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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곳에 주님도 임마누엘 하십니다.(행18:5-11)

작성자기임모옥사|작성시간26.06.21|조회수30 목록 댓글 0

제목: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곳에 주님도 임마누엘 하십니다.(18:5-11)

2026, 6/21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행18:5-11절 말씀으로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곳에 주님도 임마누엘 하십니다.”이런 제목으로 말씀 전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함께하길 원합니다.

 

오늘이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지입니다. 오늘이 지나면 낮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고,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장마가 이번 주 25-27일 쯤 시작된다고 예보가 나왔는데 어제부터 비가 내리고, 오늘도 날씨가 흐린 것 보니 벌써 장마가 시작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장마가 시작되면 집안이 습할 수 있는데, 습하면 기분도 찜찜하고, 음식물도 빨리 상하고, 곰팡이도 슬 수 있으니 제습기를 가동하여 집안을 상쾌하게 만드는 것도 권장해드립니다. 관리 잘하셔서 이번 장마, 건강한 장마로 보내시기 바랍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는지요? 우리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2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성도의 영원한 임마누엘이십니다.(9-10)

둘째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그 어떤 곳에도 스며듭니다.(10)

 

그러면 말씀을 따라가면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임하시며 함께하신다는 것을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성도의 영원한 임마누엘이십니다.(9-10)

 

본문 9-10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아멘.

바울이 아덴에서 고린도로 내려와 복음을 전할 때 그동안 베뢰아에 있던 실라와 디모데가 고린도로 돌아와 바울과 합류하게 됩니다. 이에 바울도 힘을 얻어 하나님 말씀에 붙잡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유대인의 회당에서 담대하게 전하는데, 이들이 받아들이고 구원에 이르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저들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바울 일행을 대적합니다.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인데요, 6절에서 저들이 복음을 거부하자 바울이 옷을 털면서 복음을 대적했던 유대인들에게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이렇게 말합니다.

바울은 열심히 복음을 전했지만 유대인들이 거부했으니 그 결과에 대한 책임과 심판은 이제 그들의 몫이라고 말하고, 바울 자신은 복음을 전할 사명을 다했기 때문에 더 이상 그들의 불신앙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은 깨끗하다는 선언을 한 것입니다.

또한이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고 말한 것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했으므로 이제부터는 이방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겠다는 뜻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 내용은 사도행전 전체에서 반복되는 것으로 복음이 유대인에게서 시작해 이방인에게 확장되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쉬운 일은 아닙니다. 바울은 죽을 각오로 치열한 영적 싸움을 싸워야 하는데, 이런 싸움의 한가운데 서 있는 사도바울에게 하나님은 9-10절 말씀을 통하여 격려와 위로를 주십니다.

주께서 밤에 환상 중에 바울에게 나타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에게 이 말씀은 그야말로 천군만마와 같았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바울이 복음을 전하여 사람들이 회심하고, 교회가 세워지는 과정에서 단 한 번도 순탄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1차전도 여행 때는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죽었다가 깨어나기도 했고, 2차 때에도 계속 유대인들과 현지인들의 공격과 비난을 받고 몸을 피하기가 다반사였습니다.

본문에서도 바울은 고린도의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다 매우 큰 곤경에 처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하여 고린도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알아야 할 것은 오늘 사도 바울처럼 아무리 주님이 시키신 일이고, 주께서 함께할지라도 고난과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 믿고 교회 다니면 고난도 어려움도 없고, 그냥 만사형통 꼬부랑통, 병도 낫고, 다 잘되고, 복만 받는 걸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고난도 있고, 어려움도 있지만 주님이 함께하시니 그걸 이길 수 있고, 그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더 성숙한 신앙인으로 자라기 때문에 우리에게 유익한 것입니다.

어쨌든 감사하게도 회당장 그리스보가 회심하자 그걸 보고 많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는데, 이 때문에 유대인들이 격동하여 바울은 더욱 심하게 박해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바로 이런 순간에 주님이 바울에게 나타나서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아무도 너를 대적할 자가 없을거라하셨으니 이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됐겠습니까?

그러면서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즉 저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해서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나에게 직접 하신 말씀도 아닌데 듣기만 해도 벅차오릅니다. 물이 날 만큼 감사한 마음도 듭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과 우리의 구주 되시는 예수님은 항상 우리를 이렇게 대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며 항상 함께하십니다. 이걸 히브리어로임마누엘이라 하는데,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약속입니다. 7:14절에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당시 유다 왕 아하스는 앗수르를 비롯한 주변국들의 침략 위협에 두려워 떨고 있을 때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 계시기 때문에 결국 유다는 보존될 것이라는 표적으로 이 임마누엘을 말씀하셨습니다.

또 마1:23절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계시다 함이라."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은 이사야를 통해 하셨던 예언이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것을 밝힌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더 이상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 속에 들어오셔서 함께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셨고, 선지자들과 함께하셨으며, 믿는 사람들 가운데 거하셨고, 지금도 성령으로 믿는 자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든든합니까? 우리는 신앙인으로 이 땅을 살아갈 때 많은 일을 만나는데, 어떤 일을 만나도 위축되거나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우리의 임마누엘이 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어떨까요? 실패하고 돈 떨어지고 힘 없어지면 슬금슬금 다들 우리 곁을 떠나갑니다. 함께하더라도 부정적인 말로 소망의 싹을 자르거나,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거리를 두다가 결국은 떠나고 맙니다. 물론 그렇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대체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곁에 계신 주님은 어떻습니까?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고, 만져지지 않아도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항상 함께하십니다. 임마누엘 하십니다. 특히 우리가 실패하고 힘들어할 때는 더더욱 그걸 다 보고 알고 계시며, 더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38:5절에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었고, 눈물을 보고 계시다가 히스기야가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 그를 떠나지 않으시고 더욱 그와 함께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저와 여러분과도 함께 하시고. 임마누엘 하십니다.

여러분은 이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며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것을 믿으시는지요?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나를 위해 영원한 천국을 예비하시고, 우리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시는 분이심을 믿으시는지요?

그렇다면 어떤 고난과 어려움을 만나도 두려워하고 불안할 필요가 없습니다. 고난이 오고, 핍박과 무시를 당해도 낙심하고 위축되고 용기를 잃을 것도 없습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 임마누엘의 주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되 영원히 함께하시며, 우리를 순간순간 도우시고 지키시는데 위축되고 불안할 게 뭐 있겠습니까?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상상하고 예측해서 불안해할 것도 없습니다.

28:15절의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아멘. 야곱에게 하셨던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그대로 성취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그 어떤 곳에도 스며듭니다.(10)

 

본문 10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아멘.

, 유대인들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을 사도 바울에게 주님은 9절에서 밤에 환상 중에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를 10절에서 2가지로 정리하시는데, 하나는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기 때문이랍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다는 것은 주님이 막아주시면 얼마든지 가능하니 그렇다 쳐도, 내 백성이 많다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이걸 알려면 고린도에 대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고린도는 군사적 상업적 요충지로, 동쪽과 서쪽 남쪽이 모두 바다에 접해 있고, 그리스 본토와 펠레폰네소스 반도를 연결하는 교량 역할을 하고 있어 무역과 각종 상업이 발달했고, 또 고기잡이 어선이 많아 경제적으로 매우 풍족한 도시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고린도는 경제적으로 번영을 누렸지만, 반면에 도덕적 타락과 매춘이 심한 도시였습니다. 더욱이 이곳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신전에는 천여 명의 여사제들이 종교의식을 빙자해 매춘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린도가 성적 도덕적으로 얼마나 타락했을지는 안 봐도 짐작이 갑니다. 오죽하면 매춘부를 뜻하는고린도 아가씨란 말이 생겨났고, 성적으로 문란한 자뜻하는고린도인이 된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겠습니까? 고린도의 상태를 알만 합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주님은 타락이 극심하여 영적, 도덕적으로 앞이 캄캄한 이 고린도를 보시면서 오히려 "내 백성이 많다."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직은 예수를 믿지 않지만 장차 복음을 듣고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울에게바울아,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 복음을 전해라. 네가 아직 보지는 못했어도 이 도시에는 내가 구원하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많단다.’바로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소망을 주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너무도 냉담해서 마치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것처럼 너무도 암담하고 부질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세상이 악해 보이고, 복음에 관심도 없는 사람만 있는 것 같고, 전도가 헛수고처럼 보일 때가 많다 보니 전도에 힘을 잃고 답답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렇게 악하고 냉담하게 반응하는 그런 무리들 가운데에서도 구원받을 사람들을 예비해 놓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죄에 찌든 환경과 타락한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얼마나 절망했을까요? 과연 저곳에 복음이 들어갈 수 있을까? 내가 뿌린 복음의 씨앗이 싹을 틔우기나 할까? 낙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그런 고린도에도 "내 백성이 많다."고 말씀하시며 그러니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우리도 고린도와 똑같이 암담하고 암울한 현실에서도 저 목석같은 사람들에게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뭘까요? 낙심하지 말고, 힘을 내서 고린도인들과 같은 저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가 구원받기로 작정 되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작정한 사람이 있다면 묵묵히 눈물로 복음의 씨앗을 뿌리면 나중에 기쁨으로 그 단을 거둘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고린도처럼 강퍅하고 음란하고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 많을지라도, 그래서 우리를 무시하고 적대적인 반응을 보일지라도 우리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임을 주님이 지금 바울을 통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내용을 통해서 깨닫는 것은 아무리 죄악이 심하고 타락이 극심한 곳일지라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스며들지 못할 곳은 이 세상에 그 어떤 곳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니느웨로 가서 죽어가는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도망가던 요나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아멘. (4: 11)

그러니까 요나가 볼 때 저 악하고 우상을 섬기는 타락한 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그런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복음을 전하도록 요나를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미치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아무리 악하고 타락한 곳이라도, 또 이 세상 우주 만물 어디에도 하나님의 은혜, 구원의 은총이 임하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여러분!!! 이 지구상에 생명체가 없는 곳은 없다고 하는데, 생명체가 살 수 없을 것 같은 극지방에도 바위를 들추면 푸른 이끼들이 자라고, 해저 깊은 곳과, 화산이 터져 물이 부글부글 끓는 곳에서도 미생물체가 발견된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햇빛이 전혀 들지 않는 수백 미터 지하 동굴에도 생명체가 살고 있다는데, 이처럼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명체가 그 어디에도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고, 영적으로 어둡고 음침한 곳에도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들이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설명이 안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아무리 어둡고 타락한 곳이어도, 또 아무리 야만적이고 원시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스며든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걸 기억하고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로 작정한 영혼들을 위해 그곳이 어디든, 누구든 복음이 전해지길 원합니다. 그런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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