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다에 온지도 벌써 18년 그리고 5년전 손녀딸의 요청(미술학교 가까이)으로 밴쿠버 외곽 작은 도시로 이사했다. 어쩌다 백인들만 사는 Senior Townhouse(150 가구) 단지에 살게 되였다. 그리구 단지내 많은 사교모임에도 적극적으로 참석 백인들과 어울려 살려고 애를 썼다. 미국(Melting pot) 과는 달리 다문화 정책(Multicultural policy) 이 정착된 카나다인지라 피부색갈은 다르지만 여러 인종들과 어울려 사는 재미를 누리며 내심 나는 "Korean Canadian" 이야 라며 자부심을 갖고 살았왔다. 그래서 가까운 백인침례교회(North American Baptist Conference 교단)에 적을 두고 믿음 생활을 해오며 각종 성경공부애도 참석하고 구역예배(Small group meeting) 에도 열심히 참석해 왔다. 그러다 보니 이제 다늙어 70 이 넘은 나를 장노를 하라고 해서 하는수 없이 수락을 하고 봉사를 해온지 1년이 다되였다. 두주전이다. 같은 구역원이 자기 남편(체코 태생) 65세 생일 파티를 가까운 Greek Restaurant 에서 한다며 우리부부를 초대하면서 이것은 Surprise Party 라며 자기 남편에겐 비밀로 하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당일 식당에 도착을 하니 목사님 부부외에 10여명이 와 있었다. 드디어 부인이 자기 남편을 데리고 나타났는데 남편이 무척 기분이 좋아했다. 그리곤 음식을 Host 가 시키는게 아니고 각자가 알아서 시키는데 어느 부부는 Wine 을 시키기도 해서 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려니 하고 음식을 즐긴후 파티를 끝낼무렵 모두 Dutch Pay 를 하는게 아닌가 ! 우리도 애써 태연한체를 하며 우리 음식값을 치루고 축하한다며 인사를 하고 식당을 나서는데 도무지 입맛이 씁쓸하기 짝이 없었다. 생일파티에 초청해 놓고 네밥값은 네가 지불하고 가라니 ....................... 처음 격는 문화충격이라 며칠을 지내도 마음이 가라앉지를 않아서 백인사위와 결혼해서 아이 둘 낳고 Texas 에 살고있는 작은 딸에게 e-mail 로 전후사정을 이야기 하며 서양엔 이런 "몰상식한 법" 도 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카나다 뿐 아니라 미국 Texas 에서도 대부분 그렇단다. 심지어 생일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초대한 사람 밥값까지 몽땅 지불해 주기도 한단다. 즉 한국과 정반대란다. 1969년 부터 유럽의 화란(Dutch pay 의 원조)에서 일년, 호주에서 3개월, 미국의 Wisconsin 에서 2년, Texas 에서 일년, 등 수많은 외국 장기체류의 경험을 바탕으로 서양문화에 익숙해졌다고 자부하던 내가 다늦게 이제와서 이런 "문화충격" 에 당황을 하다니 ..... 그래서 힘들어도 죽을때까지 배우며 살아야 겠다고 다시금 다짐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