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7. 주일예배설교
이사야 8장 5~15절
이 길로 가지 마시라!
■ 얼마 전 대구에 내려갈 일이 있었는데, 동행한 목사님 차를 타고 가게 되었습니다. 크루즈 기능이 있는 차였습니다. 크루즈-자율주행 기능을, 옆에서 보니 여간 편리하지 않더군요. 운전하시는 분들은 공감할 텐데, 장시간 운전하는 것은 참 피곤한 일입니다. 이런 때, 자율주행이 여간 편리하지 않더군요.
그런데 고속도로 곳곳에서 자율주행에 대한 과신을 경고하는 문구를 자주 만났습니다. “크루즈 기능 맹신, 대형 사고의 원인”. “크루즈 기능 과의존 주의, 전방 주시는 필수”. 편리해서 좋기는 해도 조심해야 한다는 경고에, ‘역시 내 차가 좋군.’이라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경계해야 할 것 중 하나가 ‘좋음’입니다. ‘참 좋다, 참 부럽다,’고 하는 ‘좋음’입니다. 좋아 보이고, 부러워 보이는 것들이 신앙생활에서 경계해야 할 것들입니다. 이유인즉, 좋아 보이고, 부러워 보이는 것이 오히려 나쁜 것이고, 잘못된 것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이 이를 가르치십니다.
본문은 기원전 8세기 남유다 왕국에서 활동한 이사야 선지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특히 자신들의 눈에 좋아 보이는 대로 사는 유다 백성을 향해, 맹렬히 분노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받는 이사야에게, 이렇게 사는 백성의 길로 가지 말 것을 지시하십니다. 이는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지시하시는 것입니다. 무슨 내용인가요?
■ 6절에서 보다시피, 유다 백성들은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했습니다. 아니, 흥분하고 열광했습니다. 르신은, 당시 이스라엘을 위협하던 강력한 국가인 아람(시리아) 왕의 이름입니다. 그리고 르말리야의 아들은, 북이스라엘의 왕이었던 베가를 가리킵니다.
도대체 이들은 왜 르신에게 흥분했고, 르말리야의 아들 베가에게 열광했을까요? 실로아의 물이 천천히 흘렀기 때문입니다. 실로아는 실로암의 다른 이름으로, 예루살렘 성 내부에 있던 작고 조용한 샘물입니다.이 샘물이 천천히 흐른다는 이유로 싫어했고, 르신에게 흥분하고 르말리야의 아들 베가에게 열광한 것입니다.
자, 이 현상 속에 있는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를 업신여기고, 강력한 군사력과 앝은 인간적 술수에 매료된 것입니다.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아람(시리아) 왕 르신에 비해, 하나님이 초라해 보였습니다. 작고 조용히 흐르는 샘물 같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인간적 술수로 위기들을 재빠르게 모면하는 르말리야의 아들 베가에 비해,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는 너무 천천히 흘렀고 느렸습니다.
바로 이러한 태도를 강하게 질책하신 것입니다. 눈앞에 보이는 강력한 군사력과 당장의 이익으로 보이는 권모술수가 너무 좋아 보여,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를 무시하고 저버린 유다 백성의 태도에 강한 질책을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모습은 유다 백성의 모습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화려하고 좋아 보이는 것, 힘세고 좋아 보이는 것에 마음을 뺏깁니다. 부러워합니다. 그래서 화려하지 않지만, 끊임없이 생명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를 놓치고 맙니다. 결국, 하나님을 업신여깁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바라보지 않습니다.
이러한 태도/모습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 7~8절입니다. “그러므로 주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을 뒤덮을 것이라. 그 모든 골짜기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가득하여 목에까지 미치리라. 임마누엘이여, 그가 펴는 날개가 네 땅에 가득하리라 하셨느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무슨 뜻입니까? 이런 뜻입니다. “그래? 좋다. 그렇게 화려하고 힘센 것 좋아하니 진짜배기 한 명 소개해 주마. 앗수르 왕이다. 앗수르 왕이 너를 덮치고 지배할 것이다. 너의 숨통을 조여가며 그의 힘의 위력이 어떠한지 보여줄 것이다. 기대하거라!”
이것은 화려한 것, 힘세 보이는 것에 열광하는 유다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실력행사이십니다. 진짜 힘이 무엇이며, 그 힘이 어디 있는지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그렇습니다. 하나님만이 진짜 힘이시고, 하나님으로부터만 힘이 주어집니다.
이것이 앗수르 왕을 등장시키시는 이유입니다. 앗수르 왕은 자신의 힘과 야욕으로 일을 치른다고 생각하겠지만, 앗수르 왕을 움직이시는 것은 하나님의 힘입니다. 8절 하반절입니다. “임마누엘이여, 그가 펴는 날개가 네 땅에 가득하리라 하셨느니라.” 아시다시피, 임마누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드러내시지 않지만, 끊임없이 생명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드러내지 않으시던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시고는, 그 강렬한 능력을 쏟아부으십니다. 앗수르 왕을 앞세워 하나님의 강렬한 힘을 드러내십니다. 진짜 힘이 무엇이며, 그 힘이 어디 있는지 보여주십니다. 앗수르 왕을 앞세워 말입니다.
이렇게 힘을 드러내시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9~10절입니다. “너희 민족들아, 함성을 질러 보아라. 그러나 끝내 패망하리라. 너희 먼 나라 백성들아, 들을지니라. 너희 허리를 동이라. 그러나 끝내 패망하리라. 너희 허리에 띠를 띠라. 그러나 끝내 패망하리라. 너희는 함께 계획하라. 그러나 끝내 이루지 못하리라. 말을 해 보아라. 끝내 시행되지 못하리라.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니라.”
자,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패망입니다. 끝내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는 패망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을 당할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일을 도모해도, 아무리 떠들어 재껴도, 하나님을 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힘을 무시한 사람들의 결과는 패망입니다. 끝내 패망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은 하나님이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나라들에 대해서도 똑같이 건네시는 경고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무시하는 태도에 앗수르 왕을 사용하시지만, 그 앗수르 왕에 대해서도 동일한 경고를 하신 말씀입니다. “너희도 나를 무시하면 이렇게 된다!”
그렇다면 도구로 사용하신 앗수르 왕에게도 동일한 경고를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대제국을 꾸린 앗수르 왕도 하나님 앞에 하나의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대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백성을 함부로 여기지 말라는 경고이십니다. 역설적이죠? 심판을 하시면서도 챙기시니 말이죠?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을 정신 차리게 하시려고 앗수르 왕을 쓰신 것일 뿐, 앗수르 왕을 돋보이게 하시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앗수르 왕의 쓰임은 그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살리시기 위한 고육지책이십니다. 하나님의 아픔이십니다. 그렇기에 이 경고는 앗수르 왕을 향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누구이든 하나님 앞에는 작고 초라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유가 무엇이든 하나님 앞에 나대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이 경고의 말씀 직후 이사야에게 11절을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강한 손으로 내게 알려 주시며 이 백성의 길로 가지 말 것을 내게 깨우쳐 이르시되” 무슨 말씀을 주셨습니까? “이 백성의 길로 가지 말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강하게 말씀하셨지만, 마치 신신당부하시듯 두 손을 꽉 붙잡고 하신 말씀이셨습니다. “이 백성의 길로 가지 말라.”
이렇게 신신당부하시고는, 이 백성이 도대체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 설명하셨습니다. 12절입니다. “이 백성이 반역자가 있다고 말하여도, 너희는 그 모든 말을 따라 반역자가 있다고 하지 말며,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유다 백성은 반역자가 있다고 말하며, 무엇인가를 두려워 하였습니다. 바로 그 말과 두려움에 동조하지 말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유다 백성이 말하는 반역자는 누구인가요? 늘 자신들을 해칠 음모를 꾸미고 있는 누군가입니다. 그래서 이 반역자 때문에 늘 두렵고 떨린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말에는 “그래서 우리가 얌전하신 하나님보다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아람 왕 르신이 부럽고, 일이 늦으신 하나님보다 권모술수에 빠른 르말리야의 아들 베가가 부러운 것입니다.”라는 속내가 들어있습니다.
바로 이 속내를 알고 계신 하나님이시기에 12~13절을 말씀하십니다. “이 백성이 반역자가 있다고 말하여도 너희는 그 모든 말을 따라 반역자가 있다고 하지 말며,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를 너희가 두려워하며 무서워할 자로 삼으라.”
이해 되시죠? 사실 그들은 반역자가 있다고 해도 전혀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들과 늘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 눈이 감겨 있고, 육적 눈만 떠져 있기에 진짜 힘이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육적 눈만 떠져 있으니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 베가만 보이는 것입니다. 이들도 모두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데 말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처한 현실입니다. 진짜 힘이신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늘 우리와 함께 계심에도 두려움과 부러움에 싸여 있습니다. 13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를 너희가 두려워하며, 무서워할 자로 삼으라.”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정작 두려워하고 무서워해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실을 14~15절을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가 성소가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걸림돌과 걸려 넘어지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함정과 올무가 되시리니, 많은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걸려 넘어질 것이며, 부러질 것이며 덫에 걸려 잡힐 것이니라.”
“그가 성소가 되신다.”라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은신처가 되신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의 힘을 부러워하는 자들에게는 걸림돌, 함정, 올무, 덫이 되신다는 뜻입니다. 혹시 이 말씀을 “어디, 너희 한 번 골탕 좀 먹어 봐라.”라는 뜻으로 읽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은 “나는 성소다.”에 강조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소로서 우리를 지키시고 챙기시는 데 온 힘을 쏟으시지, 걸림돌, 함정, 올무, 덫이 되어 우리를 야단치시는 데 온 힘을 쏟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임마누엘이십니다. 사랑이십니다.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이십니다.
■ 바라기는 세상의 그 어떤 힘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진짜 힘은 하나님에게만 있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화려함에도 현혹되지 마십시오. 하나님만이 성소이시고 은신처이십니다. 하나님만이 나를 온전히 지켜주시고 챙겨주실 수 있습니다.
그들이 부러워하는 이 길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이 길이 아닙니다. 예수님만이 길이십니다. 이 사실을 그 어떤 상황에서도 기억하시길 소망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