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번 칸 - 무명과 행
12연기 도표의 1번 칸은 시간상으로는 과거이며, 과거에 지어 놓은, 그래서 현재를 만드는 원인이다. 또한 4성제의 측면에서 보면 괴로움의 원인인 집성제(集聖諦)에 해당하는 칸이다.
1번 칸의 구성요소는 무명과 행(업의 형성)이다. 그러나 그 바탕에는 갈애(愛)와 집착(取)과 업의 생성(有)이 깔려있다. 이것은 전생의 일도 되고, 또 이생에서는 이 순간 이전의 일로 과거에 뿌려놓은 씨앗들이다. 과거의 일이므로 현재에는 실재(實在)하지 않지만, 그 과거가 원인이 되어 현재가 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미 엎어진 물을 주워 담을 수는 없지만, 현재를 수용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는 곳이 1번 칸이다. 그래서 1번 칸은 과거이며, 현재를 있게 한 원인이며, 괴로움의 원인인 집성제이다.
그럼 무명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자신이 어리석다는 말을 듣거나 스스로 어리석음을 인정해야 할 일 있으면 대단히 자존심이 상한다. 그리고 “내가 뭐 그리 어리석다는 말인가?”하고 화를 낸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 세상에는 부처님과 아라한을 빼고는 무명이 없는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무명이 몸과 마음을 만드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무명은 어리석음으로 컴컴한 것, 밝지 못한 것, 업의 인과를 모르는 것, 삼법인을 모르는 것, 고집멸도 4성제를 모르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 모르는 것밖에 없는 것이 우리들의 본래 모습이다.
우리가 업의 인과를 철저히 알았다면 왜 감각적 욕망에 휘둘려 탐심과 진심을 낼 것인가?
우리가 무상, 고 무아를 철저히 알았다면 왜 매사에 내 것이라고, 나라고, 나의 자아라고 집착을 한 것일까?
우리가 오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苦라는 고성제(苦聖諦)를 명확하게 알았다면 왜 지금보다 좀더 나은 다음 생을 은근히 기대하겠는가?
우리가 모든 괴로움의 원인이 갈애라는 집성제(集聖諦)를 알았다면 왜 매순간 갈애를일으키고 집착을 일으키는 것일까?
또한 괴로움을 완전히 소멸하는 멸성제가 있다는 것을 반신반의 하고 있지는 않은가? 열반은 부처님이나 실현하는 남의 나라 이야기쯤으로 미리 멀찍이 두고 있지는 않은가?
또한 괴로움을 소멸하는 길인 8정도를 이해하면서도 왜 열심히 수행을 하지 않는가?
그 이유는 단 하나! 무명 때문이다.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직 지혜가 완성되지 못하고, 아직 어리석기 때문에, 무명이 그렇게 하도록 조정하기 때문에, 몰라서 그런 것이다. 아직 밝은 안목을 얻지 못하고 컴컴하기 때문에 길을 잃은 것이다. 그러나 지금부터 컴컴한 곳에 불을 밝히는 일을 시작하면 언젠가는 훤하게 밝힐 수 있을 것이다.
그럼 행은 무엇인가?
이와 같이 아직 이런 무명이 남아있는 한 우리는 갈애를 일으켜 다시 오온을 만드는 업을 형성할 수밖에 없다. 업의 형성이라는 행은 과거에 이미 지어서 쌓아놓은 자신만의 업력이다. 1번 칸의 무명과 행은 이 순간 직전부터 수없는 과거 생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이미 지어놓은 업이며, 형성된 그 업이 지금의 내 모습(오온)을 만드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당장 이 업을 캐내거나 바꿔치기 할 수는 없다. 단지 지금 과거 업의 결과로 온 이 순간의 괴로움이나 행복을 나의 책임이라고 인정하는 일만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선업의 행(업의 생성. 3번 칸의 業有)이 된다.
만일 이때 지금의 괴로움에 싫어하고 화내거나, 또는 지금의 행복감에 너무 좋아하고 즐기려는 것은 지금 가장 잘못하는 행으로, 불선업의 씨앗을 다시 심고 있는 것이다.
그냥 있는 그대로 '지금 괴로운 느낌이 있구나!" 또는 "지금 행복한 느낌이 있구나!"하고 현재를 알아차려주는 것이 가장 선한 업의 씨앗을 심고 있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나에게 “아이쿠!, 이 어리석은 놈”하면 “그래 나에게 어리석음이 있었지” 하고 자신을 알아차리면, 그 순간 알아차린 만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고, 그 자리에서 최고의 선업의 씨앗을 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알아차림이 밝은 안목을 얻는 행이며, 바른 길을 찾아가는 것이며, 지혜가 성숙되어가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