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교회 침체? 급성장하는 청년들의 교회에는 그것이 있다
미국교회가 침체를 넘어 감소세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추세 자체는 사실일지 몰라도 그 가운데에도 급성장하는 교회, 그것도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성장하는 교회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풀러신학교 이상훈 교수는 10일 미래목회연구회와 행복한교육목회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우리 시대를 위한 창의적 목회" 포럼에서 이를 "창의적 목회와 미셔널 쳐치"라는 강의로 풀어냈다.
미셔널 쳐치 즉, 선교적 교회 운동은 이미 북미 지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전문적 훈련을 받은 선교사가 타 지역이나 타 문화권으로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는 과거의 선교 개념을 뛰어넘어 모든 교회, 모든 성도가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선교적 사명을 갖고 복음을 증거하자는 이 운동은 특별히 다민족으로 구성된 북미 지역의 교회에 선교적 도전을 주고 있다.
이 교수는 프로그램화, 조직화 되어 버린 한국교회의 목회적 갱신은 복음과 십자가 앞에 진정한 사명을 발견하는 선교적 교회 운동을 필요로 한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선교적 교회는 복음을 증거하고 제자를 세상으로 파송하며 주님의 삶에 동참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교회다.
이 교수는 북미 지역에서 청년들을 중심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여러 교회의 사례를 들었다. 예를 들면, 할리우드에 있는 리얼리티LA는 30명의 성도에서 시작해 현재는 청년을 중심으로 3천명 규모로 성장했다. 이 교회를 부흥시킨 데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좋은 프로그램이나 특별한 활동은 사실 전무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예배와 예수의 삶에 집중하는 선교적 도전이 있을 뿐이다. 청년들이 좋아할 만한 화려한 찬양은 있지만 자신을 뽐내는 찬양 인도자나 연주자는 없으며 모든 것이 예수께 맞추어져 있단 것이다. 설교도 무려 1시간여 가까이 지속된다. 그러나 누구도 지루해 하는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또 다른 한 교회는 다운타운의 나이트클럽에서 예배를 드린다. 이 교수는 그 교회를 방문했을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이런 교회들의 특징으로 자유로움을 꼽았다. 먼저 예배 형식이 자유롭다. 딱딱하게 앉아서 설교를 듣고 가기보다는 그 설교가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고 교감하고자 한다. 이런 교감은 곧 행동을 촉구하는 것이다. 또 음악과 같은 문화를 통해 소통하면서, 신앙을 듣기보다는 체험하게 하는 데에 주력한다. 반드시 예배당에서만 아니라 체육관, 창고, 심지어 나이트클럽까지 예배 장소로 사용한다. 감동을 주어 헌신하게 하며 예배를 통해 성도들을 사역에 동참하게 하는 것도 중요한 특징이다.
이 교수는 성장하는 청년 중심적 교회를 보며 이들은 어떤 목회 철학과 목회 기술을 갖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답은 오히려 간단했다. 이 교수는 "그들은 그런 삶을 살고 있었다. 어떤 목회자는 20년간 자기 가족만의 시간이 없었다고 한다. 늘 자기 집에는 도움이 필요한 노숙자, 중독자들이 있었고 그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가르치고 복음으로 감동을 주어 새 사람으로 변화시켰다고 한다. 사실 예수님도 이렇게 제자들을 키우시지 않았나"라고 밝혔다. 결론적으로 그는 "선교적 교회, 한국교회의 갱신은 목회자의 삶에 달려 있다. 희생하는 만큼 교회의 문화가 변화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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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는 복음을 통해 성장하는 교회들
새 천년을 맞이하는 이 시대에 과거의 합리성과 지성을 중시하던 시대 사조는 이제 영성(Spirit), 감성(Emotion), 체험(Experience)을 중시되는 새로운 사조로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 따라서 목회도 ‘듣는 복음’을 제시하며 ‘와 보라’하던 목회에서, 능력을 통해서 진리를 보고 확증할 수 있게 하는 ‘보는 복음’을 제시하는 목회로 바뀌었다. 이런 시대적 변화에 맞춰 목회자와 교회는 마1:17의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는 정신으로 의식의 용량과 생각의 틀을 지혜롭게 바꾸어 수용해야 한다.
미국 신시내티의 빈야드 교회(존 윔버의 빈야드교회와 다름)는 지난 3년 동안 교인이 사천 명으로 급성장하여 교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성장의 비결은 Servant Evangelism(종으로 섬기는 전도)을 통한 2:20(Two-Twenty)전략에 있다.
예를 들어 지역사람들의 차를 무료로 세차해 주고, 세차 중에는 콜라나 사이다를 무료로 제공하는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은 모두 놀라기 마련이다. 그들이 당황해서 이유를 물어 보면 단지 “예수님을 너무 사랑해서 한다.”고 말한다. 굳이 교회를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하면 자기 교회가 아닌 주변의 작은 교회를 소개해 준다. 그뿐만 아니라 청소 팀을 만들어서 인근 식당의 화장실을 자원해서 청소하고, 도서관에서 반납기한을 넘긴 사람들의 벌금을 대신 납부해 주며, 공중전화를 거는 동전을 무료로 제공하고, 주차장에서 시간 초과 비용을 대신 물며, 차 유리창을 닦아주고, 상점에서 무료로 물건을 포장해 주며, 오후의 무료한 시간에 직장으로 찾아가 장미꽃을 한 송이를 선물하는 등 적극적으로 찾아가 복음을 펼친다. 그래서 모토도 2:20, 즉 “한 달에 두 시간 이상을 복음 위해 사회에 봉사하고 20 달라를 전도하는데 사용하라“이다. 이것이 바로 찾아가는 복음이며, 보여 주는 복음의 한 부분이다.
2. 네트워크 사역(은사 배치 사역)을 통해 성장하는 교회들
네트워크(Network)란 통신망, 그물 망을 의미하는 정보산업사회의 용어이다. 네트워크 사역이란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허락하신 은사들이 모두 그물 망처럼 서로 연결되어서 평신도들의 잠재력을 극대화시키게 하는 사역을 말한다. 이것은 사역의 대전환이자 가히 21세기 목회사역을 통째로 짊어지고 나갈 견인차로 여겨진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네트워크 사역을 ‘은사 배치 사역’이라고도 하는데, 우리 각자가 하나님께 받은 독특한 열정(Passion)과 성령의 은사(Spiritual gift)와 개인의 취향(Persona style)들을 솔직한 자기 진단을 통해서 발견하고 가장 적합한 장소에서 가장 합당한 사역을 감당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성도들은 각자의 귀한 사역을 성취하면서 영적으로 성공하는 인생을 살게 된다. 지도자는 각 개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은사와 독특한 재능들을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열정적으로 투자하게 함으로써 사역을 효과적으로 꽃피우고 열매를 맺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지금 미국에서 시카코 윌로우크릭 교회와 새들백 교회 등이 이 분야에서 앞서 가며 폭발력 있는 네트워크 사역을 하고 있고, 이민교회로는 워싱텅 중앙 장로 교회와 지구촌 교회 등도 실시하고 있다. 남가주 사랑의 교회는 지금까지 제자 훈련을 이민교회에 접목시키는 목회를 해 왔다. 그러나 제자훈련이 뿌리를 내려 성장(Maturity)은 가져왔지만 섬김과 하나됨에는 부족함이 많아 교회와 목회자 자신의 그릇을 넓히는데 한계를 느껴왔다. 그래서 이제 네트워크 사역, 특히 은사 배치 사역을 통해 섬김이 교회의 문화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3. NCD (Natural Church Development) 자연적 교회 성장 전략을 통해 성장하는 교회들
지금 미국에서는 NCD (Natural Church Development) 자연적 교회 성장 전략과 사역에 대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각 신학교에서 이미 강의가 앞다투어 개설되고 있고, 자료들이 약 33개국 언어로 번역, 발간되고 있다. 아마 한국어로도 발간된 것으로 안다. 특별히 교회 개척 사역(Church Planting Ministry)이론에 선두를 점하고 있는 풀러 신학교의 봅 로건(Bob Rogan)교수가 앞장서서 NCD 사역을 전개하고 있다. ‘건강한 교회 만들기 운동’은 이처럼 지역 교회들의 관심사 수준을 넘어서 전세계 네트워크를 통해서 강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NCD의 핵심 내용은 바로 자연적인 교회성장이다. 교회 내에는 교회가 만들어 질 당시에 주님이 원래부터 넣어 주신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원리’라 잠재해 있다. 따라서 교회가 가지고 있는 생명체적인 잠재력을 최대한 발견하고 그 능력을 배가시키는 시너지 효과(Synergic Effect)를 일으켜 교회를 긍정적이면서도 자연스런 성장으로 유도한다는 것이다. 성장하는 교회는 여덟 가지 성장 토양 혹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비전 있는 사역자, 은사네트워크, 영성, 효과적인 조직운영, 예배, 소그룹, 전도, 사랑의 관계 등이다. 이런 여덟 가지 성장 토양이 서로 어루러져야 교회성장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이제는 기술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더 이상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부닥치고 있다. 또한 양적 성장의 목표보다는 질적인 성장에 대한 기대가 필요하고, 질적인 접근방법이 큰 효과를 보고 있다. 그러므로 기술적이냐 아니면 생명체적이냐가 앞으로 미래 교회 성장의 주요한 방향을 정하게 될 것이다.
4. 효과적인 팀 사역을 통해 성장하는 교회들
21세기는 절대로 혼자서는 살아 갈 수 없도록 모든 것이 마치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인테넷망이 이미 사막에도 북극까지 깔려 있고 인공위성 이용이 정부차원에서 민간차원으로 개인의 사무실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공동체가 아니고서는 서로 살아갈 수 없도록 시대가 우리를 내몰고 있다. 마찬가지로 목사 혼자서 모든 것을 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모두가 운명적으로 함께 팀 사역을 하지 않고는 살아 남지 못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팀 사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였다. 그러나 기대치만큼 제대고 팀이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교회들은 아주 팀을 잘 운영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분명한 역할 분당을 잘하는데 있다. 물론 한국보다는 문화적으로 강한 책임의식이 저변에 많이 깔려 있는 것도 한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팀 사역 모델을 보여 주고 있는 교회는 시카코에 있는 윌로우 크릭 교회이다. 이교회는 약 450가지 사역들의 목록과 자세한 설명, 거기에 맞는 사람의 은사까지 표시해 놓아서 컴퓨터 단말기에 자원봉사를 신청하는 사람에 관하 몇 가지 자료만 입력하면 그에 맞는 역할과 기대치까지 분명하게 나올 정도이다.
현재 미국에서 기독교 운동이 가장 활발한 곳을 들라 하면 콜로라도스프링스이다. 선교를 가장 활발하게 하는 초교파 선교기관들이 앞 다투어 몰려들고 있다. 그런데 이 도시가 미국 내에서 기독교의 영향력을 가장 크게 끼치게 된 것에는 한 교회 지도자와 그 교회의 팀 사역 때문이다. 바로 테드 해가드(Ted Haggard) 목사와 뉴 라이프 커뮤니티 교회(New Life Community Church) 가 그 영향력의 진원지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들이 세속화되고 있는 도시 문화의 영향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반면에 이 교회는 거꾸로 도시를 점차 종교적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 무엇이 이런 일을 만들어 냈을까? 이런 위대한 일을 가능하게 만든 뉴 라이프 커뮤니티 교회는 어떻게 사역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을 효과적인 네트워크를 통한 팀 사역 때문이다. 뉴 라이프 커뮤니티 교회에 들어서면 2층 오른쪽에 CIN (Christian Information Network)실이 있고 각국의 시간을 알리는 시계들이 걸려있다. 본당 천장에는 세계 각국의 국기가 드리워져 있다. 그리고 선교 대상지인 10/40 창이 그려진 지도가 한쪽 벽을 장식하고 있어서 세계 선교를 향한 이 교회의 강한 열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5. 역동적인 시스템 사역을 통해 성장하는 교회들
성경을 조직적으로 가르치는 시스템이나 행정 시스템, 제자 훈련 시스템, 성령운동 시스템 등 여러 가지 많은 시스템들 중에서 그 교회에 가장 적합하고 기본이 되는 시스템을 체계화하여 역동적으로 재생산하게 하는 사역
캘리포니아 코스타 메사(Costa Mesa)의 갈보리 채풀의 척 스미스 목사는 지난 30여 년간 그 지역의 영적인 아버지의 역할을 해왔다. 그의 사역 때문에 오렌지카운티(Orange County)가 균형 잡힌 보수 성향을 유지 할 수 있었다. 그는 지금 만 72세인데도 불구하고 전세계에서 갈보리 채플과 연관을 맺은 지교회는 약 600여 개나 된다. 더욱 놀라운 것은 미국 내에 수백 곳이 넘는 갈보리 채플들과 캐나다, 남미, 유럽 등지의 지교회들 중 역사가 5년이 넘은 교회는 거의 대부분 2000명 이상이 출석하고 있고, 남 캘리포니아에 있는 지교회들은 대부분 5000명 이상이 출석을 하고 있다. 그 중 그렉 로리(Greg Lorie) 목사가 담임하는 리버사이드(Riverside)의 하베스타 교회 (Harvest Church)는 2만여 명이 모인다.
무엇이 이렇게 되도록 만들었을까? 그것은 갈보리 채플의 사역 시스템이 재생산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갈보리 채플의 지교회 담임 목사들은 세상의 시각으로 볼 때는 별것이 없어 보인다. 신학석사(M. Div) 학위가 없는 목사들이 대부분이지만, 척 스미스 목사의 운영하는 갈보리 채플 성경대학에서 몇 년간 공부하면서 척 스미스목사와 함께 호흡을 한다. 그리고 그들은 신학적인 지식이나 학력이 아니라 모교회 갈보리 채플의 가장 중요한 시스템을 자기 것으로 적용하여 갈보리 채플 사역을 네트워크화 시켰다. 그들은 성경을 조직적으로 가르치는 시스템과 교회의 행정 구조 두 가지를 철저히 익힌 후에 파송되었다. 성경을 조직적으로 가르친다는 것은 조직신학을 잘 배웠다는 뜻이 아니라 성경을 철저히 책별(Book by book), 장별(Chapter by chapter), 절별(Verse by verse)로 시스템화하여 정직하게 성령께 의존하면서 성경 전권을 가르치는 방식이다. 또한 행정제도는 목회자가 광야를 이끄는 모세와 같이 아론과 훌의 도움을 받아 하나님 앞에서 책임지는 섬김의 종의 역할을 시스템화한 것이다. 이상하게도 너무 단순한 것 같고 유별나 보이지 않는 이 시스템이 가는 곳마다 스며들어 전 서구 세계에 흩어진 갈보리 채플들을 거의 생명력 있는 대형교회로 성장하도록 하고 있다. 쉽게 말해 갈보리 채플 시스템은 담임 목회자가 진실과 열정을 가지고 반복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6.소그룹(Small Group) 사역을 통한 교회 성장
지금 미국에서 폭발적으로 부흥하는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들 가운데 대표적인 두 젊은 목사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시카고의 빌 하이벨스 목사(윌로우 크릭 교회)나 캘리포니아의 릭 워렌 목사(새들백 교회)가 아니다. 그들은 이미 40대 후반의 목사이다. 40대 초반의 목사 가운데 콜로라도 덴버의 뉴 라이프 교회의 테드 헤가드 목사와 텍사스 댈러스의 뉴 커버넌트 펠로우십 교회의 에드 영 목사가 미국의 대표적인 젊은 목사이다.
이들이 섬기는 교회를 방문하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있는데, 하나는 교회입구에 교회안내서 보다 더 눈에 띄게 갖다 놓은 “Why join a Small Group"(왜 소그룹에 참여해야 하는가?) 이라는 안내지이고, 또 하나는 지역별 소그룹 안내 부스와 현관 벽에 붙어 있는 소그룹 리더들의 사진과 각 소그룹 모임의 지도자들의 명함이다. 이들은 대부분 평신도 리더들인데 목회자 보다 일반 성도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을 세워 놀라운 성장을 경험하고 있다.
테드 헤가드 목사가 섬기는 교회도 개척한지 15년만에 교인이 거의 만 명이 모이는 교회가 되었고, 에드 영 목사의 교회는 개척 10년이 안된 교회인데 칠천 명이 모이고 있으니 주목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왜 그럴까 하고 살펴보았더니 담임목사의 창조적 리더십이 큰 영향력을 갖는 것은 물론이었지만 그 지도력을 뒤받침하는 역동성 있는 소그룹이 열쇠였다.
출처: 미국 대형교회에 대한 내용만을 따로 발췌하여 YWAM 권기호 선교사님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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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적 교회, 선교적 예배(1)
서구의 많은 철학자와 사회학자는 근대 시대(Modernity)를 거치며 종교의 종말을 고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 과학과 합리성에 기반한 인류 발전에 대한 기대는 미래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을 노래하며 ‘신’(gods)이 필요 없는 시대가 도래할 것을 예측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인류는 거대한 역사의 격류 속에서 인간 스스로에 대한 절망과 의심에 직면하게 된다. 절대성과 예측성, 인본주의와 낙관주의로 대변되던 희망의 시대는 저물고 모든 것이 불투명하고 의심 투성이인 포스트모던(Post-modern) 시대가 도래하게 된 것이다. 예측 불가능의 시대! 과연 종교의 미래는 어떠한 운명을 맞이할 것인가?
하버드대학의 종교학자인 하비 콕스(Harvey Cox)는 2009년 The Future of Faith(신앙의 미래)라는 책을 통해 21세기 세계 종교의 특징과 흐름을 다음과 같이 요약 설명했다. “첫째, 종교가 재 부흥하고 있다. 둘째, 근본주의적 종교가 몰락하고 있다. 셋째, 종교의 요소에 대한 본질적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
이 땅에서 종교의 자취는 사라질 것이라는 비관적 예측과 달리 종교가 새로운 활력을 발휘하게 되었다는 콕스의 지적은 거대 담론에 대한 강력한 거부를 표방하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선교적 희망을 품게 하는 단초가 될 것인가? 문제는 이러한 종교의 부흥이 기존의 전통적 종교, 특히 교리와 제도, 이념과 신념으로 무장된 전통적 차원의 근본주의적 기독교와는 무관한 현상이라는 점이다. 특히 기술의 발전을 통해 최첨단의 과학 문명을 경험하고 있는 서구 사회와 그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면서 급속하게 세속화의 길을 걷고 있는 기독교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과거 1500년 동안 자칭 기독교 국가(Christendom)를 표방하면서 제도화의 길을 걷게 된 기독교의 운명은 점차적인 선교적 동력의 상실로 귀결되었다. 외적인 확장과 성과 속에 대한 구분, 예수의 원초적 가르침 대신 신조와 신학에 더욱 집착하게 된 기독교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갈등하고 있는 현대인들의 갈증을 해소해 주지 못하는 영적 무기력함을 경험하고 있다. 반면 포스트모던 시대에 신비와 개인적 영적 체험을 표방하는 새로운 종교들은 세속적 영역에서 살고 있는 개인의 삶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면서, 현대인들의 일상생활 속으로 깊이 침투하고 있는 것을 본다.
이러한 변화는 신 인식에 관한 질문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근대 시대에 가장 치열한 질문은“하나님은 존재하는가?”(Does God Exist?)에 대한 문제였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시대에 접어들면서 그 질문은 “어떤 신이 진짜인가?”(Which God is Real?)라는 질문으로 대체되고 말았다. 하비 콕스가 주장하듯이 개인적 판단과 가치가 강조되는 시대 속에서 신앙에 대한 탐구는 결국 본인의 상황과 기호에 맞춰 선택 될 뿐이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믿었던 전통에 기초한 신념과 규칙들이 더 이상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포스트모던 시대의 교회가 마치 난간에 서 있는 듯 위태롭게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실용주의적이며 경험주의적 요소가 강화된 새로운 종교적 특성들은 전통과 교리 자체를 강조하는 제도화된 교회에 새로운 도전과 과제를 던져 주고 있는 것이다.
서구의 많은 철학자와 사회학자는 근대 시대(Modernity)를 거치며 종교의 종말을 고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 과학과 합리성에 기반한 인류 발전에 대한 기대는 미래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을 노래하며 ‘신’(gods)이 필요 없는 시대가 도래할 것을 예측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인류는 거대한 역사의 격류 속에서 인간 스스로에 대한 절망과 의심에 직면하게 된다. 절대성과 예측성, 인본주의와 낙관주의로 대변되던 희망의 시대는 저물고 모든 것이 불투명하고 의심 투성이인 포스트모던(Post-modern) 시대가 도래하게 된 것이다. 예측 불가능의 시대! 과연 종교의 미래는 어떠한 운명을 맞이할 것인가?
하버드대학의 종교학자인 하비 콕스(Harvey Cox)는 2009년 The Future of Faith(신앙의 미래)라는 책을 통해 21세기 세계 종교의 특징과 흐름을 다음과 같이 요약 설명했다. “첫째, 종교가 재 부흥하고 있다. 둘째, 근본주의적 종교가 몰락하고 있다. 셋째, 종교의 요소에 대한 본질적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
이 땅에서 종교의 자취는 사라질 것이라는 비관적 예측과 달리 종교가 새로운 활력을 발휘하게 되었다는 콕스의 지적은 거대 담론에 대한 강력한 거부를 표방하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선교적 희망을 품게 하는 단초가 될 것인가? 문제는 이러한 종교의 부흥이 기존의 전통적 종교, 특히 교리와 제도, 이념과 신념으로 무장된 전통적 차원의 근본주의적 기독교와는 무관한 현상이라는 점이다. 특히 기술의 발전을 통해 최첨단의 과학 문명을 경험하고 있는 서구 사회와 그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면서 급속하게 세속화의 길을 걷고 있는 기독교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과거 1500년 동안 자칭 기독교 국가(Christendom)를 표방하면서 제도화의 길을 걷게 된 기독교의 운명은 점차적인 선교적 동력의 상실로 귀결되었다. 외적인 확장과 성과 속에 대한 구분, 예수의 원초적 가르침 대신 신조와 신학에 더욱 집착하게 된 기독교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갈등하고 있는 현대인들의 갈증을 해소해 주지 못하는 영적 무기력함을 경험하고 있다. 반면 포스트모던 시대에 신비와 개인적 영적 체험을 표방하는 새로운 종교들은 세속적 영역에서 살고 있는 개인의 삶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면서, 현대인들의 일상생활 속으로 깊이 침투하고 있는 것을 본다.
이러한 변화는 신 인식에 관한 질문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근대 시대에 가장 치열한 질문은“하나님은 존재하는가?”(Does God Exist?)에 대한 문제였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시대에 접어들면서 그 질문은 “어떤 신이 진짜인가?”(Which God is Real?)라는 질문으로 대체되고 말았다. 하비 콕스가 주장하듯이 개인적 판단과 가치가 강조되는 시대 속에서 신앙에 대한 탐구는 결국 본인의 상황과 기호에 맞춰 선택 될 뿐이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믿었던 전통에 기초한 신념과 규칙들이 더 이상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포스트모던 시대의 교회가 마치 난간에 서 있는 듯 위태롭게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실용주의적이며 경험주의적 요소가 강화된 새로운 종교적 특성들은 전통과 교리 자체를 강조하는 제도화된 교회에 새로운 도전과 과제를 던져 주고 있는 것이다.
변화, 그 본질로의 회귀
위기에 선 교회! 역설적이게도 하나님의 역사는 위기 앞에서 새로운 갱신과 부흥을 통해 확장되어 왔기 때문에,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갱신 운동을 우리는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위기의 길을 걷고 있는 서구 교회, 특히 영국과 북미 지역을 중심으로 살펴 볼 때, 그들의 반응과 대응은 어떠했을까? 어디에서 하나님의 역사는 지금도 역사하고 있는 것일까? 급속한 변화의 도상위에 서 있는 한국교회가 추구해야 할 모델은 과연 무엇일까?
필자는 서구 교회의 변화와 갱신을 추적 연구하면서, 두 가지 반응에 주목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교회에 대한 원초적 질문으로의 회귀이다. 즉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교회의 본질적 사명과 존재이유는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성서적 신학적 관점에서 다시 던지면서, 굳어지고 정형화된 사역에 도전장을 던지기 시작했다. 두 번째 주목해야 할 운동은 상황에 대한 절박한 인식과 반응으로 도출된 실험적 사역이다. 젊은이들이 교회를 외면하는 상황 속에서 그들의 문화에 적합한 사역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다양한 형태의 사역이 시도되었고, 이는 새로운 형태의 신앙 공동체를 등장하게 했다.
흥미로운 점은 교회에 대한 성서적, 신학적 고찰은 기존의 선교학자들을 중심으로, 새롭고 신선한 사역적 노력들은 제도권 내 교회가 가지고 있던 경직성에 절망을 느낀 젊은 사역자들을 중심으로 시도되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기존 교회가 세상의 문화를 죄악시하며 세상과 단절된 형태의 사역을 고집하는 구조를 통해서는 결코 새롭게 부상하는 세대(Emerging generation)의 영적 갈증을 풀어 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그들은 기존 교회의 울타리 밖으로 나와 새로운 세대를 위한 선교적 시도를 행하는 선택을 감행한다. 당연히 이들은 이전에 실시된 구도자 예배(Seekers Service)나 목적이 이끄는 교회(Purpose-Driven Church), X세대를 위한 사역(X-Gen Ministries) 등과 구별되기를 원했다. 왜냐하면, 이들의 최우선적 과제는 교회의 양적 성장을 위한 전략이나 프로그램이 아닌 실천적인 측면에서 예수의 말씀과 삶을 따르는 진정한 신앙 공동체(Authentic faith community)의 형성이기 때문이었다.
이 두 가지 반응은 오늘날 주목할 만한 교회 갱신 운동으로 발전되었다. 전자는 교회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기반으로 한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 운동이 되었고, 후자는 탈 제도적이고 문화 중심적 접근을 통해 선교를 실천하려는 ‘이머징 교회’(Emerging Church) 운동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이 두 운동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연관성을 지니는데 무엇보다도 그 핵심에 ‘선교’라는 키워드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이다. 교회의 선교의 사명에 대한 재발견과 이를 실천적으로 노력하려는 진지한 시도들이 있다는 점에서 두 운동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특수성 때문에 일부 진영에서는 두 운동을 동일한 관점에서 보려는 시도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머징 교회 운동이 포스트모던 문화의 거친 도전 속에서 무기력해 보이는 제도화된 교회의 한계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과 또 교회 밖의 세대들(Unchurched Generation)에게 복음을 전파하고자 하는 실천적 노력을 강조하는 선교 공동체라는 점에서, 이머징 교회는 선교적 교회라는 큰 틀 안에서 시도되고 있는 ‘교회의 새로운 표현’(New expressions of church)의 한 부분으로 이해되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 중 하나는 이머징 교회가 영국과 미국 같은 후기 기독교 시대(Post-Christianity)의 백인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운동이며, 동시에 그들이 처한 독특한 사회, 문화적 상황에 대한 선교적 시도라는 부분이다. 따라서 우리가 집중해서 조명해야 점은 운동 자체의 현상보다는 이러한 운동의 근간이 되는 본질적 고민과 원리에 대한 성찰을 통해 한국적 상황에 맞는 사역적 대안을 형성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위기에 선 교회! 역설적이게도 하나님의 역사는 위기 앞에서 새로운 갱신과 부흥을 통해 확장되어 왔기 때문에,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갱신 운동을 우리는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위기의 길을 걷고 있는 서구 교회, 특히 영국과 북미 지역을 중심으로 살펴 볼 때, 그들의 반응과 대응은 어떠했을까? 어디에서 하나님의 역사는 지금도 역사하고 있는 것일까? 급속한 변화의 도상위에 서 있는 한국교회가 추구해야 할 모델은 과연 무엇일까?
필자는 서구 교회의 변화와 갱신을 추적 연구하면서, 두 가지 반응에 주목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교회에 대한 원초적 질문으로의 회귀이다. 즉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교회의 본질적 사명과 존재이유는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성서적 신학적 관점에서 다시 던지면서, 굳어지고 정형화된 사역에 도전장을 던지기 시작했다. 두 번째 주목해야 할 운동은 상황에 대한 절박한 인식과 반응으로 도출된 실험적 사역이다. 젊은이들이 교회를 외면하는 상황 속에서 그들의 문화에 적합한 사역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다양한 형태의 사역이 시도되었고, 이는 새로운 형태의 신앙 공동체를 등장하게 했다.
흥미로운 점은 교회에 대한 성서적, 신학적 고찰은 기존의 선교학자들을 중심으로, 새롭고 신선한 사역적 노력들은 제도권 내 교회가 가지고 있던 경직성에 절망을 느낀 젊은 사역자들을 중심으로 시도되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기존 교회가 세상의 문화를 죄악시하며 세상과 단절된 형태의 사역을 고집하는 구조를 통해서는 결코 새롭게 부상하는 세대(Emerging generation)의 영적 갈증을 풀어 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그들은 기존 교회의 울타리 밖으로 나와 새로운 세대를 위한 선교적 시도를 행하는 선택을 감행한다. 당연히 이들은 이전에 실시된 구도자 예배(Seekers Service)나 목적이 이끄는 교회(Purpose-Driven Church), X세대를 위한 사역(X-Gen Ministries) 등과 구별되기를 원했다. 왜냐하면, 이들의 최우선적 과제는 교회의 양적 성장을 위한 전략이나 프로그램이 아닌 실천적인 측면에서 예수의 말씀과 삶을 따르는 진정한 신앙 공동체(Authentic faith community)의 형성이기 때문이었다.
이 두 가지 반응은 오늘날 주목할 만한 교회 갱신 운동으로 발전되었다. 전자는 교회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기반으로 한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 운동이 되었고, 후자는 탈 제도적이고 문화 중심적 접근을 통해 선교를 실천하려는 ‘이머징 교회’(Emerging Church) 운동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이 두 운동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연관성을 지니는데 무엇보다도 그 핵심에 ‘선교’라는 키워드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이다. 교회의 선교의 사명에 대한 재발견과 이를 실천적으로 노력하려는 진지한 시도들이 있다는 점에서 두 운동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특수성 때문에 일부 진영에서는 두 운동을 동일한 관점에서 보려는 시도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머징 교회 운동이 포스트모던 문화의 거친 도전 속에서 무기력해 보이는 제도화된 교회의 한계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과 또 교회 밖의 세대들(Unchurched Generation)에게 복음을 전파하고자 하는 실천적 노력을 강조하는 선교 공동체라는 점에서, 이머징 교회는 선교적 교회라는 큰 틀 안에서 시도되고 있는 ‘교회의 새로운 표현’(New expressions of church)의 한 부분으로 이해되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 중 하나는 이머징 교회가 영국과 미국 같은 후기 기독교 시대(Post-Christianity)의 백인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운동이며, 동시에 그들이 처한 독특한 사회, 문화적 상황에 대한 선교적 시도라는 부분이다. 따라서 우리가 집중해서 조명해야 점은 운동 자체의 현상보다는 이러한 운동의 근간이 되는 본질적 고민과 원리에 대한 성찰을 통해 한국적 상황에 맞는 사역적 대안을 형성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교회의 본질적 사명으로서 선교
오늘날 위기에 처한 교회의 회복은 본질적 측면에서 교회됨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그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때 가능하다. 그렇다면 교회란 무엇이고 그 본질적 사명은 무엇인가?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은 교회를 ‘순례의 길을 걷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묘사했다. 이어 그들에게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과 화목되게 하는 사역적 책임이 주어졌음을 상기하면서 두 가지 관점 즉, 선교적 관점과 종말론적 관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먼저 선교적 차원을 살펴보자. 교회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기 위해 부름 받은 사람들의 가시적 모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위한 대변인으로서 이들을 부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 우리는 여기서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확인하게 된다. 이 사명을 위해 주님은 제자들을 부르셨고, 훈하셨으며, 능력을 부여하셨고, 세상으로 파송하셨다. 하나님이 아들 예수를 보내시고,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신 것처럼,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교회 공동체를 향해 세상으로 나아가는 선교의 사명을 또 다시 부여하신 것이다. 종말론적 차원은 또 어떠한가? 이 역시 교회의 선교적 사명과 깊은 연관성을 가진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두 시대의 중첩 기간’,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사도적 증인으로서 살아가는 사명을 수행하게 된다(행 1:8). 교회는 이러한 사역을 통해 세상이 하나님과 화해하고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는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교는 교회 존재의 가장 중요한 본질적 요소가 된다. 선교적 정체성을 상실할 때, 교회는 가장 중요한 본질을 망각하게 된다.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의 대사로서의 역할을 실제로 수행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호칭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뉴비긴의 말은 설득력을 가진다. 결국 선교적이고 종말론적인 관점을 상실한 교회는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비선교적 구조로 변모할 수밖에 없다. 교회는 오직 세상을 위해 존재하게 될 때 그 부르심의 본질적 사명에 충실한 주님의 공동체로서 그 역할을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위기에 처한 교회의 회복은 본질적 측면에서 교회됨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그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때 가능하다. 그렇다면 교회란 무엇이고 그 본질적 사명은 무엇인가?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은 교회를 ‘순례의 길을 걷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묘사했다. 이어 그들에게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과 화목되게 하는 사역적 책임이 주어졌음을 상기하면서 두 가지 관점 즉, 선교적 관점과 종말론적 관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먼저 선교적 차원을 살펴보자. 교회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기 위해 부름 받은 사람들의 가시적 모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위한 대변인으로서 이들을 부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 우리는 여기서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확인하게 된다. 이 사명을 위해 주님은 제자들을 부르셨고, 훈하셨으며, 능력을 부여하셨고, 세상으로 파송하셨다. 하나님이 아들 예수를 보내시고,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신 것처럼,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교회 공동체를 향해 세상으로 나아가는 선교의 사명을 또 다시 부여하신 것이다. 종말론적 차원은 또 어떠한가? 이 역시 교회의 선교적 사명과 깊은 연관성을 가진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두 시대의 중첩 기간’,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사도적 증인으로서 살아가는 사명을 수행하게 된다(행 1:8). 교회는 이러한 사역을 통해 세상이 하나님과 화해하고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는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교는 교회 존재의 가장 중요한 본질적 요소가 된다. 선교적 정체성을 상실할 때, 교회는 가장 중요한 본질을 망각하게 된다.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의 대사로서의 역할을 실제로 수행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호칭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뉴비긴의 말은 설득력을 가진다. 결국 선교적이고 종말론적인 관점을 상실한 교회는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비선교적 구조로 변모할 수밖에 없다. 교회는 오직 세상을 위해 존재하게 될 때 그 부르심의 본질적 사명에 충실한 주님의 공동체로서 그 역할을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
선교적 교회론
오늘날 교회의 비극적인 모습 중 하나는 선교를 교회의 다양한 사역 중 하나로 이해하고 교회 성장의 방편으로 활용하는 경우이다. 그러나 선교적 교회는 세상을 향한 증인됨의 사명을 교회의 본질로 규정하고 그 존재 목적과 사역 전부를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차원으로 승화시킨다. 바렛(Lois Y. Barret)은 “선교적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위해 의도하셨던 사역, 즉 깨어지고 죄로 만연한 세상을 회복하고, 구속하며, 온전케 하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함에 의해 형성된 교회를 지칭한다.”라고 정의했다. 따라서 선교에 의해 형성된 교회는 세상의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백성과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기 위해 과감하게 세상을 향해 나아갈 뿐만 아니라 그 문화 속으로 들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모험을 기꺼이 감당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선교적 교회의 특성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가? 연합적 측면에서 세 가지가 고려되어야 한다. 첫째,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교회는 영원 안에 존재하시지만 동시에 인류와 교제하기 원하시는 초월적이고 영원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대변한다. 둘째,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는 성육신적 사역을 통해 문화와 연관되고 세상 가운데서 증인됨의 사역을 감당한다. 셋째, 성령의 거룩한 전으로서 교회는 성도들의 공동체 안에 함께하시는 그분의 현존을 통해 세상이 하나님을 알고 경험할 수 있도록 세상을 초청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선교적 공동체인 교회는 주님의 ‘가라’는 명령을 통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을 찾아 복음을 증거한다. 그러므로 선교적 교회의 사역은 입술을 통한 복음 전파에 머물지 않는다. 그 존재됨(being)과 실천(doing)의 양 날개를 통해 선교적 사역은 이루어진다. 또한 교회의 성도들은 자신의 개인적 필요를 채우기 위한 신앙생활로부터 탈피해,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선교적 사역을 감당하는 선교사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한다. 선교적 공동체로서 교회는 성육신적 사역을 통해 세상 안에서 세상을 향한 사랑과 섬김을 실천한다. 세상 안에서 교회는 성령의 전으로서 거룩한 성전으로 존재(being)하며, 죄인들을 위한 병원으로서 그들을 기꺼이 환영하고 받아들이는 사역(doing)을 실천적으로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선교적 교회는 선교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동참하기 위해 세상으로부터 부름(calling) 받고, 세상을 섬기기 위해 보냄(sending) 받은 공동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선교적 사명을 받은 공동체와 성도 개개인은 ‘세상 속에서’(in world), ‘세상과 함께’(with world), ‘세상을 위해’(for world)존재하며 하나님 나라(Kingdom of God) 실현을 위해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동참하는 사역을 감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교적 교회는 그 존재됨과 세상을 향한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지속적인 소명의 회복이 필요하다. 구더(Darrell L. Guder)가 ‘교회의 지속적인 회심’(The Continuing Conversion of the Church)을 이야기한 것처럼, 교회의 본질이 무엇이며 그 본질에 입각한 사역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지속적으로 성찰하여야 한다. 즉 개인화되고 실용주의적 신앙을 소유한 지역 교회의 회중과 전통과 교리에 묶여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복음 전파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치 못하는 제도화된 교회에 대한 지속적 회심은 선교적 교회의 핵심 사항이 된다.
[출처] [이상훈 교수] 선교적 교회, 선교적 예배 (1)|작성자 WMI
오늘날 교회의 비극적인 모습 중 하나는 선교를 교회의 다양한 사역 중 하나로 이해하고 교회 성장의 방편으로 활용하는 경우이다. 그러나 선교적 교회는 세상을 향한 증인됨의 사명을 교회의 본질로 규정하고 그 존재 목적과 사역 전부를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차원으로 승화시킨다. 바렛(Lois Y. Barret)은 “선교적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위해 의도하셨던 사역, 즉 깨어지고 죄로 만연한 세상을 회복하고, 구속하며, 온전케 하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함에 의해 형성된 교회를 지칭한다.”라고 정의했다. 따라서 선교에 의해 형성된 교회는 세상의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백성과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기 위해 과감하게 세상을 향해 나아갈 뿐만 아니라 그 문화 속으로 들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모험을 기꺼이 감당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선교적 교회의 특성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가? 연합적 측면에서 세 가지가 고려되어야 한다. 첫째,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교회는 영원 안에 존재하시지만 동시에 인류와 교제하기 원하시는 초월적이고 영원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대변한다. 둘째,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는 성육신적 사역을 통해 문화와 연관되고 세상 가운데서 증인됨의 사역을 감당한다. 셋째, 성령의 거룩한 전으로서 교회는 성도들의 공동체 안에 함께하시는 그분의 현존을 통해 세상이 하나님을 알고 경험할 수 있도록 세상을 초청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선교적 공동체인 교회는 주님의 ‘가라’는 명령을 통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을 찾아 복음을 증거한다. 그러므로 선교적 교회의 사역은 입술을 통한 복음 전파에 머물지 않는다. 그 존재됨(being)과 실천(doing)의 양 날개를 통해 선교적 사역은 이루어진다. 또한 교회의 성도들은 자신의 개인적 필요를 채우기 위한 신앙생활로부터 탈피해,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선교적 사역을 감당하는 선교사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한다. 선교적 공동체로서 교회는 성육신적 사역을 통해 세상 안에서 세상을 향한 사랑과 섬김을 실천한다. 세상 안에서 교회는 성령의 전으로서 거룩한 성전으로 존재(being)하며, 죄인들을 위한 병원으로서 그들을 기꺼이 환영하고 받아들이는 사역(doing)을 실천적으로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선교적 교회는 선교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동참하기 위해 세상으로부터 부름(calling) 받고, 세상을 섬기기 위해 보냄(sending) 받은 공동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선교적 사명을 받은 공동체와 성도 개개인은 ‘세상 속에서’(in world), ‘세상과 함께’(with world), ‘세상을 위해’(for world)존재하며 하나님 나라(Kingdom of God) 실현을 위해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동참하는 사역을 감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교적 교회는 그 존재됨과 세상을 향한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지속적인 소명의 회복이 필요하다. 구더(Darrell L. Guder)가 ‘교회의 지속적인 회심’(The Continuing Conversion of the Church)을 이야기한 것처럼, 교회의 본질이 무엇이며 그 본질에 입각한 사역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지속적으로 성찰하여야 한다. 즉 개인화되고 실용주의적 신앙을 소유한 지역 교회의 회중과 전통과 교리에 묶여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복음 전파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치 못하는 제도화된 교회에 대한 지속적 회심은 선교적 교회의 핵심 사항이 된다.
[출처] [이상훈 교수] 선교적 교회, 선교적 예배 (1)|작성자 WMI
선교적 교회, 선교적 예배 (2)
현대예배의 흐름
선교적 예배의 핵심요소와 의미
나가는 말
[출처] 미국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교회들|작성자 뱅갈사랑
[출처] 미국교회 침체? 급성장하는 청년들의 교회에는 그것이 있다|작성자 뱅갈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