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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고 답하기 - 수행이 답보상태입니다.
< 질문 >
위빠사나 수행을 시작한지 몇 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수행이 답보상태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차츰 흥미를 잃어갑니다. 마음은 수행을 해야지 하면서도 알아차리는 시간이 적어지고, 좌선을 하는 시간도 적어집니다. 운동을 하면서 걷기도 하는데 망상하는 시간이 많고 알아차리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만족할만한 수행을 할 수 있는지 법사님의 가르침을 부탁합니다.
< 답변 >
믿음과 노력이 부족한 탓입니다. 문제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느슨해졌습니다. 그러므로 밖에서 답을 구할 것이 아니고 스스로의 마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런 경우에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다시 한번 살펴서 해야 할 일들을 추슬러야 합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지혜수행이라서 가시적인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성장하는 어린이의 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자라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키가 자란 것을 알 수 있듯이 수행도 어느 날 달라진 자신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니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노력이 필요하고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보통의 수행자들은 노력도 하지 않고 결과를 기대합니다. 결과는 노력한 만큼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부족하면 노력을 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항상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훌륭한 삶인지를 자각해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무명의 상태에서 살기 때문에 이런 동기부여를 받기 위해서 법문을 듣고 경전을 읽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신실한 믿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빠지지 말고 선원에 나와서 수행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공부를 하기 위해서 노력이 필요하고, 돈을 벌거나 지위를 얻기 위해서 노력을 합니다. 또한 건강을 얻기 위해서 열심히 운동도 합니다. 사랑을 얻기 위해 없는 힘을 내서 정성을 다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수행을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반문해 봐야 합니다. 사실 수행은 이런 노력보다 더 한층 힘을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수행의 결과가 노력 없이 그냥 온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결과가 아닙니다. 노력해야만 온다는 것은 그만큼 무지의 층이 두껍기 때문입니다.
불모의 척박한 땅에 나무를 심었을 때는 거름을 주고 물을 주고 가꾸어야 뿌리를 내릴 수 있습니다. 만약 이런 노력 없이 나무를 심자마자 열매를 기다린다면 이는 어리석음입니다. 수행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이 바로 탐욕이며 수행이 안 되면 화를 내는 이런 일련의 것들이 모두 번뇌입니다. 혼자의 힘으로 안 되면 스승의 힘을 빌려서라도 가야하며, 도우의 힘을 빌려서라도 전진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가장 진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노력을 해도 발전이 없을 수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바라는 마음으로 수행을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성취를 바라면 몸과 마음이 긴장하게 되어 들뜨게 됩니다. 또한 바라기 때문에 불편한 대상이 나타나면 없애려 합니다. 그러나 없애려하면 더 나타나는 것이 몸과 마음의 현상입니다. 그래서 수행이 잘 안됩니다.
또한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수행을 하면 발전이 없습니다. 내가 수행을 한다거나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면 수행이 향상되기가 어렵습니다. 유신견, 상견, 단견, 무인견 등의 사된 견해를 가지고 있는 한 수행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12연기를 공부하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연기법은 바른 견해를 갖게 하여 수행의 발전을 가속화 시킵니다. 우리는 붓다께서 사념처 위빠사나와 12연기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와같은 사실 때문에 위빠사나 수행을 팔정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른 수행을 위해서 팔정도의 여러 가지 조건을 성숙시키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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