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설교노트] 믿음과 성령으로 행하라 (갈5:1-26)-26.3.16(새벽)

작성자비전가이드|작성시간26.03.13|조회수32 목록 댓글 0

믿음과 성령으로 행하라

읽을말씀: 갈5:1-26; 갈2:19,20

주제말씀: 갈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첫째,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으로 서로 섬겨야 합니다(1-15절).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5:13)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해 다시는 무엇을 메지 말라고 했습니까? 종의 멍에, 즉 율법의 멍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1절)

 그러면서 무엇을 재차 강조했습니까? 할례의 무용론입니다.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2절) 어째서입니까? 할례를 받으면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지게 되며,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3절) 그리스도의 은혜로부터 끊어지고 멀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4절)

 그러니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무엇을 따라 행해야 합니까? 성령과 믿음입니다. 즉 성령을 따라 행하며 또한 믿음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5절) 여기서 믿음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가리킵니까?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사랑을 동반한 믿음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6절)

 이와 동시에 어떤 것들을 끊어내어야 합니까? ① 우리를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권면, “너희가 달음질을 잘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7절) ② 다른 마음,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10절 상) ③ 우리를 요동하게 하는 자들, “...그러나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10절 하) ④ 우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입니다.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12절)

 바울은 이런 것들이 무엇과 같다고 했습니까? 온 덩이에 퍼지는 적은 누룩입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9절) 어째서입니까? 적은 누룩 하나를 방치하면 이내 온 반죽 에 퍼져서 그 전체를 못 쓰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한편, 성도의 자유는 무엇을 위해 사용되어서는 안 됩니까? 육체의 기회입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13절 상) 대신 무엇을 위해 사용되어야 합니까? 사랑으로 서로 섬기는 일입니다.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13절 하)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로 다시는 육체의 기회를 삼거나 종의 멍에를 메지 말고, 오히려 사랑으로 서로 섬기기에 힘쓰고 있습니까?

 

 

둘째, 육체의 열매가 아니라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16-26절).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로 종의 멍에를 메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령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어째서입니까? 그래야만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을 수 있고,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16절) 육체의 기회로 삼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13절 상)

 이로 보건대 육체의 소욕과 성령은 어떤 관계에 놓여 있습니까? 대립적 관계입니다. 즉 육체의 소욕은 항상 성령님을 거스르고, 성령님은 육체를 거스르시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17절)

  그러니 율법 아래에 있지 않으려면 무슨 방법밖에 없습니까?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방법입니다.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18절) 즉 성령의 인도하신 바 될 때, 육체의 일을 더 이상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멀리하게 됩니까? 음행과 더러운 것, 호색, 우상 숭배, 주술,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노, 당 짓는 것, 분열함, 이단, 투기, 술 취함, 방탕함 등입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19-21절)

이런 자들은 무엇을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까?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21절 하)

 그러나 성령 안에 있으면 어떻습니까?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22,23절)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됩니다. 어째서입니까? 성령이 우리의 삶과 내면에 이와 같은 열매들을 맺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성령의 열매는 결국 무슨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까? 사랑의 열매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사랑은 엄청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개념으로써 나머지 8가지를 모두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사랑은 희락이며, 사랑은 화평이며, 사랑은 오래 참음이며, 사랑은 자비이며, 사랑은 양선이며, 사랑은 충성이며, 사랑은 온유이며, 사랑은 절제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무엇에 대해서 죽었으므로, 더 이상 육체의 열매를 맺지 않게 됩니까? 육체와 그 정욕, 탐심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24절)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갈2:20 상) /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갈2:19)

 대신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게 됩니까? 성령으로 살고 성령으로 행하는 삶입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25절)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믿음의 삶은 곧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삶임을 깨닫고, 날마다 육체의 욕심이 아니라 오히려 성령을 따라 행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항상 성령의 인도하신 바 되어 살아가고 있느냔 말입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