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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설교문

[20260621]범사에 감사해야 하는 이유/ 데살로니가전서 5:18

작성자마경훈목사|작성시간26.06.20|조회수99 목록 댓글 0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 이유/ 데살로니가전서 5:18

설교자: 마경훈 목사, 비전교회

감사가 우리 삶에 유익하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입니다. 특히 감사는 육체의 건강에 큰 도움이 됩니다. 미국의 실업가 스탠리 탠박사는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1976년 갑자기 척추암 3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당시 기술로는 완치가 불가능해 모두가 절망했으나, 그는 몇 달 만에 건강하게 복귀했습니다. 비결을 묻는 사람들에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감사만 했습니다. 병든 것도, 병들어 죽게 된 것도 무조건 감사하다고 매 순간 기도했더니 암세포가 사라졌습니다.” 이처럼 그의 회복은 감사에 응답하신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또한 감사는 정신 건강에도 탁월합니다. 미국 심리학회의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 교수와 로버트 에몬스(Robert Emmons) 교수 등은 감사 일기 쓰기와 감사 편지 보내기가 우울증을 완화시킨다는 임상 연구를 발표했으며, 현재 미국의 수많은 정신과 클리닉에서 이를 치료 과정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뇌는 쓸수록 그 방향으로 길이 나는데, 이를 신경가소성이라고 합니다. 플라스틱에 힘을 가하면 모양이 변하고 그 상태가 유지되듯,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따라 뇌의 물리적 구조가 끊임없이 리모델링된다는 원리입니다. 성인의 뇌세포는 퇴화하기만 한다는 과거의 통념을 현대 뇌과학이 완전히 뒤집은 것입니다. 뇌 속 수천억 개의 신경세포(뉴런)는 시냅스라는 다리로 신호를 주고받는데, 자주 쓰는 길은 오솔길이 8차선 고속도로가 되듯 빨라지고, 안 쓰는 길은 효율성을 위해 뇌가 스스로 연결을 끊어버립니다.

이 신경가소성의 대표적인 증거가 있습니다. 복잡한 런던 시내 지도를 외운 택시 기사들의 뇌를 MRI로 촬영했더니 공간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의 크기가 일반인보다 훨씬 커져 있었고, 운전을 그만두면 다시 평범한 크기로 줄어들었습니다. 또한, 뇌졸중으로 뇌의 운동 영역이 손상되어 팔다리가 마비되더라도, 피나는 재활 훈련을 반복하면 손상되지 않은 다른 뇌 부위가 그 역할을 대신 맡아 다시 움직이게 됩니다. 이를 기능적 재배치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우울증으로 슬프게 사는 사람일수록 반드시 감사를 훈련해야 합니다. 우울증 환자의 뇌는 이미 절망, 불평, 무기력이라는 부정적인 신경 고속도로가 탄탄하게 뚫려 있습니다. 이 회로를 바꾸려면 처음에는 어색하고 힘들지라도 억지로라도 감사해야 합니다. 황무지에 새 고속도로를 내듯 수많은 반복이 이어질 때, 뇌의 전두엽이 활성화되고 도파민과 세로토닌 같은 행복 호르몬이 분비됩니다. 결국 이 지속적인 훈련이 기존의 부정적 회로를 끊고 뇌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리모델링하여 새로운 감사의 신경 고속도로를 구축하게 만듭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하십니다. 좋은 일뿐만 아니라 어려움과 문제를 만나도 감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본분입니다. 오늘 설교를 통해 우리가 왜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함께 나누겠습니다.

 

1. 하나님의 명령이자 뜻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을 향한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라고 말씀합니다. 감사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순종해야 할 명령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 상황을 내려놓고 이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와 인간을 지으신 창조주이시며,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내신 구원주이십니다. 피조물이 주권자의 뜻에 따르는 것은 가장 자연스러운 질서입니다.

예레미야 29:11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우리의 안목은 근시안적이지만 하나님의 지혜는 완전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명령은 우리를 억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가장 좋은 것을 주시려는 사랑의 배려입니다.

요한복음 14:15입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순종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증거입니다. 말과 혀로는 진짜 사랑을 증명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가 주의 계명을 지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순종하는 자에게 수많은 영육 간의 복을 약속하십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명령 역시 우리가 순종할 때 복이 됩니다.

실제로 이 명령에 순종하여 기적을 체험한 간증이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팔다리가 없이 몸통만 가지고 태어난 닉 부이치치의 이야기입니다. 닉 부이치치는 어린 시절 극심한 우울증으로 10세 때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할 만큼 절망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의 신앙 교육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붙잡고, 내게 없는 것대신 아직 남아 있는 작은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뿐인 작은 발가락, 볼 수 있는 눈, 들을 수 있는 귀에 대해 억지로라도 감사를 고백했습니다.

그렇게 감사가 시작되자 하나님의 은혜가 쏟아졌습니다. 그는 수영, 서핑, 골프 등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전 세계에 희망을 전하는 영향력 있는 리더가 되었습니다. 나아가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 네 자녀의 아버지가 되는 복까지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조건이 아무리 나쁠지라도 그가 가진 조건보다는 좋을 것입니다. 닉 부이치치도 해냈다면 우리도 충분히 감사할 수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2. 구원 받았기 때문입니다.

구원 받은 것이 감사한 이유를 몇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은혜로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행위로 구원받는다면 세상에 구원받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고 선언합니다. 모든 인간은 죄인이며 죄의 삯은 사망이기에, 우리 역시 멸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무능함을 아시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 대속의 죽음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는 이 은혜는 하나님의 전적인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주한 어떤 어려움보다 구원의 은혜가 비교할 수 없이 더 크고 보배롭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러시아 니콜라이 1세 황제의 일화가 전해집니다. 황제가 군대를 시찰하던 중, 막대한 빚을 지고 절망해 잠든 한 젊은 장교의 막사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장교의 장부에는 이 많은 빚을 누가 갚으리오?”라는 탄식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를 본 황제는 그 밑에 니콜라이라고 자기 이름을 적어주었고, 다음 날 장교의 모든 빚은 황실 자금으로 전액 탕감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엄청난 죄의 빚을 진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당신의 이름으로 이를 청산하셨습니다. 주님이 숨을 거두시며 외치신 다 이루었다는 말은 헬라어로 테텔레스타이입니다. 당시 상업적으로 빚이 전액 완납되었다는 뜻으로 쓰인 단어입니다. 영수증에 도장을 쾅 찍듯 주님이 우리의 죄책을 완벽히 청산하시고 구원하셨으니, 우리는 범사에 감사해야 마땅합니다.

 

  둘째, 지옥에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가장 큰 은혜는 지옥 가지 않는 은혜입니다. 지옥의 고통은 끔찍하고 영원합니다. 지옥은 꺼지지 않는 불 속에서 영원히 고통당하는 곳입니다. 거기에는 작은 소망도 없고, 오직 후회와 절망의 비명만이 가득합니다. 단 한 방울의 물도, 1초의 휴식도 허락되지 않는 끔찍한 형벌의 공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지옥에 가지 않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니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셋째, 천국에 가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자의 종착지는 천국입니다. 천국은 눈물, 슬픔, 고통이 전혀 없는 완벽한 평안의 처소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여 해와 달이 필요 없고, 수정 같은 생명수 강이 흐르며 결핍과 두려움이 없는 곳입니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처소입니다. 이 땅의 고난은 잠깐이지만 천국의 영광은 영원합니다. 장차 올 천국의 영광에 비하면 지금의 고난은 지극히 가벼운 것이니 우리는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가르쳐주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중 가장 복된 것은 바로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실 때 자녀에게는 위대한 유익이 주어집니다.

 

  첫째, 보호와 공급입니다. 고아는 세상에 기댈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불쌍합니다. 고아는 늘 내일의 생존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기에 염려와 두려움 속에 살아갑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면 삶의 모든 무거운 짐과 염려를 아버지께 온전히 맡길 수 있습니다. 하늘 아버지는 우리의 영과 육의 필요를 다 알고 계시며,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내일 일을 염려하지 않고 참된 자유와 평안을 누리며 오늘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과 육의 필요를 채우시는 분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아프리카 모잠비크에서 수만 명의 고아들을 돌보며 사역하고 있는 하이디 베이커 선교사의 간증입니다. 사역 초기, 그녀는 아무런 재정적 기반도 없이 모잠비크의 황폐한 쓰레기 매립장 근처에서 수많은 고아와 병든 아이들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당장 아이들에게 먹일 양식은 물론이고 깨끗한 물 한 모금조차 부족해 절망했습니다. 그녀는 "환경을 보지 말고 주님의 신실하심을 감사하라"는 마음의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참혹한 현장에서, 눈물을 흘리며 입술을 열어 억지로 "하나님, 이 아이들을 만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오늘 공급하실 주님을 찬양합니다"라고 의지적으로 감사하며 기도했습니다.

상황은 전혀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된 이 억지 감사가 기적의 물꼬를 텄습니다. 그날 이후 전 세계에서 기적적인 재정 후원이 답지하기 시작했고, 죽어가던 아이들이 살아났으며, 수백 개의 교회와 학교, 고아원들이 세워졌습니다. 현재 그녀의 사역지는 감사가 어떻게 황무지를 에덴으로 바꾸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보호와 공급입니다. 감사로 일어난 기적입니다.

 

  둘째, 기도 응답의 특권입니다. 세상의 권력자를 만나려면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고 거절당하기 쉽지만, 자녀는 아무리 늦은 밤이라도 아버지의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갈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며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녀의 신음과 눈물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자격이 아닌 자녀라는 신분때문에 무조건 귀를 기울이십니다. 우리는 그 믿음으로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셋째,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세상의 관계는 실력이나 조건에 따라 평가받고 끊어지기도 하지만,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실수를 해도 끊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방황할지라도 아버지는 인내로 품어주십니다. 때로 때리시는 사랑의 매조차도 우리를 파멸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게 성장시키려는 목적입니다. 이 사랑이 삶의 절대적인 안정감을 줍니다. 그러니 우리는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넷째, 상속자의 권세입니다. 자녀의 최고 특권은 부모의 유산을 이어받는 상속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이 땅에서 비록 나그네처럼 소박하게 살지라도, 장차 영원한 천국과 하나님의 부요함을 물려받을 하늘의 상속자입니다. 이를 확신하면 어떤 결핍과 고난 앞에서도 당당하게 세상을 이기는 자존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세상에 기댈 곳 없는 고아는 내일의 생존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기에 늘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아가 아닙니다.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나의 '아빠 아버지'가 되십니다!

자녀의 자격은 내 행동의 완벽함에 있지 않고, 예수 피로 맺어진 '신분'에 있습니다. 실수하고 넘어졌습니까? 낙심하지 말고 아버지의 안방 문을 담대히 열고 들어가십시오. 우리는 이 땅에서 잠시 나그네로 살지만, 장차 영원한 천국을 물려받을 '하늘의 상속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당장 눈앞의 결핍 때문에 비굴해지거나 원망하지 말고, 아버지가 계시다는 든든한 믿음을 가지고 범사에 감사하며 당당하게 세상을 이기시기를 바랍니다.

 

4. 모든 상황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28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그리스도인의 삶에 우연은 없습니다. 지금 당장은 이해할 수 없고 답답한 상황일지라도, 하나님은 결국 그것을 바꾸어 가장 좋은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얼마 전 설교를 통해 합력하여 이루어지는 선의 의미를 나누었으므로 여기서는 짧게 지나갑니다. 중요한 것은 이 말씀을 진짜 믿는가입니다. 믿으면 염려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게 되며, 결국 범사에 감사하게 됩니다. 내 삶을 점검해 보십시오. 정말 이 믿음이 있어 염려를 버리고 범사에 감사하고 있습니까?

 

5. 환경을 초월하는 진정한 평안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평안은 문제가 해결되어야 찾아오는 조건부 평안이지만, 성경이 말하는 평안은 폭풍우 한가운데서도 누리는 초월적인 평안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범사에 감사할 때, 뇌의 회로가 바뀌고 마음의 빗장이 열리며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십니다.

빌립보서 4:6-7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염려 대신 감사함으로 기도할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십니다.

어느 미술 대회의 진정한 평안이라는 공모전에서 1등을 한 그림이 있습니다. 그림의 배경은 번개가 치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거친 절벽이었습니다. 전혀 평화롭지 않아 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절벽 틈새 나뭇가지 위의 둥지 속에서, 어미 새의 날개에 품어진 어린 새 한 마리가 폭풍우 소리를 배경 삼아 가장 안전하고 평안한 표정으로 깊은 잠에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범사 감사가 바로 이와 같습니다. 내 삶을 둘러싼 환경은 여전히 폭풍우가 치고 당장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을지라도, 날개 아래 나를 품어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먼저 감사를 고백할 때, 환경을 압도하는 하늘의 평안이 영혼 깊은 곳에 임하게 됩니다.

 

6.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원망하지 않고 감사할 때, 하나님은 크게 영광 받으십니다. 시편 50:23절은 이를 명확히 선포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여기서 감사의 제사는 조건이 좋을 때 드리는 유쾌한 노래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구약의 제사가 피를 흘리는 희생을 동반했듯, 진정한 감사의 제사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고난의 한복판에서 내 감정과 고집을 죽이고 드리는 의지적인 희생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내 삶의 진짜 주인으로 인정하는 최고의 신앙고백입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페르시아 제국의 수석 총리가 된 다니엘을 시기한 고관들은 “30일 동안 왕 외에 다른 신에게 기도하면 사자굴에 던지자는 법령을 만들고 왕의 도장을 찍었습니다. 기도하면 죽어야 하는 위기였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반응은 단호했습니다. 그는 왕의 조서에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집으로 돌아가 늘 하던 대로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어두었습니다. 그리고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다니엘 6:10을 보겠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여기서 주목할 점은 다니엘이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원망이나 살려달라는 애걸복걸 대신, “전에 행하던 대로...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라는 대목입니다. 다니엘에게 감사는 환경이 좋을 때만 하는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사자굴에 들어가 죽게 된 이 비극적인 상황조차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믿었기에, 그는 상황에 지배받지 않고 의지적으로 범사의 감사를 선택하여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해 드렸습니다.

다니엘은 결국 사자굴에 던져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며 감사로 들어간 다니엘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천사들이 사자의 입을 봉했고, 다니엘은 머리카락 하나 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목숨 걸고 감사를 드린 다니엘을 세상 앞에 영화롭게 높이셨습니다. 모함했던 원수들은 사자굴에서 비참한 종말을 맞았고, 다리오 왕은 온 천하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선포했습니다. 다니엘은 그다음 왕의 시대까지 대를 이어 형통함과 존귀함을 누렸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를 하나님은 높이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다니엘처럼 범사에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7. 더 큰 감사의 조건들을 부르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영적인 자석과 같습니다. 지금 내 손에 쥐어진 작은 감사를 고백할 때 더 큰 감사의 조건들을 삶으로 끌어당깁니다. 그런 의미에서 감사는 마중물입니다. 깊은 지하에 있는 샘물을 길어 올리기 위해서는 먼저 한 바가지의 마중물을 부어야 하듯, 우리의 척박한 삶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의 샘물이 터져 나오게 하는 영적 마중물이 감사입니다.

하나님은 작은 것에 충성하는 자에게 더 큰 것을 맡기십니다. 지금 내 상황이 비록 어렵고 보잘것없을지라도, 그 안에서 하나님의 선한 손길을 찾아내어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더 크고 놀라운 감사거리들을 주십니다. 원망과 불평은 이미 가지고 있는 복마저 갉아먹고 삶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감사는 메마른 삶에 축복의 비를 내리게 합니다.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감사는 선택입니다. 원망과 불평도 선택입니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는 저와 여러분의 자유의지입니다. 저는 감사를 선택하겠습니다. 여러분도 감사를 선택하십시오.

아브라함 링컨은 감사를 선택했습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3년입니다. 미국은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 수많은 사상자, 국가적 분열과 경제적 파탄으로 절망이 깊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아브라함 링컨은특별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는 감사할 거리가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링컨 대통령은 1863103, 전국 추수감사절을 공식 선포하는 포고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국민들에게 전쟁의 고통과 슬픔 가운데서도 우리를 보존하시고, 여전히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기억하며, 전 국민이 마음을 모아 감사와 기도를 드리자고 독려했습니다. 이 선포 후 18631126, 미국 전역에서 처음으로 국가적인 추수감사절이 지켜졌습니다. 비록 전쟁은 1865년까지 계속되었지만, 이 감사의 물결은 국민들의 마음에 소망과 연합의 정신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한 국가 전체가 극한의 위기와 절망 가운데서도 원망과 불평 대신 범사에 감사를 선택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상황은 당장 변하지 않았지만,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높일 때 민족의 분열이 치유되고, 전쟁이 종식되며, 이후 미국이 놀라운 회복과 번영을 경험하는 토대가 마련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개인적, 가정적, 국가적 어려움 속에서 링컨 대통령처럼 의지적으로 감사를 선택합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상상 이상의 은혜와 복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하루에 천 번 감사를 목표로 하나님께 감사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에 놀랍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뇌는 전에 행하던 대로 길을 냅니다. 평소에 불평의 오솔길을 자꾸 걸으면 뇌는 불평의 고속도로를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위기가 오면 나도 모르게 원망이 튀어 나옵니다. 반대로 평소에 감사의 길을 닦아두면, 어떤 위기 앞에서도 다니엘처럼 전에 행하던 대로 감사가 터져 나오게 됩니다.

결단합시다. 감사는 내 기분의 감정이 아니라 내 의지의 선택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루에 천 번 감사하기'를 시작해 보십시오. 아침에 눈을 뜰 때 '호흡 주심에 감사합니다', 밥을 먹을 때 '일용할 양식에 감사합니다', 힘든 사람을 만날 때 '나를 다듬어주시니 감사합니다'. 매 순간 억지로라도 감사의 마중물을 부을 때, 여러분의 황무지 같던 삶이 에덴동산처럼 변하는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오늘은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 이유를 말씀드렸습니다.

1. 하나님의 명령이자 뜻이기 때문입니다.

2. 구원 받았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4. 모든 상황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5. 환경을 초월하는 진정한 평안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6.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7. 더 큰 감사의 조건들을 부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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