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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pert Spira

깊은 잠을 자는 동안 의식은 어디에 있나요?

작성자山木|작성시간23.06.07|조회수75 목록 댓글 1

깊은 잠을 자는 동안 당신의 경험은 무엇입니까? 깊은 잠을 자는 동안 그곳에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당신이 깊게 잠을 잤다는 것을 무엇이 알 수 있도록 하였나요? 누군가가 잠을 잘 잤느냐 하고 물어봤을 때 당신은 그렇다고 대답을 합니다. 어떤 경험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요?

 

누군가 당신에게 잘 잤냐고 물으면 확실하지 않다고, 잘 모른다고 말하나요? 아니지요. 당신은 아마도 “그래요”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그래요”라는 말은 깊은 잠을 잤다는 것을 의미하는 잘 잤다는 경험을 말하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잘 잤냐고 질문할 때 잘 잤다고 대답할 때 어떤 경험을 말하는 것인가요?

 

질문자 : 사물과 사람이 없는 경험을 말합니다.

 

사물이 없다는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존재하는 사물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경험을 알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다시 말하자면 깊은 잠은 의식의 부재입니까? 부재의 의식입니까?

 

당신은 의식의 부재라가정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부재의 의식이 아니라고 확신합니까? 만약 그것이 의식의 부재라면 당신은 잘 잤냐는 질문에 아주 명백하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잘 잤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이유는 그것이 당신의 경험이었기 때문입니다.

 

깊은 잠에서 당신은 완전 홀로였습니다. 당신(=의식)은 완전 홀로였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완전 홀로였기 때문에 그곳은 완전히 평화로웠습니다. 생각, 이미지, 활동, 관계맺음은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밤에 잘 자기를 고대하나요? 이유가 뭔가요?

 

질문자 : 고통이 없으니까요. 하루 동안의 고통의 끝에 다가가니까요.

 

고통의 끝과 고통의 부재를 일반적으로 뭐라고 부르나요? 평화 또는 행복. 그렇지요. 그것이 당신이 깊게 잤을 때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무엇보다도 행복을 갈망하기 때문에 깊은 잠을 고대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깨어있는 상태에서 행복을 찾을 수 없다면 깊은 잠은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의 진정한 본성을 맛보게 하는 자연스러운 방법입니다. 그것이 당신이 깊게 잠들었을 때 경험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깊은 잠에서 당신은 당신자신을 정말로 경험하여 압니다. 당신의 원래의 질문은 당신이 깊게 잠들었을 때 어떻게 당신은 당신 자신을 경험하여 알지 못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반대입니다. 당신이 깊은 잠에 빠졌을 때 당신은 평화롭고 행복한 당신의 본성을 정말로 경험하여 압니다. 그것이 바로 당신이 밤에 깊은 잠에 빠지기를 고대하는 이유입니다.

 

만약 깊은 잠이 의식의 부재라면 그것은 죽음과 같을 것입니다. 그것은 소멸일 것이고 당신은 그것을 두려워할 것입니다. 당신은 깊은 잠을 몹시 무서워할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느끼기 때문에 깊은 잠을 거부할 것입니다.

 

정확히 당신은 당신 자신과 함께 그곳에서 완전히 홀로 있기 때문에 깊은 잠을 고대합니다. 그리고 그곳은 평화롭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은 정말로 당신 자신을 경험하여 압니다. 당신은 깊은 잠에서 당신 자신을 본래의 당신으로서 경험하여 압니다. 당신은 평화롭고 행복한 당신의 본성을 경험하여 압니다.

 

깨어났을 때 그 평화롭고 행복한 당신의 본성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생각, 감정, 감각, 지각(분별)에 의해 가려져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생각과 지각(분별)에 의해서 가려져 있을 뿐입니다.

 

당신의 평화롭고 행복한 본성에 다가가기 위하여 생각과 지각을 없앨 필요는 없습니다. 단지 사물에 대한 경험(생각, 감정, 감각, 지각(분별))이 당신 자신의 존재와 그 존재의 본유(本有)적인 평화를 가리는 것을 그만두도록 하는 것이 필요할 뿐입니다. 그것은 마치 영화를 보는데, 영화가 스크린을 가리는 것을 그만두도록 하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하자마자 당신은 스크린을 봅니다. 사실 당신은 항상 스크린을 보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스크린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 뿐입니다.

 

당신은 항상 당신자신(의 본성)과 당신의 본유적인 평화와 행복을 의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당신이 당신자신(의 본성)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항상 의식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당신자신에 대한 앎이 경험의 내용과 혼재되도록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당신은 있는 그대로의 당신 자신(당신의 본성)을 알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당신이 밤에 깊은 잠을 고대하는 이유입니다. 당신은 있는 그대로의 당신 자신(당신의 본성)을 알고 싶기 때문입니다.

출처 : YouTube, Rupert Spira

우리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어젯밤에 세상모르고 잤다’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깊은 잠에는 평소 체험자로 자처하던 자아는 사라지고 없는데 도대체 누가 그런 깊은 잠을 체험하고 아는 것일까요. ‘어젯밤에 세상모르게 잤다’라는 사실은 스스로 체험해서 아는 것이지 다른 누군가가 알려준 소식이 아닙니다. 하지만 짚은 잠 안에는 평소의 나, 즉 몸과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도 세계도 없이 아무것도 모른 채 잤다’를 체험하고 알기 위해서 깊은 잠 안에 반드시 무엇인가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무엇인가는 몸, 생각, 느낌, 타인, 사물, 시공간이 아니어야 합니다. 이때의 그 무엇이야말로 바로 우리이고 우리여야 합니다. 아는 자인 우리만이 몸과 세계가 전부 사라진 가운데 여전히 홀로 남아있으면서 모든 것의 없음을 체험하고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깊은 잠에서 몸과 세계가 보이지 않도록 투명하게 만들어 품고 있는 의식입니다. 우리의 대리인인 자아를 통하지 않고, 깊은 잠에서 우리는 직접 우리를 체험합니다.

출처 : "자유롭게 살고 유쾌하게 죽기", 이문호

“나는 꿈을 꾸었다”, “나는 깊이 잠들어 있었다” 또는 “나는 깨어 있다”라고 말하려면, 세 가지 상태를 거치는 동안에도 당신이 여전히 존재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 말은 곧, 당신이 어떤 상태를 거쳐 왔든 당신이 늘 존재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당신이 지금처럼 있다면, 당신은 깨어 있는 상태다. 깨어 있다면 꿈꾸는 상태가 뒤로 숨는다. 깊이 잠든다면 깨어 있는 상태가 뒤로 숨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그때도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며, 세 가지 상태를 거치는 동안 항상 존재한다. 당신은 세 가지 상태를 오고가지만, 늘 존재한다. 이것은 영화와 비슷하다. 스크린은 항상 존재하지만, 그 위에 여러 장면들이 비춰졌다가 사라진다. 스크린에 어떤 영상이 스쳐가든 스크린은 그대로 남는다. 마찬가지로 세 가지 의식 상태가 오가는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나’라는 존재는 지속된다. 이런 사실을 이해한다면, 스크린위에 나타나는 장면들이 스크린에 흠집을 남기지 못하듯이, 세 가지 의식 상태에서 벌어지는 일들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게 된다. 스크린 위에는 끝없이 풍랑이 몰아치는 큰 바다가 비춰지지만 곧 사라진다. 때로는 큰불이 당신을 덮칠 듯 활활 타지만 이내 사라진다. 스크린에는 언제나 영상이 비춰지다가 사라진다. 그렇다고 스크린이 물에 젖거나 불에 타버리는가? 어떤 장면이 비춰지든 스크린 자체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깨어 있을 때나, 꿈을 꿀 때나, 깊이 잠들어 있을 때나 일어나는 상황들은 당신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당신은 언제나 ‘나’로서 존재한다.

 

단지 깊이 잠들었을 때는 육체에 대해 의식하지 못하지만, 깨어있는 상태에서는 육체를 의식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육체에 대한 의식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 참된 의식에는 변함이 없다.

육체와 육체에 대한 의식은 함께 일어나고 함께 소멸한다. 요컨대, 깊이 잠들어 있는 동안에는 한계가 없지만, 오히려 깨어 있는 상태에서 한계가 생긴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런 한계가 곧 속박이다. ‘육체가 나’라는 느낌은 그릇된 것이므로, ‘나’에 대한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진짜 ‘나’는 언제나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나’는 새롭게 나타나지도 않으며, 어디론가 사라지지도 않는다. 모름지기 존재라면 영원히 지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새롭게 생겨난 것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깊이 잠든 상태와 깨어 있는 상태를 비교해 보라. 깨어 있을 때는 육체가 있지만, 깊이 잠들면 육체가 없다. 그러므로 육체는 또 사라질 것이다. 의식은 육체보다 먼저 존재했고, 육체가 사라진 뒤에도 남을 것이다.

 

질문자 : 하지만 잠이 들었을 때는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한다.

그렇다. 잠든 상태에서는 육체에 대한 인식도 없고, 세상에 대한 인식도 없다. 그러나 잠자는 동안에 당신(=참된 의식)이 존재해야만 “나는 잠자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모른다”라고 말할 수 있다.

출처 : "있는 그대로", 라마나 마하리시의 가르침

 

질문자: 당신께서 잠들어 계실 때는 무엇을 하십니까?

마하라지: 저는 제가 잠들어 있다는 것을 자각합니다.

질: 잠은 무의식의 상태 아닙니까?

마: 그렇지요. 저는 제가 의식하지 못한다는 것을 자각합니다.

질: 그러면 깨어 있을 때나 꿈을 꾸실 때는 어떻습니까?

마: 깨어 있거나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자각합니다.

<참고 사항>

: 마하라지의 자각(awareness)과 의식(consciousness)

질문자: 당신께서는 ‘자각하고(aware)’와 ‘의식하고(conscious)’라는 말을 사용하십니다. 그것은 같은 말 아닙니까?

마하라지: 자각(awareness)은 원초적입니다. 그것은 원래의 상태(original state)이고, 시작이 없고, 끝이 없고, 무(無)원인이고, 지지물이 없고, 부분이 없고, 변화가 없습니다. 의식(consciousness)은 접촉 위에 존재하고, 어떤 표면에서 일어나는 반사이며, 이원성의 한 상태입니다. 자각 없이는 어떤 의식도 있을 수 없지만, 의식 없이도 자각은 있을 수 있습니다. 깊은 잠 속에서 그렇듯이 말입니다. 자각은 절대적이고 의식은 그것의 내용에 대해 상대적입니다. 즉, 의식은 늘 무언가에 대한 의식입니다. 의식은 부분적이고 변화무쌍하지만, 자각은 전체적이고 불변이며, 고요하고 묵연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경험의 공통 기반입니다.

출처 : "I AM THAT", 스리 니사르가닷따 마하라지와의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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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혜 | 작성시간 23.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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