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자네가 곧 ‘의식’이라는 사실뿐이네. 그것이 존재하는 모두이니까. 자네가 다른 무엇일 수 있겠는가? 존재하는 것이 ‘의식’뿐인데.
그리고 “내가 ‘그것’이다!”하는 말도 할 수 있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자네가 ‘그것’이고 내가 ‘그것’인데. 자네가 ‘의식’이고 자네가 ‘신’일세. ‘그것’은 그냥 존재한다네. 일상적인 생활도 바로 ‘그것’일세. 분노와 고뇌까지도 그 안에 포함된다네. 모두가 온통 ‘의식’이라네.
자네는 모든 것이 ‘의식’임을, 모든 것이 자네임을 이제 알게 된 거야. 자네 아닌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일세.
필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 ‘의식’이라는 것을 인식하기만 하면 되는 것인데. 그리고 바로 이 순간도 ‘의식’은 완벽한 것이라는 것을.
“바로 지금 존재하는 것, 그것이 완벽한 것이다.”
자네가 ‘의식’이고 자네가 ‘신’일세. 다른 무엇일 수 있겠는가? 자네는 완벽하네.
존재하는 모든 것, 일어나는 모든 일은 어차피 ‘의식’의 표출이니까.
“내가 이 모두를 그토록 좋아하는 까닭은 누구도 ‘그것’을 내게서 떼어낼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있는 것이니까요. 내가 ‘그것’으로부터 달아나려 한다 해도 달아날 수가 없습니다. 버려야 할 것도 아무것도 없고 얻어야 할 것 또한 아무것도 없지요.”
“당신은 ‘의식’이며, 그것이 존재하는 모두입니다.”
그리고 어느 단계에 이르면 누가 이것을 이해하거나 말거나 인식하거나 말거나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아보게 된다네.
그렇지요. 어차피 하나의 ‘의식’만이 존재하는 이상, 전혀 상관될 일이 없지요. 서로 다르게 보이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의 바다에 있는 서로 다른 물결들일 뿐이고요.
영적 탐구 같은 일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사람도 똑같은 ‘의식’이고 똑같은 ‘신’일세.
경험의 주체는 ‘의식’이 아닌가. 어떤 한 개인이 아니고.
약에 취했건 술에 취했건 상관이 없고, 자기 자아에 얽매이든 매이지 않던 관계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것’, 즉 ‘의식’은 언제나 있는 것이다.
선수가 하나뿐인 게임, ‘의식’이라는 선수
자네가 안 가진 것을 내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어. 자네는 ‘의식’이지, 안 그럴 수 있는가?
출처 :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This Is It : The Nature Of Oneness)", 얀 케르쇼트(Jan Kerssc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