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
불교방송 불교강좌 제51회 12연기와 위빠사나 2010. 2/2
존재하는 것의 세 가지 특성 또는 세 가지 속성을 아는 것이 바른 견해입니다.
그 중 첫 번째 특성인 무상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무상은 ‘덧없음’ 또는 ‘항상 하지 않음’이라는 뜻으로,
모든 유위법이 변하며 영원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 무상을 알기 전에는 항상 한다고 알았습니다.
초월적 존재를 믿는 사람들은 항상 하는 절대적 존재에 의해서
우리가 지배받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통찰지혜로 보시니,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무상입니다.
그러니까 무상의 반대는 ‘항상 한다’,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무상은 변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변하며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을 무상이라고 합니다.
무상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불교의 특성입니다.
이러한 견해는 위빠사나 수행의 통찰지혜로서만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무상을 알면, 다음에는 존재하는 것들의 속성인 괴로움을 압니다.
괴로움은 빨리어 두(du)와 카(kha)의 합성어로, 둑카(dukkha)입니다.
실제 둑카는 고(苦)라고 하기보다는 불만족이라는 뜻에 더 가깝습니다.
그리고 하찮은 것, 별 볼일 없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한문으로 고(苦)라고 할 뿐이지,
실제의 뜻은 불만족, 하찮은 것, 그리고 비어있는 것, 이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별 볼일 없는 것을 대단하게 여깁니다.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모르기 때문에 크게 생각해서 문제를 삼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런 것들은 단지 원인과 결과일 뿐이고
업자성정견(業自性正見)에 의해서 자기가 지은 대로 받는 것뿐입니다.
이 둑카는 모든 윤회하는 존재의 보편적 특성입니다.
우리는 괴로움에 처할 때마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 괴로움의 끈끈한 덫에서 결코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바로 이때 우리는 무아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무아는 항상 하는 자아가 없고 실재하지 않는 것을 가리킵니다.
가령 내가 있다면, 내 몸이 나의 소유라면
내가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어야 되는데 사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마지막 호흡이 끝날 때에도
내 마음이 있다면,
몸이 나의 소유라면
호흡을 계속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단지 마음만 있고, 단지 몸만 있기 때문에,
조건에 의한 마음과 조건에 의한 몸이기 때문에
결코 몸과 마음을 자신의 의도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몸과 마음은 매순간 변하기 때문에 항상 하는 것도 아니라서
거기에 자아가 없다는 뜻으로 무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마음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마음이 나의 마음이 아니고, 나의 소유가 아니라는 뜻으로
우리는 무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빨리어 경전의 도처에서 부처님은 무상, 고, 무아를 설하셨습니다.
특히 이는 대부분 오온의 무상, 고, 무아의 문맥에서 나타납니다.
오온으로 대표되는 모든 개념적 존재를
분석하고, 분해하고, 해체해서 드러나는 유위법이
무상, 고, 무아임을 꿰뚫어 알 때 해탈의 열반을 실현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바른 견해란 무상, 고, 무아를 아는 것이라고 이해하셔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무상, 고, 무아를 알기 위해서는 통찰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이 통찰지혜라는 것은 지금 여기에서 실현될 수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실현하는 것이 바로 수행입니다.
'지금 여기에서'라는 사실이 갖는 의미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은 현재, 그것도 지금, 이 자리에서, 여기 있는 정신과 물질,
이 순간의 몸과 마음 안에서 지혜가 난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