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리야팍구나 경(S12:12)
Moliyaphagguna-sutta
3. "비구들이여,이미 존재하는 중생들을 유지하게 하고
생겨나려는 중생들을 도와주는 네 가지 음식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거칠거나 미세한 덩어리진 [먹는] 음식이 [첫 번째요],
감각접촉[觸]이 두 번째요, 마음의 의도가 세 번째요,
알음알이가 네 번째다.
비구들이여, 이미 존재하는 중생들을 유지하게 하고,
생겨나려는 중생들을 도와주는 네 가지 음식이 있다.(*1)
(*1) “세존께서는 이쯤에서 가르침을 멈추었다. 왜?
몰리야팍구나 비구라는 삿된 견해에 빠진 자(diṭṭhi-gatika)가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스승께서는 그에게 질문할 기화를 주시기 위해서 가르침을 멈추신 것이다.”(SA.ⅱ.29)
4. 이렇게 말씀하시자 몰리야팍구나 존자가(*2)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2) “몰리야팍구나 존자는 재가자였을 때 큰 상투(moli)를 틀고 있었다.
그래서 몰리야팍구나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출가하고서도 이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SA.ⅱ.30)
“세존이시여, 그러면 누가 알음알이의 음식을 먹습니까?” (*3)
(*3) 팍구나 존자는 음식이 있다면 그 음식을 먹는 자도 있어야 한다고 가정하고 이렇게 질문을 드린 것이다.
만일 알음알이도 음식이라 부른다면 이러한 음식을 먹는 어떤 상주불변하는 자아가
알음알이의 배후에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인 것이다.
이것은 불교의 근본인 무아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가정이다.
그래서 주석서는 그의 잘못된 질문에 대해서 그의 이름조차도 언급하지 않고
삿된 견해에 빠진 자(diṭṭhi-gatika)라는 용어로 그를 지칭하면서 다음과 같이 그에 대해 호된 평을 하고 있다.
“이 삿된 견해에 빠진 자는 미친 사람과 같다(ummattaka-sadisa).
예를 들면 미친 사람이 바구니(pacchi)를 가지고 길에 나가서 쇠똥이든 돌이든 사람 똥이든 음식 부스러기든
마음에 드는 것이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든 아무거나 집어서 바구니에 담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이 이론가도 타당한 것(yutta)이든 타당하지 않은 것(ayutta)이든
아무렇게나 질문을 한 것이다.”(SA.ⅱ.30)
“그것은 타당한 질문이 아니다.”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중생이나 사람이] 음식을 먹는다.’고 말하지 않는다.(*4)
(*4) “‘나는 ‘음식을 먹는다.’고 말하지 않는다(āhāretti ahaṃ na vadami).’라는 것은,
어떤 중생이(satta)이나 사람(puggala)이 음식을 먹는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SA.ⅱ.31)
만일 내가 ‘[중생이나 사람이] 음식을 먹는다.’고 한다면,
‘세존이시여, 그러면 누가 알음알이의 음식을 먹습니까?’라는 그대의 질문은 타당하다.
그러나 나는 이와 같이 말하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말하지 않기 때문에
나에게 ‘세존이시여, 그러면 알음알이의 음식은 어떤 [법의 조건이] (*5)됩니까?’라고
물어야 그것이 타당한 질문이다.
(*5) [ ] 안은 주석서에서 부연 설명하고 있는
“어떤 법의 조건이 됩니까(katamassa dhammassa paccayo)?"를 번역하여 넣은 것이다.
[만일 그대가 이렇게 묻는다면] 여기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타당한 설명을 할 것이다.
‘알음알이의 음식은 내생에 다시 태어남[再生]의 발생이라 [불리는 정신·물질]의 조건이 된다.(*6)
(*6) “여기서 알음알이의 음식은(viññāṇ-āhāra)은 재생연결식(paṭisandhicitta)이다.
‘내생에 다시 태어남[再生, 再有]의 발생(āyatiṃ punabbhava-abhinibbatti)'은
이 알음알이와 함께 일어난 정신·물질(sahuppanna-nāma-rūpa)이다.”(SA.ⅱ.31)
『앙굿따라니까야』 「존재 경」(A3:76에서 세존께서는 “이처럼 업은 들판이고 알음알이는 씨앗이고 갈애는 수분이다.
중생들은 무명의 장애로 덮이고 갈애의 족쇄에 계박되어 저열한 [욕]계에 … 중간의 [색]계에 …
수승한 [무색]계에 알음알이를 확립한다.
이와 같이 하여 내생에 다시 태어남의 발생(punabbhava-abhinibatti)이 있게 된다.”라고 천명하신다.
이것은 전생에서부터 찰나생 · 찰나멸하면서 상속하는 알음알이가 알음알이의 음식의 역할을 하여
모태에서 금생의 최초의 재생연결식이 되고, 이것이 음식이 되어서 함께 일어나는 정신·물질을 생기게 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세존께서는 연기의 정형구에 나타나는 알음알이를 알음알이의 음식으로 말씀하고 계시며
주석서는 이것을 한 생의 최초의 알음알이인 재생연결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주석서는 내생에 다시 태어남의 발생을 정신·물질로 해석하고 있으며,
이것은 재생연결식이라는 음식에 의해서 생긴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연기의 정형구의 식과 명색을 한 생의 최초의 재생연결식과 그것과 함께 일어나는 명색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한 [정신·물질이라는] 존재가 있을 때 여섯 감각장소가 있고,(*7)
여섯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하여 여섯 감각접촉이 있다’라고.”
(*7) “‘그러한 존재가 있을 때 여섯 감각장소가 있고(tasmiṃ bhūte sati saḷāyatanaṃ)'란
내생에 다시 태어남의 발생(āyatiṃ punabbhava-abhinibbatti)이라 불리는
정신·물질이 있을 때 여섯 감각장소가 있다는 뜻이다.”(SA.ⅱ.31)
각묵스님옮김 『상윳따니까야』 2권 128쪽 -1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