are many different ideas about what a spiritual life should be. I found I had to disconnect from how others defined it and keep returning to what truly belonged to me. I avoided the sales pitch for enlightenment, as I was not looking to achieve a lot of the things we imagine spirituality is about.

 

영성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영적인 삶이 어떠해야 한다는 편견들, 즉 다른 사람들이 그에 대해 규정하는 것을 끊어내고, 진정으로

내게 속한 것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깨달음을 장사꾼처럼 파는 말들을 피했고, 영성에 관련되었다고

여기는 많은 것들을 성취하려고 하지 않았다.

 

I wanted to know what truth was—the deepest, most fundamental truth of existence—and to make a positive contribution to life. What is this thing called truth, called enlightenment? This was my question and my driving obsession. This desire for truth has been with me in different ways for as long as I can remember.

 

나는 진리를, 존재의 가장 깊고 가장 근본적인 진리를 알고 싶었고 삶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고 싶었다. “진리라는 것이 무엇인가?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나의 질문이었고, 내 머리를 떠나지 않고 나를 분발하게 하는 힘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진리에 대한 욕구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늘 나와 함께 있었다.

 

What about you? What is the most important thing in your life? Do not assume it is the first idea that pops into your mind. Discovering it may take some real investigation and some serious contemplation. It will be worth the effort and can be a turning point in whatever area of your life you apply it. When you dig down, when you impose a mental discipline and do not settle for the quick, easy answer that you may well have learned from somebody else, you will find what nobody can give you and what belongs to you alone.

 

여러분은 어떤가? 여러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가?

머릿속에 맨 처음 떠오른 생각이 그것이라고 여기지 않는 게 좋다. 정말 진지하게 탐색하고 심각하게 숙고해야 자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노력을 기울일 가치가 있고,

이를 적용하면 인생의 어떤 분야에서든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잘 살펴보고, 정신 수양을 하고, 남들에게서 배운 쉽고 빠른 해답에 안주하지 않을 때, 아무도 줄 수 없고 오직 자신에게만 속한 것을 찾게 될 것이다.

 

I am not asking you to tell me what you believe I think should be your most important thing, because that is not for me to define for anybody. That is for each person to define for themselves. You need to impose discipline—and when I say discipline, I mean you may have to think this through and meditate on it for days or months to get a true sense of what it is.

 

여러분이 내 생각에 따라 자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어야만 한다고 믿는 걸 말해 달라는 게 아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밝혀주는 건 내가 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밝혀주는 건 내가 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각자가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확실히 밝혀내야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은 수양해야 한다. 이때의 '수양'이라는 말은 그것의 진정한 의미를 얻기 위해 충분히 생각해야 하고,

며칠이든 몇 달이든 그것에 대해 명상해야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As a spiritual teacher, I have seen that to define the most important thing is the most important thing. It is the first step. Until you do, your life does not even belong to you.

 

가장 중요한 것을 확실히 밝히는 것이야말로 내가 영적 교사로서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이 첫 단계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전에는 여러분의 삶은 여러분에게 속하지 않는다.

 

 

The Power of a Good Question

좋은 질문의 힘

 

YOU MUST BE WILLING TO GO AGAINST THE GRAIN,

AGAINST CONSENSUS REALITY.

기꺼이 자신의 기질을 거슬러야만 하고,

합의된 현실을 거슬러야만 한다.

 

 

Here’s a wonderful quote that I came upon by the nineteenth-century French writer Pierre-Marc-Gaston de Lévis: It is easier to judge the mind of a man by his questions rather than his answers. I love this kind of thinking because it turns our way of looking at things upside down. We are oriented to what I call consensus reality—what most people agree upon—but finding the most important thing depends on not accepting the ideas, beliefs, and opinions of others, because the way most people go about life does not always lead to great depth, joy, inspiration, or peace.

 

19세기 프랑스 작가 피에르 마크 가스통 드 레비가 말한 멋진 구절을 우연히 만났다.

"그의 대답보다 질문을 보면 그의 질문을 보면

그의 마음을 더 쉽게 판단할 수 있다."

사실 나는 이런 식의 사고를 좋아한다.

우리가 사물을 보는 방식을 뒤집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가 '합의된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

즉 대다수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에 적응되어 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믿음,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

대다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항상 심오함이나 기쁨, 영감,

평화를 이루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The questions that we ask are so incredibly important. What is the most important thing in my spiritual life? What is my entire spiritual life oriented around? You could apply this line of questioning to your relationships. What is my friendship or romance all about? What is the most important thing about that person to me? Or the subject of your investigation could be work. What is the most important thing about my livelihood? Because we are accessing our depth with these kinds of questions, it is not always an easy or comfortable process. You must be willing to go against the

grain, against consensus reality, and against what everybody thinks is the true and correct answer.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묻는 질문이 대단히 중요하다.

"나의 영적 생활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나의 전체 영적 생활은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가?" 이 질문을

인간 관계에도 적용할 수 있다.

"나의 우정 혹은 사랑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그 사람의 무엇이 내게 가장 중요한가?"

혹은 자기가 하는 일을 조사할 수도 있다.

"내가 생계를 꾸려가는 데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이런 질문으로 자신의 내면 깊은 곳을 평가하는 것이 항상 쉽고

편안한 과정은 아니다. 기꺼이 자신의 기질을 거슬러야만 하고,

합의된 현실을 거슬러야만 하고, 모든 사람이 옳은 대답이라고

여기는 것을 거슬러야만 한다.

 

As Lévis suggested, the answers are not as important as the questions—but our conditioning is around answers. When we are in school and it comes time to take a test, we want to get the right answer; we want to regurgitate what we were taught. That is what is expected, and it is part of learning. Unfortunately, at least to my thinking, it is too big a part of education, because we are taught to fill ourselves with other people’s answers and not to find our own. Some of this is the result of practical necessity—memorizing certain answers helps us to learn how to read, do math, and understand the sciences. But when it comes to our lives, to our sense of happiness and well-being and love, when it comes to what we contribute to this precious and brief life, repeating other people’s answers doesn’t help us answer the big questions: What do you want to contribute? What are you contributing? What is important to you?

 

레비가 말한 것처럼 대답은 질문만큼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대답에 의해 조건화된다.

우리는 학교에서 시험을 볼 때 배운 것이 똑같이 되풀이되는 정답을 알아맞히려고 한다.

모두 그러기를 기대했고, 그 과정이 배움의 일부였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러한 과정이 교육에서 너무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건 불행한 일이다.

자신의 답을 찾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답으로 자신을 채우라고

배우기 때문이다. 그 이유 중 일부는 실제적인 필요에 있다.

어떤 답을 외우면 읽고 계산하고 과학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삶에 대해서라면, 행복감과 평안함과 사랑에 대해서라면, 우리의 귀중하고 짧은 삶에 기여하는 것에 대해서라면, 다른 사람들의 답을 되풀이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물음에 답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당신은 무엇에 기여하고 싶은가?

당신은 무엇에 기여하고 있는가?

당신에게는 무엇이 중요한가?"

 

I am a big lover of asking profound and deep questions. I call this inquiry. Questioning is not safe; answers are safe. Accepting someone else’s answers is safe, an ideology is safe, and a theology is safe. We seek the right answers because we think they will make us comfortable, protect us, and insulate us from suffering. We grasp at the first thing that makes us feel better, but truth may or may not make you feel better—some truths are beautiful, and some are shocking. However, a great vitality comes with discovering any truth, because that which is real is charged with life-force, energy, and power.

 

나는 심오하고 차원 높은 질문을 하는 걸 아주 좋아하는데,

그런 질문 과정을 '탐구'라고 부른다.

질문하는 건 안전하지 않지만 대답하는 건 안전하다.

다른 사람의 답을 받아들이는 건 안전하고,

이데올로기는 안전하고, 신학은 안전하다.

우리가 '바른' 답을 추구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고, 보호해주고, 괴로움을 차단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진실이든 발견하면 커다란 활기가 함께 일어난다.

진실한 것은 생명력과 에너지, 힘으로 충만하기 때문이다.

 

Usually, when we want to get to know someone, we are looking for answers. What is your job? What do you do for pleasure? What movies do you like? What is your favorite book? We want to know, and that is fine, as that is part of human communication. But asking somebody what their most important question in life is can be a much better way of getting to know them than asking about their occupation or where they live.

 

때때로 우리는 어떤 사람에 대해 알고 싶을 때면 답을 요청한다.

"당신은 직업이 뭐지요? 놀고 싶을 때 무엇을 하나요?

어떤 영화를 좋아하세요? 어떤 책을 좋아하나요?"

우리는 그런 걸 알고 싶어 하고, 또 이런 식의 질문은 사람끼리

나누는 대화의 한 부분이므로 괜찮다.

하지만 어떤 이에게 직업이나 사는 곳을 묻기보다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물으면 그 사람에 대해 훨씬 더 잘 알 수 있다.

 

It is our questions that have power if we want to live an inspired life and a life that feels like it has great meaning to us. I am not talking about the conventional sense of meaning, like when we say, This is the meaning of my life and then we define that, nor am I talking about something practical, like Four is the sum of two plus two. I am talking instead about the living feeling of meaning—the experience of being extraordinarily alive, here, and present. That is a profound meaning, even if it is a meaning you cannot put into words, because it is an experience and not a definition.

 

영감을 받는 삶과 의미가 있는 삶을 원한다면, 우리의 질문은 힘을 가진다.

여기서 나는 "이게 내 인생의 의미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관습적인 뜻으로 '의미'라는 말을 사용한 게 아니고, 또 "2 더하기 2는 4이다."처럼 실용적인 뜻으로 말한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의미'라는 말의 생생한 뜻, 즉 대단히 생기 있고 여기 현존하는 경험으로 말한 것이다.

어떤 정의가 아니라 경험이기 때문에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심오한 뜻이 있다.

 

Questions bring us closer to that experience, though they are often paradoxical: when we first ask them, the immediate answer is a conditioned response. To dig deeply into these questions, to look deep inside oneself, is its own spiritual practice. What is the most important thing? So many of the answers that we have within us are there because at some point they made us feel comfortable or safe or secure, but they did so at the expense of a rich experience of being, existing, living, and even doing.

 

질문은 우리를 그 경험에 더 가까이 데려간다.

그런데 질문은 역설적일 때가 많다. 처음 질문을 할 때 바로 나오는 대답은 조건화된 반응이기 때문이다. 반면 이 질문들을 깊이 천착하는 것, 자신의 내면을 깊이 살펴보는 것이 바로 영적 수행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 내면에 너무나 많은 대답이

있는 건, 어떤 면에서 그 대답들이 우리를 편안하고 안전하다고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대가로 우리는 존재하기,

살기. 심지어 행동하기에 있는 풍부한 경험을 잃었다.

 

The cost of not asking insightful questions is that we tend to live on automatic pilot and solely from our conditioning, most of which was imprinted in us by our culture and society, our family and friends, the education we have had, and the consensus reality that most everybody falls into without even knowing it.

 

통찰력 있는 질문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자동 조종 장치에 따라 움직이듯이 살게 되고 조건화된 대로만 살게 된다.

그런 식의 반응은 대게 문화와 사회, 가족과 친구들, 우리가 받은 교육, 거의 모든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빠지는 '합의된 현실'에 의해 우리에게 각인되었다.

 

Anybody who is involved in any kind of excellence or profound achievement tends to question consensus reality, especially spiritual people like the Buddha or Jesus or so many others. They do not settle for a comforting belief system, and they do not comply because the authorities have suggested that is the way the world works or that is what is true; they explore these issues within themselves.

 

어느 분야에서든 뛰어나고 높은 성취를 이룬 사람들은 '합의된

현실'에 의해 우리에게 각인되었다. 어느 분야에서든 뛰어나고

높은 성취를 이룬 사람들은 '합의된 현실'에 대해 질문하는 경향이 있다.

붓다나 예수 그리고 많은 영적인 인물들이 특히 그렇다.

그들은 위안을 주는 신앙 체계에 안주하지 않고, 권위자들이 세계가 그렇게 돌아간다고, 그것이 진리라고 말했다고 해서 그대로

순응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내면에서 그 문제들을 탐색한다.

 

The great mythologist Joseph Campbell paraphrased Carl Jung, saying that religion is here to protect us from the truly religious experience. How does it do that? By telling us the way everything is within an ideology of theology or a belief system. We respond, Okay, that sounds good to me, I’ll buy into it, that is the way things are, but doing that disconnects us from true revelation, because the place where revelation occurs within us is in the unknown.

 

위대한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칼 융의 말을 조금 바꾸어서, 종교가 여기 있는 까닭은 진실로 종교적인 경험에서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종교는 어떻게 그렇게 하는가? 모든 것이 신학이나 신앙 체계의

이데올로기 안에 있다고 말함으로써 그렇게 한다.

그러면 우리는 "예, 좋은 생각이네요. 지금 있는 현실이 그렇다는 걸 믿을게요."라고 대답하는데. 그렇게 되면 우리는 진실한 계시에서 단절된다.

우리의 내면에서 계시가 일어나는 곳은 미지未知이기 때문이다.

 

Dogma fills the unknown within us with the known; religion fills us all up, and we walk around with a new ideology, which precludes having meaningful religious or spiritual experiences. This does not mean that religious people do not have religious or spiritual experiences. They do, but they have them despite their beliefs, not because of them. Although they may have a belief system, they continue to reach beyond dogma and beyond mere ideas.

 

하지만 종교의 교리는 우리 내면의 미지未知를 '아는 것'으로 채운다.

종교가 우리를 가득 채우면 우리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지니고

다니는 것이다. 그러면 의미 있는 종교적. 영적 경험을 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종교인들이 종교적. 영적 경험을 하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들은 신앙 때문이 아니라 신앙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영적 경험을 하는 것이다. 신앙 체계를 가지고 있지만 끊임없이 교리 너머로, 단순한 관념 너머로 손을 내밀기 때문이다.

 

It does not matter what the belief is—theistic, nontheistic, dualistic, nondualistic. It is our answers that blind us, that we hide behind, and that we use to protect ourselves from the great insecurity of facing our confusion and our doubt and plunging into our consciousness in a profound way.

 

어떤 신앙인지는 상관없다. 유신론이든 무신론이든, 이원론이든

비이원론이든 마찬가지다. 우리의 눈을 가리는 것, 우리가 그 뒤로 숨는 것, 그리고 혼란과 의심을 직면하고 의식 속으로 깊이 뛰어든다는 큰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하는 대답이다.

 

Even if we know not to accept the answers we are given, the questions we ask can also be conditioned. Sometimes the questions that are useful are the ones that are dangerous—the ones that feel like they threaten your consensus reality. The right kinds of questions will shake up your world view. When you ask those kinds of questions, you will begin to find that the ways you have defined yourself limited you and that they are not who and what you are. This kind of questioning is big questioning.

 

밖에서 주어진 대답을 받아들이지 않는 법을 안다 해도,

우리가 하는 질문 역시 조건화 될 수 있다.

때로는 유용한 질문이 위험한 질문이 된다.

'합의된 현실'을 위협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올바른 질문은 우리의 세계관을 뒤흔든다. 그런 질문을 할 때면

규정한 방식이 우리를 한정했을 뿐, 그것은 우리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런 질문이 중대한 질문이다.

 

Deep spirituality orbits around the existential questions, and we each have our own. Yours may be: What is my place in the universe? What is God? What is life?

What in the hell is going on here?

For me it was a common spiritual question—Who am I?—that challenged my assumptions.

 

깊은 영성은 존재에 관한 질문들의 주위를 맴돌고,

우리는 각자 자신의 질문을 가지고 있다.

'우주에서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신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도대체 여기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

나에게는 그 질문이 흔한 영적 질문인 '나는 누구인가?' 였고,

이는 나의 전제에 의문을 제기했다.

 

One day, early in my spiritual practice, the question appeared during meditation. I thought, Wait a minute. I do not even know who I am. I do not even know who the I is that is seeking enlightenment. If I do not know who I am, on what basis am I asking any other question?

 

영적 수행 초기의 어느 날 , 명상을 하고 있는데 그 질문이 일어났다.

"잠깐만,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몰라. 깨달음을 추구하는 '나'가 누구인지도 모른다고,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면, 도대체 어떤 토대 위에서 내가 질문을 하는 거지?"

 

It occurred to me I was chasing enlightenment, but I did not even know who was chasing enlightenment. I realized I had better get straight on who I was. Suddenly everything was put into a different context—the enlightenment I was looking for did not seem as important as who was looking for it. That question was unsettling when it came to me. Like a slap in the face, it rearranged my priority system, because it was a deeper question than the ones I had been asking myself. As soon as this came to me, I knew I had found my orientation; I had found my most important thing in my spiritual life.

 

나는 깨달음을 분명히 쫓고 있었지만,

깨달음을 쫓고 있는 게 '누구'인지조차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부터 분명히 밝히는 게 더 좋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자 갑자기 모든 것이 이제까지와는 다른 맥락에서 보였다.

내가 찾던 깨달음도 그것을 찾는 사람만큼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 질문이 떠올랐을 때 나는 불안했다. 뺨을 한대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고, 무엇을 우선시해야 하는지 관점을 바꾸게 되었다.

그 질문은 이전에 내가 스스로 질문했던 것보다 더 깊은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내가 가야 할 방향을 발견했음을 알았다.

나의 영성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When we find that most important thing, it comes to us with a great intensity that makes us feel insecure, because it calls everything into question. It is disquieting, but at the same time it is inspirational, because when we ask a question of true importance, there is great energy and an expansive quality to it. Usually the true answers to these existential questions are not ones you can write down in a book; they are more like revelations than answers. It is like the way you cannot truly describe the experience of drinking a glass of water to somebody who has never had a glass of water; the best thing you can do is hand them a glass of water so they can experience it for themselves. Water! Telling them what it is like is not going to be the same.

 

우리가 가장 중요한 것을 발견할 때. 그것은 불안을 일으킬 정도로 격렬하게 일어난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평온을 어지럽히는 동시에 영감을 주는데, 진정 중요한 것에 대해 질문하면 막대한 에너지가 일어나면서 우리가 확장되기

때문이다.

그런 존재에 관한 질문의 진실한 대답은 대개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대답이라기보다는 계시에 더 가깝다.

이는 한 번도 물을 마셔본 적 없는 사람에게 물 한잔을 마시는 경험을 진실로 설명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에게 물 한잔을 주고 스스로 그것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이게 물이군!"- 물을 마시는 경험이 어떻다고 설명하는 것은 실제로 경험하는 것과 다르다.

 

This is what important questions do. They open a space within us, clearing away the preconceived debris so that something new and transformative can arise. That is what I want to offer you: your questions—the beauty of them, the inspiration of them, the insecurity of them—because that is where your potential and your revelation lie. In fact, as a spiritual teacher, I have discovered that one of the most important things I can do is question the assumption people have that deep spiritual awakening is an uncommon event. Even ardent students believe it is extraordinary and difficult. But what if it is not all that rare and difficult? What if those beliefs are not true? Question your assumptions, lean far into the unknown. Question it all. When we do, we realize the awakening we seek is possible.

 

중대한 질문이 하는 일이 바로 그와 같다.

중대한 질문은 우리 내면의 공간을 열어주고, 선입광의 찌꺼기를 청소해준다. 그럼으로써 새롭고 변화시키는 힘이 일어날 수 있게 한다.

나는 여러분에게 이런 과정을 권하고 싶다.

바로 여러분이 질문의 아름다움과 영감과 불안정함을 경험하기를 바란다.

거기에 우리의 잠재력과 계시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영적 교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가, 깊은 영적 깨어남은 흔치 않은 사건이라는 생각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열심히 수행하는 학생들조차 깨어남은 드물고 어렵다는 믿음이 사실이 아니라면 어떨까?

당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생각에 질문을 던지고,

미지에 깊이 기대라. 모든 것에 질문하라.

그렇게 할 때, 우리가 추구하는 깨어남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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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혜 | 작성시간 23.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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