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
최초의 충돌 / 김민식 시인
나는 화면 너머의 테니스 경기를 본다
테니스 라켓이 공을 치는 순간
무수한 공중이 한꺼번에 태어난다
고래의 힘줄
산양의 창자
얇게 저며진 살점으로 직공은
라켓을 짠다
종선과 횡선이 지나간 사이에
태어나는 눈
공중에 이름을 붙이는 최초의 노동이었다
천사를 체로 걸러낼 수 있다고 믿은 프랑스인이 있었다
축과 축의 직교 속에서 성령은 좌표를 얻었다
의심 속에서
의심도 없이
체의 촘촘한 눈을 세는 귀신의 눈은 비어 있다
눈알만 파먹힌 생선들이
부둣가에 쌓여 있다
백경白鯨의 투명한 수정체
멸종된 거대 수각류의 담석
전체를 상상하면 그것들은 차라리 허공이었다
한국의 산에는 호랑이 모양 구멍이 반드시 하나씩 있으며
돌탑 위에 둥근 돌을 하나 올려도
산이 무거워지는 것은 아니었고
무수한 왕의 안구가 뽑혀나가도
지구가 가벼워지지는 않았다
믿음 속에서
믿음도 없이
삶의 질량을 변화시킬 혁명이 필요했다
어느 비 오는 날이었다
하늘에서 별이 떨어졌다
이렇게 말하면 믿는 사람이 없었고
하늘에 빛나는 돌이 불과 물과 함께 떨어졌다
이렇게 말하면 믿음과 의심이 동시에 생겼다
외계에서 날아온 돌은 지구를 확실히 무겁게 만든다
그것은 종종 과학의 영역이었다
“마음 속에 천 개의 방이 있고, 그 안에서 천 개의 멜로디가 흘러나옵니다. 나는 어떤 계열의 천사인 것만 같습니다”*
처음으로 운석을 발견한 아이가 남긴 말이었다
그가 발견한 검은 돌은
검은 신전의 기둥이 되었다
운석이 떨어진 자리엔, 빛과 유리와 불과 물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하는데요
정말 그것을 보았다고 말하는 자의 이글거리는 눈빛과
다만 우주의 조각을 만져보고자 하는 순례자들의
계획 속에서
계획도 없이
푸른 언덕에 모여 유성우를 구경하는 사람들
얼굴들이 깊게 파인 구멍 같다
나뭇가지에 걸린 셔틀콕을 올려다보는 아이의 표정만 같다
너, 라고 부르면 뒤돌아보는 사람이 여럿 있었는데
그중 아무도 귀엽거나 밉지 않았고
아나운서의 어깨 너머로
카메라가 풍경을 화소로 만들기 직전
나는 주머니에서 빛나는 하얀 공을 꺼냈다
아직 세상에 없는 구기종목의 공인구였다
⁕“머릿속에 만 개의 방이 있어서 좋은 멜로디가 나와요.”: 4세 어린이 백강현의 말. (‘영재 발굴단’ 108회)
김민식: 1994년 인천 출생, 수원 거주, 동국대 국어국문 문예창작학부 졸업,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현대문학전공 석사 과정.
<심사평>
“예언 떠오르게 하는 언술 고요한 카리스마 느껴져”
687명의 응모자 중 마지막까지 논의한 건 세 사람의 작품이었다. 작품의 수준이 고루 높고 각기 개성과 장점을 갖추고 있어 오래 고심했다.
‘부암’(付岩) 외 세 편은 문장과 문장의 연결이 매끄럽고 언어의 리듬감이 살아 있어, 읽는 맛이 좋았다.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자유로운 언술, 상상이 끌고 가는 리드미컬한 문장이 시에 신선한 음악을 부여했다. 시를 많이 써본 자의 탄탄한 기본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당선작과 끝까지 경합을 벌인 ‘Grooming’ 외 두 편은 평범한 언어로 비범한 사유를 끌어내는 솜씨가 탁월했다. 먼 곳에서 시작해 이야기의 중심으로 침착하게 진입하는 방식, 그 과정에서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 특별한 사유가 작품에 긴장감을 조성했다.
언어의 호흡, 행과 연 사이를 팽팽하게 조율하는 힘, 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조망하는 능력, 시로서만 가능한 이야기 방식을 취하는 점도 좋았다. 좀 더 함축성을 갖췄다면 시에 밀도가 생겼으리란 아쉬움이 있었지만, 끝까지 손에서 놓지 못한 작품이었다.
‘최초의 충돌’ 외 두 편은 상상력의 스케일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크고 빛나는 장면을 문장으로 포착해내는 솜씨가 탁월했다.
과거와 미래, 현실과 초현실, 미시적인 시각과 거시적인 시각을 넘나드는 화자의 폭넓은 관점, 예언을 떠오르게 하는 언술 방식에서 고요한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었다.
관찰이 곧 발명이 되는 시의 세계에서, 예리한 시선과 명징한 목소리로 고유의 세계를 그려내는 실력에 믿음이 갔다. 긴 논의 끝에 ‘최초의 충돌’ 외 두 편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당선자에겐 축하를, 당선하지 못한 두 사람에겐 실망하지 말고 자신을 믿고 계속 나아가길 당부하고 싶다.
심사위원: 오은 시인, 신해욱 시인, 박연준 시인.
광주일보
잊다 잊어버리자 잊혀지거나 등등 / 이서영 시인
고유의 방식으로 꿈은 형태를 지운다 처음부터 순서대로 지우개로 지우는 것과 다르게 아무데서나 지우고 싶은 것부터 지운다 깨끗하게는 아니고 주변을 쓱쓱 뭉텅뭉텅 어떤 부분은 둥근 빵덩어리로 보이다 만지려 하면 밀가루처럼 아늑해져서 모양이 참 막연해져서 무엇이었더라 말할 수 없게 한다 어떤 수업을 들었는데 어떤 칭찬을 받았는데 무어라 말할 수 없다 뭐였더라 그것은 안개처럼 잡히지 않는 희미함 무게도 감촉도 없지만 분명 거기 있는 알갱이들 나는 안개로 건물을 짓고 지붕을 뚫은 철근을 보고 낙서가 적힌 흑판을 본다 내 편이 아닌 사람들과 일을 하다 싸움이 나고 또 금방 화해한다 맥락에 관여하지 않는 사람들과 내기를 하고 나는 지략을 세워 크게 승리한다 다만 칭찬이 무엇의 결과였는지 명확치 않다
<심사평>
“일상의 감각 잡아채려는 의지 돋보여”
한 해를 정리하는 자리에서 우리들의 언어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한 해 동안 내면으로부터 쉼 없이 길어 올린 언어들을 대면하는 일은 축제 같았다. 자신들만의 목소리로 삶의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경이로웠다. 시는 삶의 어떤 형식이기 때문이다. 그 언어 형식 안에는 삶의 여러 단면들을 통해 즐겁거나 기쁘고, 아름답거나 시린 우리네 조용한 비명들이 녹음되어 있었다.
이번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응모된 시들 중에는 ‘사람과 언어가 만나 전류를 만들어내는 작품’들을 여럿 만날 수 있어 숨이 찼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 가운데 현이령은 조근조근하고 잔잔해서 뭔가 있을 듯하여 아주 여러 번을 읽지만 결국 분위기만 읽혔다. 김완두는 발랄함과 특이한 시선이 개성이 무기인 듯하지만 의외성과 유아적인 밑그림을 받치고 있는 것은 허무함이었다. 김영숙의 시는 일상적이며 사변적인 틀에 걸려 시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홍여니는 읽는 이를 의식하지 않고 혼자서만 달리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마지막까지 내 손을 떠나지 않은 건 이서영과 엄경은의 시. 이서영의 ‘뭉클’과 ‘잊다 잊어버리자 잊혀지거나 등등’을 집중적으로 읽었다. ‘뭉클’은 선명해서 맑게 다가온다. ‘잊다…’는 숨기면서, 드러내면서, 은밀하게 직조되어 있다. 또한 특유의 건조함이 세련된 미학을 만들고 있다. 엄경은의 ‘기본과 기분’은 무엇이 시로 탄생되는지를 잘 아는 숙련된 예비 시인의 작품이라 감탄했다. 하지만 ‘기본’에 대해 잘 그려내고 있다가 ‘기분’을 언급하면서 맺는 한 줄이 시 전체를 단번에 파괴하는 느낌이었다.
이서영의 ‘잊다 잊어버리자 잊혀지거나 등등’을 당선작으로 뽑는다. 자칫 흘러버리기 쉬운 일상의 감각을 잡아채려는 의지와 선명하지 않은 자신의 내면을 환대하는 방식으로 그려낸 화법이 아름다웠다. 당선을 축하하며 칙칙하기만 한 세상에 더 많은 울림들을 차려놓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이병률 시인,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등단,
<당선소감>
자기 전에 발바닥에 바셀린을 발라두었는데 밤새 신발도 없이 어디를 헤맨 것처럼 발바닥이 아팠다. 깨어나 보면 또 아무렇지 않았다.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없었던 건 아니겠지. 내가 헤맸을 골목들 어둠들…. 오랫동안 만진 생각이 있었다. 조금씩 수정하면서 눕거나 앉거나 습관에 기대어 조금씩 변경하면서. 대부분 좋지 않거나 쓸모없어서 버리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그 밖의 용도에 대해서 생각했다. 차마 말하지 못했던 것, 용도보다 훨씬 앞선 것, 거기 있을 뿐이라는 듯. 커튼이 항상 묶여 있는 것처럼,
시를 썼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라는 주문을 언제부터 받았던가. 나를 넘어서기 위해 조금만 더 해야 한다는데 난 그 조금만 더를 어찌해야 하는 것인지 손도 못대고. 어쩌면 조금만 더는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일지도 몰라. 죽을 때까지 조금만 더 하기 위해 애쓰고 있으면 어쩌나, 나는 정말 어쩌나, 이 가여운 나는, 어디로 사라지고 누가 와야 이 습관의 나는 대체되는 것일까,
당선 소식을 들었다. 나의 밤들이 말들이 그것인 채로 당선 소식을 들었다.
그래, 시를 더 써보겠느냐고, 마치 꿈처럼 연락이 왔다. 다른 호흡 다른 표정 한 번도 본 적 없는 환영 같은 불확실감에 휩싸여 당선 소식을 들었다. 내 여물지 못한 아픔을 선별해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린다. 시로 이어져 긴 시간의 터널을 함께 걸어온 ‘생오지문예창작촌’, ‘시가 흐르는 행복학교’ 문우들과 이 영광을 함께 하고 싶다. 늘 격려해주시고 기다려주셨던 박순원 교수님, 김성철 교수님, 유홍준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나의 엄마, 어머님, 이 기쁨은 온전히 두 분 것입니다.
이서영: 전남대학교 심리학과 졸업, 생오지문예창작촌 시동인 활동, 시가 흐르는 행복학교에서 창작수업.
매일신문
야간산행 / 여한솔 시인
공룡처럼 죽고 싶어
왜
뼈가 남고 자세가 남고
내가 연구되고 싶어
몸 안의 물이 마르고
풀도 세포도 가뭄인 형태로
내가 잠을 자거나 울고 있던 모습을
누군가 오래 바라볼 연구실
사람도 유령도 먼 미래도 아니고
실패한 유전처럼
석유의 원료가 된대
흩어진 눈빛만 가졌대
구멍 난 얼굴뼈에서
슬픔의 가설을 세워 준 사람
가장 유력한 슬픔은
불 꺼진 연구실에서 흘러나왔지
엎드린 마음이란
혼자를 깊이 묻는 일
오래 봐줄 것이 필요해
외계인이거나
우리거나
눈을 맞추지
뼈의 일들
원과 직선의 미로 속으로
연구원이 잠에 빠진다
이게 우리의 이야기
강이 비추는 어둠 속에서
신발 끈을 묶고
발밑을 살펴 걷는 동안의
여한솔: 1994년 대전 출생, 단국대 문예창작과 졸업
<심사평>
“신선한 목소리와 상상력 돋보여”
총 2천332편의 응모작 중 예심을 거친 10명의 작품이 올라왔다. 코로나19로 인한 환경 탓인지 예년보다 전체적으로 우울한 정서를 반영하는 시가 많았고, 무엇보다 '가족'을 다루는 시가 많았다. 산문시의 경향과 개별적 감수성에 편중된 시들이 많았던 예년에 비해 공동체적 감수성 속에서 개인의 영역을 시로 이끌어 내는 가편들을 보면서 다양한 결들의 시들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심사위원들은 '백자무늬 꽃무늬병', '야간산행', '제자' 등의 작품에 주목했다.
'백자무늬 꽃무늬병'은 농익은 솜씨에 전체적으로 시가 자연스럽고 안정되어 있었다. 당장 당선작으로 선택을 하여도 손색이 없을 만큼 매끈하고 반듯한 매력이 장점이었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느낌이 아쉬웠다.
'야간산행'은 신선한 상상력이 눈에 들어왔다. 언어를 익숙하게 다듬고 길들이는 과정보다 상투를 벗어난 새로운 발상과 시적 호기심을 끌고나가는 감각이 신선했다. 다만 응모해온 시들이 다소 직선적인 전개로 이루어진 점이 아쉬움으로 지적되었다.
'제자'는 담백한 화법과 리듬이 인상적이었다. 발상도 위트가 있고 매력이 가득한 시였다. 무엇보다 시들을 이끌어 가는 호흡이 독특해서 심사위원의 눈길을 오래 끌었다. 다만 동봉한 다른 작품들의 수준이 고르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당선작에 가까운 시와 다른 시들의 편차를 극복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논의 끝에 당선작으로 '야간산행'을 결정했다. 거칠고 투박한 면들이 곳곳에 있지만 이미지가 활달하고 선명했다. 신인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신선한 목소리와 상상력이 다른 시들을 제외시킨 결정적인 이유였다. 삶의 상투성으로부터 끝없이 새로운 시를 개척해가는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해보며 새로운 시인에게 축하를 전한다.
심사위원: 장옥관 시인, 김경주 시인.
예심: 김욱진 시인, 박미영 시인.
경남신문
냄비의 귀 / 장이소 시인
뜨거운 냄비의 귀를 잡다가 내 귀를 잡았다
순간이 순간에 닿는다
귀 하나 떨어진 양은냄비를 안고 골목을 지난다 삼삼오오, 얼룩이를 가리킨다 얼룩이는 번쩍번쩍 얼룩덜룩하다
고흐는 왼쪽 귀를 자르고 왼쪽으로 들었을까, 어떻게 오른쪽을 들었을까
당신은 떨어진 귀를 버리지 못한 사람 뚜껑을 마저 잃고 배가 된 사람
이마는 당신이 키우던 물고기 떨어진 귀는 물고기의 어디쯤일까
귀를 기울인다 귀는 기울기 물고기가 지느러미를 자른다 어디나 그런 귀 하나쯤 있다 절반이 절반에 매달려 가운데를 안고 돌면 떨어진 한쪽을 위해 두 배속 태엽을 감는다 꼬리에 풀리는 물무늬 아가미로 쏟아지는 물살 삼킨 것들이 중심을 세운다
멱을 잡고 중심을 도는 것은 붙잡지 못한 것들이 많다는 것
밖이 안을 떠받는다
쓸모를 잡는 동안 바닥에는 차고 오르는 온도가 있었다
끓어 넘치던 냄비 뒤집어 보여주지 못한 뚜껑을
버리면 더 가까워서 가볍다
기억을 잃고 바닥을 태우던 사람이 있었다
붕대를 푼다
고흐가 별이 빛나는 밤하늘에 은빛 물고기를 그린다
지느러미가 키를 잡는다
풍등이다
붙잡지 못한 것들이 손잡이를 흔든다 떨어진 귀가 어떻게 자신을 부르는지를
장이소: 1968년 부산 출생.
<심사평>
“현대인의 소외와 고립감 잘 표현”
올해 시 부문 투고된 1300여 편 중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임승환의 ‘계절이 바뀌기만 기다리고 있어요’, 김석범의 ‘허공의 크레바스’, 홍담휘의 ‘향기의 증거’, 김난의 ‘발화의 경계’, 장이소의 ‘냄비의 귀’ 등이다. 매우 작품성이 높고 사회의식도 있어 그 어느 것이라도 당선작이 될 만했다.
우선 ‘계절이 바뀌기만 기다리고 있어요’는 삶의 무상함에 대해 매우 탐미적으로 잘 묘파해내고 있지만 그 삶의 무상함이 자칫 지나친 감상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지적되었다. ‘허공의 크레바스’는 당대 사회현실의 문제의식을 매우 감각적 형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 높이 평가받았으나 일부 구절들에서 너무 교훈적이고 관념적인 내용이 직설적으로 드러나는 점이 한계로 언급되었다.
‘향기의 증거’는 ‘커피향’을 두고 매우 참신한 발상과 표현을 하고 있는 점이 높이 평가되었으나 그 주제가 커피를 둘러싼 노동력 착취라는 경직된 내용으로 수렴되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발화의 경계’는 일상 속의 자아가 갖는 허위의식에 대한 반성을 참신하게 잘 표현하고 있으나 너무 기교적이라는 점, 그리고 시제가 달라지는 점 등이 한계로 지적되었다.
‘냄비의 귀’는 현대인의 소외의식과 고립감을 ‘귀’라는 제재를 중심으로 심미적으로 잘 표현해내고 있고, 무엇보다 그것이 갖는 문제의식을 당대의 사회성과 결부지어 의미화하고 있다는 점이 높이 평가받았다. 이에 심사위원들은 장이소의 ‘냄비의 귀’를 당선작으로 뽑는 데 동의했다. 당선자는 더욱 정진해 한국 시단의 큰 별이 되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성선경·김경복
문화일보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 이 거울이 마음에 든다 / 남수우 시인
한 사람에게 가장 먼 곳은
자신의 뒷모습이었네
그는 그 먼 곳을 안으러 간다고 했다
절뚝이며 그가 사라진 거울 속에서 내가 방을 돌보는 동안
거실의 소란이 문틈을 흔든다
본드로 붙여둔 유리잔 손잡이처럼
들킬까 봐
자꾸만 귀가 자랐다
문밖이 가둔 이불 속에서
나는 한쪽 다리로 풍경을 옮기는 사람을 본다
이곳이 아니길
이곳이 아닌 나머지이길
중얼거릴수록 그가 흐릿해졌다
이마를 기억한 손이 거울 끝까지 굴러가 있었다
거실의 빛이 문틈을 가를 때 그는 이 방을 겨눌 것이다
번쩍이는 총구를 지구 끝까지 늘리며
제 뒤통수를 겨냥한다 해도 누구의 탓은 아니지
거울에 남은 손자국을 따라 짚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내게 뒷모습을 안겨주던 날 모서리가 처음 삼킨 태양을 생각했다
흉터를 간직한 햇살이
따갑게 몸 안을 맴돌고 있을 거라고
뒷모습뿐인 액자를 돌려세운다
거울 속에는
하얀 입김으로 떠오른 민낯들이 너무 많았다
남수우: 1991년생, 서울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랐다, 대학에서 동물생명학을, 대학원에서 현대문학을 전공했다.
<심사평>
‘틈’에 대한 예민한 감각과 사유… 좋은 시인으로 살 것이란 믿음 들어
올해부터는 예심과 본심을 통합하게 돼 심사하는 데 오래 걸리긴 했지만, 전체적인 수준이나 경향을 파악하면서 좋은 작품을 선별해갈 수 있었다. 725명의 투고작 3625편을 읽는다는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려운 시절을 통과하고 있는 이 시대의 풍경과 사람들의 내면을 읽어내는 일이기도 해서 더 각별하게 느껴졌다. 예년보다 무겁고 우울한 분위기가 강해졌고 상상력도 다소 위축된 것처럼 보였지만 경제적 어려움과 심리적 고립, 관계의 단절 등을 뚫고 희미한 빛을 찾아 나가려는 고투가 시편마다 절실하게 담겨 있었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시대에 시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품고 수많은 기록과 증언, 고백과 발언, 노래와 기원들을 공감하며 읽었다. 심사자들이 마지막까지 주목한 작품은 ‘가드닝’ ‘흰 토르소와 천사들의 나날’ ‘인공호수’ ‘에그조프쉬시즘’ ‘서른셋, 생일이 아직 또렷한’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 이 거울이 마음에 든다’ 등이었다. 이 여섯 분의 작품은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남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어서 무엇을 당선작으로 해도 좋을 만큼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가드닝’은 간결하고 리드미컬한 언어로 의미의 여운을 증폭시키는 시적 재능과 섬세하고 투명한 감각이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이 식물적 언어의 세계는 다소 수동적이고 부서지기 쉬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흰 토르소와 천사들의 나날’은 현실의 남루함을 환상으로 감싸며 따뜻하고 환하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인상적인 문장이 많지만 세부에 들이는 공력에 비해 전체적 구조나 결말이 약하다는 점이 아쉬웠다. ‘인공호수’는 군더더기 없는 언어로 의미를 구축해나가는 솜씨가 노련하고 관찰력과 집중력이 뛰어난 작품이다. 그런데 사진을 찍듯이 묘사 위주로 전개하다 보니 다소 평면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에그조프쉬시즘’은 원룸에서 일어난 고독사와 애완견을 중심으로 사회적 비극이 어떻게 봉합되는지를 강렬하게 보여준다. 다른 작품들에서도 도시와 문명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드러나고 있는데, 작품 간의 편차가 크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서른셋, 생일이 아직 또렷한’은 운문성과 산문성을 적절히 조율하며 긴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묘사와 진술의 연결이 좀 더 자연스럽고 뒷심이 있으면 좋겠다.
당선작으로 뽑은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 이 거울이 마음에 든다’는 뒷모습과 거울을 둘러싼 사유의 변주가 거울의 안과 밖, 문의 안과 밖, 지구와 태양 등으로 확장되며 몇 겹의 비유적 공간을 만들어낸다. 산문적 언어로 쉽게 환원되지 않는 이 모호함은 “본드로 붙여둔 유리잔 손잡이”처럼 미세한 균열의 기억과 무수한 틈을 내장하고 있다. 이 ‘틈’에 대한 예민한 감각과 사유가 그를 좋은 시인으로 살게 하리라는 믿음이 들었다. 당선을 축하드리고, 앞으로도 “자신의 뒷모습” “그 먼 곳을 안으러” 매 순간 떠나는 시인이 되길 바란다.
심사위원 나희덕·박형준·문태준 시인
경상일보
블루 / 변영현 시인
파란 동그라미를 그려요
당신은 호수인 줄 알고 뛰어들어요
팔랑팔랑 헤엄쳐요
바다처럼 넓고 깊어요 파란 동그라미
속의 당신이 파랗게 물들고
나를 찾아봐, 하는 목소리에
물이 뚝뚝 떨어져요
안 보여요 안 보인다니까요
여기 있어, 하는 목소리에
숨이 헉헉 차오르네요
파란 동그라미 위에 파란색을 더해요
내게는 다른 색이 없거든요
조금 다른 파란색이면 당신을 찾을지도 몰라요
몰랐어요 더 깊어질 뿐이라는 걸
바닥을 찾지 못할 거예요
하늘을 찾지 못할 거예요
파란 지구별에서 나갈 수 없듯
당신은 거기서 허우적거리겠죠
파란 동그라미 파란 동그라미
블루칩 같기도 하고 버튼 같기도 해요
속는 셈 치고 한번 눌러 볼까요?
잭팟이 터질까요, 당신이 튀어 오를까요?
하나, 둘, 셋!
아, 물감이 덜 말랐네요
파랗게 질린 손바닥 좀 보세요
당신이 묻어 있는 건 아니겠지요
파란 동그라미를 그려요
파랑이 파르르 떨고 있어요
<심사평>
“말놀이의 능수능란함 뚜렷해”
신춘문예 작품들을 심사하면서, 응모작들이 대부분 심리적으로 너무 위축되어 있는 게 아닌가, 그 원인이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가지는 비대면의 우울과 바이러스에 의한 공포의 고통스러운 그늘일지도 모른다. 또는 점점 더 팍팍하게 조여드는 삶과 환경의 압박감 때문일까? 심한 자기류의 언어 방기나 과도한 언어굴절이라는 한동안 유행해온 젊은 세대들의 언어 구사 특징이 많이 가신 가운데, 과거와는 다른 삶의 그늘들이 젊은 문학도들을 사로잡고 있는 게 너무 무거운 듯 여겨져 안타깝다는 생각을 한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은 20명의 100편 가량. 그 중 마지막까지 남아서 겨뤘던 작품들은 ‘손’ ‘본색’ ‘부초들의 잠’ ‘중심, 중심들’ ‘블루’ 다섯 편. 모두 나름의 독특한 빛깔들을 띠면서 개성적인 언어구사를 능숙한 솜씨로 보여, 그 중 한 편을 뽑는 게 무척 어려웠다. 그러나 어차피 한 사람 만의 손을 들어줘야 할 수 밖에 없는 것. 마지막으로 집어든 게 ‘블루’였다.
‘블루’는 푸른색의 인식을 통해 사랑을 확인한다. 언어의 반복과 리듬, 그리고 유머감각을 통해 사랑과 자기 인식의 우울과 명랑을 경쾌한 어조로 꿰어나가는 말놀이의 능수능란함이 돋보인다. 구성도 무난하고 주제를 끌고나가는 언어구사의 힘도 예사롭지 않다. 무거운 주제들이 많은 응모작들 가운데서 이 작품이 의외의 경쾌함으로 시선을 끌었다고 여겨진다.
새롭게 출발하는 수상자의 경쾌한 발걸음에 박수를 보낸다.
심사위원: 이하석 시인
강원일보
설원雪原 / 김겸 시인
끝없이 펼쳐진 눈밭이다
바람이 마른 모래처럼 일어난 눈가루를 휘몰아간다
저 막막한 눈밭에 단지斷指한 손가락으로
정방형의 칸을 내어 너를 쓰고 싶다
그 설원의 원고지에 무제無題라고 할
너의 순일한 마음에 대해 쓸까
영어囹圄에 갇힌 너의 죄 없는 욕망에 대해 쓸까
새하얀 너를 앞에 두고 토해냈던
내 먹물 같은 설움에 대해 쓸까
저 막막한 눈밭에 단지한 손가락으로
정방형의 칸을 내어 너를 쓰고 싶다
그 설원의 원고지에 깨어나지 못한 너의
침묵에 대해 쓸까
이 쇠잔한 생에 표착한 너의 불운에 대해 쓸까
외로워, 외로워 말하는 가오나시顔無し 같이 끼니마다
밥을 보채는 너의 허기진 영혼에 대해 쓸까
정해진 과오를 범하고 정해진 책망을 듣는 너의 차갑 게 굳어진 습習에 대해 쓸까
저 막막한 눈밭에 단지한 손가락으로
정방형의 칸을 내어 너를 쓰고 싶다
하지만 내 가난한 가슴과 옹색한 문장으로는
너를 쓸 수 없다
너라는 이름의 눈밭은 오늘도 그만큼의
햇빛, 그만큼의 별빛을 받아 홀로 아득하다
너의 눈밭에 그물 같은 붉은 칸을 내려 한
미욱한 나를 연해 뉘우친다
아무도 미워해 본 적 없는
아무도 시기해 본 적 없는
너라는 이름의 눈밭
저 깊고 아득한 너의 설원
김겸(김정남): 51세, 소설가.
<심사평>
“근래에 보기 드문 유장미와 순정미 갖춰 눈길”
어렵고 힘든 시기에 더욱 풍성해진 응모작들을 보면서 '과연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새삼 던지게 됐다. 실존에 대한 깊은 질문에서부터 우리 시대의 각박한 현실에 대한 질문에 이르기까지 질문과 해답의 진폭은 크고 넓었다. 최종적으로 조미희의 '귀뚜라미에 대하여' 외 4편, 서이나의 'CU편의점' 외 4편, 김겸의 '설원'외 4편 등을 놓고 숙고를 거듭했다. 조미희의 작품들은 시를 직조해 나가는 힘이 뛰어났으나 응모작들이 고른 수준을 유지하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서이나의 작품들은 젊고 신선한 감각이 돋보이나 마무리가 약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김겸의 작품들은 산문적이고 현학적으로 빠지는 위험이 노출되기도 했으나 이를 뛰어넘는 유장미와 순정미를 획득하고 있었다. 이는 최근 우리 시단에 부족한 부분이라 더욱 눈길을 끌었다. '설원'은 응모작들 중 이러한 장점이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어서 당선작으로 올리게 되었다. 아쉽게 탈락한 두분에게는 다음 기회를, 당선자에게는 신인다운 정진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이영춘・이홍섭 시인
전북도민일보
책등의 내재율 / 엄세원 시인
까치발로 서서 책 빼내다가
몇 권이 기우뚱 쏟아졌다
중력도 소통이라고 엎어진 책등이
시선을 붙들고 있다
반쯤 열린 창문으로 햇살이
배슥이 꽂혀와 반짝인다 정적을 가늠하며
되비추는 만화경 같은 긴 여운,
나는 잠시 일긋일긋 흔들린다
벽장에 가득 꽂힌 책제목 어딘가에
나의 감정도 배정되었을까
곁눈질하다 빠져들었던 문장을 생각한다
감각이거나 쾌락이거나 그날 기분에 따라
수십 번 읽어도 알 수 없는
나라는 책 한 권,
이 오후에 봉인된 것인지
추스르는 페이지마다 깊숙이 서려 있다
벽 이면을 온통 차지한 책등
그들만의 숨소리를 듣는다
어둠을 즐기는 안쪽 서늘한 밀착, 이즈음은
표지가 서로의 경계에서 샐기죽 기울 때
몸 안의 단어들이 압사되는 상상,
책갈피 속 한 송이 압화 같은 나는
허름하고 시린 과거이거나 목록이다
나는 쏟아진 책을 주워 천천히 넘겨본다
벽은 참 출출한 비결(祕訣)이다
엄세원: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 과정 수료, 한국방송대학교 국어국문학과(文淵) 학술.문학 통합 대상, 강원문학 시 부문 신인상, 한국소비자연합 문화예술부 시문회 사임당문학상, 홍성군 문화관광 디카시 대상
<심사평>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응모 작품들 중에는 우수 작품이 많았다. 경향각지에서 모인 문재(文才)들의 재주가 예리하게 빛났다. 특히 「물다리기」「손말」「고수동굴에서」「멀티플렉스 상영관」「풍욕」「대장간 온도계」「코스모스」「마트료시카」등이 시의 품격을 높였다.
여러 편 중에서 「책등의 내재율」을 최종심에서 제일 좋은 작품으로 뽑고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이 작품은 발상부터가 참신했다. 그리고 구사하는 시어들이 신선했으며 이야기를 끌고 가면서 적절한 알레고리를 설정한 점이 좋았다.
‘책등’은 책의 제목이 새겨진 책의 모서리 표상인데, 이를 ‘내재율’이란 어휘로 묶어 놓아 어휘 상호간 절묘한 아이러니를 품는다. 피상적이고 관념적인 의미의 외연과 책의 안 섶에 꽂힌 섬세한 율성(律性)을 결부시키는 조합은 시의 상징화에 기여한다. 책들은 상호 연대하여 어둠을 빚고 다시 어둔 벽과 암유된 정서를 공유한다. 미명(未明)의 책 갈피갈피는 시적 자아의 생(生)으로 융합을 꾀한다. 감춰진 책 속의 비의는 자아의 잠재의식과도 연계된다. 자아의 감성과 지성의 영혼은 책 속에 압화(押花)로 묻혀 있다가 서서히 빛에게로 나아간다. 출출한 비결(秘訣)이다.
심사위원: 소재호(시인, 문학평론가)
경인일보
핑고 / 황정현 시인
극지의 순록은 우아한 뿔을 가졌다
거친 발굽으로 수만 년을 걸어왔다
죽은 자식을 동토에 던지며 발길을 돌려야 했고
비틀걸음으로 얼음산을 넘어야 했고
살점을 떼어 어린 자식의 배를 불려야 했고
뿔을 세워 침입자에 맞서야 했고
온몸을 쏟아 무리를 지켰다
죽어서도 흙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치열한 싸움에서
늘 이기고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당신은 무덤을 등에 지고 돌아왔다
무덤은 살고 당신은 죽었다
무덤 속에서 얼음이 자라고 있다
얼음은 흙을 밀어 올려 산이 될 것이다
얼음의 계절이 오면 순록은
바늘잎나무숲으로 순례를 한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당신의 길이 보인다.
<당선소감>
"이 자리에 제가 앉아도 괜찮은가요?"/미안해요 여기/당신이 앉았던 자리인가요//접혀 있는 페이지는/당신이 읽던 페이지였고//아무렴 어떤 가요 슬픈 페이지를 넘기면/또 다른 슬픔이 펼쳐지는 걸요//유리창은 햇빛을 쏟아내더니/이내 비구름을 몰고 오네요//책 귀퉁이가 닳도록/당신이 읽던 페이지를 읽고 또 읽습니다//바라보는 일 밖에 할 줄 몰라서/다가가는 일도 제겐 큰 용기가 필요했지요//당신은 잠시 자리를 비운 걸요/이 자리엔 누구나 앉아도 괜찮습니다
작은방 낡은 의자에 오래도록 앉아있었습니다. 삐걱삐걱 의자가 소리를 내면 제 뼈들도 뚜둑뚜둑 화답을 합니다. 그렇게 저도, 의자도 함께 낡아가겠지요. 세상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지만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심장의 두근거림이 멈출 때까지 의자에 앉아 있겠습니다.
생애 처음으로 당선 소식을 전해주신 경인일보와 심사위원이신 김윤배, 김명인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함께 해준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뜁니다.
제게 피와 살을 주신 황의열·강신해님, 정숙광·선정선, 늘 저와 함께하는 김영형·김수민, 문전성시 최지온·서미숙·금희숙·김혜숙·염형기·박양미님, 문장강화 김산 선생님, 조재일님, 중앙대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이승하 교수님과 문우님들, 파피루스 김혜정·김율관·이해민님, 시와 찻잔 김희광 선생님과 문우님들, 용산도서관 이승희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심사평>
“마지막 행간까지 존재적 사유 확장된 미학 눈길”
이번 응모작들은 일상성에 노출된 실업, 가족, 반려, 생태 등을 소재로 한 사회적 문제에서부터 코로나19를 반영하듯 감염과 질병 등에 주목하며 삶의 보편적 중력에서 벗어나지 않는 시편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가운데 우리는 발상의 전환을 도모하는 다채로운 경향의 시편뿐만 아니라 인간 본연의 층위를 건드리는 시편들을 통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의 자리를 살펴보았다.
여기서 모던한 시적 상상력으로 고유한 사물을 새롭게 견인하면서 긴장감 있게 구현하고 있는, 10편의 작품이 예심을 통과했다. 또한 예심을 거친 작품들은 은유의 한계를 유연하고 감각적인 발상으로 작동시키면서 시어만이 가질 수 있는 언어의 특질을 살리고 있다는 점에서 평균화된 시작에의 열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예심 작품들 중에서 구체화되지 못한 묘사들과 관념어들이 오히려 번뜩이는 상상력에 균열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황정현씨의 '핑고'와 강현주씨의 '고양이' 등 두 편의 작품을 본심에 올려놓았다.
이 두 작품 모두 탁월한 상상력을 통해 존재의 모순을 해체하여 시적 언어로 편입시키는데 성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의가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 행간까지 존재적 사유와 확장된 미학을 끝까지 선보인 '핑고'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정연하지 않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핑고'는 담담한 어조로 '빙산'의 푸른 내부를 응시하면서 '무덤 속 얼음'이 '흙을 밀어 올리는' 생명의 신생과 사멸에의 '언어적 밀행'을 보여주고 있었기에 신예로서의 가능성에 초점을 맞췄다.
끝까지 입을 모았던 후보작 역시 공교롭게도 '빙하'의 '너울거리는' 생명에의 내부조직을 '강렬한 축문'으로 읽어내는 냉담한 시선과 사물을 여과하는 치열한 시적 안목을 높이 평가했지만 아쉽게도 최종심에서 거쳤다.
심사위원: 문태준 시인,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