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경불원 사념처.mp3
9회 : 오온의 구조
1. 관념의 세계와 실재의 세계
현실적으로 이 세상은 생각으로 만든 관념의 세계와 직접 경험으로 인식하는 실재의 세계가 있다.
위빠사나 수행은 지금여기에서 직접 경험하는 실재에 대한 탐구다.
‘나’라는 개념은 인습적으로 사용하는 관념의 세계이고, 물질의 무더기와 정신의 무더기는 지금 여기에서 살아 움직이는 실재의 세계다.
2. 6근, 6경, 6식과 오온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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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 |
물질의 무더기 (색온, 色身) |
정신의 무더기 (명온, 名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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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온 |
색온(色蘊) |
심소心所- 수온(受蘊), 상온(想蘊, 행온(行蘊) 심(心)- 식온(識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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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근 |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
의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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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경 |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
법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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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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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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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계 (일체, 세계) |
여섯 감관 여섯 대상 |
여섯 가지 아는 마음 |
오온이나 육근, 육경, 육식의 세계는 실재의 세계다.
이 세계는 어떠한 것을 인연(因緣)으로 하여 일어나고 머물고 사라지는가?
3. 오온에 대한 이해
1) 색온 : 물질(지, 수, 화, 풍)의 무더기로 변형되는 성질이 있다.
2) 수온 : 좋고, 싫고, 덤덤한 느낌의 무더기로 마음을 탐, 진, 치로 물들인다.
느낌은 알아차림이 없으면 갈애와 집착의 대상이 되고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
3) 상온 : 지각과 인식의 무더기로 대상에 대한 생각을 일으키고 확장 해석하면서
자신만의 고정관념을 만든다. 이런 고정관념이 시비를 일으켜 괴로움을 만든다.
4) 행온 : 의지작용의 무더기로서 선하거나 불선한 업을 짓고 그 과보를 예약한다.
5) 식온 : 수상행의 도움을 받아 대상을 아는 마음이다.
식은 색‧수‧상‧행을 이끌면서 그들과 함께 일어났다 함께 소멸한다.
4. 조건 지어짐이란 실체가 없다는 말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감관에 부딪친 대상을 마음이 안다는 것이다.
우리는 매순간 여섯 감관으로 대상과 부딪쳐서 대상을 아는 마음이 일어난다.
이때 대상을 경험하는 느낌, 생각, 의지작용이 함께 일어나서 그 순간의 오온이 생긴다.
이 오온은 조건에 의해 생긴 것이다.
한 순간에는 하나의 대상을 아는 마음이 있다. 또 이런 마음의 수명은 한 찰나다.
다음 순간 다른 대상과 촉하여 그 대상을 아는 마음이 새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순간의 지속하는 마음이 없고 한 순간에 두 대상을 받아들이는 마음도 없다.
마음은 한 순간에 하나다.
결국 산다는 것은 조건에 의해 일어나고 사라지는 오온의 흐름이다.
매순간 일어나는 느낌과 생각은 대상을 자신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분별하면서 갈애와 집착으로
업을 짓게 한다. 그 업의 결과로 새로 일어난 오온은 괴로움이다.
이처럼 조건에 의해 일어나고 사라지는 오온에서
대상을 느끼고, 생각하고, 업을 짓는 나(我)라는 실체가 있지 않다는 것이 불교의 중요한 가르침이다.
수행자가 무아를 이해할 때 비로소 ‘나’라고 부르는 이름에 속지 않고, ‘나’를 위한 갈애를 제어할 수 있다.
조건에 의한 정신과 물질의 흐름을 인습적으로 ‘나’라고 부를 뿐, 이 ‘나’에 속한 어떤 실체가 없다.
이것을 이해할 때 모든 괴로움의 뿌리인 ‘나’라는 유신견(有身見)에서 벗어난다.
5. 오온의 실체 없음[無我]
오온이 무아(無我)라는 것은 이 몸과 마음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이 몸과 마음에 변하지 않는 고정된 실체, 나, 자아, 아뜨만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오온은 인연에 의해 생멸하기 때문이다.
무명, 행 → [식(識) ⇌ 명색(名色)] → 육입, 접촉, 느낌 → 갈애, 집착, 업의 생성 → 생, 노사, 우비고뇌의 흐름... 이 있다.
오온은 무명(無明)과 행(行)을 조건으로 일어난다. 다시 오온의 감각기관인 육입이 대상과 부딪치면 느낌이 일어나고, 그 느낌에 대한 갈애와 집착은 다시 업을 생성하며, 이 업을 원인으로 다시 새로운 오온이 일어난다. 이와 같이 오온은 조건에 의해 일어난 것이며, 조건에 의해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무상한 것이며,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며, 이 오온을 좌지우지하는 변하지 않는 고정된 실체가 오온 안에 없다는 것이 실상이다.
위빠사나 수행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수행이다. 여기서 ‘나’라는 것은 오온을 부르기 위한 명칭이며, 그 명칭의 실재인 오온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 그 결과로 오온의 찰나 생멸을 보고 오온의 무상‧고‧무아를 본다. 이것이 위빠사나의 통찰지혜다. 이런 통찰지혜는 ‘나’라는 생각 때문에 일어나는 갈애를 소멸시키고, 아무 것도 집착하지 않는 청정한 행위를 할 수 있게 한다. 이런 ‘나’ 없음을 아는 바른 견해가 팔정도를 이끌어서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열반으로 인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