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하나님의 승리를 기억하고 마음을 돌이켜야 합니다.삼상 6:12-18)
2026, 6/14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삼상 6:12-18절 말씀으로“하나님의 승리를 기억하고 마음을 돌이켜야 합니다.”이런 제목으로 말씀 전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함께하길 원합니다.
지금까지 부정선거 논란이 있었는데 일부는 부정선거가 아니라 음모론이며, 부정선거를 말하면 극우라고 불렀습니다. 이번에는 투표지 부족 사태가 터졌는데, 이로 인해 그동안 가려졌던 다른 부정선거 증거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부정선거가 아니라 부실 선거라 말하지만, 이상한 건 이 부실 선거가 왜 한쪽에만 유리한지 이해가 안 됩니다. 한쪽에만 유리한 게 부정일까요? 부실일까요?
소련의 스탈린이 말하길‘투표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다. 표를 세는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말했다는데, 선거가 공정하지 않으면 반드시 히틀러 같은 독재자가 나오고, 국민이 자유를 잃게 됩니다. 기도하셔야 합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는지요? 우리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3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고 마음을 돌이켜야 합니다.(16절)
둘째로, 하나님의 승리를 영원히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17-18절)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면 말씀을 따라가면서 하나님의 승리를 기억하고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왜 중요한지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고 마음을 돌이켜야 합니다.(16절)
본문 16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블레셋 다섯 방백이 이것을 보고 그날에 에그론으로 돌아갔더라." 아멘.
블레셋은 5개 도시국가로 만들어진 연합체입니다. 이 블레셋이 이스라엘과 싸움에서 법궤를 빼앗아 왔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의 신 다곤을 치시고, 블레셋 전역에 독종을 퍼붓자 그들이 고통 속에 죽어갑니다. 견디지 못한 그들이 놀라서 법궤를 수레에 실어 이스라엘 벧세메스로 돌려보냅니다.
블레셋이 법궤를 수레에 실어 이스라엘로 보낼 때 블레셋의 다섯 방백들은 두 마리의 암소가 끄는 수레를 따라 이스라엘로 들어갔는데, 이들이 따라간 것은 아마도 암소가 목적지로 잘 가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랬을 수도 있고, 도착한 후 일이 어떻게 되어지는지 그 과정을 확인하기 위해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 다섯 방백들은 언약궤가 벧세메스에 잘 도착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을 보고 에그론으로 돌아갔는데, 오늘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방백들이 예배드리는 것을 보고 그들의 고국으로 돌아갔다고 성경이 말씀하는데 언뜻 보면 자신들의‘패배’를 인정하고 깨끗이 돌아서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자신들에게 내려진 저주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부터 왔음이 확실하며, 전쟁의 최종 승자는 자신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돌아선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 둘 중 어떤 것이든 인간적으로 보면 이들이 자기들의 패배를 깨끗하게 인정할 줄 아는 멋진 모습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와는 정반대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보면서 패배를 인정하며 돌아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분노를 앞세우며 전의를 불태우면서 돌아갔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판단을 하느냐면 만일 그들이 진정으로 자신들의 패배를 인정했다면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구경만 할 것이 아니라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께 나아와 겸손하게 함께 예배함으로 하나님을 인정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럼에도 저들은 어떤 액션도 없이 그냥 예배드리는 것을 보고 갔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 관심이 없거나, 소홀히 한다면 과연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예배는 내가 하나님 나라 백성이고, 그분의 자녀 됨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외적인 표징인데 이 예배에 관심이 없거나 소홀한 것이 옳은 것이냐는 것입니다.
이 예배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라서 이 기본을 망각하고 소홀히 하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블레셋 방백들은 이방인이고 저들은 따로 자기들의 신을 섬기기 때문에 하나님께 예배하지 않고 돌아갔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온 세상과 온 인류, 또 그들의 섬기는 모든 신들을 만드신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모든 것들 위에 계신 엄위하신 분이라서 그런 분에게 예배하는 것은 그 누구라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방백들이 자기 신을 이유로 예배하지 않는 것은 설득력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하면 또 일부에서는 하나님이 최고의 신이라는 것은 신앙인들의 말이고 안 믿는 우리는 아니지 않느냐고 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는 것이 하나님은 저들이 믿든 안 믿든, 인정하든 안 하든 능력이 무한하시기 때문입니다.
손으로 눈을 가려도 해가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저들의 인정 여부와 상관없이 지혜와 능력이 무한하여 이 세상 역사와 각 개개인의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분입니다. 그래서 어떤 신을 섬겨도 이런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것이 마땅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 대적했던 자도 하나님의 권능과 위대하심을 경험한 후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한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교만하여 하나님을 대적했으나 하나님의 권능을 경험하고 나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했습니다. 또“지극히 높으신 이가 그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그의 뜻대로 하시나니…”(단4:34-37) 이렇게 고백합니다.
또 아람의 나아만 장군도 엘리사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됩니다.(왕하 5:15) 또 메데파사의 다리오가 다니엘을 모함하여 사자 굴에 집어넣었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는 것을 보면서“그는 살아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는 이시며…”이런 고백을 합니다. 또 사도바울도 하나님을 대적하다 하나님의 권능을 경험한 후 하나님을 전하는 자로 바뀌게 됩니다. 애굽의 바로왕도 그토록 하나님을 거역하며 대적하다 열 가지 재앙을 경험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줍니다.
이런 점을 볼 때 본문 속의 블레셋 다섯 방백은 결코 솔직한 사람들도 아니고, 용기 있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처음부터, 그러니까 하나님이 다곤 신상을 파괴하고, 독종을 발하여 많은 백성들이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지 않았던 자들입니다.
그리고 오늘 모성애가 가장 강한 젖먹이는 암소 두 마리에 법궤를 실은 수레를 끌고 밷세메스로 곧장 올라가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면서도 돌이키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능력이 무한하시며, 최고의 신이라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하면서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 정말 정직하지 못하고 악한 자들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하나님의 능력을 두 눈으로 확인하면서도 끝까지 돌이키지 않는 자들을 어떻게 하실까요? 그들에게 내렸던 독종이 계속될 것입니다.
블레셋은 고대 중동의 강자로서 당시 철기문화를 도입해 이스라엘보다 훨씬 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심판으로 결국 나라가 사라지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엄청난 능력과 지혜를 직접 목격하면서도 끝내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은 저들이 맞이할 것은 결국 멸망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를 깨닫게 되는데, 바로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을 목격했다면 하나님께 나아와 마음을 돌이키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마음을 강퍅케 하여 하나님을 멀리하면 결국은 패망이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과거에 아무리 하나님을 대적하고 악한 일을 했을지라도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인정하고 돌이키면 하나님은 결코 내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세리 마태가 그랬고, 여리고의 세리장 삭개오가 그랬으며, 사도바울이 또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스런 그 실존 앞에 날마다 마음을 돌이켜 나를 내려놓고 겸손하게 하나님을 인정하며 믿고 신뢰함으로 복 받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승리를 영원히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17-18절)
본문 17-18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블레셋 사람이 여호와께 속건 제물로 드린 금독종은 이러하니 아스돗을 위하여 하나요 가사를 위하여 하나요 아스글론을 위하여 하나요 가드를 위하여 하나요 에그론을 위하여 하나이며 드린바 금쥐들은 견고한 성읍에서부터 시골의 마을에까지 그리고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놓은 큰 돌에 이르기까지 다섯 방백들에게 속한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성읍들의 수 대로였더라 그 돌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오늘까지 있더라." 아멘.
블레셋이 이스라엘의 법궤를 뻬앗아 왔지만 결국 하나님의 능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이스라엘로 돌려보냈는데, 이 사건이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얼마나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수레에 실은 언약궤와 금 독종과 금 쥐가 벧세메스에 도착하자 큰 돌 위에 올려놓았는데, 이 돌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스라엘에게 잊을 수 없는 기념비적 사건이 됩니다. 첫째는 그 돌이 당시 블레셋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가 완벽했고, 돌이킬 수 없는 승리였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원래 블레셋 제사장과 술사들의 제안에 따라 속건제를 준비할 때 블레셋 다섯 성읍을 위한 금쥐 5개만을 준비하려 했지만(4절), 실제로는 시골 동네를 포함해 블레셋의‘모든 성읍’들의 수만큼 금 쥐를 준비해 하나님께 바칩니다.
이렇게 모든 성읍들이 금쥐를 바친 것은 혹시 예물을 바치지 않았다가 하나님께 더 큰 저주를 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으로 바쳤던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이미 시골 촌락까지 블레셋 전역에 퍼졌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당신 스스로 블레셋 전체에게서 항복을 받아내신 완벽한 승리를 거두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마 이후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 밭에 있는 이 돌을 볼 때마다 그 자리에 있던 5개의 금독종과 수많은 금쥐들을 상상하면서 힘과 용기를 얻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백성들은 블레셋에 비해 군사력이 턱없이 열세지만 그럼에도 우리 하나님은 완벽하게 승리하게 해주실 것이라는 상당한 자신감을 얻었을 것입니다.
실제 이로부터 약 20년 후에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쳐들어왔지만 사무엘의 지도하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스라엘이 그 무섭고도 두려운 블레셋을 물리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삼하7:10-11)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일본 수군을 막아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었고, 특히 명량해전에서는 단 12척의 배로 130척을 격파하여 대승을 거두었는데, 일본에서는 우는 아이에게 이순신이란 말만해도 아이가 울음을 그칠 정도였다니 이순신은 그들에게 두려움과 공포와 경의로움의 기념비가 되었던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 해군도 이순신 장군의 이 해전을 생각하면 그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지 않겠습니까? 이 명량해전은 인류 해전사에 유래가 없는 사건이었고, 우리에게는 아주 기념비적인 사건인 것입니다.
이렇게 기념비가 있다는 것, 기념비적인 사건을 리마인드, 다시 말해 잊지 않고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스스로 용기와 힘을 내서 의로운 일을 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법궤와 금독종, 금쥐를 놓았던 큰 돌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또한 이 큰 돌은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의 범죄와 타락으로 인해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자리라는 점에서 기념비적인 것입니다.
백성들은 이 큰 돌을 보면서 비록 하나님께서 블레셋의 포로가 되어 끌려가셨지만 블레셋를 굴복시키고 돌아오심으로 하나님은 그 누구에게도 패하지 않고 완벽하게 승리를 하셨다는 것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백성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고 불법과 불의가 판치며, 하나님의 나라를 자기들 것으로 생각하여 개판으로 만들었던 것을 리마인드, 생각하며 경각심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고맙게도, 너무나 고맙게도 스스로 돌아오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하나님을 더 잘 섬기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을 것입니다.
이런 비슷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고 나서 강바닥에서 주어온 돌 12개로 탑을 쌓고 그걸 보면서 하나님께서 넘실대던 그 요단강을 어떻게 마르게 하여 무사히 건너게 하셨는지 그 은혜와 능력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야곱도 형 에서에게 못된 짓을 하고 하란으로 도망갈 때 벧엘에서 잠을 자다 하나님을 만나고, 그 자리에 있던 돌로 기둥으로 세우고 기름을 부어‘하나님의 집’이라 명명했는데, 이것도 하나님의 임재와 약속을 기억하기 위해 표징으로, 기념비로 삼은 사건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기념비를 보면서 생각하든,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능력을 기억하든 하나님의 승리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다 보면 끝까지 초지일관 일편단심, 쭉 잘하면 좋겠는데 때로는 나태해지고, 어떤 일로 삐지거나 실족하고 시험에 들 때도 있는데, 그럴 때 내가 경험한 하나님을 생각하면 이런 것들을 이길 수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또 세상 살아갈 때 힘들고 어렵고 아프고 고달플 때가 있는데, 그럴 때도 하나님께 받았던 은혜와 사랑을 생각한다면 이것 또한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반대로 내가 잘되고 잘 풀리고 잘 나가면 교만해져 하나님과 멀어지는데 이럴 때도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겸손해지고 곁길로 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그리고 승리를 자주 기억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승리를 기억하는 것도 좋고,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또 승리케 해주신 것을 생각하는 것도 좋습니다.
저도 홀로 연고도 없이 객지로 나와 살아갈 때 참 많이 힘들고 고생스러웠는데, 그때마다 제가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 받았던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생각하면서 그 힘든 시절들을 이겨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만약 개인적으로 기념비적인 사건이 있다면 그것을, 없더라도 하나님의 능력과 그분의 승리를 기억하시고, 또 하나님께서 나를 그래도 추운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주신 것을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그것이 나의 기념비적인 사건이 될 것이고, 거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고, 거기에서 새로운 힘을 얻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가는 그날까지 하나님의 은혜 안에 믿음으로 기쁨으로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