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없다. 어떤 사람도 태어나지 않는다. 어떤 사람도 사는 것이 아니고, 어떤 사람도 죽지 않는다. 외관상의 죽음은 “나(개인, 자아, 에고)”의 꿈의 작용의 끝이다. 그것은 육체가 살아있을 때 또는 육체의 죽음의 순간에 일어날 수 있다. 나는 당신에게 이것이 어떠한지를 말할 수 없다. 누구도 할 수 없다. 그것은 알려질 수 없다. “나”의 끝은 모르는 것이다. 그리하여 누구도 당신에게 말해줄 수 없다. 그러나 마음은 항상 이것을 거부한다. 그리고 세상의 많은 스승들은 “나”의 감옥을 다룰 수 있는 방법을 당신에게 말해 줄 것이다. 이것은 “나”의 환상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어떤 개인적인 가르침도 자기가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믿음으로써 이원주의(dualism)를 먹여 살린다. 문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해답도 존재하지 않는다.(Being : “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도, 해답도 없는 것이다)
출처 : "This Freedom", Tony Parsons
삶이라는 이 드라마의 희비극적 결말은,
한 번도 ‘산’ 적이 없는 고인을 위해
장례식의 목사가 추도문을 읊는 장면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이야기다.
출처 : "깊은 잠의 깨달음", U 사푸코타나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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