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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예배가 하늘의 예배가 되길 2026. 6. 21. 주일예배설교

작성자이동춘|작성시간26.06.21|조회수24 목록 댓글 0

2026. 6. 21. 주일예배설교

요한계시록 4장 1~11절

 

우리의 예배가 하늘의 예배가 되길

 

습관은 익숙한 편리함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기에 익숙해진 당연함입니다. 그런데 습관 중에는 고쳐야 할 습관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지 말았어야 하는 데 무의식적으로 습관이 된 경우입니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상대방이 말할 때 딴청을 하는 듯한 태도라든가, 식사 자리에서, 트림하는 태도 등과 같은 것은 고쳐야 할 습관입니다.

 

이렇듯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고쳐야 할 익숙한 습관들이 있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그냥 놔두고 있는, 편리함에 익숙한 습관들이 꽤 됩니다만, 오늘은 그중 심각한 것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예배>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은 늘 드리는 예배, 익숙하고 변함없는 공간에서 드리는 예배이기에 몸에 밴 습관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물론 예배가 습관이 되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예배가 몸에 배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주일이 되면 자동적으로 예배를 생각하고, 몸이 예배당을 향해 가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예배가 형식적이 되고, 무감각해진다면, 이는 잘못된 습관이 정착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받고 싶어 하시는 예배는, 형식이 아닌 마음의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자의 태도가 아니라면, 이는 잘못된 습관이 몸에 밴 것입니다. 고쳐야 할 태도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의 예배 태도를 점검하고, 혹시 잘못된 예배 태도가 습관화됐다면, 이를 고쳐야겠습니다. 이를 위해 본문이 보여주시는 하늘 예배를 모델로 삼겠습니다. 하늘 예배는 최고의 예배입니다.

 

본문인 요한계시록 4장이 보여주시는 예배는 <하늘 예배>입니다. 지상에서는 볼 수 없는 최고의 예배입니다. 그래서 혹시 지상에서는 볼 수 없는데, 이러한 실천 불가능한 예배를 왜 소개하느냐고 의아해할 수 있습니다. 이해합니다. 과연 실천 불가능한 이 예배를 왜 보여주셨을까요?

 

모델입니다. 지상에서는 실천 불가능한 예배이지만, 이것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최고의 예배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지상의 우리를 주눅 들게 하시려는 목적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태도로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최고의 예배인 하늘 예배를 본으로 삼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정성스럽게 예배를 준비하고 드려야 하는지를 아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이 앎을 신앙으로 승화시키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으로 하늘 예배를 만나려는 것입니다.

 

하늘 예배를 경험한 사람은 요한이었습니다. 사랑의 사도라고 인정받는 요한이었습니다. 요한복음, 요한1, 2, 3,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쓴 요한이었습니다.

 

이 하늘 예배를 경험한 곳은 유배지 밧모섬이었습니다. 죽음을 기다리는 그곳 유배지에서, 영원한 생명을 살게 될 그 하늘의 예배를 경험한 것입니다. 이 경험은 복음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은 그에게 주신 위로의 선물이었습니다. “요한아, 애썼다. 고맙다. 여기서 곧 만나자.” 참으로 이것은 우리 모두를 향한 도전입니다.

 

요한에게 보여주신 하늘 예배는 모든 것이 보좌에 앉으신 분을 향해 있었습니다. 앉으신 분의 모습은 위대하지만 아름다웠고, 그 주위는 장엄했습니다. 보좌를 향해 둘러선 모든 것들은 정결하고 기품이 있었고, 보좌에 앉으신 분을 향한 한 없는 사모함이 있었습니다.

 

2~6절입니다.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림이 그려지시죠? 이 위엄과 장엄함, 그러나 아름다움! 보좌에 앉으신 분을 향한 존경 가득한 경배와 진심 어린 사모함! 이것이 하늘 예배의 분위기입니다. 보좌에 앉으신 분을 향한 존경, 이 예배에 참여하고 있다는 감격, 보좌를 향한 진정한 경배가 하늘 예배입니다.

 

과연 우리의 예배는 어떤가요? 그리고 나의 예배는 어떤가요? 보좌에 앉으신 분, 하나님을 향한 존경이 우리의 예배, 나의 예배에 있는지요? 이 거룩한 예배에 참여하고 있다는 감격이 우리의 예배, 나의 예배에 있는지요? 그리고 우리의 예배, 나의 예배에는 하늘 보좌를 향한 진정한 경배가 있는지요? 우리 모두, 자신에게 물어봅시다: 우리의 예배, 나의 예배는 어떠한가?

 

하늘 예배를 경험한 요한은, 앞뒤로 눈들이 가득한 각각 여섯 날개를 가진 네 생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합니다. 7~8절입니다.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

 

성경학자들에 따르면, 네 생물은 각 복음서를 상징합니다. 마태복음은 사자 복음이고, 마가복음은 송아지 복음이고, 누가복음은 사람 복음이고, 요한복음은 독수리 복음이라고 합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의 왕이자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의 권위와 영광을 강조하여 사자로 상징됩니다. 마가복음은 우리를 위해 섬기는 종으로 오셔서 고난받고 헌신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강조하여 송아지로 상징됩니다. 누가복음은 완전한 인간으로서의 예수님의 성품과 족보를 강조하여 사람으로 상징됩니다. 요한복음은 하늘에서 내려오신 신성(神性)과 영적 통찰력을 강조하여 독수리로 상징됩니다.

 

예수님의 지상 사역의 내용을 설명하는 이 네 생물들은, 보좌 위에 앉으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경배합니다. 8~9절입니다.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 그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릴 때에

 

네 생물의 경배의 내용은 거룩하신 분, 영원하신 분이신 예수님을 향한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려드린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예배에는 오롯이 예수님이 보여야 합니다. 그분의 거룩하심과 영원하심이 보여야 합니다. 그 거룩하심과 영원하심을 향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려드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예배에는 오롯이 예수님이 보이고 있습니까? 그분께만 영광과 존귀와 감사가 돌려지고 있습니까?

 

네 생물이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릴 때, 같이 있던 24명의 장로들이 보인 경배는 또 하나의 아름다움입니다. 10~11절입니다.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24명의 장로들이 보인 태도에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렸다는 것입니다. 이 관은 면류관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씌워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벗어 도로 보좌 위에 앉으신 분 앞에 내어드렸습니다. 무슨 행위일까요? 이것은 자신의 자랑, 명예, 주권을 내려놓은 것을 의미합니다. 관을 받은 것이 자랑스럽지만, 이 자랑마저도 주님의 것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결국, 이 귀한 명예도, 주권도 다 주님의 것임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배는 자신의 자랑, 명예, 주권을 주님 앞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아니, 다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내 것이 아님을 고백하며, 내 것처럼 내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내 모든 소유, 내 모든 삶, 내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임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행위가 예배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배가 아닙니다. 형식적인 예배, 무감각한 예배,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예배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예배를 계속 드리시겠습니까? 아니면 내 모든 소유, 내 모든 삶, 내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임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예배를 드리시겠습니까? 비록 땅에서 드리는 예배지만, 하늘 예배의 맛과 멋과 향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라기는, 우리의 예배가 하늘의 감격과 감동이 있는 예배, 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께 다 드리는 헌신이 있는 예배, 땅의 신념이 아닌 하늘의 소망으로 가득한 예배가 되길 소망합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진정한 하늘의 예배자로서 거듭나길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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