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다음세대 현실 진단과 대안, 이상갑(산본교회)

작성자이상갑|작성시간20.04.03|조회수868 목록 댓글 0


한국교회 다음세대 현실 진단과 대안, 이상갑 목사(산본교회, 청년사역연구소) 


< 코로나 19 이전과 이후로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의 흐름이 달라질 것입니다. 특히 청년과 다음 세대 사역은 그 변화가 심각할 것입니다. 그만큼 큰 충격이고 변화의 파도가 밀려왔습니다. 미래의 파도를 넘어서서 다음 세대 사역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면서 현실 진단과 대안을 함께 고민하고자 합니다. >

 

우리나라 정부에서 종교 인구를 처음 조사한 해는 1985년입니다. 그 해 개신교 인구는 650만 명 정도로 전체 인구의 16.0퍼센트였어요. 당시 개신교인을 연령별로 살펴보면 그 구성이 지금과 판이하게 달랐답니다. 39세 이하 개신교인이 전체 개신교인의 79퍼센트로, 10명 중 8명이 젊은층이었거든요. 60세 이상 고령층의 개신교인은 전체 개신교인 숫자의 5.5퍼센트에 불과했어요. 그런데 불과 30년이 채 안 된 지금, 심각한 고령화 현상과 더불어 어린이와 청소년, 즉 다음세대의 쇠퇴 앞에서 이들을 위해 사역하는 이들이 갈 바를 잃고 방황하고 있어요.

 

한국갤럽이 2014417일에서 52일 사이에 전국 만 18살 이상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면접조사를 했어요. 그리고 발간한 한국인의 종교보고서를 보면, 종교를 가진 20대의 비율은 그때보다 10년 전의 45퍼센트에서 31퍼센트로 무려 14퍼센트나 감소했다고 해요. 30대 종교인의 비율 역시 10년 전 49퍼센트에서 38퍼센트로 11퍼센트 감소했어요. 청년층의 종교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20-30 세대의 탈() 종교 현상은 종교 인구의 고령화, 즉 종교를 가진 사람의 평균 나이가 많아졌다는 것을 뜻해요. 향후 10년에서 20년 내에 종교 인구 감소와 교회의 고령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지요.

 

2012년 한국 대학생의 생활과 의식에 대해 조사했던 학원복음화협의회 자료에 따르면 기독교를 믿는다고 응답한 대학생은 18퍼센트였어요. 특이한 점은 성경 전체를 진리로 믿는다고 답한 대학생은 6.8퍼센트에 불과했다는 거예요.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전체 대학생 가운데 11.2퍼센트가 기독교를 믿는다고 답은 하지만 사실은 성경의 영향을 받지 않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이 가능한 거예요. 청년층의 가나안 성도 현상, 즉 예수는 믿는다고 하지만 교회에는 안 나가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종교란의 기독교인에 표시는 하지만 교회는 다니지 않는 청년층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죠.

 

한국기독교분석리포트 2018’에서는 특히 가나안 교인이 급격하게 증가한 결과가 두드러지게 나타났어요. 기독교인 중에서 무려 23.3퍼센트가 교회에 출석하지 않고 있다고 응답했거든요. 2012년의 조사 결과인 10.5퍼센트에 비해 2배 이상이나 증가한 수치에요. 대학생 중에 가나안 교인은 28퍼센트에 달한다는 결과도 나왔어요.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가나안 교인이 되는 이유는 ‘(교회에) 얽매이기 싫어서라는 응답이 44.1퍼센트로 가장 높았어요.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교회를 거부하는 비율이 더 높아지고 있어요. 모태신앙인이거나 어린 시절에 교인이 된 사람들이 20-30대에 교회를 떠나는 비율은 더 높아요.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될 현상이에요.

 

이토록 심각하게 교회에 다음세대가 줄어들고 청년층의 영적 사막화가 진행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외적인 이유는 기독교 이미지의 추락과 신뢰의 상실이라고 생각해요. 언론에 등장하는 교회와 영적 지도자들에 대한 각종 부정적인 소식들이 다음세대의 마음을 잃어버리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해요. 코로나 19 이후로 기독교의 신뢰도 추락은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기독교는 천주교나 불교와 달리 개교회적 선택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언론에서 부정적인 뉴스가 많이 나왔고 이미지 추락과 신뢰로 상실이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외부적인 요인과 더불어 다음세대가 영적으로 사막화되는 그들의 내적 요인도 주목해야 해요. 그들이 공동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영적인 공동체성이 빈약해졌다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죠. 목회자의 다음세대에 대한 철학도 빈약해서 다음세대 사역이 계속 후퇴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추수만 생각하고 씨를 뿌리는 과정을 생략해버린 후유증이 심각하게 찾아온 거예요. 씨를 뿌리지 않으면 거둘 것이 없거든요.

 

따라서 이런 현상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대안을 찾아가는 작업이 총체적으로 필요해요. 이런 현상을 해결하고자 2019년에 한국교회총연합이 한국교회 교육 심포지엄을 개최했는데, 여기에서 박상진 교수(장로회신학대학)미래사회 교회교육, 어디로 가야 하나?’라는 제목으로 발제한 내용을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박상진 교수는 교회학교 학생 수의 감소가 학령인구의 감소보다 더 빠르다는 걸 심각한 교회학교의 위기로 꼽았어요. 그의 조사에 의하면, 지난 10년 동안 교회학교 아동부 기준으로 학생 수가 무려 41.1퍼센트나 감소했다고 해요. 그동안의 학령인구 감소는 30퍼센트 정도였으니 교회학교의 학생 수가 그 학령의 인구보다 10퍼센트 이상이나 더 줄어든 거예요.

박상진 교수는 교회학교 위기 요인 분석 연구에서 교회교육에 위기를 불러온 요인을 크게 10가지로 꼽았는데, 그 중에서 부모 요인’, 즉 가정에서 신앙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는 부모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꼬집었어요.


교회교육의 위기 10가지 요인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어요.

첫째, 가정의 신앙교육 부재,

둘째, 세속적 자녀교육관,

셋째, 부모의 신앙저하,

넷째, 교사와 학생 사이의 인격적 관계 상실,

다섯째, 학생 상호간의 분리와 공동체의 부재,

여섯째, 흥미의 부족,

일곱째, 교재와 적용의 분리로 인한 지식과 삶 사이의 괴리,

여덟째, 목회와 교육의 분리로 교육부 소외 현상,

아홉째, 지역사회와 교회의 분리,

열째, 공공성 저하.


이런 것들이 교회학교의 위기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본 거예요.

 

박 교수가 이 10가지 중에서 가장 첫째로 꼽은 부모 요인이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녀 학업에 대한 부모의 교육관이 다음세대 신앙교육을 결정한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죠. 결국 오늘날 교회학교의 위기를 극복할 첫째 대안은 부모를 자녀 신앙교육의 주체로 다시 세우는 것임을 알 수 있다고 했어요.


어쨌든 이러한 위기 요인을 총체적으로 극복하려면 기독교 교육이 다양한 현장에서 이뤄져야 해요. 교회와 가정과 학교에서 그 교육의 내용이 연계되어 반복되고 통합돼야 한다는 거예요. 그럴 때 학생이 변화될 가능성이 극대화되기 때문이에요. 교회 안에서만 이뤄지던 교육이 이후에는 가정과 학교와 지역사회로 유기적으로 이어져 심화되고 보완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대안도 결국 가정의 신앙 교육이 활성화되는 것을 전제로 해요. 세속적 자녀 교육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자녀 교육으로 부모의 가치가 먼저 전환되어야 하고, 동시에 부모 세대의 신앙 성장을 함께 유기적으로 도모해야 해요.

 

박상진 교수는 이런 대안을 제시하면서, 아울러 교회에 파격적인 제안을 해요. 이제는 담임목사가 다음세대 본부장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거예요. 교회 전체가 다음세대를 양육하는 목회구조로 재편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형식적인 수준의 대처로는 변화를 일으키기 힘들다는 뜻이에요.



그러면 우리는 다음세대 사역을 위해 무엇부터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언제나 문제만 분석할 것이 아니라 정말 필요한 작업은 대안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더 근본적인 처방은 크고 작은 대안보다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해요. 아무리 좋은 대안 같아도 과거의 패러다임으로 땜질식 처방만 해서는 변화가 일어날 수 없어요. 변화를 원한다면 결국 이 시대에 맞게 패러다임을 바꾸어가는 작업부터 해야만 하죠. 대부분 과거 세대의 패러다임을 따라가고 있으니까요. 중요한 것은 미래를 열어가는 패러다임이에요.


다음 세대 사역을 위한 패러다임을 전환하려면 지속, 반복, 집중적인 꾸준한 헌신이 필요해요. 이것이 변함없는 복음을 변화하는 세대에 전하기 위한 시작입니다.

 

다음세대를 담아내고 새로운 길을 열어가기 위하여 사역에서 전환되고 시도되어야 할 10가지 패러다임을 제안해요.

 

첫째,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제자를 삼는 광인론이 중요해요.

 

다음 세대 사역은 화려한 프로그램에 속지 말아야 해요. 건강하지 못한 교회성장 일변도의 프로그램이 지나간 자리에는 영적 쓰레기가 난무합니다. 부작용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사람을 키워내는 제자를 삼는 사역에는 항상 사람이 남아요. 교회의 희망은 예수님을 닮아가고 예수님이 하셨던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러므로 최우선 사역은 특정한 프로그램이 아닌 예수님의 제자를 삼는 것이어야 해요.

제자 삼는 것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커다란 숲도 한 알의 씨앗에서 시작하지요. 다음세대를 위한 사역은 그렇게 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해야 해요. 매년 교회학교에서 1명이든 2명이든 소수라도 사람을 변화시키는 제자훈련을 일단 시작해 보세요.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 다음세대 사역의 가장 큰 문제는 먼저 제자가 되고 다음세대를 제자로 삼는 사역자가 적다는 데서 오는 문제일 수 있어요. 제자가 되어 섬기는 사역자와 직업적으로 일하는 사역자는 달라요. 다음 세대도 마찬가지에요. 군중은 많아도 순식간에 흩어집니다. 오로지 제자만 자기를 부인하고 묵묵히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어요. 그런 까닭에 우리 시대는 자신이 먼저 제자가 되어서 다시 제자를 삼으려는, 다음세대를 사랑하는 사역자들이 필요해요.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역자는 건강한 제자훈련은 단지 지식 전달이 아닌 삶으로 가르쳐 지키게 하는 실천이 있어야 함을 잘 알고 있어요. 먼저 제자 된 사역자만이 삶으로 가르칠 수 있음을 기억하며 그들은 자신이 먼저 제자도를 체질화하는 작업을 계속 해요.

 

오늘 우리의 절실한 필요는 예수님의 제자된 사역자에요. 옥한흠목사님이 광인론에서 언급하신 것처럼 우리 시대는 수시로 광야로 나가서 하나님의 음성을 경청하는 진정한 복음의 광인이 필요합니다. 한 사람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소수일지라도 진액을 쏟아 부어서 예수님의 제자를 삼는 일이 절실해요. 진정한 제자만이 희망이기 때문이에요. 결국은 제자가 되어 제자 삼는 사람이 희망입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다음세대 사역자는 예수님과 사도 바울처럼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과감히 말할 수 있어야 해요. 이런 리더가 부족한 시대입니다. 세상에는 두부류의 리더들이 있어요. 거짓 리더는 온갖 악취를 내요. 그들의 삶은 언제나 화려하고 부, 명예, 권력이 집중된 왕궁을 향하곤 합니다. 그런 사역자는 조심해야 해요. 반대로 진정한 사역자의 삶은 광야를 향합니다.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며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제자도를 추구하지요.

 

지금 우리 시대는 다음세대 사역자가 광야로 가서 다시 광인론에 빠질 때입니다. 먼저 제자가 된 사람이 되어 제자도를 추구할 때 진정 제자를 삼을 수 있으니까요. 저는 한국교회의 다음세대 사역현장에 예수님과 제자를 삼는 사역에 푹 빠진 광인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해요. 다음세대 사역자들이 다음세대를 살리고 키우고 세우는 일에 미쳐서 살아가는 만큼 분명 변화된 제자들이 나오리라 확신해요. 비록 편법이 난무해도 우직하게 정도를 걷는 제자가 되어 다음세대를 제자로 삼는 광야의 광인의 출현을 간절히 기대해요.


적용: 제게는 이런 소망이 있어요. 교회에서 모든 사역자가 다음세대를 말씀으로 양육하고 훈련하는 거예요. 예배와 분반공부 모임을 1시간으로 끝내지 않고 별도로 제자 훈련반을 만들고 싶어요. 그것을 예컨대 다니엘모임이라고 칭하고, 하나님 앞에 뜻을 정한 친구들이 모여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씨름하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요. 시대의 흐름을 따라서 흔들리기보다 함께 모여서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거룩한 세대로 서서, 다니엘과 세 친구 모임 같은 것을 만들어서 세상을 역류해가면 좋겠어요. 그렇게 서로 연결되어서 함께 성장해가는 영적인 공동체를 세워간다면 좋겠어요.


이름을 무엇으로 붙이든 중요하지 않아요. 핵심은 뜻을 정한 친구들의 모임을 가지는 것이지요. 이것은 어렵지 않아요. 누구나 시도할 수 있어요. 큐티 나눔 모임으로도 충분하거든요. 누군가 리더가 돼 매일 큐티를 하고 영적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를 점검하는 것이지요.

 

큐티 모임에서 시작해 기도모임과 학습공동체도 만들어, 삶의 자리에서 꿈을 나누고 서로 격려하고 응원해간다면 충분히 세상을 역류하면서 대안의 사람으로 성장해갈 거예요.

 

저는 실제로 이런 방식으로 주일 예배와 분반공부 외에 큐티 모임을 따로 가진 적이 있습니다. 자원하는 10대들과 매주 모였어요. 큐티를 깊이 나누다보니 꿈이 생기고 공부도 더 열심히 하는 거예요. 그런 경험을 여러 번 했어요. 그래서 확신 있게 추천해요. 말씀을 따라 가면 당장 손해 볼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삶의 변화와 도약을 경험하는 방법이랍니다. 두 세 사람이면 충분해요. 거룩한 제자들의 모임을 여러분도 시작해 보세요.


 

둘째, 분리나 단절이 아닌 그리스도의 몸인 유기적 공동체를 세워가요.

 

다음세대들이 교회 공동체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인식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서 한 지체가 되는 공동체 경험이 다음세대를 살려요.


오늘날 다음세대 사역은 장년으로부터 분리되고 심지어 가정으로부터 단절된 외딴섬이 되고 있어요. 그래선 안 돼요. 교회 내부에서 서로 연결이 되고 교회 외부로도 연결되어야 해요. 다음세대도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는 몸의 지체라는 의식이 필요해요. 그러자면 유기적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세대를 통합하고 연결하는 사역에 대해 고민해야 해요.

 

유기적 공동체를 위해서는 가정, 교회, 학교를 연결하는 사역을 진행해야 해요. 서로 세워주고 선한 영향을 주는 사역이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무엇보다 부모는 자녀의 신앙전수의 주체가 되어야 해요. 자녀의 신앙을 교회 주일학교에 맡기는 걸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자녀들의 신앙을 교회에서 전부 책임진다고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이제는 가정에서부터 신앙 교육을 책임지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교회에서 고작 일주일에 1시간 내외의 설교와 분반공부로는 영적 변화가 어려워요. 그러니 교회학교에만 신앙 교육을 맡기고 부모가 가정에서 신앙전수를 소홀히 한다면 자녀가 예수님의 제자로 살기가 쉽지 않아요. 가정에서 먼저 신앙과 삶을 나누고 기도하면서 총체적으로 교회와 연계하여 다음세대를 세워가야 합니다. 그런 다음 학교에서도 신앙교육이 연결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지요.

 

교회에서는 다음세대 사역이 교회의 핵심 사역이어야 해요. 교회를 세우는 중심에 다음세대 사역이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하는 것이죠. 그러려면 교회의 사역자들이 상처투성이인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다음세대의 삶의 자리에 함께 있어야 해요.

 

다음세대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유기적 공동체가 되게 하려면 사역자가 먼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를 늘 고민해야만 해요. 사역자가 이것만 치열하게 고민해도 사역의 방향성이 선명해질 거예요. 문제는 사역자들이 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도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고민과 고뇌가 빠져 있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그런 사역자를 통해 자라는 다음세대들은 예수님을 닮아가기보다 각기 자기 생각에 좋을 대로 살아가기 쉬워요. 그 결국은 다음 세대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가 될 위험에 빠질 수 있지요. 그러나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를 고민하는 사역자의 공동체는 달라질 거예요. 공동체의 관심을 하나님의 관심사에 둘 것이고, 하나님이 그 시대 상황 속에서 하시고자 하는 일에 반응하게 될 거예요.

 

이처럼 유기적으로 예수님을 머리로 모신 공동체는 영적 운동력이 있고 선명한 생명력이 있어요. 주의 손과 발이 되어서 세상을 치유하며 주님을 따라가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어떻게 하면 숫자를 늘릴 것인지 고민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주님이 기뻐하실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해요. 그렇게 고뇌하면서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로서 시대적 대안이 되게 하는 것, 이 시대의 작은 예수가 되도록 하는 것이지요. 이를 위해 교회가 세대통합 예배를 드리거나 전세대가 큐티 나눔을 공유하는 영적 나눔을 통해 유기적인 공동체를 세워갈 수 있어요.

 

적용: 저는 종종 딸과 함께 큐티를 하곤 해요. 물론 너무 바빠서 매일 하진 못해도 적게는 일주일에 1, 많게는 3회 정도 해요. 먼저 저 자신이 아침에 큐티를 하고 하루 종일 그것을 묵상하고 실천하려고 해요. 그리고 저녁에 집에서 딸이 보는 큐티책을 가지고 대화를 나누지요. 물론 딸의 눈높이에서 큐티 나눔을 해요. 이때 딸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하는 것이 중요해요. 딸은 하나님께도 저에게도 소중하니까요.

 

이전에는 딸이 어떤 생각과 고민을 하는지 듣지도 못했지요. 그런데 함께 큐티를 하면서 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딸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게 되니 참 좋아요. 부녀가 자주 대화하지 못했는데 큐티를 통해서 많은 대화를 하게 되었어요.

 

부모로서 자녀와 함께 큐티를 할 때 주의할 것은 가르치려들지 않는 거예요. 딸의 마음과 생각을 잘 경청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해요. 우리는 부모세대와 자녀세대가 점점 단절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에, 단절을 넘어서도록 공유하고 공감하고 소통하는 것이 필요해요. 큐티는 그런 세대 간의 단절까지 뛰어넘어 서로를 이어주지요. 큐티는 부모의 마음과 자녀의 마음을 연결해주는 최고의 시간이 되고 있어요.

 

큐티를 나눌 때 자녀도 부모 세대의 상처에 귀를 기울여주세요. 상처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리고 부모 세대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응원해주는 것이 매우 필요하니까요.


 

3. 교회의 크기나 모이는 숫자에 집중하기보다 교회들의 연합과 일치를 추구해요.

 

우리 시대는 공룡보다 개미의 모델에서 배워야 해요. 작은 교회라고 해서 사역의 범위를 제한하지 말아야 해요. 기독교 사역 단체들을 다양하게 활용하며 적극적으로 교회 연합활동을 활용해야 해요. 다음세대 사역의 특징인 창조성과 다양성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 연합과 일치에요.


연합과 일치는 쉽지 않아요.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본다면 교회 규모에 메이지 않고 다음세대 사역을 창조적으로 진행할 수 있을 거예요. 문제는 우물 안 개구리의 사고를 할 때 생겨요. 나만 생각하는 사고는 나도 죽이고 공동체도 죽여요. 나라는 우물을 박차고 나와서 다양한 방식의 사역을 공유하고 공감하고 소통해야 해요.

 

무엇보다 다음세대 사역은 규모의 논리를 따르면 안 됩니다. 특히 재정에 묶여도 안 돼요. 한국교회라는 큰 숲 안에서 다양한 모습의 사역을 적극적으로 찾아 활용하면 되는 거예요. 창조성과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연합과 일치를 붙잡고 함께 한다면, 다음세대 사역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땅이에요. 내가 모든 것을 하려고 하지 말고 전문성 있는 기관에 위탁하고 서로 동역하면 오히려 새로운 사역의 길이 열려요.

 

작은 교회나 큰 교회나 기억할 것은 외견상의 건물이 교회가 아니에요. 모인 군중의 머릿수도 교회가 아니고요.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요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그분의 통치와 다스리심을 받는 사람들의 모임이잖아요. 두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서 예수님이 하셨던 일을 하는 곳이 교회인 것이죠. 그러므로 외모 콤플렉스, 숫자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해요. 우리 시대는 공룡의 모델보다 개미의 모델에서 배워야 해요. 두세 사람이 모일지라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면서 연합하면 놀라운 가능성이 펼쳐질 거예요. 앞으로 점점 첨단 기술을 응용하고 사용하는 다양한 형태의 교회가 등장할 거예요. 교회 각각의 규모에 메이지 말고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연합하여 일하면 더 자유로워질 것이고 다양한 사역이 가능해질 거예요. 이렇게 연대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가는 숲 속의 나무들로 세워져 가기를 기대해요.

우리 시대는 어떤 면에서는 큰 교회보다 작은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대형 교회는 인격과 인격의 만남이 빈약해요. 대형교회가 좋은 점도 있지만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서 인격적인 사귐과 만남의 기회가 소형 교회들에 비하며 오히려 빈약해요. 그런 까닭에 관계로서의 만남보다 기능적인 만남이 많아요. 그냥 겉도는 관계성이 많아 서로 잘 알기 어렵고 형식적인 관계가 많아요. 이것은 교회로서 존재하려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과제이기도 해요.

 

그런데도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대형 교회는 좋은 교회라는 잘못된 생각을 하곤 해요. 또 소형 교회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요. 정말 그럴까요? 실제로 대형교회보다 작은 동네 교회에 다니면서 좋은 인격적인 사역자를 만나면 가장 많은 변화를 경험하고 신앙생활이 행복할 수 있어요. 영적인 대화와 친밀한 사귐이 훨씬 많아지기 때문일 거예요.

 

적용: 저도 개척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할 때인 청소년 시절이 참 행복했던 기억이 나요. 모두가 가족처럼 알고 지냈어요. 마치 여러 명의 이모, 고모, 삼촌을 둔 느낌이었어요. 수련회 회비를 대신 내주시고, 집에 저를 초대해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먹기도 했었지요. 그것은 큰 교회에서 피자와 치킨으로 파티를 하는 것과 또 다른 행복이었어요. 그러니 작은 교회라고 위축될 필요가 없어요. 오히려 지역의 작은 교회들과 연합하여 수련회를 가기도 하고 같이 찬양집회를 가보기도 하면서 함께하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더 소중하지요.

 

다음세대를 섬긴다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소그룹 모임들에 더 집중하면 어떨까요? 크고 거창한 모임보다는 작고 의미 있는 모임에 더 집중해 보는 것이 필요해요. 왕따가 많고 점점 교묘하게 인간성이 상실되어 가는 시대 속에서 우리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그런 모임이 절실히 필요해요.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과 연대를 통해서 다양성 속에서도 일치를 추구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봉사를 해도 한 교회가 아니라 여러 교회들이 연합하여 각각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를 경험하면 더 풍성해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주님과 동행하고 지체와 동행하는 즐거움을 누리도록 서로 마음과 생각이 통하는 교회끼리 연합을 해 보세요.

 

4. 욕망과 욕심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꿈을 공유하고 공감하며 살아가요.

 

다음세대들을 기성세대와 다르게 키워야 해요. 그렇게 하려면 욕망을 탐하는 데서 헤어 나오게 해야 해요. 무엇보다 다음세대가 입시 위주의 성적과 스펙 중심의 바벨탑 성공신화를 추구하는 것에서 떠나야 해요. 허다한 죄와 우상들로부터 떠나는 출애굽의 여정처럼 삶의 여정에서 성경적 가치를 따라가도록 해야 해요. 그런 까닭에 교회 안에서 강조되어야 하는 것은 성공이 아니라 성경이에요.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에요. 성공이 아니라 성육신이에요.


하지만 부끄럽게도, 최근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모습이 여럿 드러나면서 교회 공동체의 한계와 모순을 많이 경험하고 있어요. 교회가 황금 송아지가 하나님이라고 그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면서 그것을 예배라고 생각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을 그대로 범하고 있어요. 그렇게 성공주의 신화에 깊이 빠져 있던 한국교회가 깨어나지 않으면 그냥 그대로 잠들 수밖에 없는 위험에 처해 있어요.

 

다음세대 사역도 마찬가지예요. 맘몬과 아세라의 논리에 빠져서 숫자 모으기에 바쁘고 다음세대를 성공으로 몰아가기에 바빠요. 관리만 하려고 해요. 그런데 관리와 관심은 다른 것이에요. 관리 중심의 사역은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지 않아요. 관리에 집중할수록 다음세대들의 신앙이 아름답게 세워지고 건강하게 성숙해 가는 신앙의 자리가 없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점점 신앙의 회의에 빠져요. 인간은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관심을 받아야 하는 소중한 존재임을 기억해야 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의 현실은 욕망을 탐하는 시대에요. 세상은 바벨탑을 세우기에 바빠요. 크고 높고 거대한 바벨탑을 통해서 자기를 하나님의 자리에 두려는 시대에요. 쾌락을 위해서 뭐든 하는 시대가 된 것 같아요. 점점 욕망이 합리화되고 합법화 되어 가고 있어요. 현대인이 만든 성공은 남보다 더 높이 올라가고 많은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기에 그것은 현대판 바벨탑일지 몰라요. 그런 까닭에 다음세대 사역자는 우상을 깨뜨리는 자여야 해요. 그런 치열한 영적 전쟁을 하지 못하면 다음 세대의 신앙은 점점 무너져요.

 

우상을 깨뜨리는 것은 관계와 관심으로부터 시작해야 해요. 하나님과 다음 세대를 연결하는 관계를 세우고 하나님의 관심을 다음 세대의 관심으로 연결하는 것이 우상을 깨뜨리는 방법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다음 세대 사역자는 우상 파괴자여야 해요. 우상을 파괴하는 최고의 방법은 하나님의 관심사가 다음 세대의 관심사가 되게 하는 것인데 그것을 쉽게 표현하면 하나님이 주신 꿈을 꾸게 하는 것이에요. 다음 세대 관심의 초점을 하나님 나라 비전에 두도록 하는 것이지요.

 

만일 다음 세대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꾸는 세대가 된다면 세상의 어둠의 흐름을 차단하고 세상을 변화 시키는 꿈의 사람들이 될 것이고 신앙에서 결코 떠나지 않는 영적인 세대가 되리라 확신해요. 다음세대 사역에서 꿈꾸는 자들이 세워지도록 초점을 맞추어 보세요. 그들은 결코 다른 세대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야말로 가장 강력하게 하나님 나라 꿈을 외쳐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꿈을 꾸는 세대가 되게 하려면 무엇보다 출세가 아닌 출애굽을 부르짖으며 삶의 속도계가 아닌 방향계를 보도록 하는 것이 필요해요. 다음 세대가 빨리빨리 가기보다는 바른 방향성을 가지고 성경을 삶으로 연결하도록 도와주어야 하지요.

 

성경을 삶으로 연결하는 것은 성경을 정보전달이 아닌 변화를 위한 재료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정보로 변화되지 않아요. 다음 세대의 신앙을 건강하게 세우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자리에서 경험해야 해요. 변화란 하나님 말씀과 만남의 결과지 단순한 지식 전달만으로는 일어나지 않아요. 아무리 오랫 동안 많은 정보를 축적해도 영적인 변화는 안 돼요.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요? 다음세대를 어려서부터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게 합니다. 좋은 학교를 가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말하기도 해요.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가르치기도 해요. 어찌 보면 그것이 바벨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잘되고 싶은 욕망을 추구하기 때문이지요. 교회가 성적이라는 바벨탑과 성공이라는 바벨탑을 쌓는 공사를 하면서 오히려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말하고 있으면 성경적 가르침이 아니지요.

 

성경을 잘 살펴보세요. 성공해야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말은 성경 어디에도 없어요. 그러한 말들은 사람들의 욕망이 만들어낸 성공이라는 바벨탑에 불과해요. 정말 중요한 것은 세상이 인정하고 알아주는 대학과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바로 그 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성공이라는 가치보다 성경의 가치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을 하나님은 찾고 계시지 않을까요? 성공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기보다 성경을 따라 바르게 살아가려는 씨름을 하는 것이 하나님이 더욱 기뻐하시는 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적용: 저는 다음세대가 부모님의 소원과 세상의 기대치를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꿈을 따라 살아가도록 돕고 싶어요. 저는 다음 세대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어요.

 

우리의 삶은 이 세상에서 딱 한번 주어진 것이에요.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꿈을 싹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면 그것이 최고의 복이 아닐까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양대로 자신에게 주신 독특한 아름다움이 살아 숨 쉬는 바로 그 삶을 사세요. 우리는 누구나 하나님께 특별한 존재입니다.”


다음 세대들은 자신의 세대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데 행복에 대한 관점을 바꾸었으면 해요. 행복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안에서 나를 발견할 때 주어지는 것이기에 다음 세대에게 이렇게 이야기 해 주고 싶어요.


행복은 하나님 안에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발견하고 하나님이 주신 꿈을 향해 살아갈 때 주어지는 선물이기에, 행복해지고 싶다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세요. 그러면 행복은 자연스럽게 주어지고, 나만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주변을 행복하게 만드는 축복의 사람으로 세워지기 때문이에요. 세상이 말하는 성공을 거두는 것이 삶을 행복하게 해주지는 않아요. 그러므로 행복을 구하기보다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데 더욱 힘써보세요. 분명 이전보다 더 행복해질 거예요.”


제게 있어서 교회는 꿈을 꾸고 꿈을 나누는 곳이에요.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꿈이 없이 살았어요. 그런데 청년부에 들어가니까 꿈을 말하고 나누는 시간들이 많았어요. 놀랍게도 하나님이 주신 꿈을 계속 이야기하게 되면서 점점 삶의 초점이 바뀌었어요. 꿈을 이야기하고 꿈을 향해 노력하다보니 교회는 꿈 동산처럼 변했어요. 그때부터 교회 가는 것이 너무 신나고 행복해졌어요. 세상이 말하는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꿈을 꾸고 그 꿈을 말하니까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어요. 공부를 하는 것도 주께 하듯 하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어요. 누가 시켜서 하는 공부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꿈을 위한 공부를 하니까 공부하는 그 시간이 지옥이 아니라 천국처럼 바뀌었어요. 물론 성적이 팍팍 올라가는 경험도 했구요. 가장 행복했던 것은 교회에서 서로가 서로의 꿈을 응원하고 기도해 주면서 함께 공부를 하니까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꿈을 응원하는 최고의 격려자가 되는 경험을 했어요. 이런 경험을 다음 세대가 했으면 좋겠어요.


이런 기대와는 다르게 오늘날 교회가 세상을 점점 닮아가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에요. 고민해 보세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세상과는 다른 하나님이 주신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 함께 달려가는 삶이 아닐까요?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 삶은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꿈을 향해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므로 성공보다 소중한 것은 성경을 따라 살아가려고 씨름하는 삶이고 그 안에서 각자에게 주신 꿈을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요?

 

5. 다음세대를 교회 안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게 해요.

 

다음세대들이 성인이 되면서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일주일에 11시간의 예배로는 영적 성장이 일어나기 어려워요.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 일상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단지 교회 안에서만 경건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도록 이끌어야 해요.

 

오늘 많은 교회의 다음세대 사역에 프로그램이 많아요. 교회에서도 재미있는 프로그램은 주로 방송의 예능을 패러디하는 것이 대부분이죠. 예능을 흉내를 내는 것으로 다음세대를 붙들어두고자 하지만, 사실 역부족이에요.


우리는 먼저 다음세대들이 왜 교회에 나올까요?” 라는 질문을 던져야 해요. 다음 세대들이 재미를 위해 교회에 올까요? 물론 재미는 필요해요. 뻔한 공동체보다 펀(Fun)한 공동체가 더 좋을 거예요. 하지만 가장 좋은 공동체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공동체임을 잊지 말아야 해요.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역자들이 재미에 포로가 되어 있어요. 설교도 웃기려 하고 프로그램도 웃기려 하고, 엠티도 웃기려 해요. 하지만 예능에 중독된 세대들이 교회에 기대하는 것이 과연 예능 패러디가 전부일까요? 단호히 말하거니와 그것은 아니라고 봐요.

 

다음세대들도 정말 하나님을 알고 싶어서 교회에 와요. 친구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교회에 그나마 버티고 앉아 있는 것은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남아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므로 초월적인 하나님을 경험하는 자리인 예배에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해요. 다음세대의 예배니까, 예컨대 주일학교 예배를 가볍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더 깊이 있게 생각하고 준비해야 해요.

 

특히 다음세대들이 드리는 예배가 형식적인 예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예배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풍성하게 경험하도록 하려면 설교에 더욱 더 심혈을 기울일 필요가 있어요. 다음 세대를 위하여 선포하는 강단의 설교가 잡담, 사담, 농담으로 채워지지 않게 해야 해요. 다음세대들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말씀을 통해서 믿음의 뿌리를 내려요.

 

무엇보다 설교에 다음 세대의 상황과 하나님의 말씀과의 연결이 필요해요. 다음세대들이 예배자로 살아가야 하는 시공간은 거룩한 예배당이 아니라 고통의 문제들과 싸워야 하고 구부러지고 어그러진 세상 속이에요. 혼자 힘으로 세상의 유혹과 시험을 이기기가 어려워요. 이런 상황에서 설교자는 설교를 철저하게 준비해야 해요. 말씀에 다음세대들의 고민, 고뇌, 고통이 담겨 있어야 해요. 그래서 말씀을 현실 세계를 연결하고, 말씀과 시대가 만나고, 말씀과 다음세대들의 삶의 고단한 자리가 만날 수 있어야 해요. 다음세대가 그런 예배 자리를 사모하며 찾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그러니 예배를 쇼로 전락시키지 말아야 해요. 그러자면 무엇보다 사역자가 먼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살아가는 예배자가 되어야 해요. 그보다 더 우선적인 예배 사역은 없어요. 사역자에게 이 준비가 없으면 다음세대를 위한 사역은 없어요.

 

사역자는 설교자이기 이전에 예배자여야 해요. 예배자로서의 사역자는 다음세대들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예배에 집중하면서, 동시에 교회 안에서만 경건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과 일터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도록 이끌어 주어야 해요. 그래서 다음세대가 일상의 예배자가 되고 삶의 예배자가 되게 해야 해요. 그러자면 사역자가 학교와 학원으로 찾아가는 현장의 예배, 현장의 양육과 훈련이 필요해요. SNS가 발달할수록 온라인만이 아닌 오프라인의 만남이 소중해져요. 만나고, 함께 먹고, 같이 마시는 가운데 건강한 공동체를 세워갈 수 있어요. 설교는 강단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과 그룹으로 만나서 삶으로 가르치는 거예요. 진짜 설교는 강단 아래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다음세대가 세상 속의 예배자가 되어 세상을 이기도록 도울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은 모두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려고 하는 시대적 풍조가 강해요. 그런 세상 속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세상과 똑같은 방법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선진들처럼 믿음 따라서 살아가는 것이에요. 믿음이란 하나님이 계신 것과 하나님께서 자기를 찾는 이들에게 상주시는 분이심을 아는 거예요. 그 믿음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도록 우리를 도와주지요. 그런데 많은 이들이 믿음으로 산다고 하면서 세상의 좋은 것이나 세상의 잘난 것으로 살아가려고 해요. 그래서 대학 입시를 위해서 예배를 포기하고, 또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예배들 드린다고 입시 시즌이 되면 청소년들이 예배를 떠나곤 해요. 그 자체가 불행임을 알아야 해요. 우선순위와 중요순위가 바뀐 것이고 대학이 우상이 되어 버렸으니까요.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그렇게 살아갈 수 없어요. 하나님이 삶의 중심부에 자리하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이 우선순위에 자리하기에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없어요. 그런데 다음세대 사역자들조차 이런 기준에서 벗어나 흔들리는 현상은 안타까운 일이에요. 다음 세대를 정말 돕는 것은 다음 세대가 예배자가 되는 것이 최고의 우선순위가 되도록 돕는 것이에요.

 

우선순위를 바로 잡아야 해요. 유대인들은 오전에는 항상 성경과 탈무드를 공부해요. 그것이 하루의 우선순위와 중요순위에 자리하도록 하고, 그런 다음 오후에 일반 세상의 학문을 공부해요. 이유가 뭘까요? 하나님 중심의 우선순위와 중요순위를 선명하게 하는 거예요. 하나님 말씀을 먼저 배움으로 그 외의 모든 것을 말씀으로 풀어가고 해석하는 힘을 키우는 것이지요. 그렇게 자란 이들이 고학년이 될수록 더욱 좋은 학습자가 되고 각 영역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만일 다음 세대를 세상을 이기는 사람으로 양육하고 훈련하고 싶다면 사역자가 그 중심부에 성경을 읽고 큐티를 하는 시간을 최우선순위에 두기로 작정해야 해요. 그 시간은 절대 손해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가장 아름답고 건강한 모습으로 세워주는 시간이에요.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시간을 삶의 중심부에 세운 사람은 실수는 있어도 실패는 없어요. 하나님의 도움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손이 그들의 삶을 빚어 가시기 때문에,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룹니다.

 

그러니 말씀 중심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하나님의 임재가 사라지는 삶을 가장 두려워하세요. 무엇보다 하나님의 임재는 예배 가운데 나타나기에, 예배를 대충 드리지 말고 잘 준비해서 드려야 해요. 부모님의 잔소리 때문에 드리는 예배나 억지로 앉아 있는 예배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스스로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구하고 두드리는 예배자를 하나님은 찾고 계세요. 다음세대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이 찾으시는 바로 그 예배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6. 무리 속에 숨지 말고 친밀한 사귐이 있는 소그룹에 들어가세요.

 

우리 시대는 점점 관계성이 약해집니다. SNS가 발달할수록 익명성에 숨어 버립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공동체적으로 창조하셨어요. 혼자가 아닌 더불어 살도록 창조하셨어요.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는 소그룹이 필요해요. 소그룹은 말씀과 기도와 영적 교제가 있는 곳이고 관계성을 세워가는 곳이기에 소그룹 운동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생각해요. 다음 세대를 무리가 아닌 제자로 삼는 과정에서 소그룹은 다음세대 영적 운동력의 허브가 되게 해야 해요. 사람은 나이에 관계없이 친밀한 관계가 필요하니까요. 그래서 사역자는 소그룹에서 삶을 공유하고 공감하고 소통하는 가운데 성령의 역사하심을 경험하도록 이끌어 주어야 해요.

 

대그룹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한다면, 소그룹의 역동성을 통해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감동, 감화, 감격이 공동체 가운데 구체적으로 드러나요. 그래서 소그룹 단위가 영적 운동력의 핵심이 되게 해야 해요. 소그룹으로 모여서 삶을 공유하고 공감하고 소통하는 가운데 공동체는 건강하게 빚어지고 성장하지요.

 

이런 사실을 기억하면서, 진실한 나눔이 있는 공동체로서 소그룹의 역동성을 경험하도록 노력해야 해요. 소그룹은 말씀운동, 기도운동, 섬김운동이 유기적으로 일어나고 연결되는 장소예요. 이런 소그룹이 활성화되려면 무엇보다 소그룹 리더(또는 교사)를 잘 양육해야 해요. 잘 훈련된 리더(교사)의 건강한 성장과 성숙이 다음세대 공동체를 세워가는 역량임을 늘 기억해야 해요.


소그룹을 건강하게 세우기 원한다면 먼저 리더(교사) 모임을 통해 리더들부터 소그룹 공동체를 경험하는 것이 필요해요. 그렇게 하려면 다음세대 사역자가 말씀과 기도를 맛보아 아는 리더 훈련을 진행할 수 있어야 해요. 리더 모임에 더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죠. 리더들이 소그룹의 역동성을 경험하지 않으면 공동체는 소모성 공동체와 소비성 공동체로 전락해요.

 

소비성 공동체는 아무런 선한 영향력이 없어요. 언제든 흩어질 수 있어요. 그러나 진정한 소그룹 경험을 하게 되면 서로가 서로를 섬기게 되고 변화가 일어나요. 그런 까닭에 함께 웃고 함께 우는 소그룹이 필요해요. 특히 다음세대 공동체는 대부분 형제자매가 없거나 1명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소그룹의 역동성을 경험하고 공동체 속에서 섬김을 배우는 것이 꼭 필요해요. 건강한 소그룹을 통해서 말씀과 기도의 기초 위에 든든하게 세워지면 어떤 상황에서도 영적 운동력을 가지고 돌파구를 여는 대안의 공동체가 될 거예요.

 

적용: 제가 소그룹의 중요함을 경험한 것은 고등학교 때인 것 같아요. 저는 부끄러움과 수줍음이 많아요. 그래서 교회를 다닐 때 분반공부가 무척 힘들어서 예배만 드리고 도망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어요. 하지만 예배만 드리고 가니까 신앙이 성장하지 않았어요. 혼자 신앙생활을 하니까 하나님을 알고 싶어도 점점 하나님과 멀어져 가는 것을 경험했어요. 대그룹 예배만으로는 성장과 성숙이라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지요. 그때부터 소그룹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그 시간이 무척 낯설고 힘들었지요. 그런데 감사하게도 제가 들어간 소그룹엔 생명력이 있었어요. 진실하게 자신의 삶을 나누고,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 개인적인 기도제목을 구체적으로 나누는 단순한 나눔을 반복하는 가운데 어느 순간부터 성령님이 함께 일하신다는 경험을 하게 되었어요. 우리가 서로 나눌 때 성령님은 우리를 감동시키시고 하나로 묶어주시기 때문이에요. 함께 기도할 때, 기도 응답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함께 경험하도록 도와주셔요. 이러한 공동체가 있었기에 저는 변화를 경험할 수 있었어요.

 

안타깝게도 오늘 교회학교 현장의 분반공부나 청년 공동체에서 이렇게 소중한 소그룹 모임이 사라지고 있어요. 그냥 잠시 출석 확인만 하고 드라마나 영화 이야기만 하다가 끝나버려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진지한 가르침과 배움이 없어요. 서로 간절히 기도하는 시간이 사라지니까 기도 응답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는 일도 사라져가요. 요즘 다음 세대 사역 현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확신이 없고 기도하면 응답하신다는 확신이 없는 것 같아 너무나 안타까워요.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요? 아마도 다음세대가 성경공부와 기도를 하자고 하면 재미없다고 싫어하지 않을까 염려를 하는 것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러나 다음세대가 교회 오는 이유는 재미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해요. 다음 세대가 교회에 오는 이유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싶기 때문임을 반드시 기억하면 좋겠어요. 아마 재미만을 원한다면 집에서 코미디나 게임이나 예능 프로그램을 볼 거예요. 교회에 나오는 것은 그래도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싶기 때문임을 잊지 말아 주세요.

 

다음 세대가 어찌하든지 말씀과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시작하면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모든 사역자, 선생님, 리더, 말씀을 가르치는 분들이 이걸 꼭 기억하면 좋겠어요. 십대가 힘들어도 교회를 가는 것은 하나님을 경험하고 알고 싶기 때문이에요. 대충 하는 성경공부보다 깊고 친밀한 사귐이 있는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죠.


 

7. 사명감을 가지고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가는 선교적 공동체가 필요해요.

 

다음세대 사역자들이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가치가 있어요. 그것은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구원하는 일이에요. 어떤 사역이나 프로그램도 영혼 구원보다 우선되는 가치가 되어선 안 되지요.

 

그런 점에서 다음세대 공동체가 교회 안에서만 갇혀서 내부 소비적 공동체에 머문다면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시대는 공동체의 방향을 선교적 공동체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해요. 다음 세대를 복음화 하려면 모든 것을 선교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적용해야 해요. 다음 세대는 복음화율이 아주 낮아요. 그들은 점점 교회문화가 아닌 세상의 문화의 지배를 받고 있어요. 지금까지는 교회 중심적인 사고를 했다면 이제는 바꾸어야 해요. 어찌하든지 현장 중심의 사고를 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영혼구원을 향한 열정을 가진 선교적 공동체를 세워가는 것이 다음세대 사역의 미래를 여는 핵심 역량이 되고 있어요.

 

사실상 다음세대의 사역 현장은 이미 선교적 상황으로 바뀌었어요. 기독교는 이제 사회에서 다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해요. 과거와 달리 현재 다음세대의 기독교인은 소수가 되어버렸어요. 복음 전파의 환경도 과거에 비해서 더욱 어려워졌어요. 모든 것을 선교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에요. 이제는 과거에 했던 방법들이 통하지 않고 있어요. 노방전도만 지속해서는 전도가 쉽지 않아요. 북 치고 장구 치고 동네를 돌았던 것은 이제 잊혀진 과거의 추억으로만 남아 있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노방전도가 아닌 관계 전도에 주목해야 해요. 교회로 오게 되는 불신자들을 조사해보면 대부분 관계전도를 통한다는 것을 주목해야 해요. 특히 교회학교에 출석하고 있는 다음세대의 대다수는 교인들의 자녀임을 고려해야 해요. 이처럼 관계가 전도의 핵심이라면 방향을 관계전도로 바꾸어야 할 필요가 있어요. 교회의 재정과 에너지를 건강한 관계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어요.

 

건강한 관계를 세워간다는 것은 먼저 우리 자신이 변화된 제자로 세워지는 것을 의미해요. 우리가 먼저 변화된 삶을 살아가지 않고서 복음을 외치면 메아리로 되돌아 올 뿐이지만 우리가 변화된 삶을 살아간다면 틀림없이 그 이유를 질문하게 되고 결국 우리의 모든 변화가 복음에 있음을 발견하게 되리라 생각해요.

 

선교적 공동체로 영혼을 구원하는 공동체가 되고자 한다면 전도와 더불어 공동체의 영적 토양이 중요해요. 기억해야 하는 것은 불신자가 전도를 통해 교회에 왔을 때 어떤 공동체인가 하는 것이 마음을 닫히게 할 수도 있고 열리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에요. 공동체의 토양이 길가, 돌짝 밭, 가시덤불 같다면 마음이 전혀 열리지 않을 것이고 소외감을 느낄 거예요. 그러나 옥토와 같이 공동체가 건강하고 따뜻한 영적 토양이라면 좋은 열매를 맺을 거예요. 그런 면에서 전도의 열매는 결국 공동체의 건강이 좌우하지요. 건강한 공동체가 좋은 땅과 같이 뿌려진 씨앗들이 잘 자라서 열매를 맺게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해요. 그런 까닭에 전도에 집중하는 것 이전에 공동체의 건강성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해요. 이것이 선교적 공동체에요.

 

결국 전도는 하나의 프로그램이 아닌 유기적 사역의 결과라고 보아야 해요. 공동체가 전체적으로 건강하면 전도는 쉽게 이루어지고 공동체가 병들어 있다면 전도가 되어 누군가 교회에 온다고 해도 적응하지 못하고 떠나게 될 거예요. 우리는 전도에만 초점을 두고 공동체의 토양에는 초점을 두지 못했던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도록 각 지체를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워가는 씨름을 강력하게 할 필요가 있어요. 다음세대들은 자신들과 관계있는 이들을 초대했을 때 환대를 받으며 잘 정착해서 성장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면 전도를 실제로 하게 돼요.

 

우리 시대는 선교적 삶을 통해서 선교적 공동체를 세워가는 것에 우선적 가치를 둘 필요가 있어요. 선교적 삶, 선교적 공동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한가요? 뭔가 부담이 되나요? 쉽게 표현하면 예수님을 믿는 것을 교회 안에서만 아니라 실제적인 삶의 현장에서 드러내는 것이 선교적 삶이고 그런 지체들이 모인 공동체가 선교적 공동체라고 생각하면 좋아요.

 

우리 주변에는 의외로 교회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이들이 많아요. 세상은 교회가 이기적이고 나쁘다라고 인식하고 있어요. 그런 세상을 향해서 교회는 좋은 곳이라고 말로만 해서는 효과가 없어요. 그리스도인으로 진실하게 살아가는 삶을 보여주는 것이 정말 필요해요.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읽지만 세상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읽는다는 말이 있는데 정확한 말이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우리가 삶으로 말해야 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어요.

 

성경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하지요.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어떤 마음으로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알 수 있어야 해요. 결국 우리의 삶을 통해 읽혀지는 것, 즉 우리 삶이 메시지가 되는 셈이죠. 교회가 그리스도의 좋은 편지로서 존재할 때 사람들이 교회를 찾아오게 되는데, 그 이유는 교회가 세상과 다르기 때문이에요.

 

이제 세상은 전도지를 많이 뿌린다고 감동 받지 않아요. 쓰레기 취급을 당할 뿐인 경우가 허다해요. 그러다보니 전도지를 전하는 일에 대해 점점 위축되고 있어요. 그런 현상을 보면서 오늘 우리 시대는 삶이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어떤 의미에서 우리 시대의 전도란 무조건적으로 전도지를 나누어 주는 방식이 아닌 구체적인 예수님을 생각하게 만드는 여러 삶의 방식일 거예요. 그러니 다음세대들에게 선교적 삶을 살아가도록 얼마든지 도전하세요. 일상과 일터에서 선교적 삶을 살라고 강조해야 하는 거예요.

 

만일 우리가 세상 속에서 소금과 빛으로 존재하는지를 치열하게 질문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한다면 여전히 교회는 매력적인 곳이 아닐까요? 세상 그 어디에도 찾아보기 힘든 교회만의 아름다움은 맛을 잃은 곳에서 맛을 내고 어둠이 있는 곳에서 빛을 비추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교회가 크고 거창한 행사를 만들려고 하기보다, 삶의 자리에서 어떤 모습으로 꽃을 피워가야 할지를 고민했으면 해요. 진정한 교회는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우니까요.

 

적용: 저는 다음 세대를 섬길 때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하는 고민을 살짝 바꾸어서 어떻게 하면 세상을 품고 세상을 섬기며 세상을 변화 시키는 공동체를 세울 수 있을까를 질문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구체적인 실천으로 연결하곤 했습니다. 어린이들과 함께 동네 청소를 하기도 했고, 청소년들과 함께 건강한 문화 만들기로 콘서트를 열기도 했고, 청년들과 함께 보육원, 장애인 시설, 독거노인 , 노인요양원을 찾아가서 봉사와 섬김을 묵묵히 감당하곤 했어요. 성경공부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말씀으로 삶으로 연결하고 적용하고 실천한 것이지요.

 

놀라운 것은 성경 공부를 삶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것으로 연결하자 한 명 한 명이 건강한 신앙, 성숙한 신앙으로 서서히 변화되고 영적 성장을 경험하는 것을 보았어요. 그 과정에서 머리가 아닌 삶으로 배운 영적 지식이 열매를 맺는 것임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많은 지식이 사람을 변화 시키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말씀이 연결되고 적용되는 것이 중요함을 배웠어요. 선교적 공동체란 결국 우리 자신이 메시지가 되는 공동체일 것이고 그런 공동체가 있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실 거라고 확신해요.

 

 

8. 구원 그 이후에 섬김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공적 신앙으로 나아가요.

 

우리는 예수를 믿는 이유가 뭐냐고 질문 받으면 천국 가려고요라고 대답하곤 해요. 맞아요. 백퍼센트 공감해요. 그런데 그뿐인가요? 예수님을 믿는 이유가 이 땅에서 예수님을 믿고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이 과연 전부일까요? 그것에 대해 우리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해요. 만약 예수님을 믿는 이유가 딱 하나 천국 가는 것이라고 한다면, 아마 예수님을 믿는 바로 그 순간 전부 천국으로 보내셨을지 몰라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어요.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목적으로 천국 가는 개인 구원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항상 제자의 삶으로 초대하셔요. 예수님을 주요 그리스도로 믿고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이들에게 천국 소망은 중요해요. 그런데 진짜 천국 소망을 가진 이들을 보면 이 땅에서의 삶을 천국의 유업을 받을 상속자로서 살아가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제자가 된 모든 이들은 이기적인 삶이 아니라 이타적인 삶을 살면서 세상을 좀 더 아름답고 건강한 곳으로 만드는 일에 축복의 통로가 되어 살아가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지 개인 구원에 끝나지 않고 구원받은 삶으로 연결되는 것이니까요.

 

건강한 신앙은 개인 구원에서 멈추지 않아요. 반드시 공적 신앙으로 확대되고 확산됩니다. 그러한 토대 위에서 공교회성은 견고하게 뿌리 내려요. 그런데 한국교회는 개인구원을 강조하면서 공적 신앙을 강조하지 못해 한 쪽 날개를 잃어버렸어요. 우리 시대 다음세대 사역은 이미 말뿐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환경에 접어들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개독교라고 외치는 안티기독교인들의 외침을 부끄럽게 하는 방법은 말이 아닌 삶에 있어요. 선명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서 나오는 탁월한 도덕성과 하나님의 나라를 일상에서 삶으로 보여주는 거예요. 보지 않고는 믿지 않는 세대를 향해 그리스도의 편지로 읽혀져야 하는 것이죠. 그것이 어쩌면 최고의 선교 사역일 거예요.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존재하는 공동체, 그리스도의 향기로 퍼지는 공동체는 그래서 영향력이 있어요. 그런 공동체라면 누룩과 겨자씨 같이 세상을 바꾸는 생명력을 가진 공동체가 될 거예요.

 

다음세대 공동체가 공적 신앙에서 자라가고 자리매김을 하려면 다음세대에게 직업과 소명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심어주고 가르쳐 지키게 할 필요가 있어요. 이제까지 한국 교회는 다음세대들을 교회에 가두고 교회 안에만 머물도록 했어요. 이후로는 차원을 확장시켜야 해요. 교회 속의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심어 주어야 해요. 신앙이 드러나야 할 자리는 교회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자리는 일상이니까요.

 

다음 세대의 신앙을 세우기 원한다면 일상과 일터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도록 돕는 작업이 필요해요. 무엇보다 긴급한 것은 다음세대들이 학교에서 성경적 가치를 붙들고 씨름하도록 양육하고 훈련해야 해요. 교회일이 중요한 만큼 세상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도록 가르쳐야 해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교회 일을 하듯, 공부를 비롯한 세상일을 주께 하듯 하도록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해요.

 

이제는 다음세대들이 이전 세대처럼 개인 구원 신앙에 머물도록 가르쳐서는 안 되는 시대라고 생각해요. 구원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를 확장시켜서 섬김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공적 신앙으로까지 나아가도록 가르쳐야 해요. 그래서 신앙의 사회적 도덕성을 높이고 영적 성숙의 차원을 바꾸는 작업이 필요해요. 그런 교회 공동체는 각 영역에서 성경적인 가치관을 훈련받은 지도자들을 키워내는 이 시대의 아둘람굴과 같은 인재 배출소가 될 거예요. 그러면 기독교를 향한 돌팔매질이 많이 사라질 거예요.

 

적용: 언젠가 학교 회장과 교회의 리더 자리를 두고 선택의 고민을 하는 학생과 상담한 적이 있어요. 저는 그에게 학교 일과 교회 일을 분리할 필요가 없고, 그 일이 세상을 섬기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라면 모두 하나님의 일이니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했어요.

 

우리는 교회와 관련된 일은 하나님의 거룩한 일이고 세상과 관련된 일은 하나님 일이 아닌 세상일이고 거룩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선한 일이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일이고, 교회 일이라고 할지라도 선한 일이 아니면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고 거룩한 일도 아니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어요. 그런 인위적인 구분 대신에 이제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아야 해요.


예를 들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라면 하나님의 일이고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일이라면 하나님의 일이 아니에요. 그러니 교회에서 학생회장을 하는 것도 학교에서 학생회장을 하는 것도 모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세요. 그럴 때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일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세요. 특히 나와 세상이 기준이 되지 말고, 늘 성경에 기준을 두어야 더욱 아름답게 쓰임 받는 축복의 사람이 될 거예요.

 


9. 혼자가 아닌 그리스도의 몸에 연결된 지체로 존재해요.

 

21세기의 특징은 연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특히 교회 내부에서 어린이, 청소년, 청년, 장년, 노년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것이 필요해요. 세대를 지나치게 분리하고 단절할수록 신앙 유산을 상속하는 것이 어려워져요. 세대 간 연결고리가 사라질수록 신앙 유산은 상속되지 않아요. 그러니 서로 연결해야 해요.

 

외부로는 복음을 이웃, 민족, 역사와 연결하는 것이 필요해요. 세상의 필요와 하나님의 필요를 다음세대 양육과 연결해야 해요. 세상에서 고난 받고 고통 받는 현장을 다음세대 사역과 연결해야 해요.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세상의 필요를 연결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다음세대 사역자들에게 주어진 책임은 다음세대를 혼자가 아닌 공동체로 살아가도록 신앙과 삶을 구체적으로 연결하는 지혜가 필요해요.

우리 시대는 독불장군으로 혼자 일하기보다 네트워크를 통해서 공동체적으로 일해야 해요. 교회는 태생적으로 공동체적이에요. 성부, 성자, 성령께서 공동체적으로 일하셨어요. 혼자만 살고 혼자만 살찌우려고 하는 세포는 암세포에요. 건강한 세포는 지체를 소중히 여기면서 서로 연결되어야 해요.

 

마찬가지로 다음세대 사역이 교회 안에서 건강해지려면 교회 어른들과 전체적으로 연결되어야 해요. 아울러 세상과도 연결되어야 해요. 나아가 민족과 열방에까지 연결되어야 해요. 시대적 과제와 연결되기도 해야 하고요. 이렇게 브리지(다리) 역할을 하는 공동체가 건강해요.

 

그런 까닭에 다음세대들의 신앙을 모든 것으로 연결하여 풀어가도록 훈련시켜야 합니다. 신앙과 삶을 연결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통합적이고 통전적인 영성이에요. 삶과 신앙을 통합하고 세대를 뛰어넘어 연결하는 통전적인 다음세대 공동체가 되도록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다음 세대 사역자는 세상의 어그러진 모든 것에 대해 성경에 기초해서 건강한 저항의식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해요.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신앙과 삶이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통합되고, 신앙이 삶을 통해 표현되어야 해요. 또한 교회의 규모에 따라 사역하지 않고, 네트워크를 통해서 사역의 지경을 넓혀가는 것이 필요해요. 작은 교회란 없어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우리들 자신이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많은 교회들이 지나치게 세대를 조각처럼 나눠 교육하고 있어요. 영유아부, 유치부, 유년부, 소년부, 중등부, 고등부, 대학부, 청년부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신앙을 떠나기도 해요. 부모님을 따라 억지로 교회를 다니다가, 자기 생각이 점점 커지면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도 전에 교회에 대해 실망하고 상처받고 떠나는 경우도 많아요.

게다가 대개 가정에 자녀가 1,2명밖에 없는데, 그마저도 주일이면 서로 흩어져 지내다보니 신앙 상속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세대 차이가 있다 보니 서로 이해하고 용납하기보다 작은 차이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곤 하고요. 심지어 다름을 틀림으로 해석하는 일이 생기곤 해요. 다름을 인정하면서 다양성을 존중해야 할 때도, 오히려 틀리다고 생각하기에 서로를 품지 못하고 편 가르기를 하고 적대적으로 대하기도 하지요. 우리 시대는 다양성 속의 일치가 중요한데, 교회는 반대로 가고 있지 않나 하고 반성하게 돼요.

 

다시 다양성 속의 일치를 추가하는 가족 공동체를 회복해야 해요. 부모 세대를 넘어서 조부모 세대까지 서로 공감하고 소통하려면 공동체의식의 회복이 필요해요. 진정한 공동체는 다름을 존중하고, 서로 다르기에 서로를 책임지고 상호보완을 해야 하는 것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어린이, 청소년, 청년도 새벽기도회와 부흥회와 금요기도회에 어른들과 함께 참여한다면 어떨까요? 혼자가 아닌 서로 연결된 유기체로 더욱 건강한 공동체적 존재로 세워지리라고 봐요.


적용: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교회를 다녔어요. 가족 가운데 가장 먼저 예수님을 믿었기에 신앙생활에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때 가장 힘이 된 것은 어른들과 함께 예배드리고 교제한 거라고 생각해요. 어른들과 더불어서 찬양하고 말씀을 듣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는 세대차이가 없다는 것을 경험했어요.

 

우선 각 가정에서 일주일에 1번 이상 가정예배를 드릴 것을 권해요. 함께 찬양하고, 함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나누고, 서로 기도 제목을 나누고 기도해주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가지는 것이지요. 가정 예배 시간을 통해서 부모님의 어려움과 삶을 이해하고, 부모님은 자녀들의 마음을 읽고 이해하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거예요. 신앙은 세대차이가 없기 때문에 세대를 넘어서서 부어지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함께 경험하게 될 거예요.

 


10.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아주세요.

 

다가오는 시대에 생존을 넘어 부흥을 경험하려면 다음세대 공동체는 도전정신과 실험정신이 살아 있는 공동체여야 해요. 성경을 삶으로 실험하고 소화시키며 도전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해야 해요. 무엇보다, 다음세대 사역에서 실수하고 실패할 기회를 주어야 해요. 다음세대는 이미 기성세대에 의해 통제되지 않아요. 다음 세대를 담아낼 새 부대를 만드는 작업을 그들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해요.

 

오늘 한국교회 다음세대 사역에서 정말 필요한 것이 있다면 도전 정신이에요. 무엇이든지 그 시대와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고 도전해야 해요. 그런 뒤에 하나님의 뜻을 실천해가는 강력한 추진력이 필요하지요.

 

다음세대 사역은 기성세대 흉내를 내기보다는 기성세대를 뛰어 넘으려는 시도가 필요해요. 타성에 젖어 기존 시스템에 안주하는 순간부터 정체와 쇠퇴가 진행된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어요. 새로운 시도를 할 때 기억할 것은 본질은 붙잡아야 해요. 본질이 복음이라면, 그 본질을 담아내는 그릇인 부대가 계속해서 새로운 세대를 담아낼 수 있도록 새로운 부대, 즉 새로운 형식을 준비해야 해요. 내용은 변하지 않아도 형식은 끊임없이 변해야 하기에 열린 마음으로 항상 변화에 다가가야 해요.

 

새 포도주를 담으려는 새 부대를 준비하려면 실험 정신이 필요하지요. 말씀을 삶으로 실험하고 공동체적으로 실험하여 새로운 우물을 계속 파야 하기 때문이에요. 힘들어도 그 일을 해야 해요. 다음세대 사역에서 도전 정신과 실험 정신이 숨 쉬고 있다면, 청년과 다음 세대들은 그런 공동체를 떠나지 않을 거예요. 실수가 용납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공동체가 있다면, 그러한 공동체는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건강한 아름다움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곳일 거예요. 그런 공동체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가치와 방향을 다음 세대에게 줄 수 있지요. 사람들은 어느 시대든지 그러한 공동체를 찾고 그리워해요.

 

역사적으로 본다면 도전 정신과 실험 정신이 살아 있는 공동체는 초대교회였어요. 사도행전의 공동체는 도전과 실험의 연속이었어요. 안주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복음의 가치를 붙잡고 세상 속에서 과감하게 도전하고 실험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공동체지요. 각 시대마다 생명력 넘치는 공동체에는 동일한 특징이 있었어요.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으려는 도전과 실험이 있는 곳에 나타나는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공동체를 하나로 묶었고, 모든 장애물을 넘어 전진하는 공동체로 빚어지곤 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시대든 건강한 공동체는 말씀이라는 재료를 가지고 세상 속에서 그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요리를 하여 세상을 살리고 먹이는 공동체로서 존재했었지요.

 

안타까운 것은 현재 수많은 교회의 다음세대 사역 현장이 세상의 흐름에 질식하여 역류하는 힘을 잃어버린 것이에요. 그러나 건강한 도전 정신과 실험정신을 가진 다음세대 사역이 일어난다면, 다음세대 사역이야말로 여전히 허다한 문제를 가진 세상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는 희망일 거예요.

 

한국 교회의 다음 세대는 신앙의 바통을 터치해서 더 힘차게 달려가는 세대가 되어야 해요. 그런데 다음세대가 신앙에서 떠나서 세상 속에서 방황하고 방탕하게 보내면서 점점 다른 세대가 되어가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지요. 무엇이 문제일까요? 그건 다음세대의 문제라기보다 그들을 담은 부대의 문제인 경우가 많아요. 낡고 오래된 부대는 터지기 쉽지요.

 

코로나 19 이후에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4차 산업이 혁명과 혁신으로 다가 올 거예요. 이때 필요한 것은 변화의 파도를 즐기면서 변혁을 추구함이라 생각해요. SNS의 다양한 흐름을 타고 목회적 도구로 활용하는 것도 필요하고 그 시대적 흐름을 읽고 시대적 필요를 채우면서도 원초적 영성을 담아내는 새로운 시도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번 코로나로 인하여 교회당에서 드리는 예배가 멈추어지고 많은 사람들은 혼돈과 혼란을 경험하였는데 지금이 다음 세대를 위한 본격적인 사역 패러다임을 고민하고 바꾸어 갈 바로 그 때라고 생각해요. 세상이 바뀌고 있다면 그 바뀌는 세상을 담아 낼 기회가 우리 모두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아내는 작업을 두려움 없이 시도했으면 좋겠어요.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으려면 성경이 기준이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해요. 과학이 발달해도 성령의 역사하심을 넘어서지 못해요. 미래의 파도는 혼란, 혼돈, 혼잡의 형태로 계속 몰려오겠지만 성경이라는 나침반을 보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파도타기를 한다면 어쩌면 가장 창조적인 사역들이 펼쳐질 거라고 생각해요. 너무 움츠리지 말아요. 하나님이 창조주시고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믿고 변화의 파도를 타고 변혁을 추구해요. 실수하고 실패해도 그것을 딛고 나아가세요. 어쩌면 그 길이 누군가에게는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적용: 요즘 유행처럼 퍼지는 말 중에 꼰대라는 말이 있어요. 자기 관점에서만 사고하고 모든 것을 자기 방식대로만 처리하려고 하기에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을 꼰대라고 불러요. 그분들은 커피 중에 라떼를 좋아하지요. 라떼는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훈계와 잔소리를 뜻해요. 좋은 부모세대와 선배 세대의 지혜가 전수되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꼰대라는 선입견과 편견이 싫은 나머지, 꼭 필요한 지혜의 전수도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그러면 대안은 없을까요? 대안은 무궁무진하리라 생각해요.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기 때문이지요. 하나님께 기도하고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새 부대를 만들어가는 시도를 기성세대가 해주면 되지요. 기성세대는 다음세대를 위하여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되어 주어야 하고요. 사사건건 간섭하고 통제하고 군림하면 새 부대를 만드는 작업은 어려워져요. 다음세대들이 실수하고 실패할 기회를 주고, 자신들의 방식으로 도전하고, 실험하고, 실천하도록 배려하고 존중하고 응원을 보내면 됩니다.

저는 청년들을 믿고 청년들이 헌금한 재정을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사용하도록 믿고 맡겨보았는데, 결과는 놀라웠어요. 스스로 재정을 관리하면서 2배가 넘는 재정이 나오고, 청년들의 사역과 섬김과 방향성을 청년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면서 구제와 섬김과 선교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지켜보았어요.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그들 스스로 새 부대를 만들고 새 포도를 담아내기 시작한 것이 어찌 그리 감사한지요.

 

이제 라떼는 끊어주세요. 그 대신 다음세대를 믿고서 그들을 향한 아낌없는 응원과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세요.

 

코로나 19 상황 이후에 다음 세대 사역은 온라인이 전쟁터라고 생각해요. 온라인에는 각종 이단과 사이비가 번성하고 계속해서 퍼지고 있어요. 교회는 더 적극적으로 온라인 사역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해요. 오프라인 전도도 중요 하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에서는 온라인 전도도 중요해요. 교회는 지금 이 시대를 담아내기 위하여 과감한 도전을 멈추지 않아야 하고 인터넷 세상에서 복음과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계속해서 전할 필요가 있어요. 이 일은 청년과 다음세대가 함께 동참하고 동역할 필요가 있어요.

 


결론, 패러다임의 전환이 절실해요

 

이러한 10가지 패러다임 전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어요. 그것은 말씀운동과 기도운동입니다. 다음세대들을 철저하게 말씀과 기도로 깨우고 세워가야 한다는 거예요. 말씀에 기초하지 않으면 어떤 패러다임도 일시적인 프로그램이나 교회 성장의 도구로 전락할 뿐이니까요. 말씀의 본질에 기초하여 성경이 보여주는 방향을 지속적으로 찾아가는 것은 본질 중심의 사역으로 향하게 해요.

 

저는 어린이 사역, 청소년 사역, 청년대학생 사역, 장년 사역을 두루 해보았어요. 감사하게도 계속 부흥을 경험했는데, 그 원리는 언제나 같았어요. 어린이, 청소년, 청년, 장년 각각 세대가 달라도 말씀과 기도에 집중할 때 영적 부흥을 경험할 수 있었고, 영적 부흥을 경험하면 그 열매는 반드시 삶의 변화로 이어졌다는 거예요. 사역에 있어서 세대별로 맞춤식 섬김이 시시때때로 필요하지만, 기본은 동일해요. 오직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거예요. 이것이 기본이지요.


지금 한국 교회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그런 기본과 본질로 돌아가는 일이에요. 성경에 기초해서, 이 글에서 언급한 10가지 패러다임의 방향성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각 교회에 적합한 방식으로 적용해보기를 바랍니다.

 

패러다임 전환이 시작이지만, 솔직히 그것만으로는 너무 부족해요. 아무리 좋은 정책과 전략이 나와도 현장에서 다음세대 사역이 활성화되려면 사람과 재정이 뒷받침되어야 하니까요. 무엇보다 정책과 전략이 좋다고 모든 사역이 건강하게 세워지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해요. 결국은 사람입니다. 다양한 섬김을 감당할 사람에 집중해야 해요. 그런 사람을 세워가기 위해 교회의 재정을 조정하여서 적극적으로 사람을 살리고 키우는 구조로 재편할 필요가 있어요. 교사양성과 훈련에 집중하는 동시에 교사들의 영성 계발을 아낌없이 지원하고 지지하며 키워가는 것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해야 해요.

 

무엇보다 교회의 재정을 사용하는 중심에 다음세대 사역이 자리하고 있어야 해요. 적어도 전체 재정의 15-25퍼센트를 다음세대와 청년을 키우는 일에 집중해 쓸 필요가 있어요. 가정은 교육에 가장 많은 투자와 지원을 해요. 교육이 자녀의 미래이기 때문이에요. 교회도 마찬가지에요. 다음세대를 살리고 키우고 세우는 일에 지원과 지지를 아낌없이 해주어야 해요. 교회 안에 다음세대와 청년의 비율이 높아지기를 원하는 만큼 재정지원의 비율을 높여야 해요. 다양한 창조적 실험과 시도를 위해서는 지원과 지지가 실제적으로 있어야 해요.


전쟁터에서 실탄 공급도 없이 싸우라는 것은 패배하고 죽으라는 소리이지요. 실탄뿐 아니라 각종 군수물자를 공급하는 것이 필수예요. 아무리 좋은 전략을 세워도 실제 전투에서 필요한 것은 적절한 무기와 양식이니까요. 다음세대 사역자들에게 필요한 것도 그것이지요. 교회학교를 통해 다음세대가 세워지기 원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지지와 지원을 해주세요. 여기에 교회가 살 길이 있어요.

 

안타까운 마음으로 10가지 패러다임의 전환을 나누고 또 그것을 실제적으로 뒷받침 하는 사람과 재정을 나누었어요. 그러나 역시 다음 세대를 세우기 위한 최고의 가치는 복음과 하나님 나라랍니다. 시대나 문화를 넘어서서 복음과 하나님 나라는 여전히 강력한 생명력이 있어요. 문제는 우리가 그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지 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어쩌면 상황과 환경보다 더 절실히 필요한 것은 복음에 대한 확신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선명한 소망이라고 저는 봐요. 예수님이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인 우리 자신이 생명력으로 충만해진다면 어떤 상황이든지 복음은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음을 믿으세요. 그때 우리를 통해, 우리가 가는 곳곳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리라고 확신해요.

 

기억하세요. 지금은 변화의 파도를 탈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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