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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스러웠다. 흑인들을 한자리에서 그렇게 많이 만나는 경험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이내 그들이 내미는 손이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고 그들의 미소에서 진심이 담긴 반가움을 느끼며 나 또한 그들에게 반가운 인사와 미소를 건넬 수 있었다. 나는 지금 아프리카 노동자들의 편안한 안식처 한길교회에 와 있다.
경기도 고양시 오금동 한적하다 못해 조용한 시골길을 따라 교회가 보일 그때까지 한참을 걸었다. 듬성듬성 자리 잡은 커다란 비닐하우스 안은 푸르름을 머금은 화분들로 가득하다. 얼마를 걸었을까, ‘이 길이 맞긴 한 걸까 ’하는 의문을 품고 계속 가다보니 길 끝에 아담한 텃밭을 꾸민 비닐하우스 한 동과 그 앞에 자리하고 있는 자그마한 교회의 푯말이 눈에 들어온다.
모양은 어리지만 한길교회는 벌써 15년이나 되었다. 필리핀 선교사로 사역하던 김영두 목사가 한국에 들어와 사역하던 중 아프리카 노동자들이 갈 교회가 없다는 얘기를 듣고 그들을 섬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주로 인천 쪽에 모여 있던 아프리카 노동자들이 교회 얘기를 듣고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아프리카 노동자들의 중요한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200~300명 가량이 모였지만 요즘 예배에 참석하는 인원은 2~30여 명. 지난해부터 심해진 단속으로 일터에서 그리고 시장에서 장을 보거나 집에서 자고 있다가 끌려가는 등 많은 노동자들이 본국으로 추방되었고 국내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일자리가 줄어들어 많은 수가 본국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아 있는 가나를 비롯한 서부 아프리카 출신의 아프리카 노동자들 역시 대부분 불법 체류자들로 어떠한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하며 언제 잡혀가 출국 당할지 모르는 불안감을 안고 생활하고 있다.
12시간 노동 후 드리는 꿀맛 예배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인 업주들과 갈등을 갖게 되는 경우 그 어려움은 더 커지는데 아프리카 노동자들이 갖게 되는 갈등의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언어다. “동남아나 다른 지역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어를 열심히 배웁니다. 그런데 아프리카 노동자들은 한국어의 필요성을 많이 느끼지 못해요. 아프리카 노동자들은 영어를 쓰거든요. 어디서든 웬만큼 통하니 굳이 배우려 하질 않죠. 하지만 한국인 업주들은 영어에 약하니까 당연히 서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갈등만 깊어져요. 이들은 급여를 못 받는다고 해도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어요. 일단 본인이 출석해야 하는데 그럼 바로 불법 체류자인걸 들켜서 본국으로 송환되고 만약 법적 조치를 취한다 해도 서류 구비와 수속 등 시간이 너무 걸려서 어떻게 할 수 없어요.”
이들은 가구 공장이나 플라스틱 공장, 재활용쓰레기 분류 공장 등에서 일하고 있다. 하루의 평균 작업시간은 12시간, 그나마 잔업이 생기면 13시간에서 14시간을 넘기기 일쑤다. 또 불법 체류자 단속에 걸리지 않으려고 저녁에 일을 시작해서 밤을 새고 아침까지 일을 하는데 이때 업주는 단속을 피하기 위해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아무도 없는 것처럼 위장을 하기도 한다. 일이 끝나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집에서 잠깐 쉬다보면 교회에 오는 시간을 놓치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이들이 교회를 찾는 이유는 가족처럼 대해주는 교회 식구들과 함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나에서 건축 일을 하다 한국에 온 지 7년, 아크릴 공장에서 일하는 조슈아는 일이 피곤하지만 그래도 가족과 같이 대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이곳이 유일한 휴식처란다. 또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수 있음이 너무도 즐겁다는 그는 본국에 돌아가면 불법 체류자가 아니라 한국의 물품들을 수입해서 파는 정식 사업가로 다시 한국에 방문하고 싶다는 꿈을 안고 있다.
한국어 실력이 좋은 벤은 카메룬에서 왔다. 카메룬에서 사진과 관련된 일을 했던 그는 한국의 교회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벤 역시 목사님과 교회 식구들이 아버지, 어머니 같고 가족과 같은 따뜻함을 느낄 수 있어 그것이 가장 좋단다. 또 공동체를 통해 가나와 필리핀 등 해외 교회들을 소식을 듣고 함께 나눌 수 있어 감사할 뿐이라고.
해줄 것 없어 미안한 성도 사랑 예배는 모두가 악수하고 안으며 인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환한 미소와 함께 내미는 손은 따뜻함이 그대로 전달된다. 흑인들이 중심이 되어 진행되는 예배는 마치 아프리카의 한가운데 와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봉고와 드럼, 키보드 그리고 각각의 손에 들려진 탬버린까지, 어느새 회중들은 자리를 박차고 나와 큰 원을 이룬다. 그리고 각자가 드릴 수 있는 가장 기쁘고 즐거운 모습으로 찬양을 드린다. 눈물인지 땀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만큼 간절한 그들의 기도 그리고 입술이 아니라 온몸으로 드리는 그들의 찬양은 온전히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려는 아름다움을 발한다.
교회가 이곳에 자리잡기까지 수없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검은 피부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풍토는 그 어려움과 아픔을 더 크게 만들었다. “흑인 형제, 자매들이 주일에 이곳에 예배를 드리러 오면 사람들이 피부색이 검다고 사람 취급도 안했어요. 하지만 이곳에 오는 형제 자매들은 이 근처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의정부, 인천, 평택, 안성, 심지어는 대구나 대전에서도 서너 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오죠. 얼마나 사랑스럽고 선한지 몰라요. 그들의 눈을 보면 너무 맑아요. 마치 어린아이처럼 말이에요. 여기 오는 흑인 형제 자매들은 다 제 자식들 같아요. 목사님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아들, 딸이 너무 많아 행복하지만 해줄 수 있는 것이 너무 적어 항상 미안해요.”
말을 잇는 정애숙 사모의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특히 심방을 다닐 때마다 그들의 열악한 업무 현장과 생활 환경, 말로 할 수 없는 어려움을 직접 보며 많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그들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어떠한 경우라도 일을 해결해 주는 목사님과 사모님의 이러한 모습이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아프리카 노동자들의 발길을 이끄는 것은 아닐까. 부모님과 같은 사랑, 그리고 가족과 같은 따뜻함이 있기에 언제나 이곳은 훈훈한 온기를 풍긴다.
세계를 품에 안고 한길교회는 1996년 가나에 이어 2002년에는 필리핀에 지교회를 세웠다. 두 곳 모두 교회를 섬기는 이들이 한길교회에서 훈련을 받고 돌아간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필리핀 한길교회를 섬기고 있는 ‘봉 에스트라다’ 전도사는 2002년까지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일하며 한길교회에서 훈련을 받고 본국으로 돌아가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해요. 너희도 힘든데 왜 가나랑 필리핀까지 사역을 하냐고요. 하지만 모두 저희가 한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하신 거죠. 하나님께서 이 땅에 들어와 있는 노동자들을 통해 선교하고 사역하길 원하셨고 가나와 필리핀에 교회에 훈련받은 사역자들을 세우게 하셨어요. 그리고 그들을 향한 마음과 그들에게 해야 할 일을 보이셨죠. 저희도 힘들지만 직접 가보면 여기서 생각했던 마음이 부끄러워져요. 필리핀에 갔더니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우리 아이들에게 하루 한 끼라도 먹을 수 있게 해달라고요. 하나님이 이끄시기 때문에 해나갈 수 있는 일이지 저희의 힘만으론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에요.”
한길교회는 지금의 비닐하우스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다. 현재 위치해 있는 삼송개발지구가 재개발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미 정부로부터 이주 명령을 받은 상태이지만 문제는 무허가 건물이기 때문에 어떠한 보상도 받을 수 없는 것. 하지만 목사님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지금까지도 잘 견뎌 왔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우리 교회가 가나와 필리핀에 지교회를 섬기고 있고요. 헌신된 마음과 모습으로 섬겨주는 교회 식구들과 여러 가지로 후원해 주시는 분들 그리고 이 지역의 주민들과 한길교회를 위해 애써주시는 많은 분들이 있기에 이 어려움도 하나님께서 기꺼이 이겨나가게 해주시리라 생각합니다.”
이곳은 아프리카 노동자를 섬기는 교회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서로를 섬기며 사랑으로 보듬어 가는 곳이라는 말이 귓가에 맴돈다. 현재 교회의 현실은 가난하고 고달픈 생활 중에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느껴졌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하심으로 인해 그 누구보다 더욱 풍성하고 아름다운 사랑과 감사를 만들어가는 소중한 보금자리임이 분명했다.
예배는 모두가 악수하고 안으며 인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환한 미소와 함께 내미는 손은 따뜻함이 그대로 전달된다. 흑인들이 중심이 되어 진행되는 예배는 마치 아프리카의 한가운데 와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봉고와 드럼, 키보드 그리고 각각의 손에 들려진 탬버린까지, 어느새 회중들은 자리를 박차고 나와 큰 원을 이룬다. 그리고 각자가 드릴 수 있는 가장 기쁘고 즐거운 모습으로 찬양을 드린다. 눈물인지 땀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만큼 간절한 그들의 기도 그리고 입술이 아니라 온몸으로 드리는 그들의 찬양은 온전히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려는 아름다움을 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