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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부처인가요?

작성자해맑은|작성시간07.03.22|조회수694 목록 댓글 2
 

<질문>


모든 것이 부처라고 배웠는데요? 두두물물이 부처 아닌 것이 없다. 모두 불성이 있다.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다......

 

이런 말은 부처가 될 가능성이 있다란 말인가요? 지금 부처란 말인가요? 지금 부처라면 부처들이 거짓말하고 살생하고 음행하고 그런 것이 아닐까요?


모든 것이 부처인가요?



<답변>


제가 이해하기로는 부처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지 지금 부처라는 말은 아닙니다. 만일 내가 부처라고 알고 있다면 현실을 바르게 보는 눈이 없는 과대망상증입니다. 단지 이런 말이 나오는 배경은 괴로움에 찌든 우리들에게 주는 희망의 메시지로 만들어낸 말일 뿐입니다.


물질과 정신을 가진 존재는 마음의 기능(심소)에 모든 괴로움을 종식할 수 있는 씨앗(혜근. 慧根)이 들어있다는 말에서 유추해낸 희망사항입니다. 대단히 희망적인 말 같지만, 전혀 좋아할 말도 아닙니다. 씨앗이 있다고 반드시 열매가 열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음의 기능(심소 52가지)에는 혜근만 있는 것이 아니라, 탐욕, 사견, 자만, 성냄, 후회, 인색, 질투, 해태, 혼침, 어리석음, 비양심적임, 수치심없음, 들뜸의 기능들도 함께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14가지 불선심소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희망적인 심소로 믿음, 알아차림, 관용, 자애, 양심, 수치심, 중립 혜근 등등 25가지 선심소도 함께 들어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매순간 만나는 대상과 현재의 마음 상태에 따라 선심소가 뜨기도 하고 불선심소가 뜨기도 합니다. 그래서 즉시 심소의 질에 따라 선업을 짓거나 불선업을 짓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이 새로운 씨앗으로 업력을 형성하고 그 심소는 사라집니다.


미래를 행복하게 하려면 불선업의 씨앗은 줄이고, 선업의 씨앗을 늘려야 합니다. 그래야 그 열매가 고통보다는 행복의 열매가 많을 것이니까요.


그러나 모든 번뇌가 소멸한 아라한이 되거나 일체를 다 아는 각자(覺者. 부처)가 되려면 불선업의 씨앗은 물론 선업의 씨앗조차도 다 말려버려야 합니다.


선업을 행하고 내가 선업을 했다는 마음이 있으면 선업의 씨앗이 살아있는 것이고, 그래서 선한 곳에 태어나야합니다. 그러나 선업을 행하고도 너무 당연한 일을 한 것일뿐, 내가 했다는 생각조차 없는 선업을 행하면, 선업의 씨앗이 말라버려서 다시 태어날 원인을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고 행복한 선한 곳이라도  다시 태어나면 또 죽어야만 하는 그런 일을 아예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업의 과보조차도 오지 않는 행입니다.


이런 원리에 의해서 금강경에 “응무소주이생기심”이 나온다고 이해됩니다. 조금의 아상(유신견)이라도 남으면 번뇌가 다 소멸한 열반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법이라도 집착하지 말라는 말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이 일체를 다 아는 부처가 되거나,  모든 번뇌를 다 소멸한 아라한이 되는 것은, 선심소 중의 혜근의 작용으로 대상을 있는 그대로 통찰해서 아주 극 미세한, 즉 나노입자 만큼의 불선업이나 선업에 대한 집착이 없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52가지 심소 중에서 선심소를 활성화하고 혜근을 자꾸 일으켜 그 업력을 키우는, 끊임없는 노력 없이는 절대 번뇌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부처는 물론이고 윤회를 끊어버리는 아라한도 되기 어려운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생을 어리석음으로부터 벗어나 불선업을 제거하는 노력을 해야 하고, 또 지혜의 뿌리를 키우는 일에 매진해야 할지 모릅니다. 이것이 현실을 바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후기 불교에서 우리는 모두 불성이 있고, 본래부터 깨달았다는 생각은 자기도취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깨달음의 길이 어렵다고 포기하는 것은 또한 어리석음이며, 번뇌로부터 벗어날 희망이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그 열매가 언제 올지는 모르지만 매일매일, 매 순간마다 깨어있어서 불선업을 짓지 않고, 선업을 지으면서, 그 선업에도 집착하지 않는  수행을 꾸준히 하면 또 못할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으로 태어났을 때 보시하고, 계율을 지키고 , 선정수행(사마타) 이나  통찰지혜수행(위빠사나)을 해서  깨달음의 씨앗(혜근)이 발아하고 자랄 수 있도록 노력하면 우리에게 불성이 있다는 것이 증명됩니다.


이것은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열반(번뇌의 소멸)에 들어가는 길입니다. 이런 가르침의 내용을 믿고 실제로 가르침대로 행을 하는 것이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지, 우리는 본래 부처다 라는 것을 믿고만 있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수행이 없는 믿음으로 부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내용은 상좌부 빨리어 논장인 아비담마에 나온 내용을 근거로 드리는 말입니다.


불교 역사상 후대의 불교교리들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에 근거를 두고 발전한 것이지만, 시대 상황에 따라 심오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 시대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널리 편다는 명분아래, 초기 불교에서는 언급하지 않는 새로운 교리들과 부처님들이 생기기도 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시대상황에 따라  새로 생긴 보살님들과  부처님들을 마치 석가모니 부처님이 직접 말씀하신 것처럼 경전에 쓰인데서 부터  지금의 혼란이 야기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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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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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초발심 | 작성시간 10.04.07 나무마하반야바라밀()
  • 작성자솔향이 | 작성시간 15.03.25 사두 ~사두 ~사두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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