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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설교문

[20260607]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조건/ 로마서 8:28

작성자마경훈목사|작성시간26.06.06|조회수123 목록 댓글 0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조건/ 로마서 8:28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세계적으로 유명한 페르시아 카펫을 만드는 장인의 작업실 이야기입니다. 카펫을 짜는 틀의 뒷면을 보면 온갖 색깔의 실들이 아무런 규칙도 없이 엉망진창으로 엉켜 있고, 거친 매듭과 끊어진 실들로 가득해 보입니다. 초보자가 그 뒷면만 보면 "이게 무슨 아름다운 카펫이 되겠나?" 하며 실망합니다. 하지만 장인이 모든 실을 다 엮어내고 틀을 딱 돌려 앞면을 보여주는 순간, 감탄이 터져 나옵니다. 뒤에서 엉망으로 꼬여 있던 그 어두운 실들이 사실은 가장 아름다운 문양을 이루는 꼭 필요한 재료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지금 당장 내 삶의 뒷면을 보면 고난, 아픔, 실패라는 어두운 실들이 규칙 없이 엉켜 있는 엉망진창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을 짜 가시는 최고의 장인이신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가장 아름다운 선을 이루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습니다.

제가 지난 517일에 합력하여 이루어지는 선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데, 그 선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몇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1. 구원을 이룹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열심으로 인한 결과입니다. 내가 똑똑해서, 내가 끝까지 버텨내서 구원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셨기 때문에, 내 삶에 일어나는 엉망진창인 사건들조차도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쥐고 일하셔서 결국에는 나를 구원의 자리에 앉혀놓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모든 것이 합력하게 하십니다. 2. 성화를 이룹니다. 성화는 구원 받은 사람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은 내 삶의 모든 환경을 재료 삼아 나를 예수님 닮아가게 하십니다. 3. 하나님의 나라를 이룹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역사, 교회의 흥망성쇠, 심지어 복음을 대적하는 악한 세력의 움직임까지도 모두 재료로 삼으셔서 당신의 나라를 확장해 나아가십니다. 4. 개인의 삶에 유익을 이룹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만나는 문제를 징검다리로 삼으셔서 우리의 삶에 유익을 주십니다. 이 네 가지가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의 핵심 포인트입니다.

 

오늘은 같은 본문을 가지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조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본문을 다시 읽겠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1.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어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순서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이고, 그다음이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설교의 편의상 순서를 바꿔서 먼저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 조건 첫 번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일까요? 29-30절에 보면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택한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건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구원받은 백성들이며 결국 영화롭게 될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일까요?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여러분에게 질문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역사적 사실로 믿습니까?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나를 대속하신 사건으로 믿습니까? 여러분은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까?” 제 이 질문에 거짓 없이 아멘!”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이미 구원받은 사람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사람들입니다.

본문에서는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았다"라고 하지 않고 "입었다"라고 표현합니다. 우리가 흔히 은혜를 '입었다’, ‘사랑을 '입었다’, 상처를 입었다라고 표현할 때처럼, 여기서 '입었다'는 나의 노력이나 자격과 상관없이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것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상태를 말합니다. 부르심과 구원의 주도권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선택해서 부름을 받아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이고 주권적인 사랑이 나에게 임하여 내가 부르심을 입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서 '입다'라는 단어는 영적인 신분과 상태의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은유로 자주 사용됩니다. 옷을 입으면 그 사람의 외양과 신분이 달라집니다. 15:22을 보겠습니다.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이 말씀은 탕자가 아버지를 떠나서 개고생하다가 아버지에게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해준 것 세 가지를 말합니다. 첫째,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혔습니다. 둘째, 손에 가락지를 끼워주었습니다. 셋째, 발에 신을 신겼습니다. 이 세 가지는 돌아온 탕자의 신분과 상태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제일 좋은 옷을 입힌 것은 존귀함과 의로운 신분의 회복을 말합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제일 좋은 옷은 집안의 가장이나 아주 귀한 손님만이 입는 길고 화려한 겉옷입니다. 돼지우리에서 구르며 냄새나고 찢어진 탕자의 더러운 옷은 죄와 수치를 상징합니다. 그것은 벗기고, 아버지의 권위로 그의 수치를 완전히 덮어준 것입니다. 이 옷은 그가 이 집안의 귀한 자녀이자 상속자임을 온 동네에 공포하는 시각적 선언입니다. 영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입혀주시는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상징합니다. 3:27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우리는 본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의의 옷', '부르심의 옷'을 입혀주셨습니다. 따라서 부르심을 입었다는 것은 "이제 하나님의 자녀라는 새로운 신분의 옷을 입고 삶의 목적이 완전히 바뀐 존재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구원을 받은 것은 우리의 선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선택입니다. 세 개의 성경 구절을 보겠습니다. 1:4입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창세 전 선택입니다.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1:5입니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모태에 짓기 전 선택입니다. 우리의 형체가 생기기 전에 이미 우리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1:15입니다.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하나님은 내가 태중에서 조성되고 있을 때에 선택하시고 나를 부르셨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예수 믿는 운명이 된 것은 내가 종교성이 좋거나, 도덕적으로 뛰어나거나, 남달리 선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구절들의 공통점은 우리의 구원과 부르심이 인간의 어떠한 조건, 노력, 행동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2:8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구원은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그 구원받는 믿음이 어떻게 생겼다고 말씀합니까? “그 은혜에 의하여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과 구원은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중요한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여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천국 백성이 된 나는 하나님의 손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이 믿음의 선물을 주셨고, 하나님이 거듭나게 하셨고,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엄청난 중력과 같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점프력이 좋아도 지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구의 중력 때문에 우리의 몸이 지구에 끌려오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려 하거나, 스스로의 힘으로 무언가를 해보려 해도 하나님의 거대한 사랑과 은혜의 법 안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구보다 거대하신 하나님이 나를 끌어당겨 붙잡고 계시기 때문에 나는 결코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질 수 없습니다.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지구의 중력 때문에 우리의 몸이 지구에 끌려오듯이 우리가 때로 낙심하여 넘어질 때조차, 우리가 넘어지는 방향은 언제나 하나님의 품 안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사랑의 중력은 결코 우리를 놓치지 않습니다. 내가 똑똑해서, 내가 하나님을 끝까지 잘 붙잡아서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예배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때로 지치고 낙심하여 하나님을 떠나 도망치려 할 때조차, 우리를 결코 놓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중력이 우리를 강권적으로 붙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우리의 모든 것이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2.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두 번째 조건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확하게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것입니다. 요일 4:10입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세상의 모든 종교와 인간관계는 대개 조건과 반응으로 이루어집니다. 내가 먼저 정성을 바쳐야 신이 감동하여 복을 주거나, 상대가 나에게 잘해 주어야 나도 사랑을 베풉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방향이 정반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도 전에, 하나님을 사랑할 만한 아무런 자격이나 마음이 없을 그 때에,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찾아오시고 사랑하기로 결정하셨다는 선언입니다. 성경은 그때 우리의 상태를 하나님과 원수였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은 우리 안에 본래 선하고 사랑 가득한 성품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마치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는 달이 태양 빛을 받아서 빛나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 엄청난 사랑을 먼저 입었기 때문에 그 사랑이 우리 마음에 흘러넘쳐 반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하나님의 거대한 사랑이 만들어낸 메아리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시작하신 사랑이기에 이 사랑은 안전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먼저 사랑해서 시작된 관계라면, 내 감정이 식거나 열정이 떨어질 때 하나님의 사랑도 끊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러나 이 사랑의 출발점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시작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내가 흔들리고 연약해질 때조차 그분이 먼저 하신 사랑은 취소되거나 변하지 않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은 엄청난 중력과 같습니다. 지구가 먼저 엄청난 중력으로 우리를 당기고 있기에 우리가 지구 위에 서 있을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의 중력으로 붙잡아 주셨기 때문에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그 품 안에 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서 그 사랑을 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의 중력 때문에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특징이 있습니다. 몇 가지 정리해보겠습니다.

 

마음에 하나님 생각이 꽉 차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과 하나님을 연결시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를 만나든지 그 만남을 하나님과 연결시킵니다. 왜냐하면 그 마음에 하나님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뜨겁게 연애하는 사람은 앉으나 서나 상대만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앉으나 서나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기독교 고전 하나님의 임재 연습의 로렌스 형제(Brother Lawrence)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는 수도원의 주방에서 평생 설거지를 하고 요리를 하던 평수도사였지만, 일상의 가장 사소한 순간까지도 하나님과 연결하여 깊은 동행을 누렸던 사람입니다. 로렌스 형제가 일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한 대표적인 실례는 수도원 부엌에서 가장 보잘것없고 싫어하는 일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서 잘 나타납니다.

사실 그는 천성적으로 부엌일을 무척 싫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전쟁 부상으로 한쪽 다리를 심하게 절었기 때문에, 무거운 솥을 옮기고 온종일 서서 수십 명의 설거지를 도맡아 하는 부엌 노동은 그에게 육체적으로도 큰 고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소란스럽고 힘든 부엌일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고백하는 최고의 예배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는 주방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 늘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나의 하나님, 제가 이 일을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그리고 음식을 만들거나 그릇을 닦을 때, 의무감이나 불평으로 하지 않고 마치 앞에 계신 하나님께 선물을 드리듯 온 마음을 다했습니다. 그는 훗날 자신의 실천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프라이팬의 달걀 하나를 뒤집는 일조차도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합니다. 더 이상 할 일이 없을 때에는 바닥에 떨어진 짚세기 하나라도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줍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합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가장 낮고 천한 자리였지만, 로렌스 형제에게는 그곳이 바로 하나님과 사랑을 나누는 성소(聖所)였습니다. 그는 거창한 업적이 아니라, '아무도 원하지 않는 고된 일상 속에서 묵묵히 기쁨으로 봉사하는 것'이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실천임을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는 앉으나 서나 하나님 생각뿐이었습니다.

다윗도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했습니다. 그 증거가 시 16:8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다윗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셨다고 고백합니다. 뜨겁게 연애하는 사람이 길을 걸을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일을 할 때도 온통 머릿속이 사랑하는 사람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다윗의 마음에는 하나님 외에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밤에 침상에 누울 때까지 모든 생각이 오직 하나님께로 향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대화를 많이 하게 됩니다. 마음에 누군가로 가득 차 있으면 하루 종일 그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고, 사소한 것 하나까지 다 공유하고 싶어집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대화를 많이 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12:34)고 하셨는데 그 말씀처럼, 마음에 하나님 생각이 가득한 사람은 그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향한 기도로 터져 나오게 됩니다. 하나님과 사랑의 대화는 격식을 차려 명절에만 찾아뵙는 먼 일가친척과의 대화가 아닙니다. 아침에 눈을 뜨며 "하나님, 오늘 날씨가 참 좋네요", 길을 걸으며 "주님, 저 초록색 나무들이 참 아름답습니다",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아버지, 이때는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속삭이는 끊임없는 친밀한 소통입니다. 앉으나 서나 주님을 생각하기에, 자연스럽게 일상이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사모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앉으나 서나 하나님을 생각하는 성도의 마음속에는 주님의 얼굴을 직접 뵙고 싶다는 거룩한 열망이 있습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 또는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다"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사모합니다. 42:2입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이 말씀은 시편 기자가 얼마나 하나님과의 공식적인 만남을 사모했는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단순히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나 선물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그분 자체를 원하기 때문에 예배의 자리, 말씀의 자리, 은밀한 기도의 자리처럼 하나님과 깊이 대면할 수 있는 만남의 자리를 세상 그 무엇보다 사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헌신합니다. 제가 부부 동반으로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식사 전에 어디서 무엇을 먹을지 잠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부부와 식사를 하기로 한 부부에게 이상 기류가 발생했습니다. 남편은 고기를 먹고 싶어 하고 아내는 다른 음식을 원했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먹고 싶다고 주장하는데 보기 민망했습니다. 결국은 남편이 원하는 대로 고기를 먹었습니다. 고기를 먹는 동안 아내 되시는 분 표정이 별로였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다른 사람 앞에서 아내를 배려해주지 못하는 남편이 상당히 이기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내를 사랑한다면 아내가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을 텐데, 자기가 원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아내의 입장을 위해서 고기를 포기해도 될 텐데, 제가 알기로는 그는 늘 고기를 먹는 사람인데, 한 끼 정도는 아내가 원하는 대로 해줄 수 없었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당하신 분입니다. 진짜 사랑을 알고 진짜 사랑한다면 우리도 어떤 헌신이든 할 수 있습니다.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신겨주며 자녀의 신분을 거저 회복시켜 주었던 것처럼, 아무 자격 없는 나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그 거대한 은혜와 사랑을 깨달으면 "나 같은 자를 위해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을 위해, 내 삶을 드립니다."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에게 헌신은 무거운 짐이 아니라, 받은 사랑이 너무 커서 밖으로 흘러넘치는 은혜의 고백입니다.

냄비의 물은 저절로 끓지 않습니다. 끓으려고 노력해서 끓는 것이 아닙니다. 냄비의 물은 아무리 노력해도 스스로 끓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가스 불을 붙이고 열을 가하면 스스로 아무리 노력해도 끓지 않던 물이 곧 끓게 됩니다. 하나님을 위한 헌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헌신하려고 노력해서 헌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성령님의 능력으로 사랑의 온도를 높여주시면 그 전에는 도저히 할 수 없었던 헌신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억지로 짜내지 마시고 먼저 하나님의 사랑의 불 앞에 머무십시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 동안 머슴처럼 일하며 모진 고생을 했습니다. 낮에는 더위와 싸우고 밤에는 추위를 견뎌야 했으며, 밤새 제대로 눈붙일 겨를도 없이 양 떼를 돌보았습니다. 외삼촌의 양에게 문제가 생기면 야곱이 다 물어주었습니다. 20년 동안 외삼촌은 야곱의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며 부당하게 속였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라헬을 사랑해서 그 고통을 참아내고 7년을 며칠처럼 여겼습니다. 사랑의 힘이었습니다.

평생을 선교지에서 헌신한 에이미 카마이클(Amy Carmichael) 선교사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녀는 사랑의 힘으로 헌신적인 삶을 살았던 분입니다. 에이미가 인도의 도나버 지역에서 사역할 당시, 그곳에는 어린 소녀들을 힌두교 사원에 바쳐 성적 착취를 당하게 하는 데바다시(Devadasi)라는 악습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사원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일곱 살 소녀 프레나(Preena)가 에이미를 찾아왔습니다. 그 아이의 처참한 현실을 본 에이미는 큰 충격을 받았고,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신 진짜 이유가 이 어린 생명들을 구하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녀는 위험을 무릅쓰고 사원에 갇힌 아이들을 구출하기 시작했고,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도나버 선교회(Dohnavur Fellowship)를 세웠습니다. 아이들은 그녀를 아마(Amma)’ 즉 어머니라고 부르며 따랐고, 도나버는 수백 명의 아이들이 안전하게 자라는 믿음의 대가족이 되었습니다.

영국인인 에이미가 사원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아이들을 구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철저히 자신을 낮추고 인도인처럼 살기로 결단했습니다. 서양인의 흰 피부가 눈에 띄지 않도록 커피 즙으로 피부를 어둡게 염색하고, 평생 인도의 전통 의상인 사리를 입었습니다. 그녀는 멀리서 도움을 주는 선교사가 아니라, 그들의 아픔 속으로 직접 들어가는 성육신적 헌신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1931, 사역 중 큰 구덩이에 떨어지는 사고로 척추와 신경을 심하게 다쳤습니다. 이후 약 20년 동안 침대에 누워 지내야 하는 극심한 고통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창 너머로만 들어야 했지만, 에이미는 침상을 또 다른 선교지로 삼았습니다. 고통 속에서도 밤낮으로 기도하며 책과 시, 편지를 썼고, 그 영성 서적들은 전 세계로 퍼져 허드슨 테일러와 짐 엘리엇 같은 많은 젊은이들을 선교지로 이끌었습니다.

에이미는 195183세의 나이로 인도를 떠나지 않은 채 하나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녀의 무덤에는 화려한 비석 대신 작은 새 모이통 하나만 놓여 있으며, 거기에는 단 한 글자 ‘Amma’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그녀를 움직였던 것은 십자가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녀의 대표적인 영성집 갈보리의 사랑(If)에는 이런 고백이 있습니다. “내가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원한다고 말하면서도, 주님이 걸어가신 그 갈보리의 길을 걷는 것을 주저한다면, 나는 아직 사랑을 모르는 자입니다.” 에이미 카마이클은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그 사랑의 힘으로 평생을 인도의 상처받은 영혼들을 위해 쏟아부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헌신하게 됩니다.

 

이제 결론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의 삶이 카펫의 뒷면처럼 엉망으로 보이십니까? 하나님은 최고의 장인이시라는 것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지금도 여러분의 모든 실을 아름다운 문양으로 짜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고난은 더 이상 저주가 아니라, 우리를 예수님의 형상으로 빚어 가시는 하나님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이 말씀을 붙들고, 우리를 붙잡고 계신 하나님의 사랑의 중력 안에 오늘도 안전히 거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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