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으로부터 해방된지 3년. 이름도 생소한 경상남도 동래군 월내면의 작은 어촌마을. 가난한 엿장수의 둘째딸. 전형적인 남아선호의 전형적인 경상도 집안에서 그녀가 태어났을때 친할머니가 처음 한 말. "이까짓 씰데없는 가시나 날라고 온 식구를 떼거지로 고생시켰나"
미 육군 소령으로 한국에서도 몇번 복무하였고 제대후 59세에 하버드 대학 박사 학위를 따 현재 희망연구소 소장인 서진규 박사. 1999년에 일요스페셜과 성공시대에서 그녀를 다루면서 유명세를 타게 되었지만, 그녀의 인생은 참으로 칠전팔기 인생입니다. 그녀가 인생을 돌아보며 쓴 자전에세이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천대받던 1970년대. 가발 공장 여공이 겁도 없이 홀홀 단신으로 뉴욕행 비행기를 타고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멋지게 성공해서 돌아오겠다는 일념만으로.
그러나 젊은 처녀가 멋모르고 품었던 환상과 달리 세상은 너무나 험난했고 그녀의 인생 또한 굴곡의 연속이었습니다. 미국땅에서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행복하기 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가부장적인 남편은 "북어와 마누라는 한달에 한번씩 패야 제 맛"이라며 남들이 보든 말든 손찌검을 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스물 여덟 생일날 도망치듯 간 곳이 군대였습니다.

흔히 군대 갔다온 남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악몽이 훈련소에 다시 입소하는 것이라고 할만큼 힘들고 고달픈 곳입니다. 그러나 젖먹이 아이까지 남의 손에 맡긴채 오로지 폭력 남편으로부터 도피하겠다는 일념으로 선택했던 곳이지만, 군대는 그녀에게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8주의 훈련에서 최우수 훈련병으로 졸업했고 특기학교인 보급학교에서도 최고 우등생으로 졸업했습니다. 무엇보다 인종이나 성별, 나이와 상관없이 어떤 차별도 없다는 것이 자신감을 주었습니다.
비록 이후에도 거듭되는 남편의 폭력에 결국 이혼을 했고(오죽하면 심지어 병영에서 총을 가져와 쏘아 죽이는 상상까지 했다고 하니) 독일에서 근무하다 만난 사람과 재혼했지만 다시 이혼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아무도 없는 이국땅에서 꿋꿋하게 견뎌나간 것은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더욱이 이혼과 전세계 여기저기를 방랑자처럼 떠돌아 다니는 환경속에서도 어린 딸이 구김살 없이 클 수 있게 노심초사하였습니다. 자립심을 키워주기 위해 11살때부터 용돈벌이로 엄마의 군화 닦이를 시켰고 고등학생때에는 식당 종업원이나 과외로 학비를 벌도록 했습니다. 서로의 의사를 존중하고 대화를 많이 하며 했다고 합니다.
"누구에게는 물이 반밖에 차있지 않은 컵이지만 누구에게는 물이 반이나 차있는 컵이다."
이런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마인드가 가발공장 여공이 당당하게 세상에 설 수 있도록 한 힘일 것입니다. 딸 성아 역시 엄마의 영향을 받아 고등학교에서는 남자들 밖에 없는 야구팀의 홍일점으로 활약했고 전교 학생회 회장, 학교 신문 편집장 등을 다방면에서 자기 능력을 펼쳤고 미 대통령상까지 수상했다고 합니다. 하버드대에 들어간후 ROTC가 되었다는데 이 책이 나온지 꽤 되었으니 지금쯤이면 어엿한 미 육군 장교로 활동하고 있겠지요. 엄마로서 이 이상 뿌듯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서진규 박사는 자신이 기억력도 나쁘고 머리도 둔하며 집안에서는 천덕꾸러기였지만 초등학교 5학년때 담임선생님의 한마디 '예언'이 자신의 인생에 큰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지독한 ADHD라서 "너는 돌머리야"라고 교사가 욕을 했던 에디슨, 그러나 "우리 아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단지 호기심이 많을 뿐입니다."라고 말했던 어머니의 말에 발명왕 에디슨이 있었다고 하듯,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나 역경을 딛고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 누군가의 "너는 꼭 크게 될 것이다"라는 격려 한마디가 인생의 등불이 되었다는 대목을 자주 보게 됩니다.
자녀들이 공부 못한다고 내 눈에 차지 않는다고 비난하거나 나무라는 대신, 되도록 격려하고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세요. 그럼 그 아이가 컸을때 훨씬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이 될 것입니다. 부모 자식만이 아니라 직장 동료와 상하 직원들끼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난은 상대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와 원한마저 사게 됩니다만, 칭찬과 격려는 상대에게 자신감은 물론 나 또한 상대의 신뢰감을 얻게 됩다. 말의 힘이란 이렇게 대단한 것입니다.
누구나 성공과 행복을 바라지만 막연히 뜬구름을 잡거나 로또를 사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보게 됩니다. 서진규 박사가 말하는 "희망의 증거"란 큰 돈을 벌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나 자신이 당당하게 설 수 있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녀가 가난을 탓하고 부모를 탓하고 주변 환경을 탓할뿐 스스로 노력하지 않았다면 그냥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끝나버렸을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시련과 역경에 쉽게 좌절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또한 우리는 과거에 얾매이거나 앞만 보며 달리다 막상 눈앞의 현실은 잊기 일쑤입니다. 가진 것이 없다며 불평하지만,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데 단지 그걸 모르고 있을 뿐이죠.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면 매우 재미있고 아름다운 것들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이 전정 행복한 삶이 아니겠는가"
서진규 박사가 이 책에서 말하는 결론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녀의 인생이 어떤 사람에게는 대수롭지 않게 보일런지도 모르지만, 늦깍이로 하버드대 박사를 딴 것이 뭐 대단하냐라고 할 지도 모르지만. 어려운 환경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아니라 당당하게 남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그 모습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