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법념처 -13. 법념처의 사성제(1)

작성자해맑은|작성시간07.08.31|조회수683 목록 댓글 1
사성제(四聖諦) -고성제(苦聖諦)


사성제는 빨리어로 아리야사짜(Ariyasacca)라고 한다. 빨리어 아리야(Ariya)는 성자(聖者)라는 뜻이다. 사짜(Sacca)는 진리, 진실, 제(諦)라는 뜻인데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아리아 사짜는 성스러운 진리를 말한다.


1)고집멸도의 네 가지 진리는 성스럽다는 뜻으로 사성제이다.

2)고집멸도 사성제는 성자(聖者)에 의해 발견된 진리라는 뜻이다.

3)또한 수행자가 깨달음을 얻어 성자가 되어야만 사성제를 바르게 알게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성자들만이 알 수 있는 진리이며 수행자는 관념적으로 사성제를 이해한다.

 

수행자가 열반을 얻기전 까지 사성제를 아는 것은 관념적 이해로 아는 것이다. 실제로 수행을 통해서 멸성제인 열반을 체험해야  사성제를 관념적 이해가 아닌 완전한 이해를 하게 된다. 그러나 통찰지로 사성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관념적인 이해가 선행되고 이것을 바탕으로 수행을 해야 제대로 사성제에 대한 앎을 얻게 된다.


부처님께서는 대념처경에 사성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수행할 것을 말씀하셨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여 머무는가? 여기 비구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라고

 

* 첫째, 고성제(苦聖諦)


부처님은 초전법륜경에서 고성제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빅쿠들이여, 나는 둑카의 실제진리를 정확하게 이해해야한다 라는, 이전에 결코 들은 적이 없는 담마에 대한 眼目이 생겼고, 知가 생겼고, 慧가 생겼고, 明이 생겼고, 光이 생겼다.”라고


다시 말하면 매 순간 일어나는 괴로움은 알아차릴 대상이며, 수행자는 괴로움을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 이해해야 한다. 사실 그 괴로움 안에 제법의 삼특상인 무상, 고, 무아의 성품이 들어있다.

 

괴로움을 빨리어로 둑카(Dukkha)라고 한다. 이 둑카는 의미하는 뜻이 매우 다양해서 한마디로 표현을 하기에 적합한 우리말이 없다. 그냥 "둑카" 라고 하거나 괴로움, 고통, 고뇌, 불편, 불행, 고(苦) 등으로 부르지만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그래도 둑카에 대한 가장 적당한 우리말은 ‘불만족’이다.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 둑카이며, 우리가 가진 갈애는 만족하지 못하는 특성이 있어 계속 불만족(苦. 둑카)일 수밖에  없다.

 

빨리어 둑카의 두(Du)는 '하찮은'이란 뜻이며 카(Kha)는 '비어있음'이란 뜻이다. 이것의 합성어로 둑카(Dukkha)라고 한다. 사실 우리가 고통스럽다고 느끼는 것은 괴로움을 나의 것으로 집착하여 불안하고 두려워서 괴로운 것이다. 무슨 일이나 실제로 부딪쳐 보면 하찮고 비어있는 것으로 별것도 아닌데 미리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수행자가 괴로운 현재를 법으로 받아들여 알아차리면, 그것은 하찮고 비어있는 것으로, 조건에 의해 일어났다 사라지는 무상한 성품을 지녔고, 조건에 의해서 생멸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실체가 없는 무아의 성품을 보게된다. 이와 같이 수행자는 현재의 둑카를 있는 그대로 보아서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고성제의 의미는 살아있는 한 괴로움이 현실적으로 상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몸과 마음을 가지고 있고 알아차림이 없이 갈애를 일으키면 둑카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괴로움은 실재하는 법이다. 그러므로 괴로움을 없애려 하기보다 괴로움이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인식의 바탕 위에서 그것을 알아차릴 대상으로 한다면 오히려 지혜가 나서 현재의 괴로움을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우리에게는 생노병사 애별리고 원증회고 구부득고 오취온고의 8가지 괴로움이 항상 상존하고 있다. 또 다른 말로 고고성, 괴고성, 행고성으로 고의 성품을 표현한다. 그러므로 고통의 바다에서 살 수밖에 없다.


수행을 한다는 것은 이 괴로움을 법으로 수용하여 알아차린다는 것이다. “괴로움은 항상 있는 것"이라고 받아들이면 삶의 질이 달라진다. 원래 그럴 수밖에 없도록 조건지어진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하고 반응하지 않고, 괴로움을 나의 것으로 붙잡지 않고, 객관적으로 어떻게 변해 가는지 지켜볼 수 있는 것이 수행이다.

 

이와 같이 괴로움을 법으로 받아들여 괴로움을 극복할 때, 수행자는 의식이 고양되며, 괴로움이 지혜가 되며, 수행자에게 성스런 진리가 되는 것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사랑과평화 | 작성시간 10.08.18 감사합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