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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빠사나 수행 문답

Re: 정신과 물질이나 몸과 마음은 같은 내용이지만 쓰임이 다릅니다

작성자묘원|작성시간21.12.13|조회수423 목록 댓글 1

묻고 답하기 – 정신과 물질이나 몸과 마음은 같은 내용이지만 쓰임이 다릅니다

 

< 질문 >

 

안녕하세요?

수행에 대한 질문은 아니고 마음과 정신에 대한 이론적인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적절한 질문 게시판을 못 찾아서 위빠사나 수행문답 게시판에 올립니다.

우선 질문에 대한 답변 범위가 방대할 수도 있어서 질문 드리기 조심스럽습니다. 그냥 간단하게라도 답변 부탁드리겠습니다.

1. 몸과 마음 vs. 물질과 정신의 차이가 있는지?

2. 마음과 정신은 다른지?

3. 정신이 물질을 기반으로 하는지?

미리 답변 감사드립니다. _()_

 

 

< 답변 >

 

몸과 마음이나 정신과 물질은 같은 말입니다. 하지만 경전에서는 다르게 사용합니다. 일반적으로 말할 때는 정신과 물질로 사용합니다. 하지만 사념처 수행에서는 정신과 물질이라고 하지 않고 몸과 마음이라고 합니다. 뜻은 똑같지만 쓰임의 차이로 다르게 사용합니다. 정신과 물질과 몸과 마음에 관한 차이는 먼저 빨리어 단어 뜻에서 찾아보겠습니다.

 

먼저 정신과 물질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정신을 빨리어로 나마(nāma)라고 하고 물질을 루빠(rūpa)라고 합니다. 나마(nāma)의 뜻은 다양합니다. 먼저 나마(nāma)는 이름, 명칭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또 느낌, 지각, 사유, 숙고, 의식 등등 비물적 요소를 통 털어서 상징적으로 말합니다. 이것을 정신적 요소, 내적 요소라고 합니다. 여기서 비물질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정신은 물질이라고 할 때 항상 함께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루빠(rūpa)의 뜻도 매우 다양합니다. 루빠(rūpa)는 색(色), 형상, 모습, 이미지, 아름다움, 시각의 대상, 상(象,像,相)이라는 다양한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물질, 물질적인 성분이라는 뜻이 있으며 몸, 육체라고 하는 뜻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때의 몸, 육체를 사념처 수행을 할 때는 가야(kāya)라고 하므로 물질과 몸은 같은 의미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사념처 수행에서 몸과 마음이라고 할 때 몸은 가야(kāya)라고 하고 마음은 찌따(citta)라고 합니다. 몸이라고 할 때의 가야(kāya)는 몸, 신체, 촉각이라는 뜻이 있으며 다음으로 모임, 집합, 무더기라는 뜻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사념처 수행에서 물질을 몸이라고 하는 이유는 알아차릴 대상이 자신의 몸이라는 것과 함께 몸은 무더기의 집합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 가야(kāya)인 몸을 사용합니다.

 

이것은 저의 견해이지만 가령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물질에 대한 알아차림으로 표현할 때는 개념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념처 위빠사나 수행을 할 때는 대상의 범위를 물질이라는 포괄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좁혀서 몸, 또는 신체라는 직설법을 사용하였을 수 있다고 봅니다. 부처님께서는 자신의 몸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찾아내셨습니다. 몸에서 갈애가 일어나 괴로움뿐인 윤회를 하므로 갈애가 일어난 장소에서 갈애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서 괴로움이 소멸하는 길로 갑니다. 그런 의미에서 몸이라는 감각장소는 괴로움을 일으키기도 하고 괴로움의 소멸로 가도록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세계를 연 몸의 중요성이 강조됩니다. 그러므로 깨달음으로 가기 위해서는 포괄적 의미의 물질보다 몸이라는 한정된 장소가 부각되었습니다.

 

다음으로 마음이라고 할 때의 찌따(citta)는 여러 가지의, 잡색의, 아름다운, 회화(繪畵), 그림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마음, 생각이라는 뜻과 한문으로 심(心)이라는 용어로도 사용합니다. 여기서 여러 가지라는 것은 마음의 종류가 89가지 내지는 121가지라는 의미가 포함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림이라는 것은 마음이 온갖 상상을 하면서 끊임없이 여러 가지의 색깔과 그림을 그린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마음이라고 할 때는 마음과 마음의 작용을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비담마에서는 마음의 기능을 찌따(citta), 마노(mano), 위냐나(viññāṇa) 세 가지로 나눕니다. 모두 같은 말이지만 복잡한 마음을 다르게 표현할 필요가 있어서 나눈 것입니다. 찌따(citta)는 마음에 대한 것에서 보다 정서적인 측면을 반영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마음의 복잡한 종류와 역할에 대한 것과 마음과 마음의 작용을 말할 때 마음이라고 합니다. 마노(mano)는 보다 이성적인 것을 반영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여섯 가지 감각기관 중의 하나인 마음의 감각기관을 말할 때 의(意)가 마노(mano)입니다. 위냐나(viññāṇa)는 인식하는 측면을 강조하는 것으로 의식을 말합니다. 이때의 의식은 오온의 식온으로 대상을 아는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같지만 다르게 사용하는 것은 이런 역할의 차이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정신이 물질을 기반으로 하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오온인 색온, 수온, 상온, 행온, 식온은 각각의 무더기가 다시 하나의 무더기로 결합되어서 어느 것이 먼저라고 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12연기에서 원인과 결과를 말할 때는 과거의 행을 원인으로 현재의 식, 또는 재생연결식이 일어납니다. 다시 식을 원인으로 색과 수, 상, 행이 일어나는 일련의 과정에서는 식이 앞서서 이끕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오온이라는 결과가 생깁니다. 이때는 분명히 마음이 앞에서 이끕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친 뒤에는 오온은 항상 함께 일어나서 함께 소멸합니다. 그러므로 어느 것이 먼저랄 것이 없어집니다.

 

아비담마에서는 마음은 물질인 심장을 토대로 일어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때의 토대는 기반으로 일어난다는 뜻이지 몸의 심장에 마음이 머무는 장소가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비담마를 해석할 때 이런 오류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토대로 일어난다는 것은 원인과 결과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지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마음과 몸의 역할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마음은 앉은뱅이고 몸은 장님이라는 표현입니다. 마음은 저 스스로 움직일 수가 없어서 몸을 통해 움직이고 몸은 저 스스로 보는 기능이 없어서 마음을 통해서 보는 기능을 합니다. 마음은 몸에 의지하고 몸은 마음에 의지해서 일어나고 사라진다는 것이 오온의 개념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체로 조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비담마는 교학자에게는 필요한 내용이지만 수행에게는 장애가 될 수 있는 요인도 됩니다.

 

이상은 사전적 견해와 약간의 아비담마적 요소를 밝힌 내용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더 자세하고 많은 내용이 있을 것입니다. 저의 짧은 식견으로 존재에 대한 핵심적인 문제를 다루어서 많이 부족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묘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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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재규 | 작성시간 21.12.14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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