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가 지금은 세계적으로 가장 보편화된 채소이지만 유럽에 전래된 당시에는 화초로 재배되었다. 유럽인들은 토마토를 보기 전까지 새빨간 과일을 제대로 본적도 없었고 특유의 풋내와 아린 맛으로 먹기를 꺼렸다. 일부 의사들은 신비한 효능을 가진 약용식물로 보기도 하였고 황금빛 토마토는 정력이나 최음제로 사용하기 좋은 식물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였지만 독초인 맨드레이크와 비슷한 모습에 먹을 생각을 하지 못했고 식용이 가능하다는 것을 안 뒤에도 선뜻 음식에 활용하기를 꺼렸다. 17C 영국 청교도혁명을 이끈 크롬웰은 재배 금지명령을 내리기도 하였다.
18C 미국에 정착한 영국인들도 19C 까지 이 속설을 믿었고 급기야 미국 군인이면서 농부이기도 한 ‘로버트 기번 존슨’은 1820년 뉴저지주 세일럼 광장에서 토마토를 먹는 퍼포먼스를 벌였는데 일부 의사는 죽는다고 하였고 여성 몇 명은 실신까지 하는 소동을 겪고 나서야 토마토의 무해함이 증명되었고 이후 세일럼카운티에서는 토마토 먹은 날을 기념하여 ‘로버트 기번 존슨데이’로 운영하고 있다.
맨드레이크의 꽃, 열매, 뿌리
(알카로이드 독성물질을 함유하여 먹으면 마취증상과 환각작용을 일으킨다.)
이렇게 기피하던 토마토가 식재료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이탈리아 나폴리 사람들이 먹기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나폴리는 지중해성 기후로 일조량이 풍부하고 온도가 높아 토마토 재배에 유리한 지역조건도 있었지만 당도와 맛이 진한 ‘산마르자노(San Marzano)’ 품종의 생산조건에도 맞춤이었다. 그러나 근본적인 이유는 당시의 나폴리는 스페인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며 17∼18세기 빈민층이 많고 식량난이 심각하여 가난한 사람들이 생존식량으로 선택하였기 때문이다.
토마토는 건조나 절임, 소스 등으로 장기 저장이 가능하였고 빵, 파스타, 마카로니와 같은 탄수화물 식단에 산미와 풍미를 더해 주면서 식사 만족도도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이후 18세기 말∼19세기 거리의 노동자들이 토마토를 얹은 피자를 먹기 시작하였고 1889년 이탈리아 초대국왕의 왕비인 마르케리타가 방문하였을 때 빨간색의 토마토, 하얀색의 모차렐라 치즈, 초록색의 바질을 올려 이탈리아 국기를 표현한 ‘마르케리타’ 피자가 탄생하면서 토마토는 나폴리 피자의 핵심재료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제 토마토는 독특한 맛의 매력으로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 고유의 요리가 존재할 정도가 되었다. 생과에는 특유의 향과 새콤함이 있고 조리 후에는 은은한 단맛이 기다리고 있다.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페이스트나 스튜의 소스로 식당에서는 샐러드나 고기에 얹는 채소로 이용된다. 전 세계의 토마토 이용요리는 7만 가지 이상이 알려져 있으며 지역마다 특징이 있는 전통요리법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파스타나 고기와 해산물을 이용한 스튜를 곁들여 먹는 가정이 증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토마토의 구성성분인 시트랄과 헥사날은 육류와 어류의 냄새를 제거하고 유기산은 기름으로 인한 느끼함을 잡아 주는 조미료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여기서 잠깐! 케첩(ketchup)의 원조가 중국이라고?
17세기 중국 복건성과 광동성의 해안가 어부들이 생선과 조개로 만든 젓갈 소스를 ‘케짭(ke-chiap)’이라 불렀다. 이 소스가 17세기 말 동남아로 전파되어 ‘케캅(kecap)’ 또는 ‘케찹’으로 불렸고 18세기 영국의 상인들이 유럽으로 가져가 ‘ketchup’ 또는 ‘catchup’으로 소개되었으나 토마토를 재료로 이용한 것은 아니었다. 이후 1870년대에 미국의 식품회사 하인즈가 ‘토마토케첩’을 출시하면서 세계적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