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
“나”는 항상 모든 것에 대해서 이유를 댈 것을 찾는 것 같다. “내”가 사라지면 그저 공포, 사랑이 존재하는 것인가?
답변 :
“나”는 자기는 알아야 하고, 통제를 해야만 한다고 잘못 믿고 있다. “나”는 자기가 다룰 수 있도록 왜 자기가 두려워하는지를 알아야만 한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존재하는 모든 것은 존재하는 것이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All there is is what is and is not)
궁극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어떤 것도 아닌 것(no thing)의 외관상의 펼쳐짐이다. 어떤 것도 아닌 것이 알고 관리하는 한 개인처럼 보이고 있는 중이다. “나”에게는 자기의 인위적인 현실을 더 낫게 만드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여기 이 모임(the open secret meeting)과 같은 모임의 차이는 어떠한 것도 어떤 고정된 실체를 가지고 있다는 인식이 없다는 것이다. 오로지 존재하는 것이면서 존재하지 않는 것만 있다. “나”는 게임을 하고 역할을 맡는다. 그 모든 것들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면, 여기에 자기의식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어떠한 게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의 공모(共謀)관계는 끝난다. 유일한 자비는 외관상으로 구속된 것처럼 보이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어떤 것도 그르거나 옳은 것은 없다. 그것은 그저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그리하여 당신이 이 모임에서 개인적인 가르침, 어떠한 방식, 과정 또는 믿음 등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없다. 당신은 이 자리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할” 수 없고 또한 “하지 않을” 수도 없다.(being : 당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당신은 ‘그것’을 옳게 하거나 잘 못 되게 할 수 없다.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있을 뿐이다. 당신이 어딜 가든, 무엇을 하든, 무엇을 생각하든, 무엇을 느끼든 간에 그것이 존재하는 것이다.(being : 그러나 그것을 하는 "나", 개인, 에고, 자아는 없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 있다)
그것은 결코 오고 가지 않는 유일한 영원불변함이다. ‘그것’은 완벽한 연인이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nothing)이면서 모든 것(everything)인 변치 않는 영원한 사랑의 노래이다.
출처 : "This Freedom", Tony Pars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