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에 마지막으로 올리는 질문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제자신이 바른 사람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올바른 불자의 길을 가기 위해서 나름대로 5계를 지키려고 노력하고, 나쁜 짓을 하더라도 안하거나 줄일려고 하고, 선한행동을 해도 집착하지 않으려하고 또한 계속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면서 불교경전에 대한 공부도 하며 또한 가끔 사찰이나 집에서 관세음보살님께 기도도 드립니다.
기도를 드리는 이유는 자력만으로는 깨달음의 반에 반도 이루기 어렵고 설령 출가해도 어려운데 세속의 제가신자라면 더욱 어렵겠죠. 그렇다고 해서 출가할 정도의 신심도 내기 어렵고 또한 제가 모셔야할 부모님이 계시고 아들은 저 하나라서 부모님 노후에는 제가 모셔야 하기 때문에 출가는 더욱 어렵죠.
그래서 자력에는 한계와 어려움이 많아서 관세음 보살님의 가피를 조금이라도 받아서 깨달음을 얻지 못하더라도 조금은 근접할 수 있는 경지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허나 이런 훌륭한 보살님들이 다 인간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허구의 인물들이고 오랜 시간과 역사가 흘러 신앙으로 변질된 것이라면 저의 그동안의 관세음 보살님에 대한 기도는 다 헛것 이라는 것이죠. 물론 기도를 하면서 제자신의 마음이 관세음보살님을 조금이라도 닮아가거나 하면서 발전 할 수도 있겠지만 전 자력만으로 어렵기 때문에 불보살님들의 타력과 가피가 필요합니다.
진실을 점점 알아 갈수록 저의 그동안 믿어왔던 가치관이 무너지면서 한편으로는 슬프고 한편으로는 불안하며 결국 아무도 어떤 불보살도 저한테 가피를 못주시기 때문에 저 혼자만의 노력으로 수행해야 하나요?
불교를 믿은지 오래 되었지만 지금 제 상태는 초발심자나 다를바 없는 아주 낮은 경지에서도 낮은 경지 입니다. 그런 제가 벌써부터 흔들립니다. 과연 관세음 보살님은 허구니 기도가 더 이상 필요 없는지, 또한 석가모니부처님의 가피력이나 위신력의 도움 따위도 허구라서 100%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정진해야하는지. 만약 관세음보살님이 실제하시고 가피를 받을 수 있다면 분명 그분의 가피력과 제자신의 수행력으로 조금은 나아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답변>
누구나 참된 법을 만나고 또한 그 길을 받아들여 닦아가는 것은 여러 과정을 거쳐서 한 발짝씩 단계적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1) 처음 불교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 절에 가자. 절에 가면 부처님이 복을 주신다.”하고 친구에게 좋은 법을 전하고자 이런 말을 하여 함께 절에 갑니다.
2) 일단 절에 다니면서 좋은 법문을 듣고, 좋은 도반들을 사귀면서, 세상을 바르게 보는 눈이 뜨이고, 더불어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알고 싶고 , 그래서 불교를 바르게 배우고 싶은 생각이 납니다.
3) 그래서 여러 불교 서적들을 읽고 , 천수경, 반야심경, 금강경 등등을 접하고, 읽고 , 또 그 뜻을 나름대로 이해하고 사유합니다. 그리고 바라밀 행도하고 예불도 드리고 절도하면서 점차 불자가 되어갑니다.
4) 이제는 절에서 하는 여러 가지 방법대로 자신의 세속의 행복을 얻기 위해, 또는 가족이나 이웃을 위해 부처님의 가피를 믿고 바라면서 100일기도, 염불수행, 108배 절 수행, 사경, 기도 , 금강경 독송 등등으로 자신에 맞는 기도 생활을 시작합니다.
여기에 님께서 하신 관세음보살 염불수행이 들어갑니다. 이런 기도는 해보신 분이면 다 느끼셨을 테지만, 일단 법당에서 기도를 하면 마음의 고요함이나 평온함 등을 느낍니다. 그리고 누구를 원망하는 마음이나, 무엇을 강하게 바라는 마음들을 좀 놓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이라도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깁니다.
이 과정이 불보살님의 가피에 대한 믿음으로 시작하는 사마타 수행(선정수행, 止(삼매)수행)입니다. 이러한 사마타 수행은 오직 현재 염불하고 있는 불보살에 집중함으로서 마음에 탐진치의 번뇌가 없는 , 그래서 마음이 고요한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마타 수행의 고요함이 마음을 들뜨게 하거나 탐욕을 일으키지 않게 해줍니다. 그래서 일상에서 일을 할 때 욕심에 휘둘리지 않고 바르게 처리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그리고 기도 중이므로 될 수 있는 대로 스스로 화를 덜 내고 ,욕심도 덜 부리고, 남에게 자애와 연민의 마음으로 보살펴주는 보시와 계율을 지키는 지계의 행위가 자연스럽게 뒤따릅니다.
이런 보시와 지계와 수행을 한 선업의 결과로 자신이 원하는 좋은 일들이 성취됩니다. 즉 기도가 성취됩니다. 이것은 사마타(선정, 삼매) 수행의 효과이며, 이익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가피, 관세음보살의 가피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사실은 원인에 따른 결과로 나타난 자연스런 과보입니다.
이런 사마타 수행은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원인을 심는 행위가 되고, 또한 보통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조건이 됩니다. 여기에는 내가 복을 지어 내가 복을 받는다는 연기의 법칙이 적용되고, 실제로 좋은 결과를 만나면 부처님의 가피라고 좋아합니다.
그리고는 지금 내가 행복하면 되지 더 이상 무엇을 바랄 것인가 하고 여기서 만족합니다. 어찌 보면 우리니라 불교는 여기까지 가르치고 불자들도 여기서 더 나아가려고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참다운 불자는 여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야 진실한 불자가 되는 것이며, 그래야 부처님이 말씀하신 깨달음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생에서 선업의 결과로 행복하게 사는 것은 계속되는 생노병사의 윤회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나'라는 유신견(무명)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삼법인과 연기법을 교리체계로 해서, 반드시 8정도 수행으로 고집멸도 사성제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반을 얻어 윤회에서 벗어날 것을 가르침의 핵심으로 합니다.
이렇게 윤회를 벗어나는 것 즉 "괴로움의 완전한 소멸, 苦의 원인인 재탄생이 없는 것"이 불교의 완성입니다. 여기에 가장 근간이 되는 가르침이 제법무아입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 이 몸과 마음에 '나'라는 실체가 없다는 무아를 통찰해서, 사마타(선정) 수행으로 편안하고 행복해진 ‘나’조차도 실체가 없는 그 순간의 ‘나’일 뿐이라고 보는 지혜가 있어야합니다.
그래서 내가 행한 선업의 결과로 나타난 행복한 ‘나’조차도 놓아버릴 수 있어야 어디에도 걸림 없는 지혜를 갖춘 불자가 됩니다.
5) 그래서 깨달음을 원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사마타 수행을 한 뒤에 다음 단계로 지혜수행인 위빠사나 수행을 하게 됩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현재의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서 몸과 마음이 매순간 변하는 무상한 것이고, 그래서 행복한 것도 금방 사라지도록 조건지어진 괴로운 것이고, 이것을 어떤 ‘나’라는 실체가 있어서 이 괴로움을 해결할 수 없다는, 즉 '나'가 없는, 원인에 따른 결과로 생멸할 뿐이라는 무아(無我)를 통찰하게 합니다.
그래서 그 어떤 것도 집착하거나 원하지 않는 마음으로 탐욕없음과 성냄없음과 통찰지혜를 일으킴으로서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 자유와 해탈의 삶을 살게 합니다.
현재의 몸과 마음을 알아차릴 대상으로 하는 위빠사나 수행만이 오온의 무상과 고와 무아를 통찰하게 하고, 그 결과로 모든 집착이 소멸되어 열반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아쉽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있는 수행법들은 모두 사마타 수행의 대상들입니다.
염불, 절, 간경, 화두 수행까지 모두 수행의 대상이 관념입니다. 실재(법. 빠라마타)가 아닙니다. 이런 관념적 요소를 대상으로 수행을 하면 마음의 고요함(선정)은 얻지만,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 무아의 통찰지혜를 얻을 수 없습니다.
관념은 고유한 특성이 없는 것, 즉 오온처럼 실재하는 법이 아니고, 한번 관념화되면 그대로 박제되어 변하지 않는 속제(빤냐띠)라서, 관념을 대상으로 하는 사마타 수행에서는 법의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를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20년 전 처음 우리나라에 위빠사나 수행이 소개되면서 실재하는 법인 자신의 몸과 마음(오온)이 알아차릴 수행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몸과 마음(색수상행식)은 그 자체의 고유한 특성을 가진 법으로서 무상, 고, 무아를 볼 수 있는 지혜 수행의 대상입니다.
즉 현재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서, 직접 오온의 무상 , 고, 무아를 볼 수 있고, 그래서 몸과 마음에 대한 집착을 끊을 수 있고, 사성제 중 마지막 도성제인 8정도를 닦을 수 있는 길입니다.
질문자께서는 지금까지 사마타 수행을 해오셨고, 그래서 불자로서 긍지와 평온을 맛보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세간에서 행복입니다. 즉 무상한 행복이라는 말입니다. 이 행복은 변하는 것이고 나의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염불 수행으로 얻은 행복도 어느 정도 맛보면 더 높은 완전한 행복을, 즉 열반을, 깨달음을 향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의 힘을 의지했지만, 이제는 그런 불가사의한 힘에 대한 의존을 과감히 끊고,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스스로 무상, 고, 무아를 통찰해야 열반의 행복, 변하지 않는 행복을 맛볼 수 있는 지혜를 키우게 됩니다.
이렇게 수행자가 열반을, 진정한 깨달음을, 변하지 않는 행복을 원할 때쯤,
부처님은 자등명, 법등명만을 말씀하셨다.
부처님은 한 중생도 제도한바가 없다.(금강경).
부처님은 우리가 바라는 위신력을 행사하시는 분이 아니다.
각자의 업의 과보로 윤회를 할 뿐이다.
부처님은 실제로 이 세간에 계시지 않는다.
다만 괴로움을 소멸하는 바른 길을 가르쳐주신 분이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라는 엄청난 청천벽력 같은 말을 초기 불교 경전을 통하여 듣게 됩니다.
그러므로 님의 지금의 혼란은 너무 당연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믿었던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에 대한 믿음(의지하는 마음)을 버려야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지혜 수행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혜 수행을 받아들일 만큼 보시와 지계의 선업이 쌓이고, 사마타 수행으로 마음에 고요함이 어느 정도 바탕에 깔려있는 조건들을 갖추어야 지혜 수행을 만나고 또 받아들이게 됩니다.
지혜수행에 대한 설명을 듣고 그럴듯하다고 다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자신에게 어느 정도 불교의 핵심인 무상, 고, 무아, 연기의 가르침이 마음에 수긍이 되어야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바꾸려 하지 말고. 조금 더 염불 수행을 하면서, 간혹 초기 경전들을 읽고, 부처님이 정말 그 시대의 수행자들에게 가르치신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보세요.
그리고 점차 지혜 수행이 바른 길이라는 확신이 생기면, 그때 관세음 보살님의 가피에 대한 향수를 끊고, 깨달음을 향해 스스로 자신을 알아차리는 자등명, 법등명, 자귀의, 법귀의의 수행을 하세요.
그래서 불교의 초기 빠알리경전(대념처경)에 나오는 부처님의 직설 가르침의 수행법인 4념처 위빠사나 수행으로 8정도(중도)를 닦아 가시기를 바랍니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큰고을 작성시간 07.02.22 그러므로 지금 당장 바꾸려 하지 말고. 조금 더 염불 수행을 하면서, 간혹 초기 경전들을 읽고, 부처님이 정말 그 시대의 수행자들에게 가르치신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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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von pizmus 작성시간 08.02.02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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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퓨마 작성시간 09.10.17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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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초발심 작성시간 10.04.04 자등명, 법등명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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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솔향이 작성시간 15.03.23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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