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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환과 호텔 밴쿠버

작성자박건우|작성시간11.04.30|조회수135 목록 댓글 0
1800년대 후반부터 Canadian Pacific 과 Canadian National Railways 에서 카나다 전역에 훌륭한 철도호텔들을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호텔들은 당시로서는 첨단 건축공법으로 시공되었을 뿐만아니라 최고와 최선을 지양한 관계로 당시 건물들이 Canada national heritage 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호텔 밴쿠버’ 자리에 1890년경 5층 벽돌 건물로 철도호텔이 지어졌는데 farm house 와 같은 기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후 두차례의 변화를 거친후 끝에 세번째 호텔부터 ‘호텔 밴쿠버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두번째 호텔은 1912년 착공 1916년에 준공되었고 밴쿠버에서 사교모임의 장소로 이용되다가 2차대전 당시에는 카나다 행정부가 사용한후 1949년에 허물어 버렸습니다.

현재의 ‘호텔 밴쿠버’는 건설하는데 경제 대공황으로 인하여 5년간 건설이 중단된 기긴을 포함하여 11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카나다 국철에 의해 착공되었지만 카나다 퍼시픽 철도와 공동운영계약을 체결하여 공동 운영키로 합의한후 준공되었습니다.
1939년 영국 King George VI 와 Queen Elizabeth 의 Royal visit 에 맞추어 1939년 문을 열었습니다.
건축비용은 당시 돈으로 $12 million 이 들었습니다.

1990년대에 밴쿠버 최고수준의 호텔로 자리매김하기 위하여 $70 million을 투자, 개조 및 보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1890년대 지어진 5층 벽돌건물이었던 철도호텔에 구한말 민충정공 민영환이 다녀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1895년 을미사변 즉,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들에 의해 경복궁내에서 무참히 시해당하자 고종황제는 신변의 위협을 느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 즉 아관파천 하게됩니다.

남의 나라 공사관에서 숙식을 해결해야되니 체면도 말이 아니고…...여러가지로 불편하던차에 고종황제는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의 즉위식이 있게되자 이기회를 국면타개를 위한 절호의 기회로 삼고 없는 나라살림에 민영환을 단장으로 7명이나 되는 대규모 외교사절단을 1896년에 모스크바로 파견하게됩니다.

한성(서울)에서 모스크바까지 가려면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타던가, 인도양을 횡단하는 여객선을 타야되는데 당시에는 이모든 교통편이 없던 시절입니다.

그래서 민영환 일행은 제물포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에서 배타고 카나다 밴쿠버에 와서 호텔 벤쿠버의 전신인 5층 벽돌건물로 된 철도호텔에 묵게됩니다. 여기서 약 1주일 체류한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후 밴쿠버에서 뉴욕까지 기차로 가서, 뉴욕에서 배타고 영국으로, 영국에서 배타고 암스텔담까지가서, 기차로 모스크바까지 간것입니다. 한성을 출발하여 모스크바 까지 가는데 4달이 소요되었습니다.

니콜라이 황제 즉위식에 참석하려고 모스크바에 도착한 민영환 외교사절단의 사진이 현재 러시아 문서보존국에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4년전 KBS 에서 취재햐여 방영한 바있습니다.)

민영환 일행은 니콜라이 황제를 만나 고종황제의 친서를 제시하며 고종황제의 요구사항을 부탁하게됩니다.

즉, 경복궁 경비를 러시아군대가 맡아주고, 한성과 모스크바간 직통전화개설, 구한국군 현대화를 위해 러시아에서 교관을 파견해줄것, 경제개발을 위한 차관 30만원을 꾸어줄것 등을 요구했으나 니콜라이황제는 어려운 러시아의 국내사정을 이유로 하나도 들어주지 못하게됩니다.

민영환은 낙심천만하여 호텔방에서 땅이 꺼지라 한숨만 쉬다가 니콜리이가 황제가 즉위식을 끝낸후 레닌그라드로 가게되자 거기까지 쫓아가서 3번을 만나게 됩니다.

만난 결과 러시아의 교관 10명을 데리고 귀국합니다. 이일로 인하여 민영환은 고종황제로부터 일약 국방장관에 임명이 되고 러시아 교관들이 구한국군을 경복궁내에서 훈련시키게 됩니다.

이러던 차에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민영환은 울분을 참지 못하고 자결합니다. 고종황제는 민충정공이라는 시호를 내립니다.
민영환이 피흘리고 죽은 자리에서 대나무(血竹)가 났는데 대나무 잎파리가 44개, 당시 민영환의 나이가 44세 였다고 하니 이 무슨 우연의 일치인지 운명의 장난인지……아무튼 이 혈죽을 후손들이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기증하여 일반의 관람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호텔 밴쿠버 앞을 지날때마다 100여년전에 민영환 외교사절단이 다녀간 사건이 떠오르게 되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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