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념처 위빠사나로 어떻게 사성제 팔정도 십이연기 중도를 깨달을 수 있는지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
<답변>
이 질문은 실제로 4념처 수행을 해본 경우에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알아차림. 오온의 찰나생멸. 갈애 집착의 소멸. 무상, 고 무아를 통찰하는 지혜 등등)은 앞으로 수행을 하시면서 직접 경험으로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4념처 위빠사나 가 무엇인지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4념처는 신수심법(몸, 느낌 , 마음, 법)에 대한 알아차림을 확립한다는 뜻입니다. 위빠사나(vipassana)는 오온이라는 대상을 분리해서(vi)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 통찰한다(passana)는 뜻의 빨리어 입니다.
알아차림(正念. 사띠)이란 현재를 있는 그대로 직관한다는 말입니다. 여기에는 자기의 주관이나 감정이 들어있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의 도구는 알아차림(25가지 善心所 중의 하나)입니다. 알아차림이라는 깨끗한 마음의 작용을 일으키고 유지해서 신수심법(결국은 매 순간의 몸과 마음. 실재하는 법인 오온)을 있는 그대로 직관하는 통찰지(洞察智. 혜근. 25가지 善心所 중의 하나)가 생깁니다.
그 결과로 조건 지어진 것은 항상 변한다.(無常). 그리고 변한다는 것은 괴로움이다.(苦) 여기에는 조건만 있지 나(我)라고 주장할만한 실체가 없다(無我)라는 삼법인을 보고 알게 됩니다.
또한 조건들에 의한 오온의 생성소멸의 흐름을 통찰해서, 원인과 결과를 파악하는 연기를 보는 지혜가 생깁니다. 그 결과로 고집멸도 사성제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4념처는 불교의 핵심인 사성제, 연기법, 중도(중도 수행은 8정도로서 쾌락과 고행의 양극단을 버리고 알아차림으로 균형을 갖추는 바른 길)를 체험해 가는 수행 과정입니다.
초기 불교의 8정도는 멸성제를 얻기 위해 닦아가는 길입니다. 4성제의 도성제(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해당합니다.
사념처 위빠사나와 8정도의 상관관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념처수행은 바로 8정도를 닦는 것입니다. 실제로 현재의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순간에는 오직 자신의 몸과 마음
을 알아차리느라, 나쁜 말을 하거나, 몸으로 살생이나 투도나 사음의 행위를 하거나, 남을 해쳐서 자신의 생계를 위한 일을 할 수 없으므로, 자연스럽게 正語, 正業, 正命이 지켜집니다.
그리고 알아차리려는 노력을 하는 正精進과 실제 알아차림을 하는 正念과 알아차림이 이어짐으로 오는 바른 집중인 正定 당연히 따라옵니다.
이렇게 수행자가 정정진, 정념, 정정을 이루면 이미 욕망이나 성냄이 없는 바른 사유인 정사유와 사성제를 아는 바른 견해인 정견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4념처 위빠사나는 곧 중도 수행(8정도)이며. 중도 수행으로 연기법과 사성제를 체험으로 깨닫게 된다는 표현이 맞습니다.
4념처 수행으로 무상과 고와 무아를 통찰하면 그 통찰지는 무명을 소멸합니다. 그래서 매순간 생멸하고, 괴로움이고, 실체가 없는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한 갈애와 집착이 소멸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에도 업을 생성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무상하고 괴로움이며 집착할 나(我)가 없음을 알아 모든 집착이 소멸하면 열반(涅槃, 니르바나. 닙바나. 적멸)의 정신 상태를 체험하고 성인의 흐름에 든 수다원이 된답니다.
사념처와 사성제의 상관관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4념처(몸, 느낌, 마음, 법)에 알아차림이 학립되면 오온의 생멸을 볼 수 있고, 이렇게 찰나 생멸을 보면 오온이 괴로움이고(고성제), 괴로움의 원인은 갈애의 쌓임(집성제)임을 보고 알게 됩니다.
그래서 괴로움인 오온의 생멸의 흐름을 벗어나기 위해 더욱 4념처를 위빠사나하는 수행을 해서 8정도(도성제)를 완성하면, 모든 번뇌에서 해탈하는 열반(멸성제)를 체험으로 보고 알게 됩니다.
사념처와 12연기의 상관관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념처 수행으로 알아차림의 힘이 키워지면 몸과 마음을 분리하여 서로 어떤 상호작용으로 일어나고 사라지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위빠사나 통찰지의 1단계는 몸과 마음을 분리하는 지혜(명색구분지)이며, 2단계 지혜는 조건을 파악하는 지혜, 즉 원인과 결과를 아는 지혜(연파악지)입니다.
이 위빠사나의 2단계 지혜에서 12연기를 이해할 수 있으며, 12연기(무명, 행, 식, 명색, 육입, 촉, 수, 애, 취, 유, 생, 노사)의 7번째 수(受. 느낌)에서 애(愛. 갈애)로 넘어가지 않게 느낌에 대한 알아차림(正念. 위빠사나)을 하여 취(取)와 유(有. 업의 생성)로 연기를 돌리지 않는 것이 4념처 위빠사나 수행입니다.
그래서 불교의 궁극의 목적은 열반이며 윤회를 끊어 생사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 길에 이르는 방법으로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4념처(신수심법)를 위빠사나(vipassana = 분리해서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 통찰한다)하는 8정도를 닦을 것을 그 당시의 수행자들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이 수행방법으로 수행을 한 수많은 수행자들이 열반을 체험하여 성인 4과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부처님을 직접 만나볼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직설 가르침이 다행스럽게 상좌부 불교라는 이름으로 우리들에게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념처수행을 의지해서 자등명, 법등명의 가르침을 실천하여 사성제를 직접 보고 알아 바른 견해로 깨달음, 해탈, 열반을 향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