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배웠거나 내가 스스로 만든 일련의 믿음체계로부터 내가 누구인가를 판단하면 나는 다만 죄책감을 느낄 수 있다. 내 자신이 구축한 믿음은 다시 시간 속에서 나의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나올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관념들은 목표, 정화를 향한 길로 향하는 여정에 대한 생각에 연결된다.
존재(being, 있음)에서는, 무언가 되는 것/목표에 대한 집착은 존재하지 않는다. 더 이상 가치 있게 되기 위하여 어떤 수준을 성취하거나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안다.
죄책감을 느끼고 그러한 환상의 느낌을 완화하기 위한 시도에 나의 에너지를 쓰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해탈(자유)의 가능성을 부인한다. 나의 본성을 재발견하는 것의 그 실질적인 회피를 강력하게 연막을 칠 수 있는 죄, 또는 업보의 드라마에 대한 매료됨과 탐닉이 존재한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절대적으로 둘 다를 초월한 것을 회피하기 위하여 옳음과 그름에 대한 환상의 관념에 투자하는 것이다.
존재에서는 빚은 없다. 과거의 일(history)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나는 분리되었다고 느끼거나 또는 존재가 있다. 분리 속에서 무엇이 일어나든지 나는 분리되었다고 느낀다. 존재에서는, 자아는 더 이상 없고 단지 존재하는 것만 있다.
두 상황 모두 완벽하다. 각각의 일어남은 자기 자신의 보답이다. 그것이 존재한다. 그러고 나서 그것이 사라진다. 더 이상 계속 진행되는 갚아야 할 빚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 또는 우리인 모든 것을 계산하고 측정하는데 끝없는 판단을 계속해서 쓰는 동안, 우리는 분투/죄책감과 고통의 존재에 우리 자신을 가둔다. 오로지 우리 스스로 기획한 신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오로지 아는 것 또는 모르는 것이 있을 뿐이다. 내가 이해할 수 없으면, 나는 볼 수 없다. 그리고 어둠은 그저 어둠이다. 그것은 옳지도 그르지도 않다.
어떤 종류의 악 또는 선, 원죄, 업보 또는 빚에 대한 모든 관념은 시간에 갇혀있는, 아버지/어머니/자아의 느낌의 유지와 강화에 갇혀있는, 깨어나지 못한 마음의 산물이다.
출처 : "The Open Secret", Tony Pars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