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오름 경(S35:28)
Āditt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비구승가와 함께 가야에서 가야시사에 머무셨다.
2. 거기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일체는 불타오르고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일체가 불타오르고 있는가? (*1)
눈은 불타오르고 있다.
형색은 불타오르고 있다.
눈의 알음알이는 불타오르고 있다.
눈의 감각접촉은 불타오르고 있다.
눈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불타오르고 있다.
그러면 무엇에 의해서 불타오르는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불타오르고 있다.
태어남과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
불타오르고 있다고 나는 말한다.
귀는 … 소리는 … 귀의 알음알이는 … 귀의 감각접촉은 … 느낌은 …
코는 … 냄새는 … 코의 알음알이는 … 코의 감각접촉은 … 느낌은 …
혀는 … 맛은 … 혀의 알음알이는 … 혀의 감각접촉은 … 느낌은 …
몸은 … 감촉은 … 몸의 알음알이는 … 몸의 감각접촉은 … 느낌은 …
마노[意]는 불타오르고 있다.
[마노의 대상인] 법은 불타오르고 있다.
마노의 알음알이는 불타오르고 있다.
마노의 감각접촉은 불타오르고 있다.
마노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불타오르고 있다.
그러면 무엇에 의해서 불타오르는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불타오르고 있다.
태어남과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
불타오르고 있다고 나는 말한다.”
4.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눈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형색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눈의 알음알이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눈의 감각접촉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눈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대해서도 염오한다.
귀에 대해서도 … 소리에 대해서도 … 귀의 알음알이에 대해서도 …
귀의 감각접촉에 대해서도 … 느낌에 대해서도 …
코에 대해서도 … 냄새에 대해서도 … 코의 알음알이에 대해서도 …
코의 감각접촉에 대해서도 … 느낌에 대해서도 …
혀에 대해서도 … 맛에 대해서도 … 혀의 알음알이에 대해서도 …
혀의 감각접촉에 대해서도 … 느낌에 대해서도 …
몸에 대해서도 … 감촉에 대해서도 … 몸의 알음알이에 대해서도 …
몸의 감각접촉에 대해서도 … 느낌에 대해서도 …
마노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마노의 대상인] 법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마노의 알음알이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마노의 감각접촉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마노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대해서도 염오한다.”
5. “염오하면서 탐욕이 빛바래고, 탐욕이 빛바래기 때문에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을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가.’라고 꿰뚫어 안다.”
6.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비구들은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였다.
7. 이 상세한 설명이 설해졌을 때 그 비구 승가는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였다.
(*1) 본경은 부처님께서 행하신 세 번째 설법이라고 『율장』의 『대품』 (Vin.ⅰ.34~35)은 기록하고 있다.
『대품』에 의하면 본경은 엉킨 머리수행자(jāṭila)들이었던 가섭 삼형제의 제자들이었다가
가섭 삼형제와 함께 부처님 제자가 된 1000명의 비구들에게 설하신 가르침이다.
이들은 부처님 제자가 되기 전에 불에 제사를 지내던 자들이었기 때문에
여기서 일체가 불타오르고 있다는 세존의 말씀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 세존께서는 1000명의 사문들을 데리고 가야시사에 가셔서 그들에 둘러싸여 앉으셔서
‘이들에게 어떤 설법이 적절할까?’라고 생각하신 뒤,
‘이들은 아침저녁으로 불(aggi)을 섬기는 자들이었다.
그러니 이들에게 12처가 불붙고 불타오르고 있음을 설해야겠다.
그러면 그들의 아라한됨을 증득할 수가 있을 것이다.’라고 결정하셨다.
본경에서는 괴로움의 특상(dukkha-lakkhaṇa)을 설하셨다.”(SA.ⅱ.363)
각묵스님 『상윳따니까야』 4권 120-1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