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연기 도표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무명과 갈애를 보라. 우리는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가? 여섯 감각기관이 여섯 대상을 만나면 대상을 인식하고, 좋아하고 싫어하고, 그것이 어떤 것이라고 판단분별하고, 그래서 나에게 이익이 있으면 좋아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이익이 없을 것 같으면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켜, 즉시 신구의(身口意)로 업을 지으면서 매 순간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다. 오온의 상호 연기적 작용으로, 한 순간의 물질적 현상과 정신적 현상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오온의 생멸의 연속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나의 삶”이라고 처음부터 잘못 알고 있다. 시작부터 무명이다. 여기에서 분명한 것은 우리들은 몸과 마음을 나, 나의 것, 나의 자아라고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온 근본 무명이다.
이 무명은 우리의 눈을 가려 좋은 것을 안 좋은 것으로 알게하며, 오히려 나쁜 것을 즐겁고 좋은 것으로 알게 하며, 끊임없이 나의 만족감을 위한 갈애를 일으키도록 부추기고 있다. 다시 말하면 바른 견해(지혜)가 없기 때문에 갈애를 일으킨다. 눈을 뜨지 못해 잘 몰라서 그런 것이다. 이렇게 무명과 5관으로 추구하는 갈애가 한 순간을 만들고, 다시 그 과보로 다음 순간이 다시 일어난다. 그러니까 12연기를 돌리는 윤회의 핵심은 무명(어리석음. 컴컴함. 잘못알고 있음. 모르는 것)과 갈애이다. 12연기의 시작은 무명인데 이 무명은 과거 언제인지도 모르는 그때부터 이 순간까지 나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 이 무명을 우두머리로 하여 갈애가 작동되고 그래서 행한 업이 다시 어리석음을 키우고 다시 갈애를 불러들인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도록 부처님께서는 12연기 법을 설하신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윤회의 주범은 무명과 갈애이며, 그 심부름꾼은 업이다. 만일 무명과 갈애가 지혜와 집착 없음으로 바뀌면, 이어서 심부름꾼인 업이 소멸되고, 그래서 윤회를 벗어나는 열반에 들어가게 된다.
다시 말하면 무명과 갈애의 소멸을 위해서 지혜를 일으키는 수행을 하여 지혜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제법(오온)의 무상, 고, 무아를 통찰하고, 쓸데없는 집착을 놓게 된다. 이렇게 지혜를 일으키는 과정을 몸소 닦아나가고, 집착 없음을 직접 체험할 때 부처님의 가르침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런 실천이 따르지 않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언어나 관념일뿐, 화려하고 고상한 장식품일 뿐, 우리들에게 실재하는 진리가 되지 못하고, 번뇌를 소멸하는데 힘이 되지 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