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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ff Foster,

신체의 고통(통증)을 대하는 지혜

작성자山木|작성시간23.06.01|조회수43 목록 댓글 1

신체의 고통(통증)을 대하는 지혜(Dealing With Physical Pain)

신체의 통증은 단순히 몸이 관심을 달라는 신호입니다. 당신이 한 사람으로서 잘못되었다는 신호가 아닙니다. 통증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것을 제안합니다. 수용한다고 해서 반드시 통증을 좋아하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 통증이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라는 것입니다. 통증이 내일, 다음 주, 내년에 줄어들거나 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통증의 치료법을 찾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신의 평화가 더 이상 통증에 달려 있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저항하고, 마음속으로 싸우고, 도망치고, 피하고, 외면하면 통증의 희생자가 되는 것입니다. 즉 통증이 당신을 지배하게 됩니다. 통증에 의해 좌지우지 되어도 당신은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저항하고, 제거하려 하고, 도망치고, 회피하고, 심지어는 “치유”하는데 집중함으로 인해 통증에 힘을 더해줍니다. 그곳에는 내부의 폭력이 존재합니다.

당신이 알다시피 통증을 없애려는 시도는 실패했습니다. 즉 저항은 진정한 치유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평화, 감사, 사랑, 지성과 몸의 치유력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더욱더 분리될 뿐이었습니다. 당신을 지치게 하고, 당신의 에너지를 고갈시켰습니다. 통증과의 정신적인 싸움의 실패로 인해 사라져버린 모든 에너지를 생각해 보세요. 당신 자신에게 양분을 공급하고 진정으로 치유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를 말입니다.

“통증은 지금쯤 사라졌어야 해”, “통증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스토리로부터 빠져나올 때 치유는 시작됩니다. 그러한 생각-스토리는 모두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이고 악몽이며 망상입니다. 현재 당신이 존재하는 곳과 당신이 존재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곳을 비교하지 마세요. 점점 커져만 가는 지금 이순간과 “그때”의 간극에 집중하지 마세요. “나는 다르게 살았어야만 해. 나는 이 통증을 만들었어. 나는 비난받아야 해. 난 형편없어. 난 죄를 지었어. 난 실패한 인간이야.”라는 스토리로부터 걸어 나오세요. 그러한 스토리는 인생이라는 영화를 되감는 것이고, 당신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통증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멈추세요. “나와 나의 통증”이라는 장편서사영화에 빠지지 마세요. 지금 이 순간 당신의 통증과 대면해 보세요. 몸속에 존재하는 날 것의 감각(있는 그대로의 감각)을 부드럽게, 호기심을 가지고, 매혹적으로, 우호적으로 저항하지 말고 알아차리세요. 잠깐 통증이라는 단어(과거부터 무겁고,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단어)를 내려놓고, 현재의 경험을 구성하는 있는 그대로의 감각을 탐험하고 느껴보세요.

관심을 돌려 서서히 신체적인 감각으로 주의를 옮겨가세요. 그것은 몸의 어디에 있나요? 그것은 단단한가요, 수축되었나요, 부드럽나요? 크기, 형태, 색깔을 가지고 있나요? 움직이고 있나요, 정지해 있나요? 어떻게 움직이고 있나요? 어떤 방향으로, 어떠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나요? 무겁나요, 따뜻한가요, 단단한가요, 차가운가요, 날카롭나요, 무딘가요? 이런 묘사적인 말들조차 내려놓고 이름표를 붙이지 말고, 경이롭게 실제의 감각에 호기심을 가지고 주의를 기울이세요.

명심하세요. 감각을 제거하려거나, 만들거나, 심지어 치유하려고 노력하지 마세요(치유하려는 열망조차 지금 이 순간에 대한 저항의 한 형태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매우 가까이 머물면서 사랑을 갈구하는 신체의 부분에 따뜻하게 주의를 기울이세요. 감각 주위를 부드럽게 만들고 그것을 위한 공간을 만드세요. 더 이상 그것들을 적이 아니라 당신 몸의 일부로 여기세요. 꼭 호감을 느끼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신뢰를 가지고 지켜보세요.

계속 탐험하세요. 통증에는 중심이 있나요? 경계가 있나요? 욱신거리거나, 지끈거리거나, 떨리거나, 팔딱거리거나, 따끔거리나요? 통증의 중심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이 핵심(core)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는 시험을 해보세요. 감각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것이 몸속에서 이동하는 곳마다 따라가 보세요. 감각이 더욱 강렬해 진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호기심을 늦추지 마세요(그리고 통증이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되면 탐험을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될 때까지 이 연습을 중단하거나 안전한 곳으로 관심을 이동하세요. 숨을 깊이 들이마시거나 내쉬어도 좋고, 바닥에 닿는 발의 느낌에 집중해도 좋습니다. 자신을 너무 강하거나 조급하게 압박할 필요가 없습니다).

감각이 소멸하거나 넓어져 완화되거나 부드러워지면 가까이 다가가세요. 특별한 결과를 기대하지 말고 기대감과 실망감도 있는 그대로 허용하세요. 통증을 밀어내거나, 몸 밖으로 짜내거나, 버팅거리려 애쓰는 느낌이 든다면 이러한 저항 역시 허용하세요. 통증에 저항하고 통증이 악화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정상적인 것입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자책하지 마세요. 당신의 저항과 두려움을 호기심과 탐구심을 가지고 조용히 바라보세요. 지금 이 순간을 위협으로 여기는 것은 낡은 습관입니다.

당신이 원한다면 호흡을 재미있게 실험할 수 있습니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 당신의 호흡이 고통스럽거나 불편한 부분 속으로 또는 그것을 지나서 흘러간다고 느끼거나 상상해 보세요. 그리고 그것에 생명과 산소를 불어넣고 감각을 부드러움, 따스함, 사랑으로 감싸주세요. 당신 안에 있는 그 장소를 소중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것이 이 자리에 있을 권리, 호흡과 몸에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포함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통증 속으로 숨을 불어 넣는 것은 아주 사랑스러운 행위입니다. 통증을 밀어내지 말고, 통증에 관심과 숨 쉴 공간을 주세요. 고통 주위에서 움츠리고 위축되는 대신 숨을 불어넣고, 애정을 쏟고, 통증을 위한 공간을 주고, 그것만의 춤을 추도록 내버려 두세요.

고통의 부재를 요구하지 말고, 지금 고통의 존재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고통은 당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고통을 위한 넓은 공간입니다. 고통에 관심을 기울일 때 당신은 더 이상 고통의 희생자가 되지 않습니다.

당신은 고통이 사실은 단단한 어떤 것, 또는 몸에 나쁜 변하지 않는 덩어리가 아니라 시시각각 변화하고, 감각들을 춤추게 하는 형태가 없는 구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지도 모릅니다. 고통은 ‘살아’있습니다. 때때로 고통에 대한 당신의 상상이 고통 그 자체보다 훨씬 더 나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때로는 고통이 더 이상 그 자리에 없다는 것도 알게 될 것입니다. 가끔은 당신의 다정한 관심과 관대함으로 강한 고통이 부드러워지거나, 사라지거나, 잦아들 것입니다. 덜 쓰라리고, 더욱 분산되고 따뜻해질 것입니다. 가끔 고통은 솟아오르는 파도처럼 갑자기 더 강해지고 정점에 다다랐다가 떨어질 것입니다.

때때로 당신은 다른 것, 예를 들어 음악, 대화, 자연 속 산책, 명상, 아름다운 몽상에 빠져 들어 고통이 있는지 조차 잊게 될 것입니다(당신이 인식하지도 못하는 데 고통이 ‘거기’ 있을까요?). 고통에 대한 실질적인 경험은 매순간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하고 바뀝니다. 매번 똑 같지 않습니다. “나는 항상 고통 속에서 살아” 또는 “고통은 끊임없어”라는 이야기는 살아 있다는 것, 시시각각 변하는 고통의 실체와 부합하지 않습니다.

명심하세요. ‘지금’은 당신이 실제로 직면하고 있는 전부입니다. 평생 이어지는 고통, 심지어는 하루 동안의 고통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고통이 당신에게 주어진 전부입니다. 그 외의 것은 당신의 생각 속에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고통을 위험하고 본질적으로 “나쁘고”“잘못된”적으로 또는 “틀림”“악(惡)”, 신체에 대한 테러리스트 또는 반갑지 않은 침입자로 여길 수 있습니다. 또는 자주 우리가 그 사실을 무시하지만 당신은 고통을 동맹자, 심지어는 친구, 몸과 지금 이 순간의 본거지로 주의를 이끄는 명상의 종소리로 여길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에 깨어나고 있습니다. “고통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고통 때문에”. 고통(신체적인 또는 감정적인)은 우리에게 속도를 늦추라고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우리의 일부분인 것들에 관심을 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와 미래의 스토리에서 빠져나와, 휴식하고, 본질 속으로 부드럽게 녹아들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고통은 당신을 파괴할 수도 있고 당신에게 집중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고통은 당신을 깊은 잠에 빠지게 하거나(부정적인 의미) 우울하게 할 수도 있고, 당신을 일깨울 수도 있습니다. 고통은 당신을 희생자로 만들 수도 있고, 좀더 활기찬 느낌이 들도록, 조정될 수 있도록, 용감하도록, 그 어느 때보다 진정한 당신의 길(path)과 연결되는 느낌이 들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고통을 좋아하려고 노력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매조키스트(masochist)가 되거나 두려움 없는 전사가 되어 고통을 “정복”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의사, 치유사, 테라피스트, 고통의 원인에 대한 또 다른 견해를 제시할 수 있는 친구를 찾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이 순간에 저는 요청합니다. 당신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고, 내부 지성을 찾을 것을. 고통을 둘러싸고 있는 무겁고 두려움이 깔린 스토리로부터 빠져 나올 것을. 고통에 대해서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 것을. 관대해지고, 탐구하고, 호기심을 가질 것을. 받아들임(지금 있는 그대로의 알아차림)은 감각, 생각, 감정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고통을 절대로 악화시키지 않습니다. 그것은 당신을 광대한 치유의 미스터리 속으로 데려갈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으로부터 멀지않은 어느 날 당신은 되돌아보고 고통이 당신을 현실에 기반을 두도록, 호기심을 갖도록, 마음을 열도록 했다는 것에 감사할 지도 모릅니다. 또한 고통이 당신 본인에게 가까이 다가가게 하고, 당신의 소중한 몸에 관심을 갖게 하고, 삶의 경험을 담고 있는 순간순간을 더 이상 무감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도록 했다는 것에 감사할 것입니다.

그리고 고통이 당신의 길을 막았던 것이 아니라(사실은 그 고통이 당신의 길이었습니다.) 당신의 최고의 스승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지도 모릅니다.

출처 : " THE WAY OF REST", Jeff Foster(제프 포스터)

질병이란 무엇일까요? 질병은 삶의 상황을 이루는 일부입니다. 그러니 질병에는 과거가 있고 미래가 있습니다. 지금의 치유력이 당신의 의식적인 현존을 통해 활성화 되지 않는 한, 과거와 미래는 방해받지 않고 계속 이어집니다. 삶의 상황은 시간 속에서 존재하고, 삶의 상황을 구성하는 수많은 조건 밑바닥에는 더 깊고 더 본질적인 무언가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당신의 생명, 시간 없는 ‘지금’속 당신의 존재 자체입니다.

 

‘지금’ 속에는 아무 문제가 없으므로 병 또한 없습니다. 누군가가 당신의 조건에 갖다 붙이는 이름표에 대한 믿음이 그 조건을 그 자리에 있게 합니다. 거기에 힘을 부여해서 일시적인 불균형을 굳어진 현실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그럼으로써 병이 확고한 현실이 되고, 예전에는 갖고 있지 않았던 시간의 연속성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 순간에 초점을 맞추고, 병이라는 이름표를 붙이지 않으면, 그것은 그저 나타난 증상 몇 가지로 축소됩니다. 육체의 통증이나 허약함, 불편함, 기능 장애 등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그런 현상에 당신 자신을 내맡기십시오. 병이라는 관념에 내맡겨서는 안 됩니다. 고통과 하나가 되어 현재 순간에, 강한 의식적 현존 상태에 들어가도록 하십시오. 고통을 허용하십시오. 깨달음을 위해 고통을 이용하십시오.

 

거울에 비친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거울을 향해 공격한다면 그 사람은 분명 제 정신이 아닙니다. 내맡기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모든 행동은 그와 같습니다. 당신이 거울 속의 이미지를 공격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당신에게 반격할 것입니다. 어떤 이미지라도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정하게 대하면, 그것도 우리에게 다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입니다.

 

병은 문제가 아닙니다. 에고의 마음에 지배받고 있는 당신 자신이 문제입니다. 병이 나거나 불구가 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실망하거나 자책하지 마십시오. 불공평한 삶이라고 탓하지 마십시오. 자기 자신도 탓하지 마십시오. 그 모든 것이 저항입니다. 중병을 앓고 있다면 깨달음을 위해 그것을 이용하십시오. 살다가 나쁜 일이 생기면 깨달음을 위해 그것을 이용하십시오. 질병으로부터 시간을 철수시키십시오. 거기에 과거나 미래를 부여하지 마십시오. 강한 현존의 깨어 있음 속으로 들어가는 기회로 삼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무슨 일이 생기는지를 보십시오.

 

중병을 앓고 있는데 이런 말을 들으니 화가 나십니까? 그러면 그것은 그 병이 당신의 일부가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당신 자신의 정체성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고, 질병 자체를 옹호하고 있는 셈입니다. 병이라고 이름표가 붙은 그 조건은 진정한 당신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출처 :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에크하르트 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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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혜 | 작성시간 23.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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