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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념처 수행

37차 사념처수행 : 2강. 알아차림

작성자한국 명상원|작성시간19.02.18|조회수427 목록 댓글 0



37차 사념처 2강 2019.2.18.MP3



2장. 알아차림(sati) 


                                                                                                                               2019.2.18.
1. 알아차림(sati)의 의미


알아차림(sati)은 현재를 기억하는 것, 현재를 잊지 않는 것, 마음이 현재를 놓치지 않는 것,

지금 마음이 하고 있는 일을 알고 있으며 그 상황의 변화를 지켜보는 것,

즉 지금 마음이 경험하는 정신과 물질[名色]을 있는 그대로 알고 보기 위한 마음의 행위가 알아차림이다.


빨리어 사띠(sati)는 우리말로 기억, 염(念), 마음챙김. 주시. 알아차림, 마음지킴. 수동적 주의집중 등으로 번역된다.
염처(念處)는 여리작의에 의해 사띠를 확고하게 세우는 정념이고,

염처수행은 신수심법에 사띠를 확립해서 일어나는 법과 사라지는 법을 수관(隨觀)하는 것이다.

이때 염처수행으로 인도하는 방도가 정견으로 시작하는 팔정도다.


   분석 경(S47:40) :   [각묵스님 옮김 『상윳따니까야』 제5권 519-521쪽]

2.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마음챙김의 확립과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는 것과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는 것으로 인도하는 도닦음에 대해서 설하리라.”


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마음챙김의 확립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면서 머문다.

느낌에서…마음에서…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면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마음챙김의 확립이라 한다.”


 4.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는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法]을 관찰하며(samudaya-dhamma-anupassī) 머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vaya)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면서 머문다.

느낌에서…마음에서…법에서 일어나는 현상[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면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는 것이라 한다.”


 5.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는 것으로 인도하는 도닦음인가?

그것은 바로 이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도[八支聖道]이니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는 것으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


팔정도의 정견은 이치에 맞는 숙고[如理作意]에 의해 생긴다.

   조건 경(A2:11:8~9) :   [대림스님 옮김 『앙굿따라니까야』 제1권 271-272쪽]

8. "비구들이여, 두 가지 조건은 삿된 견해를 일으키게 한다. 어떤 것이 둘인가?

다른 자의 소리를 듣는 것과 지혜 없이 마음에 잡도리함[非여리작의]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두 가지 조건은 삿된 견해를 일으키게 한다.”


9. "비구들이여, 두 가지 조건은 바른 견해를 일으키게 한다. 어떤 것이 둘인가?

다른 자의 소리를 듣는 것과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함[여리작의]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두 가지 조건은 바른 견해를 일으키게 한다.”



여리작의는 대상을 내 입장에서 보지 않고

단지 조건에 의해 ‘연기된 법(dhamma)’으로 마음(意)에 새기는 것이다.

이렇게 대상을 법으로 대할 때만 대상에 홀리지 않기 때문에 알아차림을 확립할 수가 있다. 


   말룽꺄뿟따 경(S35:95) :  [각묵스님옮김 『상윳따니까야』 제4권 214-224쪽]

14. 형색(~법)을 보고 마음 챙김을 놓아버리고 아름다운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하는 자는

애욕에 물든 마음으로 그것을 경험하고 거기에 묶여 있습니다.

형색(~법)에서 생겨난 여러 가지 느낌들은 그에게서 증장하고

마음을 어지럽히는 욕심과 불쾌함도 그러하나니

이처럼 괴로움을 쌓는 자에게 열반은 아주 멀다고 말합니다.


마음챙기면서 형색(~법)을 보고 형색에 물들지 않는 자는

애욕에 물들지 않은 마음으로 그것을 경험하고 거기에 묶여 있지 않습니다.

그는 형색(~법)을 보고 아울러 느낌도 감수하지만 [괴로움은] 소멸하고 쌓이지 않나니

그는 이처럼 마음 챙기며 유행합니다.

이처럼 괴로움을 쌓지 않는 자에게 열반은 가깝다고 말합니다.


중도(中道)는 마음이 대상을 만나는 그 사이에서 일어난 괴로움을 소멸하는 도(道)를 닦는 것이다.

중도의 시작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sati) 것이다.

지금 경험하는 대상의 정보가 마노에 새겨지면[作意] 사띠는 그것을 기억하고 저장한다.

그래서 사띠는 마노가 작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바른 사띠[正念]잘못된 사띠[邪念]로 갈라진다.

마노가 정신을 차려서 대상을 법으로 여리작의 하면 정견에 의한 정념(正念)이 일어나지만,

마노가 대상에 홀려서 자기입장에서 좋고 싫은 대상으로 분별하는 비여리작의를 하면

사견에 의한 사념(邪念)이 일어난다.

수행자가 대상을 여리작의로 사띠를 확립하면 염각지(念覺支)를 비롯한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가 일어나서 사성제를 통찰하는 앎이 일어난다


2. 알아차릴 대상


수행자가 알아차려야 할 대상은 지금여기(here and now) 자신의 몸(身)과 마음(心)이다.

수행자는 매순간 마음이 경험하는 대상을 내 입장에서 보지 않고,

단지 조건에 의해 일어나고 사라지는 법으로 대한다.

다시 말하면 모든 대상을 단지 알아차릴 대상으로 맞이한다.

그럴 때 법을 꿰뚫어 보는 앎이 생긴다.

마치 카메라 렌즈가 피사체를 찍어오는 것처럼, 관객이 영화를 보는 것처럼,

지금 경험하는 현상을 ‘나’와 분리하여 있는 그대로 두고 알아차린다.

그러면 알아차림이 쌓이고, 이 몸과 마음을 단지 연기된 법으로 보는 정견(正見)이 생긴다.
 
3. 알아차림을 하는 방법


1) 마음을 현재에 두기 : 알기 쉽고 잘 느껴지는 몸에 집중하면 마음은 현재에 있다.
2) 몸을 알아차리고 그 알아차림을 이어가기 : 감각의 변화를 알아차린다.
3) 법의 성품을 통찰하기 : 감각의 변화에서 법의 무상한 성품을 보는 눈이 생긴다. 


4. 알아차림을 하는 수행자의 마음가짐


수행자는 느긋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수행을 해야 한다.

수행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은 수행자를 긴장시키고 들뜨게 해서 알아차릴 대상에 마음을 붙일 수가 없다.

그러면 알아차림을 할 수가 없다.

수행자는 자신이 지금 경험하는 모든 것을 자기 입장에서 자기알음알이로 판단하지 말고

그냥 ‘와서 보라’고 나타난 ‘법’, 즉 알아차릴 대상으로 맞이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이처럼 수행자가 대상을 ‘법’으로 알아차릴 때

비로소 대상에 대한 탐욕과 성냄이 가라앉아 알아차림을 이어갈 수가 있다.


5. 알아차림의 역할


알아차림이 있을 때는 여섯 감각기관[六門]을 지킨다.

그래서 계율이 청정해지고, 마음에 번뇌가 없다. 그럴 때 대상에 마음이 잘 집중된다.

이런 상태에서 대상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보는 앎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알아차림은 팔정도인 계·정·혜를 쌓아가는 출발이다.


6. 알아차림이 잘 안 되는 이유


1) 현재를 대상으로 알아차리는 마음을 내기가 어렵다. 알아차리는 것을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2)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단지 알아차릴 대상인 ‘법’으로 대하는 것이 재미가 없다.
3) 수행을 잘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알아차림을 놓칠 때마다 그것을 문제 삼고 화를 낸다.


7. 알아차림을 잘하려면


1) 현재를 알아차릴 것을 항상 기억하고 ‘지금 내 마음이 무엇을 하는가?’

‘지금 몸의 자세는 어떤가?’ 하고 마음을 새로 내서 알아차림을 다시 시작한다.

이것이 바른 노력이다.
2) 지금 알아차린 것을 자기 식으로 판단해서 마침표를 찍지 말아야 한다. 
3) 수행자가 한 호흡, 한 걸음을 집중해서 알아차리면 그것이 두 호흡, 두 걸음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지금 할 수 있는 만큼 알아차리고, 놓쳤을 때도 다시 그것을 알아차려서

자꾸 알아차리는 힘을 키워나가면 그것이 모여서 있는 그대로 꿰뚫어 보는 앎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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