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소개합시다. ^^*

[영화]아비정전 ( 박찬욱 감독이 쓴 글 입니다.)

작성자이영규|작성시간03.01.12|조회수353 목록 댓글 0
저는 아비정전에 대해서는 이 글이 제일 좋더군요. Always on my heart 듣다가 문득..

~~~~~~~~~~~~~~~~~~~~~~~~~~~~~~~~~~~~~~~~~~~~~~~~~~~~~~~~~~~~~~~~~~~~
아비정전

阿飛正傳


주연/장국영, 유덕화, 장만옥, 유가령, 장학우, 양조위
각본, 감독/왕가위
제작/등광영
촬영/두기풍
제작사/영지걸 제작유한공사
판매원/서진 통상
제작연도/1989년
상영시간/100분


의심할 바 없이 이것은 홍콩 영화 사상 단연 최고의 작품이다. [아비정전]으로 해서, 홍콩은 최초로 명실상부한 아트 필름을 보유하게 되었고, 후 샤오시엔([비정성시])의 대만, 첸 카이거([황토지])의 대륙, 웨인 왕[(딤섬)]의 뉴욕 차이나 타운 등 다른 세 중국과 비로소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되었다. 홍콩은 마땅히 '전영 열혈남아' 왕가위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지만, 정작 그가 받은 보답은 흥행의 참패와 몰이해, 그리고 귀결로서 [아비정전] 제 2부 연출에서의 상업적 압력뿐이었다. 그가 홍콩 영화 자본이 규정하는 영화적 한계성을 일단 극복해 냈다고는 해도, 이제 그 용감했던 시도는 하나의 모험적 해프닝으로 역사에 기록될 공산이 커진 셈이다. 서극의 [촉산]으로 겪었던 실패보다 이 경우가 더욱 안타까운 것은, 서극이 실패한 것이 '상업 영화의 예술'이었다면, 왕가위가 실패한 것은 '예술 영화의 상업'이기 때문이다.

[아비정전]에서 97년 홍콩의 중국 귀속 증후군은 매우 간접적으로 노출된다. 그것은 차라리 무의식적인데, 어디에도 홍콩의 정치 현실에 대한 언급은 없고 일견 따분한 5각 관계 연애담만 있는 이 영화에도 그 징후는 보인다. 우선, 과거시제로 진행된다는 점:간간이 들려올 뿐이지만 이야기의 매듭을 지어가면서 구성의 뼈대를 이어주는 '내러티브의 관절'은 여기서 독백이다. 장국영, 유덕화, 장만옥의 독백은 모두 일종의 회고 형식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들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그 회고를 하고 있는지는 관객이 알 수 없다. 우리가 아는 게 있다면 이들의 과거뿐. 그것은 행복한 추억이라기 보다는 혼란스러운 꿈이고, 꿈이되 악몽이라기에는 너무나 아름답고, 길몽이라기에는 지나치게 우울한 꿈...... [아비정전]은 수수께끼의 미몽(迷夢)이다.

이렇듯 현재를 말하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고,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 꿈의 분위기를 조장하는 방식은 홍콩 영화에서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영웅본색 III]을 보라. 베트남 탈출=홍콩 탈출의 등식은 [첩혈가두]에도 있다. 후자는 특히 악몽의 느낌을 선연히 풍기고 있다. 그러나 [아비정전]은 현재를 피하기 위해 과거를 찾고 현실을 잊기 위해 꿈처럼 몽롱한 세계로 숨어든 것이 아닌가 하는 혐의가 짙은 영화이다. 여기서 또 하나의 중요한 모티브가 발견된다. 인물들의 과거지향적 성격: 이들은 모두 과거지사에 얽매여 있다. 장국영은 자신의 출생의 비밀에, 유덕화는 장만옥과의 짧은 인연에, 장만옥은 장국영화의 영원한 기억의 순간에, 유가령은 장국영에의 헌신에, 장학우는 장국영과의 우정에 각각 집착한다. 바로 여기에 비극의 원인이 있다. 생모를 만나고 돌아가는 장국영을 보자. 어머니가 자기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독백과 함게, 그의 동작은 진행 중에 돌연 커팅 없이 느려진다. 이 독특한 슬로우 모션은 거의 조소적으로까지 들리는 음악 소리와 어울려, 씩씩해 보이던 그의 걸음걸이를 갑자기 우스꽝스러울 만큼 애처롭게 만든다. 그는 열심히 다리를 내어 뻗지만, 좀처럼 나아가지 못한다.(본편 첫 쇼트에서 장만옥을 향해 힘차게 걸어가던 그의 뒷모습과 비교해 보라). 마치 과거의 포로인양...... 그런데 과연 이들의 과거에는 무슨 의미가 있기는 한가? 장국영과 장만옥은 1960년 4월 16일 오후 3시를 잊어버렸다고 말하고, 유덕화는 장국영을 본 적이 없다고 대답하며, 생모는 아들에게 자기 존재를 부정한다. 장학우는 친구의 차를 판 돈으로 사랑하는 여자를 떠나 보내고, 유가령은 이미 죽은 연인을 찾아 이국의 거리를 헤매인다. 남자가 기다릴 때 여자의 전화는 오지 않고, 여자가 전화할 때 남자는 거기 없다. 이들에게 미래가 없는 것처럼, 과거는 억지로 부정되거나 질곡으로 화한다. 어느 쪽이거나 집착의 결과이기는 마찬가지, 절망은 과거 자체가 아니라 과거에의 집착에서 온다(자신도 벗어나지 못한 집착을 이유로 주인공들은 파멸시킨다? 미래에의 비젼 대신 과거에의 노스탤지어에 사로잡힌 작가의 이율배반이다. 또는 스스로에 대한 응징이다). 남자는 말한다. "이 1분은 지울 수 없어. 이미 과거가 되었으니까." 훗날 여자가 탄식한다. "1분이 짧은 줄 알았는데...... 영원할 수도 있더군요."

시간과 관련해서 인물들을 둘러싼 공간과 그 표현 방식이 결정된다. 이들의 광장 공포증은 관객에게 폐소 공포증을 유발한다. 스스로의 닫힌 전망을 상징하듯 그들은 늘 숨막힐 정도로 좁은 공간에서 생활한다(2부의 예고편 격인 양조위 장면은 머리가 천정에 닿을 정도로 좁은 방에서 벌어진다. 이로써 후속편의 성격을 미루어 짐작할 수도 있겠다). 그곳은 또한 홍콩의 상징이기도 한데, 그 안에서도-어두운 조명과 망원렌즈의 사용으로-화면의 초점 심도는 낮아 인물들 사이의 단절감이 강조된다. 카메라가 초점을 이동시켜주지 않는 한, 근경의 인물과 원경의 인물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리고 이들이 거기서 벗어나 드넓은 필리핀으로 갔을 때, 죽음은 닥친다. 총격전이 벌어지는 식당 역시 광장처럼 넓은 곳이다. 그러나 장국영과 유덕화가 마주앉아 홍콩의 이야기를 나누는 곳은 다시 비좁은 여인숙(여기서 가장 긴 테이크와 정교한 블로킹이 구사되는데, 이 역시 공간의 협소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이고, 시간과 인생을 이야기하며 장국영이 죽어가는 곳은 그보다 더 좁은 열차 안이다. 그렇지만 열차라도 문이 모두 열린 열차이다. 밖으로 펼쳐진 광활한 정글, 그가 꿈속에서 그리던 바로 그 열린 공간(발없는 새가 쉬임없이 날아다녀야 하는 하늘)과 그대로 통하는 완행 열차의 삼등칸. 이 열차가 12시간을 달린 끝에 결국 어디에 가 닿을 지는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곳이 적어도 홍콩보다 낯선 어떤 곳일 것임은 분명하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