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스크랩] 빅쿠(Bikkhu) - 윤회에서 두려움을 보는자

작성자우진맘|작성시간09.04.27|조회수505 목록 댓글 1

얼마전 학교의 빨리어 원전 강독 수업을 들으면서 느낀바가 커서 여기에도 좀 써볼까 합니다.

 

담당 교수님은 먼저 빨리어는 음성위주의 언어가 아니라 의미위주의 언어(meaning-oriented language)임을 누누히 강조하셨습니다. 즉 빨리어 단어의 80% 이상은 전대 언어인 산스크리트어와 근접어인 고대 마가다어, 쁘라크릿트어에서 파생된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빨리어 단어는 각각을 분해하여 파악하면 그 의미를 더 쉽게 이해할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실 빨리어는 배우기 어려운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스리랑카의 전통 강원이나 절에서 해온대로 먼저 기본형과 격변화의 공식을 달달 머리속에 암기한뒤 곧바로 경전 독해에 들어가면 문법과 문형은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근세기 들어 영국의 PTS(빨리성전협회)를 위시한 많은 서양학자들이 그동안 승가에만 머물고 있던 빨리어를 로마나이즈하여 빨리어를 세계의 식자에게 소개시킨것은 참으로 큰 공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서양학자들의 오랜 연구끝에 펴낸 각종 빨리어 연구서, 사전, 문법서는 지금 우리가 빨리어를 배우고 경전을 보는데 매우 유용하며 그들의 연구실적을 높이 평가해줘야 하지만 서양학자들은 상좌부 불교권에서 전통적으로 중시해온 주석서를 무시하고 너무 언어학적인 방법(훈구학적인 방법)에만 치중하여 번역을 하다보니 해석에 있어 오류가 적지 않았다고 하시더군요.

 

그 한 예로 교수님은 빅쿠(bikkhu)란 단어를 드셨습니다. 서양학자들은 빅쿠(bikkhu)란 단어를 분석할때 먼저 언어학적 방법에 입각하여, √biks(구걸하다)에서 온 단어로 보고 '걸인, 걸사(begger), 탁발다니는 사람(almsman), 또는 탁발승(mendicant)으로 번역하였다고 합니다. 빅쿠를  한낱 '거지'로 번역하였으니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해석이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스리랑카를 위시한 남방 상좌부 불교전통에서는 이러한 훈고학적인 해석보다는 두려움을 뜻하는 바야(bhaya)와 본다는 의미를 가진 익쿠(ikkhu)로 분해해서 이 둘의 합성으로 풀이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통 상좌부 입장에서 본 빅쿠는 '거지'가 아니고‘윤회에서 두려움을 보는 자’라는 것입니다. 제가 집에 와서 빨리-영어사전(PTS)을 찾아보니 과연 청정도론에서 "Saṃsāre bhayaṃ ikkhati ti bikkhu", 즉 "윤회에서 두려움을 보기때문에 빅쿠이다."라고 설명되어 있었음을 볼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해석에 입각하여 본다면 상좌부 불교에서 말하는 빅쿠는 좁은 의미의 출가자에서 윤회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도에 전념하는 수행자 모두를 지칭한다고 확대 해석될수 있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로써 알수 있듯이 경전에 나오는 빨리어 문구를 단순한 언어적인 지식만으로는 그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스리랑카에서는 이렇게 근대에 축적된 서양의 뛰어난 언어학적 접근방법과 함께 기존의 전통 상좌부 주석서의 입장도 중시하면서 균형있는 빨리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때 빨리어가 태어난 곳은 인도이고 빨리어를 학문적으로 집대성한곳은 서양(영국과 독일)이지만 스리랑카는 지구상 어느 나라보다도 빨리어 공부에 최적의 나라임이 분명합니다. 예전에 영국이나 인도에서 상좌부 불교를 공부하던 분도 박사 마지막 1년은 스리랑카에 와서 빨리어를 점검받는다고 들었는데 정말 그 말이 맞구나 느꼈습니다.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수카또야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우진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04.27 수카또야.고시랑 쉼터에 수마나 님이 올리신 글입니다. 빅쿠라는 말이 '윤회에서 두려움을 보는 자'라고도 해석될 수 있다니...!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