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행차
9. "그렇게 하겠습니다. 폐하."라고 지와까 꼬마라밧짜는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에게
대답하고서 500마리의 암코끼리와 왕이 탈 코끼리를 준비하게 한 뒤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에게 보고하였다.
"폐하, 탈 코끼리들이 준비되었습니다. 이제 [가실]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는 준비된 500마리의 암코끼리 각각에 여인들을 태운 뒤
자신은 왕의 코끼리에 오른 후 [주위에] 횃불을 들게 하여 왕의 위엄을 크게 갖추어
라자가하를 나서서 지와까 꼬마라밧짜의 망고 숲에 다다랐다.
10.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는 망고 숲이 멀지 않은 곳에서
두려움과 공포로 털이 곤두섬을 느꼈다.
그러자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는 두렵고 떨리고 털이 곤두선 상태에서
지와까 꼬마라밧짜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게 지와까여, 그대가 나를 속이는 것은 아니겠지?
여보게 지와까여, 그대가 나를 기만하는 것은 아니겠지?
여보게 지와까여, 그대가 나를 적들에게 넘기는 것은 아니겠지?
어째서 1,250명의 많은 비구 승가가 머무는데 기침소리도 없고 목을 가다듬는 소리도 없고
아무런 인기척이 없는가?"
"두려워 마십시오, 대왕이시여, 두려워 마십시오. 대왕이시여, 폐하 저는 폐하를 속이지 않습니다.
저는 폐하를 기만하지 않습니다. 폐하, 저는 폐하를 적들에게 넘기지 않습니다. 조금 더 나아가십시오.
대왕이시여, 저기 둥근 천막에 불빛이 비치고 있습니다.“
세존을 친견하고 출가생활의 결실을 질문함
11. 그러자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는 코끼리로 갈 수 있는 곳까지
코끼리로 가서 코끼리에서 내린 뒤 걸어서 둥근 천막의 문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서는 지와까 꼬마라밧짜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게 지와까여, 그런데 어느 분이 세존이신가?"
"대왕이시여, 가운데 기둥을 의지하여 동쪽으로
비구 승가를 마주보고 앉아계신 저 분이 세존이십니다."
12. 그러자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는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한 곁에 섰다. 마가다국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는
한 곁에 서서 침묵하고 침묵하며 호수처럼 맑은 비구 승가를 둘러본 뒤 감흥어를 읊었다.
"지금 이 비구 승가가 고요함을 구족하고 있는 것처럼,
우다이밧다 왕자도 그런 고요함을 구족했으면 좋으련만."
"대왕이여,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합니까?”
“세존이시여, 저는 우다이밧다 왕자를 사랑합니다.
지금 이 비구승가가 고요함을 구족하고 있는 것처럼,
우다이밧다 왕자도 그런 고요함을 구족했으면 좋겠습니다."
13. 그러자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는 세존께 큰 절을 올리고
비구 승가에게 합장인사를 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는 세존께 이와 같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세존께서 제가 여쭙는 것에 대해서
상세한 설명을 해주실 그런 기회를 마련해주신다면 사소한 것이나마
저는 세존께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대왕이여, 그대가 원하는 대로 물어 보십시오."
14. "세존이시여, 세상에는 여러 가지 기술 분야들이 있습니다.
즉 코끼리몰이꾼, 말몰이꾼, 전차병, 궁수, 기수, 군대참모, 보급병, 고위관리, 왕자, 정찰병, 용사,
동체갑옷 입은 자, 하인의 아들, 요리사, 이발사, 목욕 보조사, 제과인, 정원사, 염색인, 직공,
바구니 만드는 자, 항아리 만드는 자, 경리인, 반지 만드는 자, 그 외에 여러 가지 기술 분야들이 있습니다.
그런 기술의 결실은 지금 여기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으며, 그들은 그런 결실로 살아갑니다.
그들은 그것으로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고, 부모를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고,
처자식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고, 친구와 동료를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고,
사문·바라문들에게 많은 보시를 합니다. 그러한 보시는 고귀한 결과를 가져다주고
신성한 결말을 가져다주며 행복을 익게 하고 천상에 태어나게 합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도 이와 같이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출가생활의 결실을 천명하실 수 있습니까?"
15. "대왕이여, 그대는 이런 질문을 다른 사문·바라문들에게도 한 적이 있습니까?"
"세존이시여, 저는 다른 사문·바라문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대왕이여, 만일 그대에게 부담스럽지 않다면 그들이 대답한 대로 말해줄 수 있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앉아계시거나 세존과 같으신 분이 앉아계시는 한
그것은 제게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그렇다면 말해주십시오."
(1) 뿌라나 깟싸빠 – 도덕부정(akirya)
16. "세존이시여, 어느 때 저는 뿌라나 깟사빠를 만나러 갔습니다.
만나러 가서 뿌라나 깟사빠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습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한 뒤 한 곁에 앉았습니다.
세존이시여, 한 곁에 앉아서 저는 뿌라나 깟사빠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깟사빠존자여 세상에는 여러 가지 기술 분야들이 있습니다.
… <§14와 같은 내용> …
그러한 보시는 고귀한 결과를 가져다주고 신성한 결말을 가져다주며 행복을 익게 하고
천상에 태어나게 합니다. 깟사빠 존자여, 당신도 이와 같이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출가생활의 결실을 천명할 수 있습니까?"
17.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묻자 뿌라나 깟사빠는 제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대왕이여, [자기 손으로 직접] 행하고 [명령하여] 행하게 하고 [남의 손 등을] 자르고 자르게 하고
[막대기로] 고문하고 고문하게 하고 [재물 빼앗는 등으로] 슬프게 하고
[다른 이들에게 시켜서] 슬퍼하게 하고 억압하고 억압하게 하고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고 문을 부수어 도둑질하고 약탈하고
주거침입을 하고 노상강도질을 하고 남의 아내를 범하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죄악을 범한 것이 아닙니다.
만일 날카로운 원반을 가진 바퀴로 이 땅의 생명들을 모두 하나의 고깃덩어리로 만들고
하나의 고기무더기로 만들지라도 그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이 생기지도 않습니다.
강가 강의 남쪽 기슭에 가서 중생을 칼로 죽이고 죽게 하고, 자르고 자르게 하고,
고문하고 고문하게 하더라도 그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으며 죄악이 생기지도 않습니다.
강가 강의 북쪽 기슭에 가서 보시하고 보시하게 하고 공양하고 공양하게 하더라도
그로 인한 어떤 공덕도 없으며 공덕이 생기지도 않습니다.
보시하고 자신을 길들이고 제어하고 바른 말을 하더라도 공덕이 없으며
공덕이 생기지도 않습니다.'라고."
18. "세존이시여, 참으로 저는 뿌라나 깟사빠에게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출가 생활의 결실을 물었는데 그는 [업] 지음이 없음(*1)을 설명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망고 나무에 대해서 물었는데 빵나무를 설명하고,
빵나무에 대해 물었는데 망고를 설명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참으로 저는 뿌라나 깟사빠에게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출가 생활의 결실을 물었는데 그는 [업] 지음 없음을 설명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렇지만 제게는 '어찌 나 같은 왕이 나의 영토에 거주하고 있는
사문이나 바라문을 경시할 수 있겠는가.'라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2)
세존이시여, 그래서 저는 뿌라나 깟사빠의 말을 기뻐하지도 않았고 비난하지도 않았습니다.
기뻐하지도 비난하지도 않은 채, 마음이 언짢았지만 언짢은 것에 대한 어떤 말도 내뱉지 않고,
그의 말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냉소하지도 않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나왔습니다."
(2) 막칼리 고살라 – 윤회를 통한 청정(saṃsāra-suddhi)
19. "세존이시여, 한번은 막칼리 고살라(*3)를 만나러 갔습니다.
만나러 가서 막칼리 고살라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습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한 뒤 한 곁에 앉았습니다.
세존이시여, 한 곁에 앉아서 저는 막칼리 고살라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살라 존자여 세상에는 여러 가지 기술 분야들이 있습니다.
… <§14와 같은 내용> …
그러한 보시는 고귀한 결말을 가져다주고 신성한 결말을 가져다주며 행복을 익게 하고
천상에 태어나게 합니다. 고살라 존자여, 당신도 이와 같이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출가생활의 결실을 천명하실 수 있습니까?'"
20.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묻자 막칼리 고살라는 제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대왕이여, 중생들이 오염되는 것에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습니다.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오염됩니다.
중생들이 청정하게 되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습니다.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청정하게 됩니다.
자신의 행위도 남의 행위도 인간의 행위도 없습니다.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고 근력도 없고 분발도 없습니다.
모든 중생들과 모든 생명들과 모든 영혼들은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지 못하고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이 운명과 우연의 일치와 천성의 틀에 짜여서
여섯 종류의 생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습니다.
그런데 대왕이여, 1백4십만 가지의 중요한 모태가 있고, 다시 육천육백 가지 [모태]가 있습니다.
다시 오백 가지의 업이 있고, 다섯 가지, 세 가지의 업이 있고, 완전한 업이 있고,
반쯤의 업이 (*4) 있습니다.
62가지 길이 있고 62가지 중간 겁이 있습니다.
여섯 가지 종(種)이 있고 8가지 인간계가 있고 4,900의 생명체가 있고
4,900의 유행승이 있고 4,900의 용이 있습니다.
2천의 감각기관이 있고, 3천의 지옥이 있고, 36가지 티끌의 요소가 있고,
일곱 가지 인식이 있는 모태와 일곱 가지 인식이 없는 모태가 있고,
일곱 가지 신, 일곱 가지 인간, 일곱 가지 유령, 일곱 가지 호수, 일곱 가지 [큰] 융기물,
7백 가지 [작은] 융기물, 일곱 가지 갈라진 틈, 7백 가지 [작은] 갈라진 틈, 일곱 가지 [중요한] 꿈,
7백 가지 [사소한] 꿈이 있습니다. 그리고 8백4십만의 대겁(大劫)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그것을 모두 치달리고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끝을 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는 계나 서계(誓戒)나 고행이나 청정범행(brahmacāriya)으로
[아직] 익지 않은 업을 익게 하겠다.'라거나 '익은 업을 점차로 없애겠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즐거움과 괴로움의 크기가 정해져 있는 이 윤회에는 아무것도 줄이거나 늘일 수 없으며
아무것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킬 수 없습니다.
마치 감긴 실타래를 던지면 [실이 다 풀릴 때까지] 굴러가는 것처럼
그와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같이 치달리고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끝을 냅니다.'라고."
21. "세존이시여, 참으로 저는 막칼리 고살라에게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출가 생활의 결실을 물었는데 그는 윤회를 통한 청정(*5)을 설명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망고 나무에 대해서 물었는데 빵나무를 설명하고,
빵나무에 대해 물었는데 망고를 설명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참으로 저는 막칼리 고살라에게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출가 생활의 결실을 물었는데 그는 윤회를 통한 청정을 설명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렇지만 제게는 '어찌 나 같은 왕이 나의 영토에 거주하고 있는
사문이나 바라문을 경시할 수 있겠는가.'라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래서 저는 막칼리 고살라의 말을 기뻐하지도 않았고 비난하지도 않았습니다.
기뻐하지도 비난하지도 않은 채, 마음이 언짢았지만 언짢은 것에 대한 어떤 말도 내뱉지 않고,
그의 말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냉소하지도 않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나왔습니다."
(*1) akiriya는 ‘행위 없음’이란 일차적인 뜻을 가진다.
주석서와 복주석서에 의하면 나쁘거나 공덕이 되는 업 지음(행위, kiriya, kamma)과
그 과보(vipāka)를 부정하는 것으로 설명되어 있다.(DA.ⅰ.160)
그래서 그의 사상은 도덕부정론이라고 정리된다.
(*2) 인도 역대 모든 왕조의 큰 특징들 가운데 하나를 들라면 종교인을 숭상하는 것이다.
종교인들이 어떤 사상을 가지고 어떤 종교의식을 집행해도 왕들은 그들에게 관대했다.
아자따삿뚜 왕의 이런 말 속에도 왕들의 종교인에 대한 예우 정신을 엿볼 수 있다.
그에 비해 국가가 종교를 관리해온 중국불교는 국가불교라는 틀을 벗어나서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이 인도왕조와 중국왕조의 큰 차이점이다.
(*3) 막칼리 고살라(Makkhaligosāla)의 사상은 본 경에서 윤회를 통한 청정으로 정리되고 있다.
그러나 본문을 통해서 보면 그의 사상은 한마디로 운명론(niyati)으로 정리할 수 있다.
본문에서는 이미 결정된 것을 여러 가지로 나열하고 있다.
모든 것은 이미 운명으로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노력으로도 이를 바꿀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선행이나 악행을 저질러도 그것 때문에 운명이 바뀌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증지부』에서 그는 업 지음도 노력도 업의 결과도 모두 부정하기 때문에
그의 사상이 가장 위험하다고 경고하시며(A.ⅰ.33) 그의 사상이 가장 천박하다고 꾸짖으신다.(A.ⅰ.206)
(*4) “몸으로 짓는 업과 말로 짓는 업은 완전한 업이고,
마음으로 짓는 업은 반쯤의 업이라는 것이 그들의 신조라고 한다.”(DA.ⅰ.162)
(*5) 윤회를 통한 청정(saṃsāra-suddhi). 주석서에서는
“많이 윤회한 뒤 청정하게 된다.”(MA.ⅱ.51)라고 설명하고 있다.
모든 것은 이미 다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결정되어 있는 대로 윤회할 만큼 윤회한 뒤에 해탈한다는 의미이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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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해맑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9.07.06 마가다국의 왕 아자따삿뚜가 붓다를 친견하고 대담을 하는 가운데...
그 당시 인도의 육사외도의 가르침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1) 뿌라나 깟싸빠 –행위의 과보가 없다는 도덕부정론 자
2) 막칼리 고살라 – 운명론으로 윤회를 통한 청정을 주장함. -
작성자♡빤냐 작성시간 19.07.16 스승님! 고맙습니다.
덕분에 잘 읽었습니다.댓글의 요약도 많은 도움이 됬고요~~^^
이 법보시의 공덕으로 도과를 성취하시길 기원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