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비구들이여, 무상한 [오온에 대해] 괴로움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을 닦고 많이 [공부] 지으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했다.
이것은 무엇을 반연하여 한 말인가?”
14. “비구들이여, 비구가 무상한 [오온에 대해] 괴로움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면,
게으름과 나태함과 방일함과 수행하지 않음과 반조하지 않음에 대해서
강한 두려움의 인식이 생기나니, 예를 들면 칼을 빼든 살인자에 대해서
[강한 두려움의 인식이 생기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무상한 [오온에 대해] 괴로움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무는데도
게으름과 나태함과 방일함과 수행하지 않음과 반조하지 않음에 대해서
강한 두려움의 인식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 비구는 다음과 같이 알아야한다.
‘무상한 [오온에 대해] 괴로움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나의 인식은 닦아지지 않았다.
나에게는 전과는 다른 특별함이 생기지 않았다. 나에게는 수행의 결실이 없다.’라고
그렇게 그는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무상한 [오온에 대해] 괴로움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러서
게으름과 나태함과 방일함과 수행하지 않음과 반조하지 않음에 대해서
강한 두려움의 인식이 생기면, 그 비구는 다음과 같이 알아야한다.
‘무상한 [오온에 대해] 괴로움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나의 인식은 닦아졌다.
나에게는 전과는 다른 특별함이 생겼다. 나에게는 수행의 결실이 있다.’라고
그렇게 그는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무상한 [오온에 대해] 괴로움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을 닦고 많이 [공부] 지으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반연하여 한 말이다.”
15. “‘비구들이여, 괴로움인 [오온에 대해] 무아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을 닦고 많이 [공부] 지으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했다.
이것은 무엇을 반연하여 한 말인가?”
16. “비구들이여, 비구가 괴로움인 [오온에 대해] 무아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면,
알음알이를 가진 이 몸과 밖의 모든 표상들(*1)에 대해
‘나’라는 생각과 ‘내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이 없어져서(*2)
[세 가지] 자만을 뛰어넘어 평화롭게 되고 완전히 해탈하게 된다.(*3)
(*1) “‘밖의 모든 표상들’이란 색깔의 표상, 소리의 표상, 냄새의 표상, 맛의 표상,
감촉의 표상, 영원함 등의 표상, 인간의 표상, 법의 표상 등 이러한 밖의 표상들을 뜻한다.”(AA.ⅱ.206)
(*2) “‘나’라는 견해와 ‘내 것’이라는 갈애와 아홉 종류의 자만이 없다는 뜻이다.”(AA.ⅳ.31)
경들에서 자만은 ‘내가 더 뛰어나다’는 방법, ‘나와 동등하다’는 방법, ‘내가 더 저열하다’는 방법의 셋으로 나타나는데,
이 각각에 다시 뛰어나다, 동등하다, 저열하다는 세 가지가 있어서 모두 아홉 가지가 있다고
주석서들은 설명한다.(VbhA.486;DhsA.372)
(*3) “‘평화롭다(santa)’는 것은 그 적들인 오염원(kilesa)으로부터 평화로워졌다는 뜻이다.
‘완전히 해탈한다(suvimutta)'는 것은 다섯 가지 해탈을 통해 완전히 해탈한다는 뜻이다.”(AA.ⅳ.31)
청정도론에 의하면 다섯 가지 해탈은 “반대되는 것으로 대체함에 의한 해탈(욕계의 유익한 마음),
억압에 의한 해탈(고귀한 마음, 색계 무색계의 마음), 근절에 의한 해탈(도의 마음),
편안히 가라앉음에 의한 해탈(과의 마음), 벗어남에 의한 해탈(열반)이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괴로움인 [오온에 대해] 무아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무는데도
알음알이를 가진 이 몸과 밖의 모든 표상들(*4)에 대해
‘나’라는 생각과 ‘내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이 없어져서
[세 가지] 자만을 뛰어넘어 평화롭게 되고 완전히 해탈하지 못하면
그 비구는 다음과 같이 알아야한다.
(*4) “‘밖의 모든 표상들’이란 색깔의 표상, 소리의 표상, 냄새의 표상, 맛의 표상,
감촉의 표상, 영원함 등의 표상, 인간의 표상, 법의 표상 등 이러한 밖의 표상들을 뜻한다.”(AA.ⅱ.206)
‘괴로움인 [오온에 대해] 무아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나의 인식은 닦아지지 않았다.
나에게는 전과는 다른 특별함이 생기지 않았다. 나에게는 수행의 결실이 없다.’라고
그렇게 그는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괴로움인 [오온에 대해] 무아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으로 많이 머물러서
알음알이를 가진 이 몸과 밖의 모든 표상들에 대해
‘나’라는 생각과 ‘내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이 없어져서
[세 가지] 자만을 뛰어넘어 평화롭게 되고 완전히 해탈하면
그 비구는 다음과 같이 알아야한다.
‘괴로움인 [오온에 대해] 무아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나의 인식은 닦아졌다.
나에게는 전과는 다른 특별함이 생겼다. 나에게는 수행의 결실이 있다.’라고
그렇게 그는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인 [오온에 대해] 무아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을 닦고 많이 [공부] 지으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반연하여 한 말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일곱 가지 인식을 닦고 많이 [공부] 지으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
대림스님 옮김. 앙굿따라니까야 4권 416-41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