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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rupa Saram

Sorupa Saram(The Essence of One’s Own True Nature) 참된 성품의 핵심Ⅱ

작성자山木|작성시간23.05.08|조회수121 목록 댓글 1

Sorupa Saram

(The Essence of One’s Own True Nature)

참된 성품의 핵심(2)

 

by Sorupananda 소루파나다

 

 

53 Question: What is the way to see the Self?

 

질문: 참나를 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Answer: By abiding still in the Self.

This is the essence of enquiring into the scriptures.

You who, babbling the scriptures, become haughty!

You who accumulate karma with your caste and lineage!

Can you not become sattvic, know your Self through your Self, give up unceasing activity and remain still?

 

답변: 참나 안에 고요히 안주하는 것이다.

이것이 경전탐구의 핵심이다.

경전을 논하면서 오만해지는 그대!

그대의 계급과 가문으로써 업을 쌓는 그대!

그대는 순수해질 수 없는가?

그대의 진아를 통해 그대의 진아를 알고,

끊임없는 활동을 포기함으로써 고요해질 수 없는가?

 

54 Question: Can devotion to God be jnana?

 

질문: 신에 대한 헌신은 깨달음이 될 수 있습니까?

 

Answer: There can be no devotion apart from the devotee.

Those who are wallowing, identifying with the body, will perform puja, wave lights and bring their palms together in salutation before the idol of the god with much longing, but they will not enquire whether the true God is the worshipper or the idol.

 

답변: 그 헌신자와 별개의 어떤 헌신도 있을 수 없다.

몸을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뒹구는 사람들은 예공을 하고, 불빛을 흔들고, 신상 앞에서 간절히 합장 배례하겠지만, 그들은 참된 신이 그 숭배자(자신)인지 그 신상인지는 탐구하지 않을 것이다.

 

55 Question: Is it not necessary to go and see the car festival?

 

질문: 수레 축제(수레에 신상을 싣고 다니는 축제)를 구경하러 갈 필요는 없습니까?

 

Answer: No. The one who sees the car festival should be seen.

They will go, see, and salute the car on the auspicious day of the car festival.

Alas! Leaving their Self, whom are they going to worship?

The god seen in the car is not fullness.

Does anyone not know this?

 

답변: 필요 없다. 수레 축제를 보는 그 사람을 보아야 한다.

그들은 수레 축제를 하는 상서로운 날에 수레를 구경하러 가서 절을 할 것이다.

아아, 자신의 참나는 버려 두고 누구를 숭배하겠다는 것인가?

그 수레 안에 있는 신은 충만함이 아니다.

누가 이것을 모른다는 말인가?

 

56 Question: If so, is yoga good?

 

질문: 그렇다면 요가는 좋은 것입니까?

 

Answer: For knowing consciousness it is not necessary.

They will practise the highly respected yoga, remaining in a corner and controlling their breath and speech.

For seeing and abiding as supreme consciousness, why this sadhana?

They are attempting to eat and live here for a long time by making the body strong.

 

답변: 의식을 아는 데는 그런 것이 필요치 않다.

그들은 한쪽 구석에 앉아 호흡과 말을 제어하면서 사람들이 높이 떠받드는 요가를 수련할 것이다.

지고의 의식으로서 보고 지고의 의식으로서 안주하는데,

왜 그런 수행을 한단 말인가?

그들은 몸을 튼튼하게 하여 이 세상에서 오랫동안 먹고 살려고 한다.

 

57 Question: In that case, can sannyasa be good?

 

질문: 그렇다면 출가수행은 좋은 것입니까?

 

Answer: True bliss, which is present in those who renounce the ego, is not there in sannyasa. How, then, can it be good?

Without any difficulty they will take up a begging bowl in their hands; they will shave their heads and wear only a loincloth; and they will appear to be great ones.

But will they also experience the bliss of sleeping without sleeping that is experienced by those who have renounced the ego.

 

답변: 에고를 포기하는 사람들 안에 존재하는 참된 지복이 출가수행 안에는 없다.

그렇다면 그것이 어떻게 좋은 것이겠는가?

그들은 아무 어려움 없이 탁발그릇을 손에 들 수 있고,

머리는 삭발하고 샅 가리개만 찰 것이다.

그리고 대단한 사람들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에고를 포기한 사람들이 체험하는 잠 없는 잠의 지복을 그들도 체험하겠는가?

 

58 Question: In that case, are scriptural study and spiritual practice not necessary?

 

질문: 그렇다면 경전공부와 수행은 필요치 않습니까?

 

Answer: To those who have seen the Self, which is their true import, they are not necessary.

To see one’s Self, what sastra is needed? What sadhana is necessary? Is not all this a mad game?

Those who regard as real the illusion that has arisen – like the imaginary imp created to scare simple-minded people – will not see the Self.

 

답변: 그런 것의 참된 의미인 참나를 본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들이 필요 없다. 자신의 참나를 보기 위해 무슨 경전이 필요한가?

어떤 수행이 필요한가? 그것은 다 미친 놀음 아닌가?

순진한 사람들을 겁주기 위해 만들어낸 상상의 도깨비처럼,

그렇게 일어난 환상을 실재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참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59 Question: Is not sadhana necessary to know the Self?

 

질문: 참나를 알기 위해서는 수행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Answer: What use is a sadhana that does not enable one to see the sadhaka?

The objects, which are seen to be many, such as male, female and neuter, and the seer who remains as one – all this is only the manifestation of the excellent consciousness.

Can they exist apart from consciousness?

However much sadhana they practise, how will it be of use for those who do not know this clearly?

 

답변: 그대로 하여금 수행자를 볼 수 있게 해 주지 못하는 수행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남성, 여성, 중성과 같이 다수로 보이는 대상들과, 하나로서 존재하는 '보는 자', 이 모두는 지고한 의심의 나툼에 불과하다.

그것들이 의식과 별개로 존재할 수 있는가?

아무리 많은 수행을 한다 한들, 이것을 분명히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60 Question: Why do they suffer instead of enquiring and realising the Self?

 

질문: 왜 그들은 참나를 탐구하여 깨닫지 못하고 고생합니까?

 

Answer: They suffer because what they have known to be one by studying has not been experienced.

What does it matter [to the realised one] who lives and in what way? What does it matter [to the realised one] who goes where and in what manner? His solitary state is like that of a bat in its roost.

He will be detached in every way and will sleep experiencing the blessed state that never leaves.

Bliss is only for him.

 

답변: 누가 어떻게 살든 (깨달은 자에게) 그것이 중요하겠는가?

누가 어디로 어떻게 가든 (깨달은 자에게) 그것이 중요하겠는가?

그의 홀로 있는 상태는 자신의 둥지에 있는 박쥐의 상태와 같다.

그는 모든 면에서 초연한 상태일 것이고, 결코 사라지지 않는 복된 상태를 체험하면서 잠을 잘 것이다. 지복은 그런 사람에게만 있다.

 

61 Question: Is it not necessary to know the nature of Iswara and jiva?

 

질문: 이스와라와 개아의 성품을 아는 것은 필요하지 않습니까?

 

Answer: Since Sivam is non-dual, it is not necessary.

They will say that Iswara is infinite and that jiva is finite.

They will say that jiva is like the eye and that Iswara is like the sun. These two definitely cannot be non-dual.

Pure consciousness, which is neither of these two, alone is Sivam.

 

답변: 시밤(Sivam,神性)은 비이원적이므로 그런 것은 필요치 않다.

그들은, 이스와라는 무한하고 개아는 유한하다고 말할 것이다.

또 개아는 눈과 같고 이스와라는 해와 같다고 말할 것이다.

이 둘(이스와라와 개아)은 결코 비이원적일 수 없다.

이 둘 중의 어느 것도 아닌 순수한 의식이야말로 시밤인 것이다.

 

62 Question: Then what is the way to attain Sivam?

 

질문: 그러면 시밤을 성취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Answer: The way to see one’s Self is by rejecting everything else as maya.

The inert semen became the foetus and then became alive by mixing with the conscious principle.

It appears to be real. When this happens, he who contemplates his real nature, regarding all this as illusory, is Sivam.

 

답변: 자신의 참나를 보는 방법은, 다른 모든 것을 마야로 배척하는 것이다. 지각력이 없는 정액이 태아가 되고, 그런 다음 의식의 원리와 섞이면서 살아있는 존재가 된다.

그것은 실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럴 때, 이 모든 것을 환(幻)으로 보면서 자신의 진정한 성품을 성찰하는 사람이 곧 시밤이다.

 

63 Question: Will not those who know the past, present and future become Sivam?

 

질문: 과거, 현재, 미래를 아는 사람들은 시밤이 되지 않을까요?

 

Answer: Only those who have seen the Self, which is beyond time, are Sivam, not those who know the three periods of time.

The self-effulgent Self destroys both night and day, the two that determine yesterday, today and tomorrow.

Hence, he alone is Sivam who has become the Self and who consequently worships the auspicious day that remains perpetually as the one unique day.

 

답변: 시간을 넘어서 있는 시밤을 본 사람들만이 시밤이지,

삼제(과거,현재, 미래)를 아는 사람들이 시밤은 아니다.

스스로 빛나는 참나는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구분 짓는 밤과 낯을 없애 버린다. 따라서 참나가 되어, 하나의 독유한 날로서 영구히 남아 있는 그 상서로운 날을 숭배하는 사람만이 시밤인 것이다.

 

64 Question: If one renounces the jnana sastras, how can one attain the bliss of liberation?

 

질문: 만일 우리가 지식의 경전들을 포기한다면 해탈의 지복을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Answer: Liberation is only delighting in the Self through tranquillity and without anxiety. When this is attained, what is the use of books?

One may know the jnana sastras, or take up good sannyasa, or attempt to experience mauna samadhi, but the indescribable delight of liberation is simply to become the Self, remaining free of all anxiety, experiencing bliss.

 

답변: 해탈이란 고요함과 무(無) 근심으로 진아 안에서 즐거워하는 것일 뿐이다. 그것을 성취하고 나면 책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람이 지혜의 경전들을 알 수도 있고, 좋은 수행을 할 수도 있고, 침묵삼매를 체험해 보려고 노력해 볼 수도 있지만, 해탈의 형언할 수 없는 지복은 단순히 진아가 됨으로써 모든 근심에서 벗어나 지복을 체험하는 것이다.

 

65 [continued from verse 64]

He may be endowed with learning, or established in great yoga, or his body and senses may be active, but he who does not merge with supreme grace will not know tranquillity and will not obtain the final reward, the bliss of liberation that never fails.

 

그는 학식을 갖추었을 수도 있고, 대단한 요가 안에 자리 잡고 있을 수도 있으며, 그의 몸과 감각기관이 활동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고의 은총 안에 합일되지 못하는 사람은 고요함을 모를 것이고, (노력에 대한) 최종적인 보상인, 결코 상실되지 않는 해탈의 지복을 얻지 못할 것이다.

 

66 Question: If so, do they not have to experience even prarabdha?

 

질문: 그렇다면 그들은 지난 과거의 행동으로 만들어진 업보 조차도 경험할 필요가 없습니까?

 

Answer: If one remains without movement as the Self, like the column supporting the windmill, the prarabdha will exhaust itself.

You base, ignorant ones, wallowing in the three types of prarabdha!

If you understand that those who accepted alms will now be donors, you can be like the column that supports the windmill.

 

답변: 사람이 마치 풍차를 떠받치는 기둥처럼 아무 움직임 없이 진아로 머무르면 발현업은 스스로 소진될 것이다.

세 가지 발현업 속에서 뒹구는 그대들 천박하고 무지한 이들이여! (과거에) 보시를 받은 사람들이 이제는 보시자가 될 거라는 것을 이해하면, 풍차를 떠받치는 기둥처럼 될 수 있다.

 

*Scanchita Karma 산칫타 카르마

우리들의 과거로부터 전 생애 동안 축척된 과거 행동들의 총합

Prarabdha karma 프라라브다 카르마

현생에서 지난 과거의 행동으로 만들어진 카르마로 산칫타 카르마의 한 부분.

Agami karma 아가미 카르마

미래 생에 영향을 미칠 현생에서의 행동으로 인한 카르마.

이 카르마는 내생(來生)에 수확할 종자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

Kriyamana karma 크리야마나 카르마

현생 행위에 대한 즉각적인 결과.

 

67 Question: But will not this experience come to everyone?

 

질문: 그러나 그런 체험이 누구에게나 다가오지 않겠습니까?

 

Answer: If one becomes inward-turned instead of being externalised, this experience will come for everyone.

I declare: ‘If their minds are directed inward, attending to the light [the Self], and do not become outward-turned, all those upon this earth are capable of seeing the Self, just as I have seen my Self.’

 

답변: 사람이 외부로 향하지 않고 내면으로 향하게 된다면 그런 체험이 누구에게나 다가올 것이다.

나는 선언한다. "만약 마음이 참나의 빛을 주시하면서 내면으로 향하고 밖으로 향해지지 않으면, 이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내가 나의 참나를 보았듯이 참나를 볼 수 있다."

 

68 Question: Don’t jnanis have to perform karma?

 

질문: 진인들은 의식적 행위(까르마)를 행할 필요가 있습니까?

 

Answer: Since they have seen the truth of both action and the one who performs the action, they do not have to perform activities.

He who has clearly seen in his mind both the performer of actions and the actions themselves, who has thus redeemed himself and become the reality, will he perform, without fail in every birth, every action at the prescribed time?

 

답변: 그들은 행위와 그 행위자 둘 다의 정체를 보았기 때문에 행위를 할 필요가 없다. 자기 마음속에서 행위자와 행위 그 자체를 분명하게 본 이들이, 그리하여 자신을 구원하고 실재가 된 사람들이, 태어날 때마다 어김없이 정해진 시간에 모든 행위를 하겠는가?

 

69 Question: Will the jnanis hate the karmis [the performers of activities] when they see them?

 

질문: 진인들은 행위자들을 보면 그들을 미워하겠습니까?

 

Answer: They will delight in seeing the karmis, in the same way that they witness conjuring tricks, but they will not hate them.

Seeing the deceitful ones who cannot see and enjoy reality as it is and who cannot melt by experiencing it, I rejoiced.

However many illusory lotus flowers bloom, is there any anger on the part of the moon?

 

답변: 그들은 행위자들을 보면 마치 누가 요술 부리는 것을 구경할 때처럼 즐거워하지, 그들을 미워하지 않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보고 즐길 수 없는 기만적인 사람들과, 그것을 체험함으로써 마음이 녹을 수 없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즐거워했다. 환상의 연꽃들이 아무리 많이 핀다 한들, 달이 그것을 보고 화를 내겠는가?

 

70 Question: How did this experience arise?

 

질문: 그 체험은 어떻게 일어났습니까?

 

Answer: It was obtained providentially through the grace of the Guru.

Like a sweet mango fruit appearing under the thorny karuvelam tree, the divine lotus feet of the Guru – who has the power to bestow the grace to transform me into the reality that is sought by everyone, everywhere – came to me who was replete with evil, taking birth over and over again.

 

답변: 그것은 스승의 은총을 통해 천행으로 얻어졌다.

가시 많은 까루벨람 나무 밑에 보이는 맛난 망고 과일처럼,

스승님의 신성한 연꽃발이, 윤회를 거듭하면서 악으로 가득 차 있던 내게 다가왔다.

스승님은 나에게 은총을 하사하여, 모든 사람이 도처에서 찾는 실재로 나를 변화시켜 주셨다.

 

71 Question: Is getting this experience so difficult?

 

질문: 그 체험을 얻기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Answer: It is extremely difficult.

Where is my [state of] remaining as the ego?

Where is my attachment?

Where is my desire to rule heaven and earth?

Siva! Siva! Where is the jnana Guru?

Where is liberation? How can I express this?

 

답변: 그것은 극히 어렵다.

에고로 남아 있던 나의 상태는 어디 있는가?

나의 집착은 어디 있는가?

천상과 지상을 통치하고 싶은 나의 욕망은 어디 있는가?

시바여! 시바여! 이 깨달음의 스승은 어디 계신가?

해탈은 어디 있는가? 이것을 내가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72 Question: What is the benefit of this experience?

 

질문: 그 체험에서 얻은 이득은 무엇입니까?

 

Answer: It is obtaining the Self that is beyond the mind.

I did not obtain anything other than my Self.

I had my Self in my possession all the time.

Separate from me, there is no bondage or release.

If one sees [this], even the mind that enquires into these is non-existent.

 

답변: 그것은 마음을 넘어서 있는 진아를 얻은 것이다.

나는 내 진아 외에는 아무것도 얻지 않았다.

나는 늘 내 진아를 소유하고 있었다.

나와 별개로는 어떤 속박도 어떤 해탈도 없다.

만약 이것을 보게 되면 이런 것을 탐구하는 마음조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73 Question: As soon as one obtains this experience, who should be worshipped?

 

질문: 우리가 그 체험을 얻고 나면 누구를 숭배해야 합니까?

 

Answer: The Guru, the ‘I’ and the body should be worshipped, seeing them as one’s own Self.

I will worship as my own Self the gracious Guru who showed everything to be like a conjuror’s trick, or the Self that is realised after thus scrutinising everything, or the bodytemple that came [into being] to terminate the evil of birth.

 

답변: 스승, '나', 몸을 자기 자신의 진아로 보면서 숭배해야 한다.

나는 일체가 요술가의 술법과 같다는 것을 보여주신 자비로운 스승님을 나 자신의 참나로 숭배할 것이고, 내가 일체를 면밀히 탐색한 뒤에 깨달은 참나를 숭배할 것이며, 탄생이라는 악을 종식시키려고 (세상에) 온 이 몸이라는 사원을 숭배할 것이다.

 

74 Question: How to get rid of the vasana of the gross body?

 

질문: 거친 몸의 원습은 어떻게 제거할 수 있습니까?

 

Answer: It should be rejected by seeing it as the form of food.

You body who remain as the sheath of food!

If you do as I tell you, you will experience bliss as long as you live.

I swear to this. Do not go near evil and useless vasanas.

Whatever comes according to prarabdha, remain a mere witness.

 

답변: 그것을 음식의 형태로 봄으로써 거부되어야 한다.

너 음식의 껍질로 남아 있는 몸이여! 만약 내가 말하는 대로 하면 너는 살아있는 동안에 지복을 체험할 것이다. 이 점은 내가 맹세한다. 악(惡)과 쓸모없는 원습들을 가까이 가지 말라.

발현업에 따라 무엇이 다가오든 단순한 주시자로 머물러 있으라.

 

75 Question: How to remove [or be rid of] the senses of perception?

 

질문: 인식 감각기관들은 어떻게 제거할 수 있습니까?

 

Answer: They should be removed by seeing them as the Self.

O senses! You cherished and nourished me all these years.

Now I have become blissful consciousness.

Even you, who [appear to] become different from me, I have come to know as my Self.

Henceforth, remain one with me, without becoming divergent.

 

답변: 그것들을 참나의 작용으로 보아 제거해야 한다.

감각기관들이여! 너희들은 지금까지 나를 보호하고 양육했다.

이제 나는 지복스러운 의식이 되었다.

나와 다른 것으로 (보이게) 된 너마저도 나의 참나로 알게 되었다.

이제부터는 딴 길로 벗어나지 말고 나와 하나가 되어라.

 

76 Question: How to be rid of desires?

 

질문: 욕망들은 어떻게 없앱니까?

 

Answer: Through desire for realisation of the truth.

O desire! Though I suffered much through you, on account of your help I dwelt in the Self. I reached the Sadguru through you.

In liberation I have, along with you, become the Self.

I swear to this.

 

답변: 진리 깨달음에 대한 욕망을 통해서이다.

욕망이여! 너로 인해 많이 고통받기는 했지만,

너의 도움 덕분에 나는 진아 안에 안주했다.

나는 너를 통해 참스승께 나아갔다.

너와 더불어 나는 해탈 안에서 참나가 되었다.

이점은 내가 맹세한다.

 

77 Question: How to destroy anger?

 

질문: 분노는 어떻게 소멸합니까?

 

Answer: Through tranquillity.

O anger! Through you I rid myself of my deficiency.

Because of the weariness experienced by your rising that invariably produced misery, I rid myself of this danger and dwelt in supreme tranquillity.

Even in dream, do not rise up in lamentation, but remain calm.

 

답변: 고요함을 통해서다. 분노여! 너를 통해 나는 내 결함을 없앴다. 늘 행복을 초래하면서 네가 일어날 때 경험한 피로감 때문에, 나는 이 위험을 제거하고 지고의 고요함에 안주했다.

꿈 속에서라도 한탄하며 일어나지 말고, 고요히 있으라.

 

78 Question: How to get rid of avarice?

 

질문: 탐욕은 어떻게 제거합니까?

 

Answer: By abiding peacefully in the Self.

O avarice! I took you as my relation.

Those who do not know the truth say that your form is only sin.

You will exert yourself hard merely to accumulate.

O sinner! Because of you I am now possessed by peace.

 

답변: 참나 안에 평화롭게 안주하여 제거한다.

탐욕이여! 나는 너를 친척으로 여겼다.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너의 형상은 죄일 뿐이라고 말한다.

너는 오로지 축적하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겠지.

죄인이여! 너 때문에 나는 지금 평안에 사로잡혀 있다.

 

79 Question: How to dissolve the mind?

 

질문: 마음은 어떻게 해소합니까?

 

Answer: It should be dissolved in the Self, which is its basis.

O mind! I myself am you. You yourself are me.

Despite being so, deceitfully you forgot me.

That I am surrendered to you is also true.

But do not remain different from me, the reality.

 

답변: 그것은 그 토대인 진아 안에서 해소되어야 한다.

마음이여! 나 자신이 바로 너이고, 너 자신이 바로 나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너는 속이듯이 나를 잊었다.

내가 너에게 순복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실재인 나와 다른 것으로 남아있지 말라.

 

80 [The same answer continues in verses 80, 81 and 82.]

My mind! You roamed about, laboured hard and learned many arts, seeking a way to make a living.

You sought and gave me a Sadguru.

To you who were so considerate to me, what help did I render in return?

 

내 마음이여 ! 너는 돌아다녔고, 힘들게 일했고,

많은 기예를 배웠고, 먹고 살 방도를 추구했다.

너는 참스승을 찾아서 나에게 한 분을 선사했다.

나에게 너무나 친절했던 너에게 나는 보답으로 무슨 도움을 주었던가?

 

81 O mind! Just as I once remained, assuming your form, now you have come and merged with me as my own form. Is there anyone like you who values the virtue of gratitude?

Dwell henceforth in the loving care of the supreme state, without returning to your prior form.

 

마음이여! 한때 내가 너의 형상을 취해 머물렀듯이,

이제 너는 나 자신의 형상으로 와서 나와 합일되었다.

너만큼 감사의 미덕을 높이 치는 자가 어디 있는가?

지금부터는 너의 이전 모습으로 돌아가지 말고 지고의 상태라는 자애로운 보살핌 속에서 살도록 하라.

 

82 O mind! You remained, right from the beginning, without renouncing love towards me.

Through that love you gave me the benefit of cultivating all the virtues of a devotee, beginning with forbearance.

You removed desire and its progeny.

Now, like me, you remain still through good and proper discernment.

 

마음이여! 바로 처음부터 너는 나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그 사랑을 통해 너는 나로 하여금, 인내를 위시한 헌신자의 모든 덕목을 계발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욕망과 그 자손들을 없애 주었다.

이제 나처럼 훌륭하고 적절한 분별을 통해 고요한 상태로 머무르라.

 

83 Question: Will the mind subside through the above means?

 

질문: 위의 수단들로 마음이 가라앉겠습니까?

 

Answer: If it is firmly established in the experience of the Self, it will then shine as consciousness and remain still.

As my mind roamed about, I too was similar to it, thus allowing myself to remain in an unquiet state.

With my mind remaining still and motionless, I too remained similar to it, shining and dwelling like gold.

 

답변: 그것이 진아 체험 안에 확고히 자리 잡고 있다면,

그것은 의식으로 빛나면서 고요한 상태로 머무를 것이다.

내 마음이 돌아다닐 때는 나도 그와 비슷했고,

그래서 나는 요동하는 상태에 있었다.

내 마음이 고요히 부동의 상태에 머무르자,

나도 그와 비슷해져 금처럼 빛나면서 머무르게 되었다.

 

84 Question: Are there no likes and dislikes in this experience?

 

질문: 이 체험 속에 좋아함과 싫어함은 없습니까?

 

Answer: Since everything is experienced as the Self, these do not exist.

Whatever is to come, let it come. Whatever is to leave, let it leave.

I will not reject even a life of living on alms as defective.

Neither do I desire even the state of Brahma.

I became all actions.

 

답변: 일체가 참나로써 체험되므로 그런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는 것은 오게 하고 가는 것은 가게 하라.

나는 탁발로 살아가는 생활도 문제가 있다고 배척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브라마의 상태조차도 원치 않는다.

나는 모든 행위가 되었다.

 

85 Question: Will he worship God?

 

질문: 그가 신을 숭배하겠습니까?

 

Answer: He has no worship other than the worship of seeing everything as his own Self.

What I extol everywhere is only my Self.

What I worship everywhere as God – that too is only my Self.

In all places, sitting, lying down and running are all performed only in my Self. I myself am the enjoyer and that which is enjoyed.

 

답변: 그는 일체를 그 자신의 참나로 보는 숭배 말고는 어떤 숭배도 하지 않는다. 내가 도처에서 찬양하는 것은 내 참나일 뿐이다.

내가 도처에서 신으로 숭배하는 것 역시 내 참나일 뿐이다.

모든 장소에서 앉고 눕고 뛰는 것은 모두 내 참나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일 뿐이다. 나 자신이 향유자이자 '향유되는 것' 이다.

 

86 Question: Is this the experience of all jnanis?

 

질문: 그것은 모든 진인들이 체험하는 것입니까?

 

Answer: There is no experience other than this experience of the Self.

He who has attained liberation will see, as not different from his Self, all this world that rises in the Self, which remains in the Self, and which merges in the Self.

Will he see it as opposed to his Self?

 

답변: 이 참나 체험 말고는 어떤 체험도 없다.

해탈을 이룬 사람은 참나 안에서 일어나고 참나 안에 머무르며 참나 안으로 합일되는 이 모든 세계를, 자신의 참나와 다르게 보지 않을 것이다. 그가 그것을 자신의 참나에 반대되는 것으로 보겠는가?

 

87 Question: Will likes and dislikes arise in him?

 

질문: 그에게서 좋음과 싫음이 일어납니까?

 

Answer: As everything has become his Self, they will not arise in him.

For what will he desire? For what will he rise as ‘I’?

For what will he experience envy and malice?

He will dwell as the unmoving support for everything, as the sum of all things animate and inanimate, like the great Meru mountain that is the axis for the seven worlds.

 

답변: 일체가 그의 참나가 되었으므로 그런 것들은 그에게서 일어나지 않는다. 그가 무엇 때문에 욕망하겠는가?

그가 무엇 때문에 '나' 로서 일어나겠는가?

무엇 때문에 시기(猜忌)와 악의를 겪겠는가?

그는 일체의 움직이지 않는 지지물로서, 살아 있거나 살아 있지 않은 만물의 총합으로서 거주할 것이다. 마치 메루산이 일곱 세계의 중심축이듯이.

 

88 Question: Will not this experience cease?

 

질문: 그 체험이 그치지는 않겠습니까?

 

Answer: Even if the creations of Iswara falter, this experience will not cease.

Even if the cardinal points change, even if the moon gets burned, fire becomes cold, or the sun travels north to south, the Self-state of the liberated one who has enquired thoroughly into the primal state will not cease.

 

답변: 이스와라의 창조계가 비틀거린다 해도 이 체험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기본 방위들이 변한다 해도, 달이 불타고 불이 차가워진다고 해도, 해가 남북으로 이동한다 해도, 원초적인 상태를 철저히 탐구해 들어간 해탈한 자의 참나 상태는 그치지 않을 것이다.

 

89 Question: How to determine those with such experience?

 

질문: 그런 체험을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판별합니까?

 

Answer: They remain unruffled in joy and misery.

They should be known by taking this as the hallmark.

Only he is a jnani whose mind does not get agitated, who does not identify with and desire objects before him, and whose state of purity never wavers whether he lives on alms in poverty or enjoys the illusory state of being Brahma.

 

답변: 그들은 기쁨과 슬픔에 동요되지 않는다. 이것을 표지로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마음이 동요되지 않는 사람, 자기 앞의 대상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고 그것을 욕망하지 않는 사람, 탁발을 하면서 가난하게 살든, 브라마가 된 환적인 상태를 즐기든 그가 지닌 순수성의 상태가 흔들리지 않는 그런 사람만이 진인이다.

 

90 Question: Will they not care for praise and slander?

 

질문: 그들은 칭찬과 비난에 상관하지 않겠군요?

 

Answer: No, they will not.

Some may utter praises and worship, or evil and cruel ones may utter words of slander and insult, but the jnani’s mind will not associate with them. He will remain without thoughts, like the sky that remains the same whether the sun rises or a vast collection of clouds appear.

 

답변: 그렇다, 상관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칭찬의 말을 하면서 (그를) 숭배할 수도 있고, 삿되고 잔혹한 사람은 비난과 모욕의 말을 할 수도 있지만, 진인의 마음은 그런 것들과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그는 해가 뜨나 먹장구름이 끼나 한결같은 하늘처럼, 아무 생각 없는 상태로 머무를 것이다.

 

91 Question: What is food for the jnani?

 

질문: 진인은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합니까?

 

Answer: Whatever happens to come to him is food for him.

Whatever enjoyments present themselves to him, and in whatever measure, he will undergo those pleasures.

Like the sun that spreads its rays, he will remain free of bondage in the unique and natural state.

 

답변: 그에게 다가오는 어떤 음식이든 그의 음식이 된다.

어떤 쾌락이 어느 정도로 그에게 다가오든 그는 그 쾌락을 경험할 것이다. 빛살을 뿌리는 해처럼, 그는 독유하고 본래적인 상태 속에 있으면서 속박에서 벗어나 있을 것이다.

 

92 Question: Will not the ego-nature, beginning with desire, touch these jnanis?

 

질문: 욕망을 위시한 에고의 성품이 이러한 진인들을 건드리지 않겠습니까?

 

Answer: As they have attained total destruction of vasanas, it will not.

Desire, anger and so on will not touch the liberated one – who has become the form of consciousness and the witness of the world – since he has uprooted and destroyed all the base vasanas, and is therefore without sankalpas.

 

답변: 그들은 원습의 완전한 소멸을 성취했기 때문에,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욕망, 분노 따위는 의식의 형상이자 세계의 주시자가 된 해탈자를 건드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기초 원습들을 뿌리 뽑아 소멸했고, 따라서 산깔빠(욕망)가 없기 때문이다.

 

93 Question: Do they not need to stay in a holy place, or take baths in holy waters, and so on?

 

질문: 그들은 성지에 머무르거나 성스러운 강에서 목욕하는 따위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까?

 

Answer: The place where they reside is the holy place.

Their look is holy water.

The place where the unique jivanmukta – who exists everywhere equally – resides is itself the holy place. His look itself is holy water.

The service to his lotus feet is itself liberation.

 

답변: 그들이 거주하는 곳이 곧 성지이며, 그들의 시선이 곧 성스러운 강물이다. 도처에 평등하게 존재하는 독유의 생전 해탈자가 거주하는 곳은 그 자체가 성지이다. 그의 시선 자체가 성스러운 강물이다. 그의 연꽃 밭에 봉사하는 것 그 자체가 해탈이다.

 

94 Question: What are the eternal attributes of a jnani?

 

질문: 진인의 영원한 속성은 무엇입니까?

 

Answer: They are soft words, and so on.

They are soft-spoken; their look is free of desire; they experience everything to be sat alone; they have a measured gait, and their mind is filled with a joy that never diminishes.

The characteristic of a jnani is to be ever firm in these.

 

답변: 그것은 부드러운 말, 등등의 것이다.

그들의 말은 부드럽고, 그들의 시선은 욕망에서 벗어나 있으며,

그들은 일체를 사뜨(sat)로만 경험한다.

그들의 걸음걸이는 절제되어 있고, 그들의 마음은 결코 줄지 않는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진인의 특징은 이런 것들 안에 언제나 확고히 머무르는 것이다.

 

95 Question: What does the jnani think?

 

질문: 진인은 무엇을 생각합니까?

 

Answer: There are only thoughts that everything is the Self.

The jivanmukta is he who has become one [with the reality] through the experience ‘I have seen myself everywhere; I have seen everything in me’; who possesses intensely and clearly the experience of having learned ‘unlearning’, and who has renounced everything.

 

답변: 일체가 참나라는 생각들만 있다. 생전 해탈자는 '나는 도처에서 나 자신을 보았다. 내 안에서 일체를 보았다'는 체험을 통해 (실재와) 하나가 된 사람이고, '배운 것을 잊는 법'을 배운 경험을 강렬하고 명료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이며, 일체를 포기한 사람이다.

 

96 Question: What is proper conduct and what is prohibited conduct for jnanis?

 

질문: 진인에게는 어떤 것이 적합한 행동이고 어떤 것이 금지되는 행동입니까?

 

Answer: Actions they undertake are proper conduct; actions they abandon are prohibited actions.

For the jnani has become one, tranquil and blemishless, everything, beginning with space [and including the other elements] is his own form. The actions he abandons are prohibited actions, and the actions he takes up are proper actions.

 

답변: 그들이 취하는 행위들은 적합한 행동이고, 그들이 멀리하는 행위는 금지되는 행위이다. 고요하고 오염 없는 '하나' 가 된 진인에게는, 공(空)을 위시한 (원소 등을 포함한) 일체가 그 자신의 형상이다.

그가 멀리하는 행위들은 금지된 행위이고, 그가 취하는 행위들은 적합한 행위이다.

 

97 Question: What are the disciplines and pujas for the jnani?

 

질문: 진인에게는 어떤 것이 법도이고, 어떤 것이 예공입니까?

 

Answer: They are meditating on the Self, and so on.

Meditating on consciousness is bathing for a jnani.

Whatever external appearances he delights in, that is noble discipline. Whatever he obtains as alms and eats without ego, that is his supreme puja. His faultless movements are pure samadhi.

 

답변: 그것은 참나에 대한 명상이다. 순수의식에 대해 명상하는 것이 진인의 목욕이고, 그가 즐거워하는 어떤 겉모습도 고상한 법도이다. 그가 에고 없이 탁발하여 먹는 것이 모두 위없는 예공이고, 그의 흠잡을 데 없는 움직임이 순수한 삼매이다.

 

98 Question: The actions that should be performed, and the actions that should be avoided: are these not necessary for jnanis?

 

질문: 해야 할 행위와 피해야 할 행위는 진인에게 필요치 않습니까?

 

Answer: As they remain as Sivam, they do not exist for them.

To the jnani who has become Sivam, having seen all the universe as his Self and as the form of consciousness, for him, what is there that should be sifted and rejected, and what is there that should be accepted as proper?

 

답변: 그들은 사방으로 존재하고 있으므로 그런 것들은 그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전 우주를 자신의 참나로, 의식의 형상으로 봄으로써 시밤(시바, 진아)이 되어 버린 진인에게, 선별하고 배척해야 할 것이 어디 있겠으며, 적합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 어디 있겠는가?

 

99 Question: What is the state attained by those who criticise the conduct of jnanis?

 

질문: 진인의 행위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얻은 상태는 무엇입니까?

 

Answer: It is the hell of transmigration.

Know that those cruel ones, who view as faulty the life of the jnani who has attained supreme bliss, will experience crore upon crore of births like the silkworm that never gets detached from its cocoon.

 

답변: 그것은 윤회의 지옥이다. 지고의 지복을 성취한 진인의 삶을 흠이 있는 것으로 보는 잔인한 사람들은, 고치에서 결코 떨어지지 못하는 누에처럼 헤아릴 수 없는 탄생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100 Question: What is the benefit obtained by those who worship them?

 

질문: 진인들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얻는 이익은 무엇입니까?

 

Answer: It is becoming the non-dual Self.

Those who are able to obtain the grace of the jnani – who remains as the eternal, formless, blemishless, blissful and pure non-dual reality, and for whom everything is his own Self – will become jnanis.

 

답변: 그것은 비이원적 진아가 되는 것이다. 영원하고, 형상이 없고, 오점이 없고, 지복스럽고, 순수하며, 비이원적인 실재로서 존재하고, 일체가 그 자신의 참나인 그러한 진인의 은총을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은 진인이 될 것이다.

 

101 Question: How will the jnani shine?

 

질문: 진인은 어떻게 빛나겠습니까?

 

Answer: He will shine as everything and as different from everything.

They have rid themselves of the blemish of the mind; they have rid themselves of the mind; they have rid themselves of the entity within the mind; they have transcended the shore of jnana; they have rid themselves of the blissful state of consciousness, the supreme; they have rid themselves of the experience of Sivam.

They have also rid themselves of all concepts.

 

답변: 그는 일체로서, 그러면서도 일체와 다른 것으로 빛날 것이다.

그들은 마음의 오염을 제거했고, 마음을 제거했으며,

마음 안의 개체(에고)를 제거했고, 지(知)의 한계를 초월했다.

그들은 의식의 지복스러운 상태, 곧 지고자를 제거했고,

시밤의 체험을 제거했다. 그들은 또한 모든 개념을 제거했다.

 

The Benefit of Studying this Work

이 글을 공부하는 이익

 

102 Those who are able to enjoy through their two ears the savour of Sorupa Saram, which describes the experience attained at the proper stage of ripeness, will be able to see the entire world as their own Self.

 

근기가 성숙된 단계에서 성취하게 되는 체험을 묘사하는 이 <소루파 사람>의 맛을 자신의 두 귀로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은,

전 세계를 그들 자신의 참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 終 - 참된 성품의 핵심 (소루파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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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혜 | 작성시간 23.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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