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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만 짓는 업은 어떤 과보가 있나요?

작성자해맑은|작성시간08.09.16|조회수462 목록 댓글 2

<질문>

 

마음으로만 짓는 업은 어떤 과보가 있나요? 

3업, 몸으로만 짓는 업, 말로만 짓는 업, 마음으로만 짓는 업,... 

사물심에서 재생연결식으로 과보만 넘어간다고 하는데..

 

마음으로만 짓는 업은 어떤 과보가 전달되나요?

 

 

<답변>

 

업은 실제로 자신의 물질과 정신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 행위입니다.

 

모든 행위에는 반드시 물질(색)과 마음의 작용(수상행. 심소)과 마음(식),

즉 오온의 물질적 현상과 정신적 현상으로 나타납니다. 

 

그 중 업의 과보를 형성하는 직접적인 원인은 색수상행식 중 행의 요소들입니다.

행이란 의도, 의지작용으로 마음의 형성력, 정신의 형성럭을 쌓는 기능이 있습니다.

 

선한 심소(행)에는 믿음과 알아차림과 관용과 자애와 균형이라는 마음의 작용이 함께하며

불선한 심소(행)에는 탐욕과 사견과 자만과 성냄,질투 인색, 후회라는 마음의 작용이 함께합니다.

 

그래서 몸으로 짓는 신업의 바탕에는 반드시 마음으로 짓는 의업이 들어있고,

말로 짓는 구업에도 그 바탕에는  마음으로 짓는 의업이 들어있습니다.

생각으로 짓는 의업은 아직 말과 행위로 표출되지 않은 마음의 의도입니다.

 

이런 3가지 업은,

그 업을 일으킨 물질과 정신은 그 찰나에 사라지고, 다시 새로운 물질과 정신이 일어나지만,

이미 일어났다 사라진  3업의 업력(에너지 파장)은 정신적 힘으로 저장되어 있다가

그에 걸맞는 과보를 불러올 준비를 하며 잠복합니다.

 

질문자께서는 의업의 과보가 어떻게 전달되는지 궁금하다고 하셨는데...

 

예를 들면 길을 가다가 상점에 걸린 예쁜 옷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스타일이면 구매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지금 바쁘다거나 돈이 없는 경우에는

당장 구매하는 행위로 넘어가지 못하고, 사고 싶은 의업만 일어났다 사라집니다.

 

하지만 집에 가서도 그 옷에 대한 생각이 자꾸 나고,

그래서 사고 싶은 의업이 자주자주 일어난다면

며칠 뒤에는 아마 그 옷을 사는 행위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감각기관인 눈에 들어온 감각대상에 대하여

좋다는 느낌, 수(受)이 일어나고,  

나와 어울릴것이라는 지각, 인식, 판단작용인 상(想)이 일어나고

그 순간 마음의 작용인 행(行)에는 그 대상을 취하려는 욕망의 의도가 일어납니다.

 

이미 자신의 마음 밭에는 그대상에 대한 탐욕의 씨앗(의업)이 심어졌고

그것이 익을 때면 그 대상을 실제로 취하는 행위가 그 열매(과보)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마음으로만 짓는 의업은 일어났다 사라지면서

그런 마음의 행위에 따른 에너지를 다음 마음에 전달하고 사라집니다.

 

그래서 매 순간 깨어있어 감각적 욕망이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면

방금 전 감각적 욕망을 일으킨 불선한  의업이 저장되지만

다시 알아차리면 알아차린 깨끗한 의업도 다시 저장됩니다. 

 

그런 다음에 그 수행자의 마음상태에 따라

둘 중 하나의 과보를 선택하게 됩니다.

 

선한 마음 상태(관용과 자애와 지혜의 마음상태)이면

선한 의업의 과보를 불러와 선한 행위를 다시 할 수 있으며,

불선한 마음 상태(들뜸이나 욕망의 마음상태)이면

저장된 의업중 불선한 과보를 불러오게하여 불선한 행위로 다시 이어집니다.

 

몸으로 짓는 업은 바위에 새긴 글자와 같고

말로 지은 업은 모래위에 새긴 글자와 같고

마음으로 지은 업은 허공에 새긴 글자와 같다고 합니다.

 

그러나 허공에 새겼다고 그 과보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구업이나 신업보다 과보를 불러오는 힘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알아차림으로 깨어있지 않으면

불선한 의도를 연이어 일으킴으로해서

반드시 불선한 구업이나 신업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업이 매우 중요한 것이며

항상 알아차림으로 바른 마음가짐(관용, 자애, 지혜)을 가지고 있을 때만이

수행자가 과거에 행한  불선한 업력(상카라)이 올라올 틈이 없어 불선과보에 휘둘리지 않게 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본 것처럼

죽을 때의 마음인 사몰심에 어떤 심소가 함께 하느냐에 따라 다음 생의 질이 결정됩니다.  

 

죽을 때 자신의 물질적 현상과 정신적 현상을 있는 그대로,

법으로 지켜보는 깨끗한 마음이면,

천상이나 인간으로 태어나는 과보로 이어질 것이며

 

이생에서 이룬 것에 대한 집착이 남아있어,

죽음을 두려워하고 화를 내는 마음이 강렬할 때는

이런 탐욕과 성냄이 많은 세계인 축생이나 아수라에 태어나는 과보를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그럼 평소에는 마음 관리를 아무렇게나하고

죽을 때만 선한 마음을 먹으면 될까요?

 

그런데 죽을 때는 평소에 먹지않던 마음이 일어날 확률보다

평소에 자신이 연습한 마음들이 일어날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죽을 때는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의 극심한 육체적 고통이 있답니다.

그래서 대부분 그 고통에 압도되어 그 고통을 대상으로

알아차림과 관용과 성냄없음의 깨끗한 마음의 행을 일으키기가 어렵답니다.

 

그러나 수행자는 평소에 생활 속에서

몸의 통증이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대상으로, 법으로

알아차리는 연습을 한 마음의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죽음에 이르는 육체적 고통에서도 그것을 법으로 보는 힘이 생겨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마음에 관용과 자애와 지혜가 함께 할 수 있으며

그 결과로 좋은 곳, 지혜가 성숙될 수 있는 곳에서

새로운 물질과 새로운 정신으로 다시 한 생을 시작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결론은 ....

평소에 화가 많고 욕심을 내는 마음의 작용을 일으켜서 그런 마음이 습관이 된 경우와  

어떤 경우에도 수용하고 성냄없는 마음의 작용을 일으켜서 깨끗한 마음이 습관이 된 경우가 있는데

죽을 때는 어떤 마음의 힘이 우세한가에 따라 다음 생의 질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평소에 먹던 의업의 힘이 재생연결식의 원인으로, 즉 과보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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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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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초발심 | 작성시간 10.06.10 고맙습니다.()
  • 작성자우람 | 작성시간 10.09.17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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