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답하기 - 대상과 알아차림과 아는 마음
<질문1>
생각은 '대상'이고,
생각을 주시함(깨어있음)은 '알아차림'이며,
알아차린 것을 마음이 받아들여서 알게 됨은 '아는 마음'이라 하셨습니다.
예전에 우 떼자니아 사야도께서 <대상 - 아는 마음 - 보는 마음>을 말씀하시며
아는 마음은 단순무식해서 아는 것밖에 하지 못한다고 하셨던 인터뷰 내용이 기억납니다.
그래서 저는 '알아차림(sati)'을 '아는 마음'과 연결시켜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약간 헷갈립니다. 부가적인 설명을 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질문2>
빠라마타와 빤냐티는 서로 공통부분(교집합)이 있는가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아는 것과
생각한 것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의 차이는 어떻게 되나요?
< 답변 1 >
알아차림은 오온의 행(行)에 속합니다. 수, 상, 행은 마음의 작용이고 식은 아는 마음입니다. 알아차림은 50가지 행 중에서 선한 행에 속합니다. 행은 마음의 형성력, 또는 마음의 의도라고 합니다. 앞선 마음의 의도가 있어서 행위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도 행이고 지혜도 행에 속합니다.
이러한 행과 이것을 아는 식은 다릅니다. 아는 마음이라고 하는 식은 대상을 받아들이는 기능을 합니다. 그래서 알아차림이란 말은 주시이며 아는 마음은 주시해서 아는 것을 말합니다. 통상적으로 아는 마음은 항상 있는 것이고 주가 되는 것이라서 생략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보통의 경우에 ‘주시해서 안다.’ 라고 하거나 ‘알아차려서 안다’라고 말하지 않고 ‘주시 한다’거나 ‘알아차린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 떼자니아 사야도가 말씀하신 ‘대상과 아는 마음’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말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알아차림이란 행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대상과 아는 마음을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대상과 깨어있음과 아는 마음’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대상과 아는 마음’은 깨어있지 않은 상태를 말할 수도 있고 알아차림이 포함된 깨어있는 상태를 말할 수도 있는데 수행을 말할 때는 깨어있는 것이 포함된 말입니다.
다시 ‘아는 마음을 보는 마음’은 앞서 밝힌 것과 다른 말입니다. 이때는 ‘아는 마음’이 대상이고 이것을 다시 마음이 아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알아차리고 있는 것을 다시 아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자들이 하는 수행방편입니다. 그래서 생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가령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 상태를 지켜보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것을 영어로 말하자면 ‘noting’하는 것을 ‘watching' 한다고 합니다.
< 답변 2 >
빠라마타는 실재하는 것을 말하며 빤냐띠는 관념적인 것을 말합니다. 엄격한 의미에서는 서로 다른 것입니다. 그러나 교합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수행자들에게 두 손을 마주대보라고 말합니다.
이때 무엇을 아느냐고 질문을 하면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말하게 됩니다.
질문자 : 지금 무엇을 아십니까?
수행자 1 : 손을 알고 있습니다.
질문자 : 지금 무엇을 아십니까?
수행자 2 : 따뜻함도 있고, 약간 축축함도 있고, 진동이 느껴집니다.
이렇게 말할 때 손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관념적인 것으로 빤냐띠를 말합니다. 손은 손이라고 이름을 붙여서 말하는 것이지 실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따뜻함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실재를 말하는 것으로 빠라마타를 말합니다. 그래서 서로 분명히 다릅니다. 그러나 손이 있어서 손의 느낌이 있는 것으로 볼 때는 교합하는 것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몸은 존재로서 관념이지만 몸에 있는 느낌은 실재로서 인식입니다.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것이 빠라마타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라고 말하기 위해서 몸이나 손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말하거나 글을 쓰기 위해 명칭을 붙여야 하고, 그래서 빤냐띠 없는 빠라마타는 없습니다.
수행을 할 때 사마타 수행은 빤냐띠를 대상으로 합니다. 그리고 위빠사나 수행은 빠라마타를 대상으로 합니다. 서로 필요할 때 알아차릴 대상으로 삼으면 됩니다.
정신세계의 문제를 생각으로 말하면 정확한 답을 얻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실 수행을 통하여 아는 것이 바른 길일 것입니다.
일상의 삶에서 하고 있는 것을 자각할 때는 알아차림이 있는 것이고 자각하지 못하면 알아차림이 없는 생각에 속합니다. 생각하는 것을 알 때 그냥 생각으로 아는 것은 알아차림이 없는 것이라서 수행을 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알아차림이 없으면 생각이고 알아차림이 있으면 생각이 아닙니다. 생각이란 의(意)를 말하는 것으로 매우 미세한 것입니다. 마음은 心, 意, 識, 3가지로 나누어서 말하는데 수행에서는 마음에 알아차림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으로 단순하게 분류를 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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