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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법념처의 사성제 - 집성제

작성자해맑은|작성시간09.10.27|조회수391 목록 댓글 1

2. 집성제(集聖諦) :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런 진리

부처님께서는 오직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항상 불만족이 따르는데, 그 원인은 무명으로 인한 갈애라고

괴로움의 원인의 성스런 진리, 집성제에서 밝히셨습니다.

붓다께서는 대념처경에서

그리고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원인의 고귀한 진리(苦集聖諦)란 무엇인가?

그것은 새롭게 다시 태어남을 일으키는 갈망으로,
쾌락과 탐욕을 동반하고,
항상 새로운 기쁨을 지금 여기서, 지금 저기서 찾으니,

이른바 감각적 갈망,
존재에 대한 갈망(有愛),
그리고 비존재에 대한 갈망(非有愛)이다.

그리고 비구들이여, 어디에서 이 갈망이 행해지고,
언제 일어남이 일어나고, 언제 자리잡음이 자리잡는가?

세상에서 매혹적인 것, 즐거운 것은 무엇이든,
거기에 갈망이, 일어날 때 일어나고, 자리잡을 때 자리잡는다.

그리고 세상에서 무엇이 매혹적인 것, 즐거운 것일까?

눈(眼)은 세상에서 매혹적인 것, 즐거운 것이다.
거기에 갈망이 일어날 때 일어나고, 자리잡을 때 자리잡는다.....

6근, 6경, 6식, 6촉(觸 ,접촉), 6수(受, 느낌), 6상(想. 지각),
6사(思, 의지), 6애(愛, 갈망), 6심(尋, 생각), 6사(伺, 고찰)
거기에 갈망이 일어날 때 일어나고, 자리잡을 때 자리잡는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원인의 고귀한 진리이다.

부처님은 또한 초전법륜경에서 집성제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빅쿠들이여, 나는 둑카를 일으키는 실제진리는 당연히 끊어야한다 라는,

이전에 결코 들은 적이 없는 담마에 대한 眼目이 생겼고,

知가 생겼고, 慧가 생겼고, 明이 생겼고, 光이 생겼다.”

모든 괴로움의 원인은 갈애(渴愛)입니다.

갈애는 마치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아다니듯이,

원하는 것을 애타게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또한 갈애가 일어나는 바탕에는 반드시 무명(유신견)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신견이 갈애를 일으키고, 갈애로 인해 업을 생성하고,
그 업의 과보로 괴로움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갈애가 없으면 업의 생성이 없고, 업의 과보도 없기 때문에 괴로움이 없습니다.

갈애가 일어나는 곳은 60군데입니다.

다시 말하면 매 순간 몸과 마음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갈애가 일어납니다.

집성제에서 나오는 갈애는 세 종류입니다.

1)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
2) 존재에 대한 갈애
3) 비존재에 대한 갈애

1)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는 6근이 6경에 촉할 때

즐겁고 재미있고 아름답고 매력적인 대상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세간에서 중요시하는 재물욕, 성욕, 음식욕, 명예욕, 수면욕은

자신의 감각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갈애입니다.

여기에는 감각적 즐거움을 소유하는 내가 있다는 유신견이 바탕에 있습니다.

이 갈애는 생사 윤회를 만드는 원인이며, 범부는 자신이 일으킨 갈애의 노예입니다.

갈애가 괴로움의 원인이라고 분명하게 아는 지혜가 없다면 그는 갈애의 명령을 거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수행자는 갈애가 일어날 때 알아차려서 갈애는 괴로움의 원인이라고,

갈애가 조건에 의해 일어났다 사라지는 dhamma라고,

갈애의 실체없음을 통찰하면, 갈애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갈애가 일어날 때마다 알아차리고, 또 알아차림이 이어지면,

고성제의 원인인 집성제를 당연히 끊게 됩니다.


2) 존재에 대한 갈애

존재에 대한 갈애는 생존에 대한 욕망입니다.

나라는 존재가 죽지 않길 바라고, 영원하기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보다 더 좋은 세상에서 영원히 살고자하는 존재에 대한 갈애입니다.

이 갈애는 몸과 마음 중에 몸은 영원하지 않지만 마음은 영원하다는 견해로,

절대적이고 영원한 내 마음(영혼)이 있다는 상견(常見)에서 나온 것입니다.

상견은 또한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지금 어떤 고행도 마다하지 않는 고행주의로 흐르며,

결코 윤회를 끊는 해탈 열반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존재에 대한 갈애는 모든 생명들의 깊은 잠재의식 속에서 삶을 집착하는 거대한 힘입니다.

그러므로 존재에 대한 갈애는 새로운 태어남을 일으키는 원동력입니다.

지혜로 오온의 무상, 고, 무아를 철견하여 오온에 대한 염오와 이욕이 일어나지 않는한

모든 생명들은 존재에 대한 갈애의 노예입니다.


3) 비존재에 대한 갈애

비존재에 대한 갈애는 죽으면 끝이기 때문에 죽음을 바라는 갈애입니다.

몸과 마음 중에 진정한 자아는 마음이 아닌 육체에 있다는 유물론적 사고방식으로,

육체의 소멸과 함께 자신의 자아도 완전히 소멸하므로,

죽은 뒤에는 어떤 인과도 없다는 견해에서 일어난 갈애입니다.

이 갈애는 업의 인과를 부정하는 단견(斷見)에서 나온 것입니다.

단견은 또한 현생을 즐기고 살다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쾌락주의로 흐르며,

보시 지계 수행이라는 바른 삶에 대한 의지가 없이, 

삶이 힘들고 괴로우면 쉽게 죽음을 선택합니다.


4) 유신견 상견 단견이라는 세 가지 삿된 견해는 모두 업의 인과를 부정하는 견해로,

감각적 욕망의 갈애, 존재에 대한 갈애, 비존재에 대한 갈애의 바탕이 됩니다.

수행자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알아차려 업의 원인과 결과를 아는 업자성 정견의 지혜를 얻습니다.

몸과 마음은 업을 원인으로 생기는 과보이며,

업이 없으면 그 과보도 없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생기지 않는 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긴 업자성 정견의 지혜는

자신의 몸과 마음 어디에도 자아가 없다는 것을 알아서 유신견을 제거하고,

업의 원인과 결과를 부정하는 상견과 단견을 제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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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토우 | 작성시간 09.10.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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