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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지마니까야

모든 번뇌 경(M2) -1

작성자해맑은|작성시간20.03.07|조회수2,039 목록 댓글 1

모든 번뇌 경(M2)
Sabbāsava Sutta

 

                                                                     대림스님 옮김 『맛지마니까야』 제1권 170-192쪽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띠(*1)에서

제타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세존이시여." 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모든 번뇌(*2) 단속(*3)하는 법문을 설하리니 그것을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나는 알고 보는 자(*4)의 번뇌들이 소멸한다고 말하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자의 [번뇌들이 소멸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무엇을 알고 무엇을 보는 자의 번뇌들이 소멸하는가?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함과 지혜 없이 마음에 잡도리함(*5).

비구들이여, 지혜 없이 마음에 잡도리하는 자에게

아직 일어나지 않은 번뇌들은 일어나고, 이미 일어난 번뇌들은 증가한다.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하는 자에게

아직 일어나지 않은 번뇌들은 일어나지 않고, 이미 일어난 번뇌들은 없어진다."

 

4.  "비구들이여,

① 봄[見]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이 있다.
② 단속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이 있다. 
③ 수용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이 있다.
④ 감내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이 있다.
⑤ 피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이 있다.
⑥ 버림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이 있다.
⑦ 수행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이 있다.(*6)

 

(*1) 사왓티(Sāvatthi)는 꼬살라(Kosala)국의 수도였다.

꼬살라는 부처님 재세 시에 인도에 있었던 16개국 가운데 하나였으며

16국은 차차 서로 병합되어 나중에는 마가다(Magadha)와 꼬살라 두 나라로 통일되었다.

부처님 재새 시에는 빠세나디(Pasenadi) 왕이 꼬살라를 통치하였고 그의 아들 위두다마(Vidūḍabha)가 계승하였다.

부처님께서 말년에 24년 정도를 이곳 사왓티의 제따와나 급고독원에 머무시는 등 부처님과 아주 인연이 많았던 곳이다.

 

(*2) “그곳에서 나오기(āsavanti) 때문에 ‘번뇌(āsavā)’라 한다.

으로부터 나오고, 귀, 코, 혀, 몸, 마음으로부터 나온다, 생긴다는 말이다.

혹은 법(dhamma)으로는 고뜨라부[種姓, gotrabhū] 까지 흐르고,

공간으로는 최고의 높은 존재 즉 비상비비상처까지 흐르기(savanti) 때문에 번뇌라 한다.”(MA.ⅰ.61) 

 

번뇌로 옮긴 āsavā는 ‘흐르는 것’이라는 문자적인 뜻에서

원래는 종기에서 흘러나오는 고름이나 오랫동안 발효된 술(madira) 등을 뜻했다고 주석가들은 말한다.(DhsA.48)

이것이 우리 마음의 해로운 상태를 나타내는 말로 정착된 것이며 중국에서는 번뇌(煩惱)라고 옮겼다.

이런 마음상태들을 ‘아사와’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것도 흘러나오는 고름이나 악취 나는 술과 같기 때문이다.

 

(*3) ‘단속’은 saṃvara를 옮긴 것이다.

『청정도론』 과 본경에 해당하는 주석서는 계목을 통한 단속(pātimokkha-saṃvara),

마음챙김을 통한 단속(sati-saṃvara), 지혜를 통한 단속(ñāṇa-saṃvara),

인욕을 통한 단속(khanti-saṃvara), 정진을 통한 단속(vīriya-saṃvara)의

다섯 가지 단속을 든 뒤에 경을 인용하여 이 다섯을 설명하고 있다.

 

본경에서 7가지로 분류되고 있는 번뇌들 가운데

⑤피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 중의 적합하지 않은 자리에 앉거나

갈 곳이 아닌 곳에 다니는 것을 피하는 것을 계목을 통한 단속의 보기로 들고 있다.

② 단속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을 마음챙김을 통한 단속의 보기로,

7가지 항목에 나타나는 ‘지혜롭게 숙고하여'라는 구문을 지혜를 통한 단속의 보기로,

⑥ 버림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을 정진을 통한 단속의 보기로,

④ 감내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을 인욕을 통한 단속의 보기로 들고 있다.

 

(*4)  “여기서 ‘아는 자(jānato)’와 ‘보는 자(passato)’는 단어만 다를 뿐 같은 뜻이다.

아는 자란 지혜의 특징(ñāṇa-lakkhaṇa)과 관련하여 사람을 나타낸 것이다.

왜냐하면 지혜는 아는 특징(jānana-lakkhaṇa)을 가지기 때문이다.

보는 자란 지혜의 힘(ñāṇa-ppabhāva)과 관련하여 사람을 나타낸 것이다.

왜냐하면 지혜는 보는 힘(passana-ppabhāva)을 가지기 때문이다. 


 지혜를 가진(ñāṇa-samaṅgī) 사람은 마치 눈을 가진 사람처럼

눈으로는 형색을 보고 지혜(ñāṇa)로는 드러난 법들(vivaṭā dhammā)을 본다.

그는 무엇을 알고 보는 자인가?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함(yoniso manasikāra)’이 일어나도록 아는 자(jānato)이고,

지혜 없이 마음에 잡도리 함(ayoniso manasikāra)’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렇게 보는 자(passato)이다.

이렇게 알고 보는 자의 번뇌는 소멸한다.”(MA.ⅰ.63)

 

(*5)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함’은 중국에서 여리작의(如理作意)로 옮긴 yoniso-manasikāra를 옮긴 것이고

지혜 없이 마음에 잡도리함’은 중국에서 불여리작의(不如理作意) 등으로 옮긴 ayoniso-manasikāra를 옮긴 것이다.

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함[如理作意, yoniso manasikāra]’이란

[바른] 방법(upāya)에 의해서 마음에 잡도리함이고, 길(patha)에 따라 마음에 잡도리함이고,

[일어남에 대해서 마음에 잡도리함-SA.ⅲ.165]이다.

이것은 무상한 [것]에 대해서 무상이라고, 괴로운 [것]에 대해서 괴로움이라고, 무아인 [것]에 대해서 무아라고,

더러운 것[不淨]에 대해서 부정이라는 이러한 방법으로 진리에 순응하여 마음이 굴러가고 함께 전개되고

관심을 가지고 마음에 두고 마음에 잡도리하는 것을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함이라 한다.

(지혜 없이 마음에 잡도리함은 이와 반대로 설명하고 있어서 인용하지 않음)”(MA.ⅰ.64)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함은 초기불전의 여러 곳에서 강조되고 있는 덕목이다.

그래서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하기 때문에 아직 생겨나지 않은 번뇌들은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겨난 번뇌들은 버려진다.”(본경M.ⅰ.7)고도 설하셨고,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함을 반연하여(paccaya) 정견(正見)이 생겨난다(M43)고도 하셨다.

그리고 『상윳따니까야』 제2권 「위빳시 경」 등에서는 위빳시 부처님 등 칠불이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함을 통해서

12연기를 통찰지로 관통하여 일어남과 사라짐에 대한 눈[眼], 지혜[智], 통찰지[慧], 명지[明], 광명[光]이 생겼다고 나타나고 있다.

 

(*6) 이 일곱 가지는 본경의 기본 주제이다.

①‘봄[見]’으로써 없애야할 번뇌들은 āsavā dassanā pahātabbā를 옮긴 것이다.

같이 하여 ②‘단속함’은 saṃvarā를, ③‘수용함’은 paṭisevanā를 ④‘감내함’은 adhivāsanā를,

⑤‘피함’은 parivajjanā를, ⑥‘버림’은 vinodanā를, ⑦‘수행’은 bhāvanā를 옮긴 것이다.

 이 가운데 ①을 제외한 여섯 가지는 『앙굿따라니까야』 「번뇌 경」(A6:58)에도 나타나고 있다.

 

(1) 봄[見]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 

5.  "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봄[見]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성자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에 능숙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에 인도되지 못하고,

바른 사람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바른 사람들의 법에 능숙하지 못하고

바른 사람들의 법에 인도되지 않아서,

마음에 잡도리해야 할 법들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마음에 잡도리하지 말아야 할 법들을 꿰뚫어 알지 못한다.(*7)
그는 마음에 잡도리해야 할 법들을 꿰뚫어 알지 못하여,

마음에 잡도리하지 말아야 할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하고,

마음에 잡도리해야 할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는다."

 

6.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그가 마음에 잡도리하지만 마음에 잡도리하지 말아야 할 법들인가?
비구들이여, 어떤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할 때

아직 일어나지 않은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欲漏](*8)가 일어나고

이미 일어난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가 증가하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존재에 기인한 번뇌[有漏]가 일어나고

이미 일어난 존재에 기인한 번뇌가 증가하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무명에 기인한 번뇌[無明漏]가 일어나고

이미 일어난 무명에 기인한 번뇌가 증가하면,

그 법들은 그가 마음에 잡도리하지만 마음에 잡도리하지 말아야 할 법들이다."

 

무엇이 그가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지만 마음에 잡도리해야 할 법들인가?

비구들이여, 어떤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할 때

아직 일어나지 않은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欲漏]가 일어나지 않고

이미 일어난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가 없어지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존재에 기인한 번뇌[有漏]가 일어나지 않고

이미 일어난 존재에 기인한 번뇌가 없어지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무명에 기인한 번뇌[無明漏]가 일어나지 않고

이미 일어난 무명에 기인한 번뇌가 없어지면,

그 법들은 그가 마음에 잡도리하고 있지 않지만 마음에 잡도리해야 할 법들이다.


그가 마음에 잡도리하지 말아야 할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하고,

마음에 잡도리해야 할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기 때문에

아직 일어나지 않은 번뇌들이 일어나고 이미 일어난 번뇌들은 증가한다."
  
7. "그는 다음과 같이 지혜 없이 마음에 잡도리한다.
‘나는 과거에 존재했을까? (*9) 아니면 나는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을까? (*10)
나는 과거에 무엇이었을까? 나는 과거에 어떠했을까?

나는 과거에 무엇이었다가 무엇으로 변했을까?


나는 미래에 존재할까? 아니면 나는 미래에 존재하지 않을까?

나는 미래에 무엇이 될까? 나는 미래에 어떻게 될까?

나는 미래에 무엇이었다가 무엇으로 변할까?


지금 현재에 대해서도 안으로 의심한다.

나는 존재하기는 하는가? 나는 존재하지 않는가?

나는 무엇인가? 나는 어떠한가?

이 중생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게 될 것인가?’라고"

 

8. "이와 같이 지혜 없이 마음에 잡도리할 때

그에게 여섯 가지 견해들 가운데 하나의 견해가 생긴다.
① '나에게 자아가 있다.' 라는 견해가 그에게 진실로 확고하게 생긴다.
'나에게 자아란 없다.'(*11) 라는 견해가 그에게 진실로 확고하게 생긴다.
'나는 자아로써 자아를 인식한다.'(*12) 라는 견해가 그에게 진실로 확고하게 생긴다.
④ '나는 자아로써 무아를 인식한다.'(*13) 라는 견해가 그에게 진실로 확고하게 생긴다.
⑤ ‘나는 무아로써 자아를 인식한다.(*14) 라는 견해가 그에게 진실로 확고하게 생긴다.
⑥ 혹은 그에게 이런 견해가 생긴다. '이러한 나의 자아는 말하고 경험하며,

여기저기서(*15) 선행과 악행의 과보를 경험한다.
그런 나의 자아는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법이고

영원히 지속 될 것이다.'(*16)라고.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견해에 빠짐, 견해의 밀림, 견해의 황무지,

 견해의 뒤틀림, 견해의 요동, 견해의 족쇄(*17)라 한다.
비구들이여, 견해의 족쇄에 계박되어서 배우지 못한 범부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7) “‘마음에 잡도리하다(manasikaroti).’는 주의를 기울이다(āvajjati),

주의를 돌리다(몰두하다, samannāharati)라는 뜻이고,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다(amanasikaroti).’는 그 반대의 뜻이다. 
마음에 잡도리해야 할 법들’과 마음에 잡도리하지 말아야 할 법들’이라고 했다.

이 법들은 마음에 잡도리해야 할 것이고, 이 법들은 마음에 잡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한 것은

사실상 법으로 정해진 것(niyama)이 없고, 방식(ākāra)으로서는 있다.

즉 마음에 잡도리할 때 해로운 법들이 일어날 가까운 원인이 되는 그런 방식으로 마음에 잡도리하지 말아야 한다.

마음에 잡도리할 때 유익한 법들이 일어날 가까운 원인이 되는 그런 방식으로 마음에 잡도리해야 한다.”(MA.ⅰ.67) 
복주서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왜냐하면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도 아름다움, 행복, 영원함 등으로 마음에 잡도리 할 때

달콤함(assādana) 등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비난받아 마땅하고(sāvajja) 손해와 괴로움을 가져오며,

해로운 법들에 대해서도 무상함 등으로 마음에 잡도리할 때 염오(nibbidā) 등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비난받을 일이 없고 이익과 행복을 가져온다.

그렇기 때문에 법으로서 정해진 것이 없고, 방식으로서는 있는 것이다.”(MAT.ⅰ.69)

 

(*8)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慾漏, kāmāsava]’란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을 가진 탐욕(rāga)을 말한다.

 ‘존재에 기인한 번뇌[有漏, bhava-āsava]’란 색계와 무색계의 존재에 대한 갈망(chanda-rāga)과

상견과 단견과 함께한, 禪에 대한 열망(jhāna-nikanti)이다. 그러므로 사견에 기인한 번뇌도 이 존재에 기인한 번뇌에 포함된다.

‘무명에 기인한 번뇌[無明漏, avijjāsava]’란 사성제에 대한 무지(anñāṇa)이다.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을 맛보고 마음에 잡도리할 때

아직 일어나지 않은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가 일어나고 일어난 것은 증가한다.

고귀한 법들(mahaggata-dhammā)을 맛보고 마음에 잡도리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존재에 기인한 번뇌가 일어나고 일어난 것은 증가한다.

삼계의 법들에 대해 네 가지 전도됨[四顚倒, catu-vipallāsa]의 가까운 원인이 될 상태로 마음에 잡도리 할 때

아직 일어나지 않은 무명에 기인한 번뇌가 일어나고 일어난 것은 증가한다.”(MA.ⅰ.67)


여기서 고귀한 법들이란 색계와 무색계의 법들을 말하고, 네 가지 전도됨이란 무상한 것을 항상한 것이라고,

괴로움을 행복이라고, 무아를 자아라고, 부정한 것을 깨끗한 것이라고 인식하는 것,

즉 무상, 고, 무아, 부정인 것을 상·락·아·정(常·樂·我·淨)으로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9) 여기 §7에 나타나는 과거에 대한 5가지, 미래에 대한 5가지, 현재에 대한 6가지,

그래서 모두  16가지 의심은 위빳사나의 7청정 가운데 4번째인 의심을 극복함에 의한 청정[度疑淸淨]에서

말끔히 해소된다. 연기 혹은 조건발생을 정확하게 알아야 삼세의 모든 의심이 극복되며

이것은 도와 과의 증득에도 필수적인 항목이다.

 

(*10)  “‘나는 과거에 존재했을까? 아니면 존재하지 않았을까?’라는 것은

상견의 측면과 우연발생의론의 측면에서 과거에 자신이 존재했던 것인지 아닌지를 의심하는 것이다.

그 이유를 물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미친 사람마냥 어리석은 범부는 아무거나 마음대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혹은 지혜 없이 마음에 잡도리하기 때문이다. 
  ‘무엇이었을까?’라는 것은 계급(태생), 성별, 재생과 관련하여 캇띠야(끄샤뜨리야), 바라문,

와이샤, 수드라, 재가지, 출가자, 신, 인간 중에 무엇이었는지를 의심하는 것이다.
   ‘어떠했을까’라는 것은 모습과 관련하여 긴 것, 짧은 것, 흰색, 검은색 중에 어떠했을 지를 의심하는 것이다.
   ‘무엇이었다가 무엇으로 변했을까?’라는 것은 계급 등과 관련하여 캇띠야였다가 바라문이었을까,

신이었다가 인간이었을까 라고 계속 적으로 의심하는 것이다.
   ‘미래에 존재할까 아니면 존재하지 않을까?’라는 것도

상견의 측면과 우연발생론의 측면에서 미래에 자신이 존재할 것인지 아닌지를 의심하는 것이다.
   나머지는 같은 방법을 적용하면 된다.”(MA.ⅰ.68~69)

 

(*11) 주석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나에게 자아가 있다’는 상견이라는 사견이 자아를 거머쥐는 것이고,

자아가 없다’는 것은 단견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것은 [불교의 무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유물론자들의 주장을 거머쥐는 것을 말한다.”(MA.ⅰ.70)

 

(*12) “‘나는 자아로써 자아를 인식한다.’는 것은 인식의 무더기[想薀]를 선두에 두고,

그 인식의 무더기로 다른 무더기들에 대해 자아라고 거머쥐고는

인식으로 나머지 무더기들을 인식하면서 나는 이 자아로써 이 자아를 인식한다는 견해가 일어난다는 뜻이다.”(MA.ⅰ.70)

 

(*13)  “‘나는 자아로써 자아를 인식한다.’는 것은 인식의 무더기는 자아이고,

나머지 네 가지 무더기들은 무아라고 거머쥐고는 인식으로써 인식하면서 이러한 견해가 일어난다는 뜻이다.”(MA.ⅰ.70)

 

(*14) “‘나는 무아로써 자아를 인식한다.’는 것은 인식의 무더기는 무아이고,

나머지 네 가지 무더기들은 자아라고 거머쥐고는 인식으로 그들을 인식하면서 이러한 견해가 일어난다.”(MA.ⅰ.70)

 

(*15)  “‘여기저기서(tatra tatra)’라는 것은

각각의 모태(yoni), 태어날 곳(gati), 머묾(ṭhiti), 거처(nivāsa), 부류(nikāya)나

혹은 각각의 대상(ārammaṇa)을 말한다.”(MA.ⅰ.71)

 

(*16)  “‘항상하다(nicca)’는 것은 일어남과 멸함이 없다는 것이고,

견고하다(dhuva)’는 것은 정수(sāra-bhūta)를 나타내고,

영원하다(sassata)’는 것은 어느때에나 항상 있다는 것이고,

‘변하지 않는 법(avipariṇāma-dhamma)’이란 자아의 본성은 버릴 수 없다는 것이고,

‘영원히 지속된다(sassatisama).’는 것은 달, 태양, 바다, 땅, 산은 세상의 용어로는 영원한 것(sassati)이라고 불리는데,

그것과 같다는 뜻이다. 그들이 머무는 한 이 자아도 머문다고 이와 같이 견해가 일어난다.”(MA.ⅰ.71)

 

(*17)  ‘견해에 빠짐(diṭṭhi-gata), 견해의 밀림(diṭṭhi-gahana), 견해의 황무지(diṭṭhi-kantāra),

견해의 뒤틀림(diṭṭhi-visūka), 견해의 요동(diṭṭhi-vipphandita), 견해의 족쇄(diṭṭhi-saṃyojana)이다.


9. "비구들이여,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성자들을 친견하고

성스러운 법에 능숙하고 성스러운 법에 인도되고, 바른 사람들을 친견하고

바른 사람들의 법에 능숙하고 바른 사람들의 법에 인도되어서,

마음에 잡도리해야 할 법들을 꿰뚫어 알고,

마음에 잡도리하지 말아야 할 법들을 꿰뚫어 안다.
그는 마음에 잡도리해야 할 법들을 꿰뚫어 알고

마음에 잡도리하지 말아야 할 법들을 꿰뚫어 알아서,

마음에 잡도리하지 말아야 할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고

마음에 잡도리해야 할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한다."

 

10. "비구들이여, 무엇이 그가 마음에 잡도리하고 있지 않는 법으로서,

마음에 잡도리하지 말아야 할 법들인가?
비구들이여, 어떤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할 때

아직 일어나지 않은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欲漏]가 일어나고

이미 일어난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가 증가하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존재에 기인한 번뇌[有漏]가 일어나고

이미 일어난 존재에 기인한 번뇌가 증가하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무명에 기인한 번뇌[無明漏]가 일어나고

이미 일어난 무명에 기인한 번뇌가 증가하면,

그 법들은 그가 마음에 잡도리하고 있지 않는 법으로서,

마음에 잡도리하지 말아야 할 법들이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그가 마음에 잡도리하고 있는 법으로서,

마음에 잡도리해야 할 법들인가?
비구들이여, 어떤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할 때

아직 일어나지 않은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欲漏]가 일어나지 않고

이미 일어난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가 없어지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존재에 기인한 번뇌[有漏]가 일어나지 않고

이미 일어난 존재에 기인한 번뇌가 없어지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무명에 기인한 번뇌[無明漏]가 일어나지 않고

이미 일어난 무명에 기인한 번뇌가 없어지면,

그 법들은 그가 마음에 잡도리하고 있는 법으로서,

마음에 잡도리해야 할 법들이다.


그가 마음에 잡도리하지 말아야 할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고,

마음에 잡도리해야 할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 일어나지 않은 번뇌들은 일어나지 않고 이미 일어난 번뇌들은 없어진다."

 

11.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한다.(*18)


그가 이와 같이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하면 세 가지 족쇄들이 제거되나니

[불변하는] 존재 더미가 있다는 견해[有身見]와,

의심[疑]과, 계행과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戒禁取]이다.(*19)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봄[見]으로써 없애야 할(*20) 번뇌들이라 한다."

 


(*18)  “사성제를 명상주제로 가진 성스러운 제자는

갈애(taṇhā)를 제외한 삼계의 무더기들을 ‘괴로움(dukkha)’이라고,

갈애를 ‘괴로움의 일어남(dukkha-samudaya)’이라고,

둘 모두 일어나지 않음을 ‘소멸(nirodha)’이라고,

소멸을 성취하게 하는 것(nirodha-sampāpaka)을 ‘도(magga)’라고

이렇게 이전에 스승의 곁에서 습득하여 마음에 잡도리하였다.

 

그는 다음에 위빳사나의 도에 올라서서

[조건[緣, paccya]과 더불어 정신·물질을 무상 등으로 명상하면서 – MAT]

삼계의 무더기들을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한다.

[이렇게 하여 위빳사나의 지혜(vipassanā-ñāṇa)가 일어난다.  - MAT]

예류도까지는 마음에 잡도리함이라는 주제로 위빳사나를 말한 것이다. 
이 괴로움을 일어나게 하고 생기게 하는 갈애를 ‘이것이 일어남이다.’라고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한다.

괴로움과 일어남이 이곳에 이르러서는 소멸하고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이 열반이라 부르는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한다.

소멸을 성취하는 성스러운 팔정도[八支聖道. ariya aṭṭhaṅgika maggā]를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한다.”(MA.ⅰ.72)

 

(*19)  ‘세 가지 족쇄들이 제거되나니 [불변하는] 존재 더미가 있다는 견해[有身見]와,

의심[疑]과, 계행과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戒禁取]이다.’를 주석서는 다음과 덧붙이고 있다.
   “‘세 가지 족쇄’는 20가지 유신견과,

8가지 의심(불, 법. 승, 학습[계]. 과거. 미래, 과거와 미래, 연기법의 8가지를 의심하는 것 – Dha.183)과.

계를 통해 청정해지고 의례의식을 통해 청정해진다고 집착하는 계금취견이다.

네 가지 번뇌 중에서 유신견과 계금취견은 사견의 번뇌(diṭṭhāsava)에 속하기 때문에 번뇌이면서 족쇄다.

그러나 의심은 오직 족쇄이지 번뇌는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것을 ‘봄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āsava dassanā pahātabbā)’라 했는가?

봄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에 포함되기 때문이다.”(MA.ⅰ.73~74) 
여기에 대해서 복주서는 다음과 같이 부연해서 설명한다. 
“마치 바른 사유[正思惟, sammā-saṅkappa]가 그 역할이 통찰지와 비슷하기 때문에

통찰지의 무더기[慧蘊, paññā-kkhandha]에 포함되듯이,

의심도 그 역할이 비슷하기 때문에 번뇌에 포함(āsava-saṅgha)되었다고 알아야 한다.

그리고 ‘네 가지 번뇌’란 아비담마 방식에 따른 것이지, 경의 방식에 따른 것이 아니다.

경에서는 결코 네 가지 번뇌를 설한 적이 없다.”(MAT.ⅰ.63)

 

(*20) “‘봄[見]으로써 없애야 할(dassanā pahātabba)’에서

봄[見, dassana]이라는 것은 예류도(sotāpatti-magga)를 말한다.

그 예류도로써 없앤다는 말이다.

어떻게 예류도를 봄[見]이라 하는가?

처음으로 열반을 보기(nibbāna-dassana) 때문이다.

고뜨라부[種性, gotrabhū]가 그보다 먼저 열반을 보지 않는가?

물론 본다. 보지만 해야 할 일(kattabba-kicca)을 하지 않는다.

족쇄를 버리지 않기 때문에 봄[見]이라 할 수 없다.”(MA.ⅰ.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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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탐욕 | 작성시간 20.03.07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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