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여행을 하면서 느끼지만, 여행의 매력은 그곳의 식도락에 있다. 그래서 언제나 꼭, 현지에서 유명하다는 음식을 맛보려 애쓴다. 여수에 이어 보령의 오천항, 대천 해수욕장에서 시간을 보낸 우리는 맛있는 해산물 요리를 맛보며 여행을 즐겼다. 해산물을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니지만 바닷가와 가까운 동네에 왔으니 그곳의 매력을 느끼기 위해 자연스럽게 맛보게 된 것이다. 그렇게 산지에서 맛보는 해산물은 특별히 더 맛있게 느껴졌다.
바닷가와 가까운 마을에서 맛봐야 할 것들
충청수영성의 여유로운 풍경을 보기 전에 우선 고픈 배를 달래기로 하고 주변의 식당에 들렀다. 역사적인 유적이 있는 오천항은 키조개로 유명한 곳이었다. 주로 잡히는 어종은 선어류, 소라, 개조개, 홍합, 키조개이지만, 키조개 자체가 흔치 않은 특산물이어서 그런지 키조개를 중심으로 한 메뉴들이 많았다. 이곳의 키조개 사랑은 매해 4~5월에는 키조개 축제가 열리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항구에 있는 식당마다 홍보하는 키조개 샤브샤브, 키조개 두루치기 같은 메뉴들이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고민 끝에 결국 키조개 두루치기를 맛보기로 하고 한 작은 식당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방문한 식당은 작은 규모이지만 현지인들에게 유명한 곳인지 끊임없이 사람들이 식사를 하러 오는 곳이었다. 여느 오천항의 식당들처럼 주메뉴는 키조개 두루치기, 키조개와 삼겹살을 함께 먹는 메뉴 등, 키조개가 중심이었다. 주문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오는 반찬에는 관자를 동태전처럼 부친 전이 눈길을 끌었다. 관자는 그저 구워 먹는 것으로만 알았던 우리에게 신기하기 그지없는 메뉴였다. 관자 전과 더불어 나오는 회 무침 또한 입맛을 돋우기 그만이었다.
이어서 나온 두루치기는 푸짐하게 나와 이곳의 인심을 느끼게 했다. 정갈하게 나온 음식을 어떻게 먹어야 하나 고민했지만, 먹는 법은 다 비슷했다. 끓이고 섞기만 하면 완성이다. 키조개라는 식재료가 특이할 뿐, 먹는 방법은 여느 두루치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맛은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매콤 달콤한 양념이 모든 재료와 어울려 무척 맛있었다. 음식을 거의 다 먹고 '한국인의 디저트'인 볶음밥까지 먹고 나오니 무척 만족스러웠다. 왜 오천항에서 키조개를 먹어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오천항에서만 키조개를 맛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천항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머드 축제로 유명한 대천 해수욕장에서도 키조개를 맛볼 수 있다. 예전에는 조개구이로만 유명했던 해수욕장에 이제는 키조개를 중심으로 한 삼합이 유행하고 있었다. 해변에 늘어선 호텔 뒤에 생겨난 '머드 먹자골목'에서는 키조개 삼합을 파는 집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가게에 들어서니 모든 사람들이 지글거리는 불판을 두고 신나게 삼합을 즐기고 있었다. 삼합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철판 위에 다양한 재료들이 줄과 열을 맞춰 놓여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키조개 삼합은 우삼겹과 키조개 관자, 전복이 주를 이루고, 이에 걸맞은 새우나 가리비, 각종 채소들이 맛을 더한다. 처음엔 철판의 규모가 어마어마해서 과연 이걸 다 먹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구우면서 하나씩 먹다 보니 자연스럽게 판이 비워졌다. 고기와 해산물, 그리고 채소를 구워 먹는 것은 맛이 없으려야 없을 수 없는 조합이었다. 키조개 두루치기에 이어, 키조개의 매력에 대해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키조개의 매력도 엄청나지만, 일단 대천 해수욕장에 왔으면 당연히 게국지를 먹어야 한다. 몇 년 전 우연히 대천 해수욕장에 들렀을 때 맛보았던 게국지의 맛을 잊지 못해서 이번 여행에서도 게국지를 먹었다. 게국지는 충청남도 향토음식으로 절인 배추와 무에 게장 국물을 더해 만든 김치의 일종이다. 소금 대신 게장 국물이 들어갔기에 짭조름하고 개운한 맛이 일품이라고. 하지만 대천 해수욕장에서 팔고 있는 게국지는 이 김치가 아닌, 게와 겉절이 김치를 넣고 끓인 게 요리를 가리킨다. 이 요리가 김치보다 더 대중적인 요리에 속한다. 꽃게탕과 유사하지만 겉절이 김치와 늙은 호박을 넣어 달큼하면서도 개운한 감칠맛이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다.
몇 년 전에 들렀던 가게에 다시 들러 맛본 게국지의 맛은 그때의 추억을 연상시켰다. 배추와 꽃게가 담겨있는 국물의 맛은 저절로 탄성이 나오게 했다. 진하지만 개운하다. 여행을 하면서 다양한 해산물을 맛보았지만 이렇게 마음에서부터 흡족함이 우러러 나오는 진한 맛은 맛보기 힘들 것이다. 다시 한번 추억의 맛을 되새김질하며, 대천 해수욕장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지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카페 탐방하기
맛있는 식사를 즐겼다면, 이어서 그곳에서 유명한 카페를 들러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보령 주변에는 이곳의 장점을 살린 카페들이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고 있었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거대한 우유갑이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우유 창고'였다. 거인이 길에 툭, 하고 놓은 듯한 우유갑은 이곳의 건물로 사용된다. 이색 포토존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이끈 우유 창고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이곳의 '우유'다. 바로 보령에서 생산되는 유기농 우유로 만든 메뉴를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령에서 유기농 우유와 유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보령 우유는 국내 유기농 우유의 30%를 차지하고 있는 농업회사이다. 보령 우유에서 생산된 우유로 만든 유제품은 스타벅스, 한살림 등 대형 유통 업체에 납품된다. 보령 우유는 이에 그치지 않고 목장체험, 유가공 공장 견학, 유제품 만들기와 같은 체험을 즐길 수 있는 우유 창고를 만들어냈다. 거대한 우유갑을 비롯, 이곳에서는 독특한 패키지가 인상적인 우유갑을 만날 수 있으며 우유를 생산하는 젖소를 실제로 볼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해 건초주기, 아이스크림 만들기와 같은 체험 프로그램은 잠시 중단되었지만 우유로 만든 아이스크림과 음료를 맛보며 주변에서 휴식을 취하는 소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충분한 즐길 거리다. 유기농 우유로 만든 메뉴는 고소하면서도 진했고, 풀밭에 있는 소들에게서 여유로움이 느껴져 마음이 편안해졌다. 카페이면서도 목장인 곳이기에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감성이었다.
보령의 특산품을 활용한 카페에 이어서 보령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카페에 들렀다. '갱스 커피'는 예전에 보령의 석탄 산업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1970-80년 대 보령은 석탄 광산으로 유명한 곳이었고 성주산도 그중 하나였다. 이 흔적은 성주리에 있는 석탄 박물관에서도 만나볼 수 있지만, 갱스 커피에서도 확연하게 느껴볼 수 있다. 광부들을 위한 샤워장, 탈의실이 있던 이 건물은 이제 운치 있는 풍경을 배경으로 감성적인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명소로 유명해졌다. 산 중턱에 있어 가는 길이 쉽지 않지만, 독특한 풍경을 즐기러 오는 이들로 붐빈다. 1층은 카페로, 2층은 갤러리로 운영되어 눈과 입을 즐겁게 하고 있다.
건물 앞에 있는 연못과 분수대는 이곳을 더욱 멋스럽게 느끼게 하는 요소이다. 낡았지만 느낌 있는 건물과 더불어 통일되지 않은 소품들로 꾸며진 공간에서 세련된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어느 곳이나 배경으로 해도 멋진 사진이 나오지만,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입구 옆에 있는 공간에 있다. 공간 너머로 보이는 연못과 징검다리, 그리고 산이 연출하는 풍경은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에서는 보령에서 꼭 가봐야 하는 카페로 인정받고 있는 중이다.
보령이라는 곳에 두세 번 가게 되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가면 갈수록 이곳에는 볼거리와 놀 거리, 먹을거리가 정말 많다는 것이다. 여행을 하기 전에 가보리라 마음먹었던 곳을 다 들르지 못하고 온 것이 새삼 아쉬울 뿐이다. 아마도 조만간 다시 보령에서 시간을 보내려 떠나지 않을까. 다시 간다면 보령에서 오랜 시간 동안 머물며 그 매력을 흠뻑 느끼고 올 것이다.
*여행지 정보
하니쌈밥
위치 충남 보령시 오천면 충청수영로 839-10
운영시간 매일 10:00-21:00
대천키조개삼합
위치 충남 보령시 해수욕장8길 51
운영시간 매일 00:00-24:00
신선한게국지해물탕간장게장
위치 충남 보령시 해수욕장4길 76
운영시간 매일 08:30-21:00
우유 창고
위치 충남 보령시 천북면 홍보로 574
운영시간 매일 11:00-19:00
갱스 커피
위치 충남 보령시 청라면 청성로 143
운영시간 매일 11:00-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