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탕자, 그후 이야기(9)
탕자의 변화
데살로니가전서 5:16-18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축복의 새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탕자가 아버지께 돌아온 후 그의 삶에 일어났을 변화를 30가지 단어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빙고 게임도 하면서 그 변화의 단어들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 온유 | 자족 | 믿음 | 분별 | 절제 |
| 오래 참음 | 넉넉함 | 신뢰 | 기쁨 | 열정 |
| 나눔 | 사랑 | 감사 | 진중함 | 미소(밝은얼굴) |
| 돌봄 | 자비 | 인내 | 순종 | 책임감 |
| 자상함 | 경청 | 겸손 | 행복 | 성실 |
| 성숙(인격) | 화해 | 정직 | 배려 | 평안 |
그 30가지 변화는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향한 태도가 변화됩니다.
믿음, 신뢰, 순종, 감사, 분별, 진중함
둘째, 마음의 성품이 변화됩니다.
온유, 겸손, 자족, 절제, 오래 참음, 인내, 평안입
셋째, 삶의 자세가 바뀌었을 것입니다.
기쁨, 열정, 성실, 성숙, 행복, 미소, 책임감
넷째, 이웃을 향한 마음이 바뀌었을 것입니다.
사랑, 자비, 돌봄, 자상함, 경청, 화해
다섯째, 공동체를 세우는 삶으로 바뀌었을 것입니다.
나눔, 배려, 넉넉함, 정직
사실 탕자의 비유는 이같은 변화들을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 돌아온 사람이라면, 이렇게 변화되었을 것입니다. 변화되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이 말은 우리를 향한 강력한 요청의 메시지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았으면 변화되어야 합니다. 안변했다면 이상한 일이지요!!
이같은 변화를 사모하면서, 다 나눌 수 없겠지만, 핵심이 되는 변화들을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제가 30가지 중에 감사를 선택했습니다.
왜냐하면 감사는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다른 변화들을 만들어 내는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감사가 사라지면 믿음도 약해지고, 평안도 사라지고, 사랑도 식어집니다. 그러나 감사가 회복되면 다른 변화들도 함께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성경은 감사만 따로 말하지 않습니다. 감사는 기쁨과 연결되어 있고, 기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는 사람은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은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감사는 단순히 성격이 아니라 믿음의 모습입니다. 감사하는 자로 변화되면, 많은 것이 바뀝니다.
첫째, 감사는 당연함을 은혜로 바꿉니다.
탕자는 집에 있을 때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그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계셨고, 먹을 것이 있었고, 편히 쉴 집과 옷과 음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것들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저는 가끔 한국에서 계속 목회했다면 어떤 목사가 되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한국에서는 목회자들끼리는 목회를 먹회라고 합니다. 지금 돌아보면 서울에서의 부목 5년 동안 늘 먹다 지칠 정도였습니다. 한가지 예지만, 그렇게 살았다면 성도 귀한 줄은 알았을까? 성도의 아픔은 알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민 목회 20년차가 되어보니, 한명 한명의 성도가 귀하고, 한끼한끼의 식사가 정말 귀하더군요. 대접받는 것도 귀하고, 한끼 대접하는 것도 얼마나 귀한지... 나보다 훨씬 잘사는 유학생들이지만, 집밥이 그리운 아이들을 먹여야 하는데 교회 재정도 없고, 돈도 없어서 직접 김치를 담궈 보기도 하고, 식당갈 돈이 없으니. 짜장면도 짬뽕도 만들어가며 먹이는 기쁨을 알았을까요? 이 시간 멕시코 선교지의 사진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우리가 누리는 많은 것들이 얼마나 귀한지 아시겠지요? 그러나 감사가 없으면 어떤 일들이 일어나겠습니까? 탕자는 아버지의 사랑보다 자유가 더 좋아 보였습니다. 집의 풍성함보다 세상이 더 좋아 보였습니다. 그 결과는 불효막심한 결정으로 유산 받아 집을 떠났습니다.
죄의 시작은 감사의 상실인지도 모릅니다.
에덴동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수많은 열매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한 가지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감사가 사라지자 욕심이 들어왔고, 욕심이 들어오자 죄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범사란 좋은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형편이 좋을 때만 감사하라는 뜻도 아닙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탕자는 먼 나라에서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아버지의 집과 아버지의 보호하심이 얼마나 큰은혜였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돌아왔습니다.
이제는 아버지 집의 밥상이 감사였습니다. 아버지의 품이 감사였습니다. 함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감사였습니다.
감사는 은혜를 보는 눈입니다. 감사가 사라지면 은혜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감사가 회복되면 잃어버렸던 은혜가 다시 보이기 시작합니다.
둘째, 감사는 무너진 마음을 다시 세웁니다.
오늘 본문은 먼저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그 다음에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이 세 가지는 함께 합니다.
감사가 회복되면 기쁨이 살아납니다. 감사가 회복되면 기도가 살아납니다. 감사가 회복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살아납니다. 탕자가 아버지 집을 떠났을 때 처음에는 즐거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진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재산이 떨어지자, 친구들은 떠나고, 먹을 것이 없어지자 즐거움은 모두 고통이 되었습니다. 세상이 주는 즐거움은 조건이 무너지면 함께 무너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은혜에서 나옵니다. 탕자가 아버지께 돌아왔을 때 그는 다시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받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버림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아들의 자리에 서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감사는 기도를 회복시킵니다.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 나아가기 어렵습니다. 불평과 원망이 마음을 차지하면 기도도 막히게 됩니다. 그러나 감사가 회복되면 하나님께 다시 나아가게 됩니다. 탕자는 먼 나라에서 자기 힘으로 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 돌아온 후에는 더 이상 자기 힘만 의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집에서 아버지의 은혜를 의지하며 살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변화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기뻐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기도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셋째, 감사는 내 뜻에서 하나님의 뜻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본문의 마지막은 아주 중요합니다.
“이것이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나님의 뜻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본문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항상 기뻐하는 것.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 범사에 감사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탕자는 이전에는 자기 뜻대로 살았습니다. 자기 생각이 기준이었고, 자기 욕심이 방향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 돌아온 후에는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아버지의 뜻 안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자족할 줄 압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작은 일에도 기뻐할 줄 압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평안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품을 여유도 생깁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자족할 줄 압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작은 일에도 기뻐할 줄 압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평안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품을 여유도 생깁니다.
그러나 불평은 어떻습니까?
불평은 더 큰 불평을 낳습니다. 원망은 또 다른 원망을 낳습니다. 욕심은 더 큰 욕심을 낳습니다. 감사는 축복의 문을 열지만, 불평은 은혜의 문을 닫습니다. 그래서 감사는 변화된 삶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또 다른 변화를 만들어 내는 씨앗이 됩니다. 감사는 돌아온 사람의 언어입니다. 아버지를 떠난 사람은 부족한 것을 먼저 보지만, 아버지께 돌아온 사람은 은혜를 먼저 봅니다. 오늘 본문은 말씀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말씀처럼 감사가 회복될 때 기쁨도 회복됩니다. 감사가 회복될 때 기도도 회복됩니다. 감사가 회복될 때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뜻 안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무엇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습니까? 가족입니까? 교회입니까? 건강입니까? 예배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돌아온 사람은 부족한 것을 먼저 세지 않습니다. 받은 은혜를 먼저 봅니다. 이번 한 주, 불평의 언어를 줄이고 감사의 언어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감사가 회복되는 곳에 기쁨이 살아나고, 기도가 살아나고, 하나님의 뜻 안에 거하는 삶이 시작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