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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설교문

[20250601]예수님은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시는 분입니다./ 누가복음 4:16-21

작성자마경훈목사|작성시간25.05.31|조회수328 목록 댓글 1

예수님은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시는 분입니다./ 누가복음 4:16-21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본문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난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향 나사렛을 방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 예배에 참석하셨습니다. 성경을 읽을 차례가 되자 예수님께서 일어나셨습니다. 당시 회당 예배에서는 회중 가운데서 한 명이 성경을 봉독하는 관례가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회당장에게 선지자 이사야의 두루마리를 건네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사야서 61장을 찾아 읽으셨습니다. 이 구절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할 메시아에 대한 예언입니다. 예수님은 이 구절을 읽으신 후에 자리에 앉으셔서 회중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예수님께서는 이사야의 예언이 바로 오늘, 자신을 통해 성취되었음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예언된 메시아이며, 그 예언의 성취자임을 밝히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면에서 눌려 삽니다. 그래서 인생이 힘들고 고달픕니다. 어떤 사람이 20kg 쌀 포대를 어깨에 메고 있으면 그는 그 포대의 무게에 눌립니다. 그 짐을 1365일 내내 짊어지고 다닌다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예수님은 우리를 누르는 인생의 무거운 짐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는 분입니다. 8:17입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한 것을 담당하셨습니다.

설교의 제목은 예수님은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시는 분입니다.”입니다. 과연 예수님은 우리를 어떤 눌림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시는 분일까요?

 

1. 죄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십니다.

죄란 인간이 하나님의 기준과 목적에서 벗어나거나, 그분이 원하시는 삶의 방식에 미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죄의 결과는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 즉 영적 죽음입니다. 육체적 죽음과 고통입니다. 인간 내면의 부패와 타락입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관계의 파괴입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자연의 관계의 파괴입니다. 그 결과 환경적인 저주가 찾아왔습니다. 사탄의 지배와 종속입니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 되고 사탄의 권세 아래 놓입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영원한 형벌입니다. 죄 때문에 땅에서는 가시와 엉겅퀴가 나게 되었고, 인간은 땀을 흘려야 먹고 살 수 있습니다. 죄를 해결하지 못하면 심판 받아 영원한 지옥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처럼 죄의 결과는 인간의 영혼, 육체, 관계, 그리고 세상 전체에 총체적이고 파괴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감사하게도 성경은 죄의 심각한 결과를 분명히 제시하지만, 동시에 죄에서 벗어나 구원받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명확한 방법도 제시합니다. 사람이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53:5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예수님이 고난당하신 것은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해결하시기 위한 고난이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의 공로로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오래 전에 한 사람이 장마철에 한강에 물 구경을 하러 갔습니다. 집도 떠내려가고, 돼지도, 통나무도 온갖 것들이 다 떠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한 여자가 떠내려가면서 살려 주세요라고 소리 지르는데, 손가락마다 금반지들이 반짝 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남자는 여자에게로 생명을 걸고 수영을 하여 들어갔습니다. 그 여자를 구하기 위함이 아니라 금반지가 탐나서였습니다. 어떤 손가락의 반지는 잘 뺏는데 어떤 손가락의 반지는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 남자가 여자의 손가락을 잘랐습니다. 그리고 금반지 금 목걸이를 다 빼가지고 나왔습니다. 이 일로 그 사람의 인생은 혼돈 속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 날 밤부터 자리에 눕기만 하면 으악하는 비명소리가 들려서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그는 금반지를 하나씩 팔아 술을 마셨습니다. 어느 날은 밤새도록 술을 마셨습니다. 자다가 깨어 보니 술집이었습니다. 목마르기에 옆에 있는 그릇의 물을 마시고 보니 재떨이에 있는 물이었습니다. 담배꽁초, 술 찌꺼기, 침 뱉은 것 등의 혼합물이었습니다. ‘내가 짐승이지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터덜터덜 공허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새벽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교회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새벽부터 웬 사람들이 이렇게 모이나?’ 하고 따라 들어가 보니 새벽기도 시간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어떤 죄를 지었어도 예수님의 십자가만 붙들면 다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시면서 강도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평생 강도짓을 했어도 예수님을 믿으면 죄사함 받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설교였습니다. 그는 설교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는 철저하게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날부터 죄로부터 자유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추악한 죄인을 주님께서 부르시고 받아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시는 분입니다.

 

2.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십니다.

육체적인 질병은 사람들을 괴롭게 하고 삶의 기쁨을 빼앗아갑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병든 자를 치유하시고 고통 받는 자들을 회복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3대 사역을 하셨습니다. 가르치셨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고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자로 파송하시기 전에 먼저 그들에게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주신 권세를 믿는 우리에게도 주셨습니다. 조건이 있다면 믿음입니다. 16:17,18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예수님은 믿는 자들에게 5대 표적을 주셨습니다. 마지막 표적은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낫는 표적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눌리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의 고난 때문입니다. 벧전 2:24입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신 이유는 우리를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해방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평생 병을앓으셨습니다. 53:3입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예수님은 질고를 아는 자였습니다. 예수님은 질병을 아셨습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자신이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새번역에서는 그는 언제나 병을 앓고 있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예수님이 언제나 질병을 앓으신 이유는 우리의 병을 대신 짊어지신 것입니다. 8:17입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담당하셨습니다. 우리의 병을 짊어지셨습니다.

지난 수요일에는 일본 벳푸에서 사역하시는 박경숙선교사님이 오셔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박경숙선교사님은 젊을 때 주님을 떠나서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 어느 날 와사풍이 와서 입이 돌아가고 알츠하이머 치매에 걸렸습니다. 지금도 뇌 사진을 찍으면 하얗게 보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분의 아버지가 공원에서 전도하는 선교사님을 만났습니다. 아버지는 제 딸이 급하니, 제 딸에게 복음을 전해주세요.”라고 하고는 선교사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선교사님이 박경숙 자매를 보자마자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고 선포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하나님의 치유가 임하여 와사풍이 치료되었고 치매도 치료를 되었습니다. 박경숙선교사님은 병을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십니다.

 

3. 가난과 경제적 어려움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돈이면 다냐?”라고 마치 돈이 필요 없는 것처럼 말하는데요. 돈은 다가 아지만 인간의 생활에 95% 이상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전 세계 신생아 사망의 거의 절반인 약 42%를 차지합니다. 2019년 전 세계 신생아 사망자 245만 명 중 약 100만 명이 이 지역에서 사망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신생아들이 저체온증으로 사망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신생아 저체온증의 치명률이 최대 52%에 달합니다. 아프리카 신생아 저체온증 사망을 방지하기 위한 캠페인 중에 가장 대표적인 캠페인은 모자 뜨기 캠페인입니다. 참여자들이 직접 뜬 털모자를 아프리카 신생아들에게 보냅니다. 모자 하나의 가격이 얼마나 될까요? 1만원이면 충분합니다. 그런데 아프리카의 많은 신생아들이 모자 하나를 구하지 못해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난과 경제적인 어려움은 사람들을 좌절하게 하고 기본적인 삶의 존엄성마저 위협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물질적인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광야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곳에서 40년 간 살았습니다. 기적입니다. 어떻게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광야에서 40년 간 살았을까요? 하나님께서 새벽마다 꿀 섞은 과자와 같은 만나를 내려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물질적인 필요를 채워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은혜를 죄사함과 영혼의 구원으로 제한시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은혜를 재정적인 부분까지도 확대시켰습니다. 고후 8:9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사도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말했습니다. 어떤 은혜입니까? 예수님은 부요하신 분인데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를 부요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재정적으로 풍성한 삶을 사는 것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경제적 풍성함을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섯 가지 비결을 나누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재정적인 면에도 미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믿음대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청지기적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돈을 버는 것도 돈을 쓰는 것도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나는 하나님의 것을 맡아서 관리하는 청지기이기 때문입니다. 땀 흘려 일해야 합니다. 성경은 게으름을 멀리하고 부지런히 일하라고 명령합니다. 성경은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된다고 말씀합니다(10:4). 올바른 헌금생활입니다. 십일조는 기본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이고 하나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3:10) 구제와 나눔입니다. 6:38에서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지혜입니다. 3:16입니다. “그의 오른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의 왼손에는 부귀가 있나니여기서 그는 지혜를 말합니다. 지혜롭게 살아야 장수하고 부귀를 누릴 수 있습니다.

믿음과 기도와 지혜로 부요해진 사람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어느 날, 한 청년이 길거리에서 노숙자처럼 살았습니다. 그때 그 앞으로 고급 승용차 한 대가 쑥 지나갔습니다. 청년이 갑자기 소리쳤습니다. “하나님!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서 누구는 고급차를 타고 누구는 깡통을 차고 다녀야 합니까? 저도 정말 멋진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길거리 옆에 있는 나무를 붙들고 남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도 쓰임 받는 인생이 되게 하소서!” 그렇게 기도하기를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났습니다. 3일을 기도하자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일어서면서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저도 사업을 하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돈이 없으니까 세일즈맨부터 하겠습니다.” 그때부터 세일즈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세일즈의 효율성을 위해 사장들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사장들은 대개 바쁘니까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끈질기게 찾아가니까 점차 한 사람 한 사람 사장들을 고객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장님은 계속 그를 만나주지 않습니다. 어느 날, 성경 약 1:5을 펴놓고 막 따지듯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구절을 보니까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로 되어 있네요. 지혜를 구하면 주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 이 말씀대로 제게 그 사장님을 만날 지혜를 주소서. 지혜를 주시지 않으려면 이 말씀이 틀린 것이니 성경에서 빼 주소서.” 그런 식으로 끈질기게 기도하자 마침내 지혜가 떠올라 사장님한테 이런 편지를 썼습니다. “사장님, 저는 날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데 왜 사장님은 한 번도 못 만날까요? 사장님이 하나님보다 높은가요?” 그리고 예쁜 포장지로 포장을 한 상자에 편지와 선물을 넣고 비서에게 전달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장님이 편지를 읽고 감동을 받아 마침내 물건을 사주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그는 30대에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가 성공 동기 연구원의 설립자인 폴 마이어(Paul J. Meyer) 회장입니다. 예수님은 가난과 경제적 어려움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시는 분입니다.

 

4. 정신적인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십니다.

과거의 아픔, 배신, 폭력 등 상처와 트라우마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 삶의 크고 작은 문제에 대한 염려 등은 많은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억누릅니다. 예수님은 이런 정신적인 고통들을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11:28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예수님은 정신적으로 눌린 자들을 쉬게 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정신적인 고통으로부터 자유를 주시는 분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한 여인이 나옵니다. 그녀는 다섯 번이나 결혼하고 헤어짐을 반복했었고, 예수님께서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사람도 네 남편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니 지금은 남의 남편하고 바람나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계 속에서 그녀는 죄책감과 사회적 소외감에 시달렸습니다.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가장 더운 대낮에 물을 기르러 왔습니다. 그녀가 정신적 괴로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깊은 수치심과 외로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녀의 모든 과거를 아시고도 그녀를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깊은 감동과 자유를 경험했습니다.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자신의 삶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마을로 뛰어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파하게 되었습니다. 수가 성 여인은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서 죄와 과거의 아픔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에서 완전히 치유되었습니다.

어릴 때 밖에서 놀다가 속상한 일이 있으면 집으로 들어가서 어머니를 붙잡고 억울함을 호소하였습니다. 어머니는 다 받아주셨습니다. 나를 안아주시고 등을 두들겨주시고 내편을 들어주셨습니다. 어머니 품에서 한참을 울다보면 마음의 상처처가 치유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품은 어머니 품보다 더 넓습니다. 어머니의 품보다 더 따뜻합니다. 예수님은 다 받아주실 수 있습니다. 어떤 상처도, 어떤 슬픔도, 어떤 정신적인 고통도 다 받아주시고 풀어주십니다.

여류작가 박완서님의 간증입니다. 젊어서 혼자가 된 작가는 외아들 한 명에게 희망을 걸고 살아왔고, 그 아들은 어머니의 기대대로 명문대학 의과대학을 졸업을 했습니다. 레지던트 과정을 다 마치고 결혼을 준비하던 중이었습니다. 아침에 잘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하고 나간 아들은 저녁에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그 때 작가님은 벽에 걸려있던 십자가를 바닥에 내어 던지고 발로 밟으면서 하나님 어떻게 나에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라고 분노에 차서 오열을 하였습니다. 그 뒤 시간이 많이 지나고, 결국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아들을 여윈 상처에서 회복되었을 때, 그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나는 미쳐 버렸거나 죽음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분노와 원망을 하나님이 다 받아주셨습니다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은 우리가 드리는 감사와 찬양도 받으시지만 때로는 우리의 원망도, 분노도 다 받아주십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십니다. 죽은 아들이 살아서 돌아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슬픔과 아픔 속에 있을 때, 함부로 내 뱉었던 원망과 분노까지도 다 받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품에서 마음의 상처가 치료된 어린 아이처럼 정신적인 고통으로부터 치유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정신적인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시는 분입니다.

 

5. 관계의 문제로부터 자유롭게 하십니다.

사람은 사회적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양한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갈등, 불화, 오해를 경험하게 되고, 그로인한 스트레스와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랑과 용서의 가르침을 통해 건강한 관계를 회복하게 하시고 관계의 어려움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십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버림받고 노예로 팔려갔으니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겠습니까? 하지만 요셉은 받은 상처로 인하여 고통당하지 않았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된 후에 원수를 갚은 것이 아니라 자기 가족을 기근에서 구원하고 자기를 판 형들을 용서하고 사랑으로 대해주었습니다. 요셉은 자기에게 고통을 주었던 관계의 문제를 하나님과 하나님의 선한 뜻 안에서 극복하고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이중표 목사님이 살아계실 때 교회 집사님 가운데 사회적으로 성공한 기업가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사회적으로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전혀 나무랄 데가 없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집에서는 아내를 괴롭히는 못된 남편이었습니다. 부인은 아름답고, 교양 있고, 살림 잘하고, 나무랄 데가 없는 여자였습니다. 자기 스스로도 아내는 나무랄 데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집에만 가면 아내에게 성질내고, 못되게 굴었습니다. 너무 괴로워서 목사님에게 상담을 했습니다. 목사님과 상담 중에 성장배경에 문제가 발견 되었습니다. 자기 아버지가 어머니를 학대하고 때리는 것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그것을 보고 왜 저렇게 어머니를 구박할까 나는 결혼하면 절대로 아버지처럼 하지 않으리라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모습은 영락없이 어린 시절에 봤던 아버지의 모습이었습니다. 목사님은 그 집사님에게 사람은 두 가지를 닮는데 하나는 좋은 면에서 닮고 하나는 나쁜 면에서 닮습니다. 좋은 면에서 닮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에 닮는 것이고 나쁜 면에서 닮는 것은 미워하기 때문에 닮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미워하면 그 사람과 동일시됩니다. 아버지를 미워하면 아버지와 같이 됩니다. 그래서 용서해야 하는 것입니다고 말했습니다. 집사님은 목사님의 말씀대로 아버지를 용서하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 안에서 태어난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면서 눈물을 흘렸고, 그 마음속에 아버지를 용서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때 그분 안에서 상처가 치유되었습니다. 그렇게 밉던 아버지가 밉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고 난 후에 아내를 보니 옛날 아내가 아니었습니다. 사랑스럽고, 교양 있고, 살림 잘하는 훌륭한 아내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을 관계의 문제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관계의 문제로부터 자유롭게 하시는 분입니다.

 

6. 악한 영의 역사로부터 자유롭게 하십니다.

성경은 악한 영, 즉 사탄과 귀신들의 존재를 분명히 말합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때로는 압제하거나 속박합니다. 악한 영은 사람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진리를 깨닫지 못하게 하며, 죄를 짓도록 유혹합니다. 성경에는 귀신 들려 고통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12:22입니다. “그 때에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며 보게 된지라이 사람은 귀신의 역사로 눈 멀고 말 못했습니다. 귀신에게 눌려서 고통당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빌립보 성에서 바울 일행이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났습니다. 그 여종이 바울 일행을 따라와 소리 질렀습니다.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16:18을 보겠습니다.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사도 바울은 여종을 사로잡고 점을 치게 하는 귀신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쫓아냈습니다. 그 여종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어느 전 국회의원의 간증입니다. 그분이 중학교에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께서 너무 심각하게 편찮으시니 어른들이 어머니의 묘지를 보러 다녔습니다. 그분은 사랑하는 어머니가 떠나시는 것이 싫어서 어머니를 살려 달라고 끊임없이 기도했답니다. 하루는 꿈 속에서 기도하다가 어머니를 보니 어머니 가슴에 귀신이 올라앉아서 짓누르고 있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 저 귀신을 쫓아주세요.”하고 막 부르짖었더니,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귀신을 쫓아주시더랍니다. 그때 누군가가 부르더랍니다. 깨어 보니 어머니였습니다. “얘야, 일어나 봐라. 이제 시원하다. 살 것만 같다.” 그때 어머니의 병이 나았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은 우리를 귀신의 역사로부터 자유롭게 하시는 분입니다.

여러분 귀신이 사람을 누르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우리는 귀신이 우리를 짓누를 때 귀신이 역사한다는 사실을 알고 대적할 때도 있지만 많은 경우 눈치 채지 못하고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면 귀신은 우리를 절대 짓누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귀신의 역사로부터 자유롭게 하시는 분입니다.

 

7.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유롭게 하십니다.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내세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믿는 자의 부활도 믿습니다. 그리고 죽음 후에는 영원한 세계가 있음을 믿습니다. 불신자는 지옥이지만 믿는 자는 천국입니다. 이 확신이 충만한 사람은 결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21:4입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슬픔과 고통의 눈물이 많습니다. 이 세상에는 애통과 곡하는 것과 아픈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죽어서 가는 천국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십니다. 천국에는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죽음은 두려움이나 공포가 아니라 축복입니다. 저는 믿는 사람의 장례식장에 가서는 주님 안에서 위로 받으세요라고 위로의 말을 합니다. 그 말도 맞는 말이지만 사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영원한 천국에 입성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입니다. 정말 천국이 있고, 정말 천국이 성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아름답고 행복한 곳이라면 천국입성을 축하드려야 맞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죽음도 슬픔이 아니라 기쁨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유롭게 하십니다.

제 장모님은 죽음을 앞두고 어머니 하실 말씀 있으세요?”라고 물어보니 감사해, 감사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9시에 데리러 오신데라고 하시고는 다음 날 오전 9시에 소천 하셨습니다. 제 장모님은 젊은 나이에 혼자 되셔서 딸 여섯을 키우시며 고생을 많이 하셔서 주름이 깊었는데, 입관 예배를 드리면서 그 얼굴을 보니 주름도 많이 펴지셨고, 얼굴도 뽀얀 것이 너무 행복해 보이셨습니다. 제 아들 모세 전도사가 할머니의 죽음을 가장 슬퍼했는데 꿈 속에 젊은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손을 흔들면서 모세야! 할머니 천국 간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장모님 장례식은 형제들에게 슬픔이 아닌 기쁨을 주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천국이 있습니다. 그러니 감사합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험하고 어려운 길이어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잠시잠간입니다. 마치 아침 안개 같습니다. 안개가 자욱해도 해가 뜨면 다 사라지듯이 우리 인생이 그렇게 짧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들어갈 천국은 영원합니다. 그러니 이 땅에서 좀 고통스러워도 영원한 천국을 생각하면서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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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종승 | 작성시간 25.07.11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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