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하는가? / 시편 42:1-11
설교자: 마경훈 목사, 비전교회
절망은 내 힘과 조건이 한계에 부딪혔을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인생을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은 소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환경이 좋지 않아도 소망이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소망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행복하고 복된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화여대 교수이며, '지선아 사랑해'의 저자인 이지선 교수입니다. 그녀는 대학 4학년 때 음주운전 차량에 의한 7중 추돌 사고로 전신 55%에 3도 중화상을 입었습니다. 수십 번의 수술을 거치며 손가락 끝을 절단해야 했고, 거울 속에는 이전의 아름답던 모습 대신 낯선 얼굴이 남아있었습니다. 꿈 많던 여대생에게는 죽음보다 더한 절망이자 기가 막힐 웅덩이였습니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치료 과정 속에서 그녀는 원망하는 대신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세상의 소망은 완전히 무너졌지만,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반석이신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다시 발견했습니다. 이지선 교수는 고난의 밤 동안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찾아와 위로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크고 깊었기에 사고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고백합니다. 그녀는 "상처는 흔적이 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서 그것은 사명이 된다"는 복된 진리를 온 삶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합니까? 혹시 이지선 교수처럼 사방이 막힌 듯한 절망을 느끼고 있지는 않습니까?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원망이 여러분의 입술을 채우고 있지는 않은지요“ 오늘 이 말씀을 통해 내 상황을 보는 눈이 바뀌고, 절망의 자리가 소망의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의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다윗도 어찌 보면 이지선 교수와 비슷한 절망을 경험했습니다. 학자들은 시편 42편과 43편은 하나의 시이며 저자는 다윗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시 42편 표제어에는 [고라 자손의 미스길]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다윗이 작사·작곡하고, 고라 자손이 편곡·보존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표제어의 '마스길'이 가진 뜻 때문입니다. '마스길'은 히브리어로 '교훈', '묵상', '지혜의 시'라는 뜻입니다. 이 시는 단순히 다윗이 개인의 억울함을 토로하는 넋두리가 아니라, 인생의 가장 깊은 절망을 만났을 때 성도가 어떻게 믿음으로 자기 영혼을 다스리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영적 지침서입니다. 고라 자손들은 다윗의 인생 스토리가 담긴 이 고백 속에 흐르는 영적 교훈이 너무나 위대했기에, 이 곡을 성전에 올라오는 모든 이들이 암송하고 묵상해야 할 대표적인 교훈시로 지정하여 불렀습니다. 시편 42편은 다윗 왕이 인생의 가장 처절한 절망 속에서 드린 믿음의 고백이며, 이것이 고라 자손이라는 거룩한 찬양대의 손을 거쳐 이스라엘 전체의 '공식 예배 찬양과 교훈'으로 승화되었기 때문에 [고라 자손의 마스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당시 다윗은 영적, 정서적, 환경적으로 완전히 사방이 막혀 버린 상태였습니다. 그의 상황을 정리하겠습니다.
① 극심한 영적 갈급함과 하나님의 침묵입니다(1-2절). 다윗은 물이 없어 죽어가는 사슴처럼 영적인 목마름을 겪고 있습니다. 아무리 울부짖어도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는 하나님의 침묵이 가장 큰 절망이었습니다.
② 밤낮으로 흐르는 눈물과 신체적 탈진입니다(3, 7절). 슬픔이 극에 달해 눈물이 주야로 음식이 되었고, 거대한 폭포수와 거친 파도 같은 고난이 자신을 덮쳐 숨을 쉴 수 없는 익사 직전의 신체적 탈진 상태였습니다.
③ 과거의 영광과 대비되는 잔인한 현재입니다(4절).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를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했던 찬란한 추억은 홀로 버려진 비참한 현재와 대비되어 다윗의 마음을 더욱 처참하게 깨뜨렸습니다.
④ 대적들의 잔인한 조롱과 정신적 폭력입니다(3, 10절). 원수들은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라며 가장 아픈 영적 약점을 집요하게 공격했습니다. 다윗은 이 비방을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서지는 듯한 ‘내 뼈를 찌르는 칼’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⑤ 원수의 압제로 인한 고독과 슬픔입니다(9절). 대적들의 강력한 압제 아래 자유를 잃어버리고 슬프게 헤매고 다니는 고단한 도망자의 신세였습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시고, 사람들은 조롱하며, 환경은 압제해 오고, 내면은 눈물로 가득 찬 사면초가의 절망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윗은 자기 영혼을 향해 고함을 치듯 말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5, 11절)
다윗이 당하고 있는 절망을 정리하면 하나님은 침묵하시고, 사람들은 조롱하며, 환경은 압제해 오고, 내면은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눈물로 가득 찬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절망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다윗은 자기 영혼을 향해 고함을 치듯 말합니다. “너는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라!” 저자는 5절과 11절에서 두 번이나 자기 영혼에게 말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환경은 바뀌지 않았는데 다윗은 어떻게 소망을 선포할 수 있었을까요? 그는 자기 영혼을 방치하지 않았습니다. 낙심하는 내 영혼에게, 불안해하는 내 마음에게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명령했습니다. 오늘 여러분도 여러분의 불안한 마음을 향해, 우울해하는 영혼을 향해 믿음으로 선포하십시오. 감정에 속지 말고, 진리인 하나님을 붙잡으십시오.
오늘 설교는 처참한 상황 때문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다윗이 자기의 영혼에게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한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지금 절망 중에 있는 분이 있다면 다윗이 절망 중에도 하나님께 소망을 둔 이유를 통해서 절망을 딪고 일어나고 소망으로 충만하기를 축복합니다.
1.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2절).
2절입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다윗은 하나님을 살아계시는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①하나님의 자존성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나 다른 피조물처럼 외부에서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분은 스스로 존재하시며, 오히려 모든 피조물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시는 만물의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②하나님의 활동성을 말합니다. 죽은 신은 박물관의 유물이나 조각상처럼 가만히 멈춰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온 우주 만물을 붙드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며 끊임없이 활동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창세기 1장의 창조는 과거의 이벤트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오늘도 지구가 궤도를 돌게 하시고, 우리의 호흡을 붙드시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며, 선한 뜻을 이루기 위해 실시간으로 일하고 계십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거대한 일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작은 신음을 들으시고 활동하십니다. 19세기 말, 미국의 시카고에 극심한 기근과 한파가 몰아쳤을 때의 일입니다. 한 가난한 과부가 어린 딸이 굶주림과 고열로 신음하는 것을 보며 침대 맡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집에는 땔감도, 빵 한 조각도 없었고, 당장 아이에게 먹일 우유 한 컵을 살 돈도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인격적이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제 아이의 신음을 듣고 계시지요? 주님은 살아계신 나의 아버지가 되신다고 하셨사오니, 오늘 밤 제 아이에게 먹일 우유 한 모금을 허락해 주십시오."
바로 그 시간,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살던 한 신실한 그리스도인 사업가가 잠자리에 들려다가 마음속에 강력하고 세밀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지금 당장 우유 한 통과 식료품을 들고 가난한 과부의 집으로 가라." 그는 눈보라를 뚫고 그 집을 찾아가 문 앞에 음식을 놓아두었습니다. 과부의 기도가 끝나자마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고, 문밖에는 싱싱한 우유와 식료품이 놓여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신음에 마음 아파하시며 응답하시는 활동하시는 분이십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활동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다스리시느라 바빠서 나의 고통을 놓치는 분이 아닙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떤 하나님을 기대하십니까? 나의 고통을 '보고, 듣고, 알고' 계시는 그 하나님께 지금 구체적으로 말씀하십시오. "하나님, 지금 내 상황이 너무 힘듭니다. 도와주십시오." 기도는 활동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가장 실제적인 통로입니다. 날마다 그분께 여러분의 문제를 속삭여 보십시오.
③하나님의 인격성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고통을 보고, 듣고, 느끼십니다. 하나님은 지성과 감정, 의지를 가지신 인격적인 분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을 가지셨기 때문에 우리가 눈물 흘릴 때 함께 아파하시고, 우리가 신음할 때 귀를 기울이시며, 우리의 예배와 기도를 기쁘게 받으시고, 우리와 소통이 가능한 분이십니다.
감사한 것은 인격적이신 하나님은 내게 가까이 계시는 분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작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의 어린 딸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밤, 딸이 침대 머리에 엎드려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방 문틈으로 이 모습을 지켜보던 마크 트웨인은 기도를 마치고 일어난 딸에게 다가가 장난스럽게 물었습니다. "얘야, 그렇게 개미만 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면 저 높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실 수 있겠니?" 그러자 어린 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빠,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으시려고 하늘 보좌에서 내려와 바로 내 침대 곁에 귀를 바짝 대고 계시는걸요."
이 아이의 고백은 하나님의 인격성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거대한 우주를 경영하시느라 바빠서 우리의 작은 신음을 놓치는 분이 아닙니다. 인격적인 하나님은 우리가 속삭일 때, 그 작은 숨소리 하나까지 다 들으시려고 우리 곁에 가까이 오셔서 귀를 기울이시는 따뜻한 아버지이십니다.
④하나님의 전능성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상황을 뒤집을 실제적인 힘을 가지신 분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주변의 이방 민족들이 섬기던 우상은 인간이 금이나 돌이나 나무로 만든 생명이 없는 죽은 신이었습니다. 우상은 죽은 신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아무리 부르짖어도 비 한 방울 내리지 못하는 무능한 존재입니다. 반면 여호와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며, 사방이 막힌 절망의 자리에 새로운 길을 내시는 분입니다. 홍해를 가르시고 광야에 만나를 내리신 것처럼, 성도의 삶에 기적과 반전을 일으키시는 실제적인 힘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소망을 둬야 합니다.
2. 하나님이 도우시기 때문입니다(5절).
5절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다윗이 고백한 하나님은 나타나서 도와주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도우신 것처럼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는 이유는 우리의 자격이나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본질적인 성품과 우리를 향한 관계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는 이유입니다.
①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103:13-14입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14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육신의 부모가 자녀의 연약함을 보면 조건 없이 돕고 싶어 하듯,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자녀 된 우리가 고통당하고 부르짖을 때 조건 없이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체질을 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한계와 연약함을 누구보다 잘 아시기에 우리를 도우십니다.
②변함없고 완전한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는 가장 강력한 동기는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8절입니다.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여기서 인자하심은 ‘헤세드’입니다. 헤세드는 상황에 따라 변하는 감정이 아니라, 한 번 택하신 자를 끝까지 책임지시는 신실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처럼, 우리가 도움을 구할 자격이 없을 때조차 먼저 손을 내밀어 도우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삶의 자리에서 건지시고 도우시는 원동력이 됩니다.
③하나님의 영광과 뜻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은 단순히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선하심을 세상에 드러내십니다. 절망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한 사람은 세상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소망의 통로가 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반전의 인생을 살고 있는 ‘가마치통닭’의 창업자 김재곤 대표의 이야기입니다. 전북 고창의 지독하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소년 김재곤은 가족과 함께 서울로 상경했습니다. 그러나 중학교 2학년 때 연탄가스 중독 사고로 부모님을 한꺼번에 여의게 되었습니다. 하루아침에 4남매의 가장이 된 15세 소년은 동생들을 먹여 살려야 했습니다. 학업을 중단하고 거친 막노동 판과 닭고기 시장을 전전하며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 나갔습니다.
어떻게든 일어서 보려 맨손으로 사업에 도전했지만 무려 5번의 사업 실패를 겪으며 빚더미와 좌절의 연속인 삶을 살았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7세에는 억울한 뺑소니 누명을 쓰고 구치소에 수감되는 기가 막힌 일까지 일어났습니다. 분노와 복수심만 가득 차 오를 때, 우연히 구치소 바닥에서 성경 구절 하나를 마주합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21) 말씀 앞에서 그는 용서를 결심했고, 이 사건은 그의 인생을 바꾸는 신앙의 첫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고난의 파도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끼던 동생이 산에서 실족사하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사랑하는 큰딸이 뇌 질환으로 "길어야 2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시한부 선고를 받았습니다. 극한의 절망 속에서, 그는 원망과 불평 대신 감사와 용서를 선택했습니다. 그후 1년간 기도원에서 눈물로 말씀과 기도 훈련을 견뎌냈습니다.
인생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사업할 계획조차 전혀 없던 그에게, 하나님은 기가 막힌 방법으로 역사하셨습니다. 주변 친구들의 헌신적인 도움과 생각지도 못한 우연한 기회들이 연결되면서 닭고기 유통 사업의 문이 열렸습니다. 김재곤 대표는 기업의 이름에 자신의 신앙 고백을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주)티와이(TY)는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뜻의 닭고기 전문 유통회사입니다. (주)티지와이(TGY)는 "하나님과 당신에게 감사합니다"라는 뜻의 가마치통닭 프랜차이즈입니다. 2016년 가맹 사업을 시작한 가마치통닭은 정직한 저가 통닭 전략과 성실 경영으로 무섭게 성장했습니다. 2024~2026년 기준 전국 800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하며, 연 매출 약 2,000억 원 규모의 대형 프랜차이즈로 우뚝 섰습니다. 무엇보다 업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폐점률을 기록하며 점주들과 상생하는 착한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김재곤 대표는 자신의 자서전 제목처럼 지금의 삶을 ‘선물 받은 내 인생’이라고 고백합니다. 내 힘으로 이룬 것은 단 하나도 없으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의 삶은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도우십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소망을 둡시다.
여러분의 삶에 '내가 해결해야 한다'는 짐이 너무 무겁지는 않습니까? 김재곤 대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서야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소망을 둔다는 것은, 내 계획과 내 방법이라는 주도권을 하나님께 양도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가장 붙들고 있는 '내 계획'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하나님께 맡길 때, 하나님의 도우심은 비로소 시작됩니다.
3. 하나님이 반석이시기 때문입니다(9절).
9절입니다.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하나님은 다윗에게 반석이 되십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나의 반석이시다"라는 고백은 고난과 위기의 순간마다 믿음의 선진들이 가장 많이 했던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반석이시다"라는 고백에 담긴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가요?
①하나님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인 안전지대라는 말입니다. 잠 30장에 보면 땅에 작고도 가장 지혜로운 것 넷이 나옵니다. 그 중에 하나는 집을 바위 사이에 짓는 사반입니다. 사반은 토끼처럼 약한 동물이지만 집을 바위 사이에 짓기 때문에 맹수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합니다.
이스라엘에서 반석은 뜨거운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을 제공하고, 사나운 짐승이나 원수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숨길 수 있는 천연 요새를 의미했습니다. 세상의 환경, 사람의 마음, 우리의 감정은 시시각각 변하고 흔들리지만, 반석이신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②내 삶을 지탱하는 영원한 기초라는 말입니다. 건물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닥의 기초입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면 쉽게 무너지지만, 반석 위에 세운 집은 어떤 풍파에도 굳건합니다. 미국 뉴욕의 맨해튼은 작은 섬입니다. 그런데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위시해서 월드 트레이드 센터, UN 빌딩 등 50층 이상의 건물만 160개가 넘습니다. 작은 섬에 초고층 건물들이 많이 세워질 수 있게 된 가장 기본이 되는 이유는 거대한 바위덩어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곳에 세워진 그 높은 건물들이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서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눈에 보이는 맨해튼의 화려한 빌딩들 밑에는 흔들리지 않는 거대한 바위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화려한 성취보다 중요한 것은, 내 인생 밑바닥에 반석이신 하나님이 계시는가입니다
하나님을 반석으로 삼는다는 것은 내 인생의 가치관, 미래, 그리고 소망의 기초를 하나님께 둔다는 뜻입니다. 나의 어떠함에 구원의 기준을 두면 늘 흔들릴 수밖에 없지만, 완벽하고 단단한 반석이신 하나님께 뿌리를 내릴 때 우리는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③생명의 공급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날 때, 목말라 죽어가는 그들을 위해 반석을 쪼개시고 생수를 주셨습니다. 광야에서 생수를 주신 것처럼 하나님은 영적으로 갈급하고 메마른 우리 영혼이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공급해 주십니다.
고전 10:4입니다.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사도 바울은 이 광야의 반석이 곧 우리를 위해 깨어지시고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의 인생은 하나님을 반석으로 삼은 삶이 얼마나 견고하고 복된지를 보여주는 가장 완벽한 모델입니다. 다윗의 청년기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사울 왕에게 쫓기는 처절한 도망자의 삶이었습니다. 숨을 곳 하나 없는 거친 광야에서, 하나님은 다윗의 반석이 되어 주셨습니다. 군사력도, 의지할 배경도 없던 다윗은 동굴과 바위틈에 숨을 때마다 그 딱딱한 돌을 의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숨겨주시는 진정한 반석이신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반석이신 하나님이 그를 덮어 보호하셨기에 다윗은 머리카락 하나 상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인생의 극심한 굴곡을 겪었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변동성 많았습니다. 환경은 늘 요동쳤지만, 단단한 바위 위에 발을 딛고 서 있는 것처럼 다윗은 중심을 견고히 지키며 참된 평안을 누렸습니다. 다윗은 세상이 아무리 흔들어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반석 위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승리했으며 가장 영광스러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지금 무엇 위에 세워져 있습니까? 눈에 보이는 환경입니까, 통장 잔고입니까, 아니면 사람의 평판입니까? 이것들은 모래성과 같아서 인생의 비바람이 불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반석이신 하나님께 뿌리를 내리십시오. 내 힘과 노력으로 쌓아 올린 인생의 모래성이 무너지는 순간은 절망의 끝이 아니라, 영원한 반석이신 하나님을 진짜로 만나는 축복의 시작입니다.
유쾌한 강의로 대중에게 큰 위로를 전하는 소통 전문가 김창옥 교수에게도, 인생의 가장 어둡고 깊은 영적 침체기가 있었습니다. 남들을 위로하는 강사로서 최고의 정점에 올라 모두의 부러움을 받던 그때, 정작 그의 내면은 극심한 우울증과 정신적 고통으로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숨을 쉬기조차 힘들 만큼 영혼이 상해 ‘이제 내 인생은 끝났다’고 느꼈던 절망의 순간, 그는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제주도로 내려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기도의 자리로 나아갔습니다. 그동안 그가 의지했던 대중의 인기, 명성, 그리고 자기 자신의 능력은 바람 한 번에 쉽게 허물어지는 모래 위에 세운 성과 같았습니다. 세상의 모래성이 다 무너지고 나서야 비로소 그는 인생의 참된 기초를 보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침묵과 고독의 시간에, 하나님은 그의 깨어진 내면과 어린 시절의 깊은 상처를 만지시며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사랑의 반석이 되어 주셨습니다.
김창옥 교수는 고백합니다. 자신이 다시 강단에 서서 사람들을 진심으로 위로할 수 있게 된 것은 나의 어떠함이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인생의 가장 깊은 밑바닥에서 자신을 굳건히 붙들어 주신 '반석이신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라고 말입니다. 내 힘과 노력으로 쌓아 올린 인생의 모래성이 무너지는 순간은 절망의 때가 아닙니다. 내 인생을 영원히 떠받치고 계시는 진짜 기초, 즉 '단단한 반석이신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축복의 시작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다윗처럼 낙심되는 상황 속에서도 자기 영혼에게 명령하십시오.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살아계시고, 도우시며, 반석이신 그 하나님이 오늘 여러분의 인생을 다시 굳건히 세워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