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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노트]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진전 (빌1:12-18)-22.7.17(청대부)

작성자비전가이드|작성시간22.07.14|조회수88 목록 댓글 0

비전의 사람시리즈-바울㊳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진전!

참고말씀: 사40:31; 행6:1-6; 8:1; 11:19-21; 15:37-41; 27:27; 고후12:7-9; 갈2:11-14; 딤후4:11

읽을말씀: 빌1:12-18

주제말씀: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첫째, 합력해서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빌1:12)

 

 비전의 사람은 무엇에 당황하지 말아야 합니까? 우리에게 당한 일입니다. 어째서입니까?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면 우리가 당한 일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일에 진전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전의 사람 바울의 매임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것처럼 말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12절)

 그러나 흔히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곤 합니까? 우리에게 당한 일이 우리를 강제로 멈추게 하거나 뒤로 물러나게 한다고 입니다. 이를테면 입시(入試, 입학시험)의 실패가 우리를 퇴보하게 하고, 불의의 사고가 우리를 한동안 가둬두며, 상황의 급변이 우리를 멈추게 하며, 원치 않는 갈등이 우리를 위축되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바울은 이 같은 생각들에 동의했습니까? 아닙니다. 전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당한 일이 자기를 멈추거나 물러서게 하지 않고, 오히려 도움이 되고 밀어주고 있다고 입니다.

 마치 연(kite)이 맞바람을 맞으면서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독수리가 상승기류를 타고 하늘을 향해 박차고 날아오르며,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 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사40:31 상) 돛을 단 배가 세찬 바람으로 인해 목적지까지 더 빨리 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열나흘째 되는 날 밤에 우리가 아드리아 바다에서 이리 저리 쫓겨가다가 자정쯤 되어 사공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워지는 줄을 짐작하고.”(행27:27)

 사실 당시의 항해술로 그레데에서 멜리데까지 보름이면 빨리 온 것이 아닙니까? ‘이 풍랑으로 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는 찬송가 가사로 절로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찬송가 373장 ‘고요한 바다로’).

 그렇다면 바울은 무엇을 근거로 이같이 확신할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참고로, 어떤 사본에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시느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무슨 일을 만나든지 누구를 신뢰할 수 있었습니까?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입니다. 또 무슨 일을 당하든지 무엇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까?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의 일이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진전될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 같은 경우들이 또 있습니까? 비일비재합니다. 이를테면 초대교회의 갈등은 스데반이나 빌립과 같은 좋은 일꾼이 세워지는 계기가 되었고,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열두 사도가 모든 제라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행6:1-6)

 스데반의 순교는 복음을 더 빨리 확신시켰으며,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행8:1 하) /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행11:19-21)

바울과 바나바의 갈등은 사역자들을 늘리고 복음 전도 구역도 더욱 확장시켰으며,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행15:39-41)

 바울의 육체의 가시는 그를 겸손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능력이 언제까지나 그에게 머물게 하는 도구가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되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12:7-9)

 우리에게는 이와 같은 일이 없습니까? 명심하십시오. 우리가 당한 일이 도리어 하나님 나라의 일에 진전이 되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하시려는 일들을 더욱 앞당길 수 있다는 점을 말입니다.

 

 

둘째, 갈등을 우리의 성장을 위한 도구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빌1:17,18)

 

 비전의 사람은 또 무엇에 당황하지 말아야 합니까? 여러 가지 갈등 상황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이는 비전의 사람을 더욱 성장하게 하는 하나님의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성장통(成長痛, growing pains)을 통해 더욱 자라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참고로, 성장통이란 특별한 신체적 이상은 없이 어린이나 청소년이 갑자기 자라면서 생기는 통증을 가리킵니다.

 본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빌립보교회는 바울의 수감 소식을 듣고 모두가 다 순전한 마음으로 열심을 내었습니까?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그리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15절)

 그들은 누구였습니까? 삯군 목자들입니다. 당시 그들은 바울의 부재를 틈타서 순수하지 못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했으며, 다소 질투심에 불타서 경쟁적으로 복음을 전했던 것 같습니다.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17절 하) 그러나 다행인 것은 비록 이들이 순수하지 못한 동기에서 복음을 전했으나 복음의 내용만큼은 변질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만일 변질되었다면 빌립보교회가 그들을 용납하도록 바울이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그들은 왜 열심을 내었다고 했습니까? 바울의 매임에 괴로움을 가중시키기 위함입니다.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17절 상) 아마도 ‘바울 없이도’ 자신들끼리 얼마든지 잘 할 수 있으며 ‘바울보다도’ 더 잘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습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기뻐하고 또 기뻐했습니다.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18절 하) 어째서입니까? 나무들을 보지 않고 숲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눈앞에 있는 문제들을 주목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큰 그림에서 이 모든 상황을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어떤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까? 무슨 방도로 하든지 그리스도가 전파될 수 있다면 이로써 감사할 수 있다고 입니다.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도한 기뻐하리라.”(18절)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바울처럼 나무들을 보지 않고 숲을 보고 있습니까? 성경 속 비전의 사람들처럼 눈앞에 있는 문제들을 주목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큰 그림에서 이 모든 상황을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바울은 또 무슨 관점에서 이 상황을 바라보았습니까? 갈등은 성장을 위한 도구라는 관점입니다. 어째서입니까? 비전의 사람은 언제나 갈등과 그 해결 과정을 통해 성장해간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마가 요한과의 갈등이 그러 했고,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4:11 하) 바나바와의 갈등이 그러 했으며,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행15:39)

 베드로와의 갈등이 그리 했던 것입니다.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갈2:11-14)

 하지만 그는 갈등이 봉합된 이후에는 항상 어떠했습니까? 한층 성장하고 성숙해져갔습니다. 사역뿐만 아니라 사람도 볼 수 있었고,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4:11 하) 하나의 방법 외에도 얼마든지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있음을 깨달았으며,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행15:37-39)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큰 그림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18절)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바울처럼,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며, 눈앞에 있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큰 그림에서 이 모든 상황을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또한 성경 속 많은 비전의 사람들처럼 갈등은 우리를 성장하게 하는 도구임을 깨닫고, 그 해결 과정을 통해 날마다 성장해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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